앤서니 베넷
1. 소개
前 NBA 선수.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픽으로 지명된 사상 최초의 캐나다 국적의 선수'''[1] 였으나 콰미 브라운과 그렉 오든을 능가한 '''21세기 최악의 1번 픽'''[2][3] 이었다.
2. 드래프트 이전
UNLV 시절 꽤 괜찮은 슛 능력과 파워 포워드, 스몰 포워드를 모두 볼 수 있는 능력으로 주목받았다. 비록 UNLV는 NCAA Division I 남자농구 챔피언십에서 바로 UC 버클리에 패배하였지만 베넷은 NBA 드래프트를 신청했다.
3. 1번으로 지명받다
사실 드래프트 전까지 베넷은 분명 최상위 픽으로 거론되는 선수였지만, NCAA 시즌 시작을 할 당시에는 켄터키 대학교의 너렌스 노엘이 부동의 1픽으로 거론되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여기서 변수가 생기는데 노엘이 왼쪽 무릎이 손상되는 부상을 당하면서 시즌아웃을 당하고 그 이후에도 1년을 쉬어야 하는게 확정되면서 루키 시즌을 날리게 되자 순식간에 1픽 후보의 행방은 춘추전국시대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의 마커스 스마트마저 학교에 잔류를 선언했고 뎁스가 상당히 취약했던 2013년 드래프트는[4] 확실한 1번 픽 대세선수가 전무한 상황이었으며 그나마 나머지 선수들도 예전에 비해 상당히 질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어떤 때는 인디애나 대학교의 빅터 올라디포(올랜도 매직), 어떤 날은 메릴랜드 대학교의 알렉스 렌(피닉스 선즈), 어떤 날은 조지타운 대학교의 오토 포터 주니어(워싱턴 위저즈), 어떤 날은 캔자스 대학교의 벤 멕클레모어(새크라멘토 킹스), 어떤 날은 앤서니 베넷 등 순위가 계속 요동쳤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체 1픽을 쥐고 있었던 클리블랜드는 1번 픽을 트레이드 하려고 상당히 애를 쓰지만 많은 팀들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등 2013년 드래프트의 질은 상당히 나빴을 뿐만 아니라 정해진 1순위가 없는 등 혼란에 빠진 상황이었다. 드래프트가 다가오게 되었을 땐 빅터 올라디포, 벤 멕클레모어, 오토 포터 정도가 1픽으로 사람들이 많이 예상을 하는 분위기였으나 다른 변수가 생겨도 놀랄 일은 아니었으며 1년 못 쓰는 상황을 고려하고 노엘을 지명할 가능성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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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운명의 드래프트 날이었던 2013년 6월 27일이 다가왔고 드래프트 픽을 트레이드하는 데 실패한 클리블랜드는 결국 수많은 논란을 야기하며[7] 베넷을 지명하게 된다.
4.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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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는지 어쩡쩡한 트위너급으로 불과 1시즌만 활약했다. 심지어는 클리블랜드가 베넷을 NBA의 마이너리그에 해당하는 D-League로 내려보낼 것을 고려하기도 했었는데, D-League로 내려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만약 내려갔었더라면 사상 최초로 전체 1픽이 D-League로 내려가는 역사를 쓸 수도 있었다. 그 이후 르브론 제임스를 재영입하며 대권도전을 노린 클리블랜드에게 베넷은 당연히 짐이 되는 카드였고, 써머리그에서 괜찮은 모습을 보인 것을 미끼로 하여 결국 케빈 러브를 영입했을 때 그 해 1번 픽이었던 앤드류 위긴스와 더불어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로 이적했다.
5.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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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에서는 클리블랜드 시절 맺었던 루키계약 옵션을 실행하는 등, 베넷이 부활할 거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고, 클리블랜드 시절보다는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아주 약간 나아진 정도였으며 어쩡쩡한 신체와 경기능력으로 인해 많은 기회를 잡지 못했다.
