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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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무술 배우로서의 활약
3. 감독으로서의 활약
3.1. 저작권 논란
4. TV에서의 활약
5. 그 외에
6. 주요 출연작
7. 주요 감독작


1. 개요


본명은 '''김성용.'''[1] 왕룡은 배우 시절 예명이다. 1960년 1월 13일생. 한국 영화에 다시 없을 '''괴객'''이다.

2. 무술 배우로서의 활약


본래에는 1970~80년대에 한국에서 홍콩 무협 영화에 영향을 받은 국산 무협 영화가 다수 만들어 지던 때에 무술 배우로 활동하면서 영화계에 진출하였다. 이때 홍콩의 원로배우들과 호흡을 맞추었다. 성인용 권격 영화에서 코믹화가 진행될때 주로 활약했으며 특히, 80년대에 이르어서는 김정용 감독과 무술배우 정진화와 함께 만들었던 영화 <소림사 주방장>이 크게 인기를 끌었는데 이때에 무술 실력을 인정받아 그 속편인 <돌아온 소림사 주방장>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주연과 무술 감독을 겸하며 끝을 향해 달리던 한국 무협 영화계의 대미를 장식하였다.[2] 이후에도 <무림걸식도사>, <무림사부대행>, <소화성 장의사> 등의 국산 무협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였다.[3]
한국 무협 영화의 인기가 시들어지며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자 이 후에 아동 영화계로 진출하여 여러 영화에서 무술 감독으로 활약하였다. 특히 <외계에서 온 우뢰매 2>[4] 에서 외계인들에게 조종당하는 불우한 청년 강우[5] 역으로 등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리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3. 감독으로서의 활약


이후 대원동화의 협찬을 받으며 영화 감독으로 데뷔, 당시 인기가 많았던 일본만화게임을 영화화하기 시작했다. 이 때 만들었던 북두의 권을 영화화한 '''북두의 권(실사한국판)'''이나 유유백서를 영화화한 '''정신나간 유령''', 드래곤볼을 영화화한 '''드래곤볼(실사한국판)''',SD 건담+드래곤볼을 짜깁기 한 '''깡다구 화이터''' 등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자체. 애초에 아동용 저예산 영화였기에 퀄리티는 기대할 수 없었고 가장 큰 문제는 이 영화들의 대부분이 원작자 및 저작권자의 허가도 없이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이 논란에 관해서는 후술.
다만 저 만화들이 당대 일본에서는 인기절정의 만화들이었고 왕룡은 이 인기를 등에 업는 상술을 이용하고자 저 만화들을 영화로 촬영했는데 주머니 사정이 아쉬워서인지 해당 작품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아서인지 하나같이 괴작들로 뽑혀 나왔다.

3.1. 저작권 논란


상술했듯이 왕룡이 감독을 맡은 영화들은 대부분 일본 만화 및 게임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이 영화들이 슈에이샤 등지의 허락 없이 '''저작권을 침해하여 만든''' 것들이라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전는 베른협약 가입 이전인 데다, 한국 문화계 전반에서 저작권 의식이 희미했었을 때라 벌어진 촌극이었다.[6]
이들 중 드래곤볼이나 유유백서의 경우에는 왕룡을 감독으로 섭외했던 '''대원미디어가 한국에서의 판권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화 하는데에 법률상 문제가 없었다고는 하는데, 대원이 소유했다는 그 판권에 원작을 바탕으로 한 2차 영상물을 제작, 배포할 권리가 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기에 따지고 들자면 한도 끝도 없었겠지만 그냥 유야무야 넘어간듯.
'''북두의 권(실사한국판)'''의 경우에는 후에 일본 후지 테레비의 TV프로인 <트리비아의 샘>에서 '''한국에 북두의 권 실사 영화가 있다!'''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갑자기 회자되며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이때 일본에서의 반응도 폭발적이었으며(...) 한국에도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뭇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가져다 주었다. 처음 알려졌을 때는 일본 출판사가 저작권 침해로 법적조치를 취하려고 했다. 한국사람들이 이 영화를 공식 실사판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도 있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 '''이거 콩트야?''', '''완전 다른 이야기네.''' '''이 정도면 안심이다'''라며 없던 일로 했다는 일화가 있다.

