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마사타카
1. 개요
'''황소 군단의 신흥 거포'''
오릭스 버팔로즈 소속의 프로야구 선수
2. 커리어
2.1. 프로 입단 전
츠루가케히 고교 1학년 때부터 장타력을 보유한 고교생 타자로 후쿠이현과 호쿠신에츠 지방에서 제법 유명한 유망주였다.
입학 직후 좌익수 자리를 맡았고 여름 고시엔을 앞둔 지역 예선에서 이미 4번 타자를 맡았을 정도. 1학년 여름에 지역 대회에서 우승하며 제91회 여름 고시엔에 출전했지만 2회전에서 탈락.
가을에는 현 대회 우승, 호쿠신에츠 대회 준우승으로 이듬해 봄 고시엔에 출전하여 개막전인 텐리 고교(나라현 대표)[2] 와의 경기에서 3안타를 쳐내며 승리. 그러나 8강에서 또 다른 강호교인 니치다이산고등학교[3] (서도쿄 대표)에게 패배하며 탈락했다.[4]
2학년 여름에는 현 대회 8강에서 탈락하며 이후 졸업까지 고시엔에는 진출 실패. 고시엔 통산 기록은 4경기 타율 .313에 16타수 5안타 2타점, 고교 통산 홈런 개수는 52개를 기록했다.
아오야마가쿠인대학 진학 후 1학년부터 지명타자로 대학 리그에 출전. 첫 시즌인 춘계 리그 때부터 두각을 드러내며 춘계리그 베스트나인에도 선정됐다. 2학년부터 외야수로 전향하고 이후 2학년 춘계리그까지 3시즌 연속 베스트나인에 뽑히며 토도 대학 리그에서 강타자 유망주로 주가를 높혔다. 7월에는 미일 대학야구 대회에서 국가대표로 뽑혔다. 3학년 때는 할렘 베이스볼 위크로 2번째 대학 국가대표로 뽑혔다. 그러나 3학년 때 요시다 본인은 추계리그 베스트나인을 수상했으나 팀이 춘, 추계리그 연속으로 1부리그 최하위에 이어 추계리그 땐 2부리그 우승팀 코쿠시칸 대학과의 승강전[5] 에서 패퇴하여 10시즌 만에 2부 리그로 강등당하는 굴욕을 겪는다. 이후, 졸업 때까지 다시 1부리그로 승격하지 못한 채 2부리그에서 대학 선수생활을 보내야 했다.[6] 4학년 때는 2015 광주 유니버시아드에 대학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토도 대학 1부 리그 통산 기록은 타율 .277, 77안타 9홈런 38타점을 기록했다. 2부 리그 통산 기록은 타율 .395, 34안타 8홈런 25타점 기록.
2015년 드래프트에서 오릭스의 1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했다. 계약금은 1억엔, 연봉은 1500만엔(추정)으로 입단 계약.
2.2. 프로 입단 후
2.2.1. 2016년
스프링 캠프 전 신인 자율 훈련 기간 중에 왼쪽 종아리에 근막염이 생겨서 1군 스프링 캠프에서 빠지고 2군 캠프에서 시즌 시작했다. 2월 6일에 다시 1군 캠프로 올라왔지만 타격 훈련 중 오른쪽 옆구리 통증 때문에 이틀 후 다시 2군 캠프행.
3월 16일에 2군 경기에 출전하며 프로 첫 공식 경기 출전에 프로 데뷔 첫 홈런을 기록했다. 2군에서 경기를 치르던 와중, 시범경기 3경기를 남기고 1군에 올라오며 개막전 로스터에 합류했다.
개막전에 지명타자로 출전하여 프로 1군 데뷔 첫 안타에 멀티 히트를 기록하며 시즌 출발이 나쁘지 않았지만 지명타자와 외야수를 오가며 출전하던 도중 허리 디스크 진단을 받고 4월 24일 2군으로 내려갔다.
재활을 거쳐 8월 12일에 다시 1군으로 복귀 후 8월 18일 니혼햄 파이터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프로 1군 데뷔 첫 홈런을 터뜨리는 등, 정규 시즌 최종 성적은 63경기 67안타 타율 .290 출루율 .360 장타율 .494 10홈런 34타점을 기록했다.
신인치고 상당한 수준의 비율 스텟과 장타력을 보여줬지만 문제는 부상때문에 4달 넘게 날려먹은게 가장 아쉬운 점. 시즌 후 윈터리그에서는 윈터 리그의 여포(...)로 윈터리그 타율, 안타, 홈런, 타점, 장타율 부문 모두 1위를 차지했다.
2.2.2. 2017년
'''발전하는 2년차, 그러나 어김없이 부상이 찾아오다'''
이토이 요시오가 FA로 한신으로 이적하면서 이토이의 빈 자리를 메꿀 주전 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시범경기 막바지에 허리 부상이 재발하며 개막전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5월 10일에 2군 무대로 복귀했으나 경기 후 다시 허리 부상이 도지면서 다시 재활에 들어갔다.