결국 2015년 9월 23일, 베넷의 에이전트와 미네소타는 서로 간의 합의 아래 바이아웃을 진행하여 베넷은 연봉 일부를 포기하고 자유계약시장에 나오게 되었다. 이로써 느바 최악의 1번 픽 거진확정. [8] [9]
6. 토론토 랩터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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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에서 방출된지 5일만에 토론토 랩터스와 1년 계약을 맺었다. 금액은 비공개. 그리고 여기서도 가비지 멤버로 출장하였으며 자신감과 경기감각이 확 떨어졌는지, 특히 슛 성공률 부문에서 처참한 스탯을 기록하였다.
게다가 NBA D리그에서도 1픽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기록을 냈었다. 2경기에서 평균 15분 출장 6.5득점 3리바운드였으나 문제는 야투율이 30%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골든스테이트에서 웨이버 공시된 제이슨 탐슨을 영입하기 위해 자신의 출신지 팀에서도 쫒겨났다. 건강하게 꾸준히 후보빅맨으로나마 뛰어주었다면 적어도 100경기 남짓 뛰고 커리어가 끝장난 그렉 오든보다는 나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겠지만, 심지어 그렇지도 못하고 통산 '''128경기 4.2점 3.1리바운드 0.5어시스트'''라는 눈 뜨고 보기 처참한 기록만을 남기고 NBA에서 쫓겨났다는 점에서 엄청난 반전이 있지 않는 이상 NBA 사상 최악의 1번픽은 사실상 확정이라고 볼 수 있다. 콰미 브라운은 1픽 수준이 아니었던 거지 적어도 10년 이상 준주전급 센터로 뛰어줬고 오든은 건강하게 뛰었을 때 한정으로 굉장히 위력적인 수비형 센터였다. 그러나 베넷은 불과 3년차만에 NBA급 실력조차 갖고 있지 못했다는게 들통났다.
7. 브루클린 네츠 시절
브루클린과 계약하면서 NBA에 다시 돌아왔다. 엇나간 트레이드로 엉망이 된 팀이지만 베넷이 잘할 지는 미지수였지만, 결국 2017년 1월 9일 네츠에서도 살아남지 못하고 방출되었다.
8.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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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3일 터키 리그 페네르바흐체와 계약하여 팀을 유로리그 챔피언까지 이끌었고[10] 이후 NBA G 리그에서 여러 팀을 돌아다녔다. G리그 통산 성적은 68경기 13.2득점 5.6리바운드 1.6어시스트로 평범한 성적. 상황이 이렇다보니 NBA로 돌아가긴 쉽지 않아보였는데...
9. 휴스턴 로키츠 시절
2019년 7월 13일, 휴스턴 로키츠와 계약했다. 다만 비보장 계약이며 그에 따라 비시즌 트레이닝 캠프에서 기량을 점검한 뒤 로스터 합류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휴스턴과의 계약 직전 시전인 18-19시즌 G리그에서 25경기 중 7경기만을 선발로 출전하여 20.9분을 뛰며, 사실상 벤치자원으로 뛰었지만, 야투율 .546 3점슛 .453(경기당 2.1개) 자유투 .831(경기당 2.0개)로 PER 21.8, TS .721을 찍으면서 높은 효율성을 보여주었기에, 이제는 NBA에서 뛸 수 있는 자원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 무릎 부상으로 이탈함과 동시에 방출되었다.