4. TV에서의 활약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TV에서도 자주 나왔는데, 1987년에 KBS2 '어린이 명작극장' 소년탐정 이지돌과 루팡에서 무술감독으로 크레딧에 올라와 있다. 이 작품은 기암성을 원작으로 했으며 극본은 김정우, 연출은 신상용 PD가 맡았으며 최원석[7]이라는 배우가 이지돌 역으로 나왔고, 김희라, 최란, 이상아, 최명수, 박경득, 이종우 등이 출연했다.
그런데 나중에는 뤼팽 시리즈 말고도 여러 해외소설 줄거리를 이지돌을 주인공으로 계속 써먹으며 만들었다. 엘러리 퀸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라든지 코넬 울리치(환상의 여인 원작자로 윌리엄 아이리시는 필명)나 여러 추리소설가들 작품을 무단도용했다.
주로 명절에 소년 탐정 이지돌과 루팡의 멤버들[8]이 찍던 KBS 특집 무협극의 무술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천풍무라는 완전히 영웅본색을 표절한 것도 있다. 1989년에는 이두호 화백의 동명의 만화작품을 원작으로 한 무협드라마 <바람소리>의 무술감독도 했다.
다만 이 시기는 외주제작 도입 초창기였고 외주제작 프로그램 비율도 3% 이하로 매우 낮았기 때문에 글자 그대로 무술감독으로서 액션씬 설계만 했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판에서 화려한 전적 때문에 이런 대목까지 무단도용이라 몰아붙일 근거는 없다.
가끔 단역으로 대사 없이 나오기도 했는데 앞에 말한 무협드라마에서 최종보스 밑의 부하나 호위무사 같은 말없이 사라지는 강적류의 역을 맡았다. 요새 정두홍 감독과 비슷한 비중이며, 형사 드라마에서 제비족이나 바람피는 여자의 상대내지는 살해당하는 조폭 부하로 몇번 나오기도 했다.

5. 그 외에


1994년 성인 영화 <검은사월>의 감독을 한 것을 마지막으로 27년 넘게 근황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무술 배우 겸 무술 감독 겸 영화 감독 겸 특수효과 담당(...)'''이라는 경력 외에도 초기 비디오 업체에서 여러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제곡도 부른 경력이 있어서, '''세인트 세이야'''나 슬램덩크등의 주제가도 불렀고 유명한 북두의 권 실사판의 주제가도 본인이 직접 불렀다고 위키를 중심으로 알려져있으나[9] '''정확한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 있다. "왕룡이 주제가를 불렀다"라는 인터넷발 정보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팟캐스트 후라이에 패널로 등장하는 탁상[10]. 2014년 1월 25일에 업로드된 후라이 29회에서 왕룡 감독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 이야기를 다시 했으며, 왕룡 감독 인터뷰 예정이라고도 밝혔으나, 이후에 인터뷰 내용을 내놓지 않은 상태에서 하차했기 때문에 추가 발표는 없다.
왕룡이 불렀다고 알려진 주제가들은 다음과 같은데 현재로썬 사실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 상술한 탁상이라는 유명 만화영화 비디오 수집가와 왕룡의 아들이라고 하는 사람마저도 왕룡이 부른게 아니라고 몇번이나 언급했으나 그들조차 노래를 누가 부른건지에 대한 질문에는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으며, 이미 인터넷에 왕룡이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지금도 왕룡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11] 다음은 '''자칭''' 왕룡의 아들피셜인 링크이지만 '''그를 아들이라 믿을 근거는 왕룡의 본명과 성씨만 동일할 뿐 아무것도 없기에 어그로나 사칭으로 볼 여지도 충분하니 신뢰하지는 말 것'''.#.
훗날에 아름답지 못한 일로 유명세를 타긴 했으나 그래도 단순히 막장 감독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사실 배우 왕룡으로서 활동하던 시기와 배경 자체가, 지금 기준으로는 쌈마이한 B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영화를 찍어대던 게 상식이고 시스템인 시절이었다. 대한민국은 말할 것도 없고 홍콩 또한 마찬가지였다. 바로 이런 기존의 제작 관행에 반항을 하고 뛰쳐나온 이가 바로 성룡이다. 문서 참조.
또한 1990년대엔 아직 베른협약 미가입 상태[12]라 해외저작물이 법적으로 저작권 보호를 못 받았고, '''저작권 개념이 미비'''했다. 개념 정도가 아니라 아예 경영이나 무역, 국제정치 쪽과 관련이 없는 일반인은 이런 용어조차 모르던 시절이었다. 우루과이 라운드가 타결되고 WTO 체제가 출범하면서 '''장차''' 지적재산권 분쟁이 심화될 것이다는 예측이 소수 식자층에서 살짝 논의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차라리 지금처럼 저작권 개념이 아주 빡빡해서 '''아예 저런 종류의 작품을 찍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면''' 우베 볼같은 B급 전문 감독 취급과 괴인(...)이라는 소리는 안들었을 터였다. 또한 북두의 권을 제외하면 대부분 판권 해결을 했거나 한 것처럼 보이는 작품들이었지만, 그 작품들도 대원동화(현 대원씨아이)의 막장 판권 운영때문에 해결된 것이었다. 참고로 왕룡 감독의 다른 작품들은 '대원클래식'으로 DVD가 발매됐지만 북두의 권 실사판만은 발매되지 않았다.
그래도 활동 초기에는 화려한 무술 실력으로 한국 무협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액션 배우였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할 부분이다.