6월 27일 2군 한신 전에서 복귀했고 7월 9일 지바 롯데와의 홈 경기에서 시즌 첫 1군 경기에 출전했다. # 바로 다음 날인 10일 니혼햄 전에서 홈런을 터뜨리며 건강하다면이라는 명제를 여지없이 증명.
7월 말 부터는 2번 타자로 주로 나오면서 8월 7일 세이부 전에서는 1경기 2홈런을 쳐냈다. 시즌 말부터는 3번 타자로 출장.
시즌 후에는 2017 APBC에 출전 예정이었으나, 엉덩이 수술로 대표팀에서 빠지며 대회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
11월에는 허리 수술을 했다. #
정규 시즌 최종 성적은 64경기 71안타 타율 .311 출루율 .410 장타율 .518 12홈런 38타점을 기록했다.
2년차에 모든 비율 스텟들이 눈에 띄게 좋아졌지만 그 놈의 부상때문에 2017년에도 시즌의 반을 날렸다.
2.2.3. 2018년
'''교류전 여포'''
'''데뷔 첫 올스타'''
시즌 후에 받은 허리 수술 때문에 2군에서 스프링 캠프를 시작했다. 캠프 말미에 1군 스프링 캠프로 합류하여 개막전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다. 4월까진 타격 페이스가 잠잠했으나 5월부터 맹타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교류전이 시작한 6월부터는 그야말로 센트럴 리그 파괴자 수준. 그러나 6월 21일 한신과의 원정 경기에서 8회 3루타를 치고 3루를 밟는 도중에 오른 발목이 접질리며 구단과 팬들을 우려하게 했으나 다행히 1도 염좌 판정을 받고 곧바로 다음 날인 22일부터 대타로 나서며 다시 정상적으로 경기에 출전했다.
교류전 종료 후 교류전 MVP를 수상했다.# 이는 오릭스에서 2010년 T-오카다 이후 2번째 기록.
6월 25일에는 올스타전 팬 투표 결과 팀에서 마스이 히로토시와 함께 올스타전에 출전하게 됐다. 7월 13일에 열린 올스타 경기 1차전에서는 2안타 1타점, 14일 2차전에서는 1안타를 기록했다.
최종적으로는 전경기에 출장하며 26홈런 86타점 , 타출장 .321 .403 .553 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2.2.4. 2019년
2019년에도 전경기에 출장하며 결과적으로 전해와 거의 동일한 성적을 기록했다. 29홈런 85타점, 타출장 .322 .413 .543으로 리그 정상급 타자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다만 압도적이었던 우완투수 상대 성적(OPS 1.026)에 비해 좌완투수 상대 성적(OPS .719)이 심하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좌상바 기질을 드러낸 것은 아쉬운 부분.
2년연속 올스타와 베스트나인에 선발되었고, 시즌후에는 대표로 발탁되어 프리미어 12에도 출장했다.
올스타전 중 홈런레이스에 참여했는데, 준결승에서 3개의 홈런을 때려낸 사카모토 하야토에게 '''30초만에 승리하는(...)''' 상황이 벌어지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2.2.5. 2020년
시즌 초반엔 조금 부진했지만 7월부터 불을 뿜어내는 듯한 타격 페이스를 보여주었고 시즌 막바지까지 페이스를 그럭저럭 잘 유지하면서 첫 파리그 수위타자 타이틀을 차지했다. 9월 6일에는 24경기 연속안타를 때려내면 팀 선배인 스즈키 이치로의 기록을 경신하였다. 최종 성적은 타출장 '''.350''' '''.453''' .512 14홈런을 기록하였다. 작년과 비교하여 장타력이 떨어졌지만, 신들린 듯한 컨택과 선구안을 보여줬는데, 492타석을 나와서 '''29삼진'''밖에 당하지 않았다! 볼삼비는 무려 2.48. 장타율은 떨어졌지만 출루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덕분에 OPS는 오히려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29삼진은 2000년 이후 규정타석 도달자중에 최소 삼진 2위인데, 최소 삼진 1위인 2002년의 타카기 히로유키가 수비형 똑딱이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새삼 대단한 기록이다. 단축시즌이란 걸 감안해야 하겠지만.
하지만 이러한 활약에도 나머지 타자들이 요시다를 확실하게 받쳐주지 못해 결국 2020시즌도 '요시다와 아이들' 신세를 면치 못했다. 팀 타율은 리그 4위인 .247로 전년도보다 상승했지만 팀 득점은 꼴찌를 기록.