[1] 바로 다음 해 역시 캐나다인이었던 앤드류 위긴스가 전체 1픽으로 지명되어 유일한 캐나다인 전체 1픽의 기록은 불과 1년만에 깨졌다.[2] 콰미는 그저 그런 빅맨으로나마 10년 이상 NBA에서 선수로 뛰었고, 오든의 경우 실력은 확실히 있었으되 (09플옵 당시 포틀랜드 빅맨들 중 휴스턴의 스타 센터 야오밍을 가장 괴롭혔던 건 루키 오든이었다) 부상 때문에 커리어가 망했더라면, 베넷은 '''그냥 너무 못해서''' 제대로 뛰지 못했던 걸 보면 진정한 망픽이었다. 역시 여기서 농구는 피지컬이란 걸 알 수 있는데 수비력만은 확실했던 오든은 제쳐두고 기술만 보면 콰미는 베넷보다 나을게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는 211cm란 좋은 덩치에 훌륭한 운동능력으로 그나마 약팀의 주전급 센터로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베넷은 애초에 포지션 대비 키가 작고 운동능력도 그렇게 좋은 건 아니었지만 다재다능함으로 커버하는 케이스였다. 근데 그 기술이란게 NBA 레벨에서 거의 통하지 않았으니 급격히 잉여가 되었다. 차라리 콰미처럼 피지컬이라도 좋았더라면 이렇게까지 못하진 않았을 것이다.[3] 더불어 90년대까지는 아무리 대형 유망주라도 대학에서 최소한 2년 정도는 보내는게 일반적이어서 20세기 1픽 중엔 의외로 그렇게까지 폭망한 선수가 별로 없다. 마이클 올로워칸디는 그래도 부상으로 몸이 완전히 망가지기 전까지 6년 정도는 웬만한 주전센터급은 됐으며 퍼비스 엘리슨은 20-10까지 했다. 즉, '''그냥 역대 최악의 1픽'''이라고 해도 별 문제 없었다.[4] 2000년 드래프트 이후 최악이라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프로 데뷔 후 야니스 아데토쿤보, 루디 고베어, C.J. 맥컬럼, 빅터 올라디포, 스티븐 아담스, 데니스 슈뢰더, 팀 하더웨이 주니어, 오토 포터 주니어 및 OKC에서 부활한 노엘 등 많은 선수들이 각 팀의 핵심, 몇몇은 이를 넘어 올스타급으로까지 성장하였다.[5] 노엘의 부상은 전방십자인대(ACL) 파열로 무릎 부상 중에서는 가장 큰 부상이라 할 수 있다.(물론 아킬레스 건 파열만큼 나쁜 건 아니며 회복이 잘 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런 부상을 입은 선수가 다시 1순위 감으로 고려될 정도로 해당 년도 드래프트 풀이 최악으로 평가받았다는 것이다.[6] 5년이 지난 시점에서 리그에서의 활약을 기준으로 순위를 다시 매겨본다면 아데토쿤보가 1순위를 차지할 것이며 고베어, 맥컬럼, 올라디포, 아담스 등이 상위권에 있을 것이다. 아데토쿤보는 2018-19시즌 MVP를 받은 슈퍼스타로 성장했으며, 고베어는 2년 연속 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한 최고의 수비형 센터, 올라디포는 고향팀에서 에이스로 자리잡으면서 그 빡센 가드 포지션에서 올-NBA 서드팀까지 올랐고, 맥컬럼은 올스타급에 버금가는 좋은 득점원이며 아담스는 리그 최고의 블루컬러 빅맨 중 하나이다. 물론 미래를 보는 능력이 없는 한 이건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인게 저 선수들 모두 유망주로 알려져 있긴 했지만, 그 누구도 스타급으로 성장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즉 당시 기준으로 고만고만한 유망주들만 가득한 상황에서 캐브스 역시 당시 기준으론 무난한 선택을 했는데(어차피 놓쳐도 별로 아깝지 않은 선수들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캐브스만 혼자 꽝이 나오고 다른 팀들은 대박이 난 셈.[7] 대체적인 베넷의 예상 순위는 5 ~ 10픽 정도여서 깜짝 지명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다.[8] 콰미 브라운과 그렉 오든은 최소한 NBA팀들이 1라운더 루키를 컨트롤 가능한 기간인 4년동안 버리지 않고 계속 팀에 잔류해서 뛰어왔다. 하지만 베넷은 불과 2시즌만에 팀의 골칫덩어리로 전략하여 팀에서 나오게 되었다.[9] 다만 베넷이 방출된 게 순전히 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당시 미네소타는 돌아온 케빈 가넷, 팀 센터진의 기둥인 니콜라 페코비치, 칼 앤서니 타운스, 그 외에 골귀 젱, 에이드리언 페인 등 파워포워드, 센터진이 선수로 넘쳐서 정리가 필요했다. 특히 전체 1순위로 지명된 타운스가 있는 마당에 성장도 더디고 실력도 없는 베넷에게 줄 출장시간 따위는 없었던 것.[10] 10경기에 6.3분 출장해서 경기당 1.2득점, 야투율 26.3%, 3점슛 성공률 18.2%를 기록(...) 팀 공헌도는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