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흐 블로힌
1. 개요
우크라이나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2년부터 2014년까지 FC 디나모 키예프 감독을 맡았다.'''나는 블로힌의 엄청난 성과가 전혀 놀랍지 않아요. 그는 유럽 최고의 윙어입니다. 브라질 선수에 비견될만한 민첩성과 발기술을 가졌죠.'''
우크라이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소련 축구 역사상 최고의 필드플레이어. 요한 크루이프와 프란츠 베켄바워가 발롱도르를 양분하던 시기에 그 둘을 밀어내고 발롱도르를 수상했다는 것으로 올레흐 블로힌의 클래스를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 국적의 선수로는 최초로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3] 소련으로 넓혀도 필드플레이어로는 최초이다.[4]
2. 클럽
FC 디나모 키예프에서 축구를 시작하였고 18살때 팀의 주전 공격수가 되었다. 1973년에 발레리 로바노브스키가 부임한 이후 블로힌의 기량은 올라갔고 4년 연속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후 블로힌의 화살촉은 유럽을 찌를 준비가 되었다. 1974-1975 시즌 PSV 아인트호벤과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헝가리의 페렌츠바로시를 상대로 3:0으로 제압하여[5] UEFA 컵 위너스컵도 들어올리며 명성을 유럽 무대에 알렸다. 이어서 UEFA 슈퍼컵에서 유러피언컵 우승팀이자 프란츠 베켄바워,게르트 뮐러,제프 마이어가 이끄는 FC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1차전에는 1골, 2차전에는 2골을 넣어 합계 3:0으로 완승하여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의 활약으로 블로힌은 1975년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블로힌은 이후에도 맹활약했고 1985-1986 시즌 이고리 벨라노프와 함께 UEFA 위너스컵을 들어올렸고 대회 총 5골을 득점하여 벨라노프와 함께 득점왕을 차지했다.
3.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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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뮌헨 올림픽과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소련 축구 국가대표팀에 동메달을 안겨주었고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2차 조별리그까지 올라갔으나 즈비그니에프 보니에크이 이끄는 폴란드에 패해 4강 진출에 실패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팀의 핵심 선수가 아니었으며 이고리 벨라노프의 활약으로 16강에 진출했으나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접전 끝에 4:3으로 패했다.
4. 지도자
1990년에 은퇴를 하고 지도자의 길을 걸었고,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8강까지 이끌었다. 이후 UEFA 유로 2008 본선 진출에 실패하며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았고, UEFA 유로 2012가 폴란드와 자국에서 공동 개최되어 2011년 ~ 2012년까지 대표팀 감독을 잠깐 맡았고, 2012년 2월 ~ 2014년 4월까지 FC 디나모 키예프 감독을 역임하였다.
5. 플레이 스타일
압도적인 스피드, 드리블 능력으로 유명했다. 별명인 화살도 블로힌의 스피드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인 베르티 포크츠를 유럽대항전에서 만날 때마다 탈탈 털어버렸던 무시무시한 선수이다.
6. 여담
이리나 데리우기나와 결혼하였으나, 1990년에 이혼하였다. 둘 사이에는 외동딸 이리나 블로히나가 있다.
[1] 스트라이커[2] 소련 축구 국가대표팀 최초로 FIFA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3] 2번째는 안드리 셰브첸코.[4] 소련 최초의 발롱도르 위너는 그 유명한 '''레프 야신'''.[5] 이때 블로힌은 팀의 세번째 골을 넣었다.
분류
- 1952년 출생
- 1969년 데뷔
- 소련의 축구선수
- 우크라이나의 축구선수
- 우크라이나의 축구감독
- 공격수
-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FC 디나모 키예프/은퇴, 이적
- 올림피아코스 FC/역대 감독
- PAOK FC/역대 감독
- AEK 아테네/역대 감독
- FC 디나모 키예프/역대 감독
- 소련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참가 선수
-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참가 선수
- 2006 FIFA 월드컵 독일 참가 감독
- UEFA 유로 2012 참가 감독
- 발롱도르 수상자
-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올림픽 축구 메달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