6. '''주요 출연작'''


  • 무림 대협(1978)
  • 소림사 십대장문(1978)
  • 요사권(1980)
  • 대형출도(1981)
  • 소림사 주방장(1981)[13]
  • 돌아온 소림사 주방장(1982)
  • 무림사부대행(1982)
  • 무림걸식도사(1982)
  • 귀문기담(1983)
  • 소화성 장의사(1983)
  • 마검야도(1985)
  • 외계에서 온 우뢰매 2(1986)

7. '''주요 감독작'''


  • 경찰 칠득이+너털 도사(1989)
  • 똘이 검객 독거미의 비밀(1990)
  • 드래곤볼(실사한국판)(1990)
  • 용소야(1991)
    • 쿵후보이 친미 (1992)[14]
  • 맹구와 북두신검(1991)[15]
  • 화이팅맨(1991) - 이래봬도 일단 국산특촬 역사에 포함되는 작품.
  • 권법소년 (1992)
  • 마법소년 용호치 (1992)
  • 정신나간 유령(1992)
  • 맹구짱구 스트리트 화이어(1992)[16]
  • 깡다구 화이터(1992)
  • 북두의 권(실사한국판)(1993)
  • 맹구와 북두신검2,3(1993)
  • 검은사월(1994)[17]

[1] http://cafe.naver.com/tgahn2243/9731 에서는 본명이 '''김성용'''이라고 등재되어 있다. 유튜브 왕룡 관련 영상에서 자칭 왕룡의 아들이(..) 본명은 김성용이 맞다고 밝혔다.[2] 실제 무술 실력도 출중하거니와 얼굴도 꽤 괜찮게 생겼었다.[3] 이 시절에 출현했던 몇몇 국산 무협 영화들은 훗날에 외국으로 수출되면서 왕룡의 이름도 조금 알려졌다. 흔히 'mike wang'이나 'michel wang'등의 이름으로 알려졌다.[4] 참고로 우뢰매 1편부터 4편까지 무술 감독을 맡은 적이 있다.[5] ....불우하긴 한데...누이동생에게 사줄 선물도 없어 훔치다가 차에 치어 죽던 젊은이라면 초라하고 말라야 하는데 에스퍼맨과 싸울때 보면 아주 근육이 불끈불끈...정말 300에서 나오던 스파르타인들 몸집을 보여준다...뭐 외계인들에게 조종당하여 저리 된 것이라고 하면 될려나? 그만큼 이 분이 무술배우로서 노력도 자질도 보였었다.[6] 사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대 지상파 방송사에서 미국이나 일본 프로그램 포맷을 베껴다 예능프로그램 만든다는 얘기가 신문에 공공연하게 실릴정도였다. 그나마 나아진게 이정도이고 1970년대와 80년대 초반에는 개편철이 될때마다 부산에서 일본 TV프로그램을 베끼거나 AFKN등에서 쓸만한 방송 포맷이 있는지 살펴보다가 베끼는 일도 다반사였다는 증언도 나올 정도.[7] 당시에는 꽤 촉망받은 유망주였는데 별다른 활동 없이 조용히 사라졌다.[8] 주요 멤버로는 1983년판 <전우>의 소대장 역으로 유명한 강민호(1942~1994), 박상만. 멤버는 아니지만 김희라나 김병기가 출연하기도 했다.[9] 이 내용은 엔하위키 시절부터 부분부분 적혀 있었고, 왕룡 문서가 생기면서 통합 되었다.[10] TV방송에도 출연하고, 뉴타입 한국판에 기사도 기고했고, VHS 수집가로도 유명한 인물이다.[11] 오히려 이러한 가창력과 목소리 덕에 왕룡은 인터넷상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12] 1987년부터 국제저작권협약(UCC)에 가입돼 있지만, 가입 뒤 창작된 외국작품만 저작권 보호를 받는다.[13] 이 영화를 계기로 왕룡이 그 실력이 인정받아 본격적인 액션 스타로 거듭났다. 당시에 전국 10만 관객을 동원하여 저예산 무협 영화치고는 상당히 히트했다.이 영화 이후로 김정용 감독의 영화에 자주 출현하였으며 함께 80년대를 풍미했던 무술 배우 정진화의 파트너로 활약했다.문제라면 홍콩의 막가파 제작자 하지강이 개판으로 편집해서 배급한 광동어 더빙판이 영어더빙되어 DVD로 나온 탓에 해외에선 홍콩영화로 안다는 것. 그러나 이후 김정용 감독은 1984년 <비천괴수>라는 괴작을 제작하는데 좀 심하게 말해서 <울트라 시리즈>를 짜집기하고 거기서 울트라맨같은 울트라성인들만 지운식의 도작이다. 사실 소림사 주방장도 거의 취권의 표절이다. 아무리봐도 성룡 같은 인물과 소화자가 등장하고, 복수를 위해서 수련하는 식의 구성.[14] 즉 쿵후보이 친미의 실사판을 두 번이나 만들었다는 점(...) 다만 쿵후보이 친미 제목으로 된 것은 "맹구" 이창훈 주연으로 어레인지되었다. .[15] 표지에 블러처리된 서리한이 박혀있는 바로 그 작품이다(....)[16] 이름에서 삘이 오겠지만,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2를 영화화했다.[17] 왕룡의 마지막 작품. 성인 조폭 영화이다. 이후로 소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