3. 플레이 스타일
173cm의 프로야구 선수로는 작은 체격임에도 과거 오릭스의 전신인 오릭스 브레이브스에서 활약했던 단신 슬러거 카도타 히로미츠를 연상케하는 장타력과, 현역 선수 중 같은 리그에서 뛰고 있는 야나기타 유키 못지않은 풀스윙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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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타와 마찬가지로 풀스윙어임에도 준수한 타율과 컨택, 뛰어난 선구안을 지녔다. 2019년까지는 타구 분포가 명백한 풀히터였지만 2020년에 들어서는 스프레이 히터에 가까워졌다. 2020년부터는 2스트라이크 이후에는 밀어치는 걸 의식한다고 밝혔으며 실제로 2스트라이크시 타구 분포가 0~1스트라이크 때와 비교해서 더 좌익수쪽으로 많이 보내는 편. 작은 체격에도 스윙이 크고 손목 힘이 강한 편이라 타구 비거리가 상당한 편이다. 풀히터라는 인식이 있어서인지 메이저리그마냥 2루수가 2익수 자리에 서고 3루수가 2루수 자리로 이동하며 3유간을 비워버리는 극단적 좌타 풀히터 상대 수비 시프트가 걸리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체격이 크지 않은 탓에 이런 타격 스타일은 몸에 과부하가 많이 걸리는 편이라 데뷔 시즌부터 허리 쪽 부상이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그 외에도 이런 저런 잔부상들이 많은 편.
이런 허리 부상 문제 때문에 몸에 걸리는 과부하를 줄이기 위해서 2017년 시즌 중반부터는 스윙 이후 팔로스루에서 한 손을 놓는 타격을 한다. 두 손 팔로스루가 일반적인 일본 선수들 중에서는 드문 케이스라 이런 쪽으로도 팬들에게 주목을 받는다. 일단 허리 부상은 2017시즌 종료 후 허리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했던 의사가 일본 내 스포츠 선수들의 허리 부상 치료에 상당히 저명한 양반이라 수술을 받은 이후 2018년 현재까지는 허리 부상이 재발하지 않은 상태.
수비는 평균에서 평균보다 약간 높다. 주루는 그냥 그런 수준. 주로 코너 외야를 본다.
4. 이모저모
- 중학교 시절에는 일본 프로야구보다 MLB를 더 즐겨봤다고 한다. 그 영향인지 본인과 같은 우투좌타인 브라이스 하퍼를 롤모델로 삼고있다. 등번호를 34번으로 정한 것도 하퍼가 34번을 쓰고 있기 때문.
- 본인이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된 이유로 대학 4학년 때 광주 유니버시아드에 대학 국가대표로 출전한 일을 뽑은 바가 있다. 당시 같은 학년이었던 다카야마 슌(메이지대→한신), 모기 에이고로(와세다대→라쿠텐)는 도쿄 6대학 리그에서 뛰는 반면 자신은 대학 2부 리그에서 활동할 수 밖에 없게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 기량 향상의 원동력이 됐다고 한다. # [8][9]
- 2017년 10월 모델 겸 사업가 유리카와 결혼했다.
5. 연도별 기록
[1] 교세라 돔에서 요시다가 등장할 때 전광판을 보면 루차도르 마스크를 쓰고 아령을 하고있는 요시다가 등장한다. 팀에서도 아령 모양 풍선을 응원도구로 판매하기에 관중들이 마초맨에 맞춰 아령 모양 풍선을 올렸다 내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2018년 버전 등장영상 [2] 당시 나카무라 쇼고가 텐리 고교에 있었다.[3] 일본대학 제3고등학교[4] 참고로 당시 고교 선배였던 야마다 노부요시와 니치다이산의 에이스였던 야마사키 사치야는 현재 같은 오릭스 소속. [5] 토도 대학 리그는 1~4부로 나뉘어져 있으며 상위리그 최하위팀과 하위리그 우승팀이 승강전을 치루는 승강제를 적용한다.[6] 이후 아오야마가쿠인대학 야구부는 2019년 현재까지 2부 리그에 머물러 있다(...) 요시다가 졸업한 후인 2016년 춘계 리그 때 2부리그 우승을 거두긴 했는데 승강전에서 패퇴해서 승격 실패..[7] 이 때문에 일본 언론에서 '제 2의 카도타 히로미츠' 라고 불리는 경우가 있다. #[8] 도쿄 6대학 리그의 수준이 예전과 같이 무조건적인 성지 취급은 받지 않지만 여전히 일본 대학야구에선 최고 수준의 대학 리그이며, 관중 동원도 왠만한 고교 야구 못지않을 정도로 대학 야구에선 최고 수준이다.[9] 프로에서는 요시다>모기>>>>타카야마 순으로 평가받는 중. 다만 모기는 준수한 타격의 훌륭한 유격수로 평가받는데, 타카야마는 신인왕은 탔지만 그 후로 그냥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