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오카다
1. 개요
NPB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활동하는 야구선수. 등번호는 55번.
호쾌한 스윙 탓에 국내 한정 별명은 '''티슨요프''' 혹은 '''티오푼이(...)'''
2. 프로 입문 전
고교 시절부터 고교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이름을 떨쳤다.
중학교 때는 연습경기에서 '''비거리 140M'''의 장외홈런을 쳐내는 파워로 진로를 주목받았고 고등학교는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리세이샤 고등학교에 진학했다.[2]
그리고 1학년 여름부터 팀의 4번타자 자리를 차지하면서 중심타자로 맹활약하더니 2학년 여름에 열린 하계 오사카 대회에선 2경기에 걸쳐 '''5연타석 고의사구'''를 당하거나 '''5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 등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3학년 여름엔 오사카 대회 준결승전에서 역 라이벌 오사카 토인고교의 나카타 쇼로부터 쓰리런 홈런을 뽑아내기도 했다.
아쉽게도 고시엔 출전경험은 없었지만 고교 통산 55홈런을 기록해 55라는 숫자[3] 에다 150km/h에 달할 정도로 빠른 배트 스피드, 건장한 신체조건으로 차세대 마쓰이 히데키로 대접받았고 이에 매스컴으로부터 '''나니와의 고질라(浪速のゴジラ)'''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2005년 고교생 드래프트에서 당시 최고의 고교생 투수로 유명했던 츠지우치 타카노부와의 교섭권을 놓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경합을 벌이다 끝내 놓친 오릭스 버팔로즈가 2번째 1순위 지명에서 오카다를 지명하여 입단했다. 이 츠지우치는 고교 시절 혹사의 여파로 입단 후 8년간 부상으로 신음하다가 결국 1군 등판을 한 번도 못하고 은퇴했기에 결과적으로 교섭권을 놓친 오릭스 입장에선 오히려 교섭권을 놓친 게 대박이 나버린 셈.
당시 오릭스엔 이미 등번호 55번을 타나카 유우키라는 투수가 달고 있었지만 오카다 본인의 요청으로 타나카가 등번호를 22번으로 바꾸고, 오카다가 55번을 양보받게 되었다.
3. 프로 입문
데뷔 시즌인 2006시즌엔 2군 리그에서 주로 1루수로 출장하면서 타율 2할 4푼 5리 5홈런 27타점이라는 고졸 신인 야수로서는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고 시즌 후반에 1군에 승격이 되면서 데뷔 첫 안타를 뽑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리그 최다 수준의 삼진과 엉성한 수비력이 발목을 잡으면서 2007~2008시즌엔 1군으로 승격되지 못하고 2군에서 숙성을 거쳐야만 했다. 2008년 스즈키 이치로와 합동 트레이닝을 가졌을 땐 이치로가 그를 장래의 4번타자감이라고 평가하면서 로베르토 페타지니와 비슷하다는 립서비스를 받기도 했다.
2009시즌엔 드디어 각성을 한 것인지, 2군에서 타율 2할 9푼 5리, 21홈런, 59타점의 성적으로 웨스턴 리그 홈런왕과 타점왕 타이틀을 석권했고 그 기세로 교류전 기간 도중 주전 1루수이던 알렉스 카브레라의 부상을 틈타 1군 진입에 성공했지만, 인상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며 다시 2군으로 강등되었다. 그러나 시즌 후반에 다시 1군 진입에 성공했고 타율 0.158이라는 공갈포스러운 타율을 기록했지만 7개의 홈런을 때려내 다음 시즌 대폭발의 조짐을 보여주었다. 버팔로스의 스타 용병이던 터피 로즈가 팀을 떠나고 이듬해 전지훈련때는 차기 외야 주전으로 기대를 모으던 오제 히로유키가 사망하면서 본의 아니게 1루 뿐만 아니라 좌익수 자리까지 생기기도 했다.
시즌 종료 후, 오릭스의 신임 감독으로 오카다 아키노부가 취임했다 오카다 감독은 장래의 4번타자인 오카다 다카히로와 성씨가 같은 것에 대해 까다롭다는 이유로 오카다 다카히로에 등록명 변경을 제안했고, 구단 홈페이지와 휴대용 사이트에서 약 7000명의 팬들을 상대로 앙케이트를 실시했다. 등록명은 감독과의 상의를 거친 끝에 '''‘T-오카다’(T-岡田)'''로 결정되었다. 등록명의 T는 이름인 다카히로(TAKAHIRO)의 약자이자 T-REX의 T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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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도 T자 스크래치가 있다.
그리고 등록명을 바꾼 2010시즌엔 드디어 포텐셜 대폭발. 타격 코치의 조언으로 타격폼을 노스텝으로 변경했고 이것이 정확도와 파워의 증가로 이어지면서 경이적인 페이스로 홈런을 생산하더니 교류전 MVP를 수상한 것은 물론, 시즌 최종 129경기에 출장해 33홈런을 때려내면서 오 사다하루 이후 48년 만에 22세에 홈런왕을 거머쥔 선수가 되었다.
2011시즌엔 개막전 4번타자의 중책을 맡았지만 들쑥날쑥한 활약을 보였다. 비록 타점은 팀내 최다인 85타점을 올렸지만 홈런 숫자는 전해의 반토막인 16개에 그치고 말았다. 물론 저반발력 통일구 도입의 영향도 있을테지만... 이해에 박찬호, 이승엽 등 코리안리거의 영입으로 오릭스 버팔로스에 대해 국내팬들이 비상한 관심을 보였는데, 부진할 적엔 특유의 공갈포스러운 모습으로 보여줌으로써 상기의 '''티슨요프''', '''티오푼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여담으로 시즌 종료 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을 선언한 다르빗슈 유에게서 처음으로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2012, 2013년에는 부상에 시달리며 각각 103, 58경기 출장에 그쳤다. 당연히 성적도 초라해서, 이대호, 이토이 요시오, 아롬 발디리스를 받쳐줄 것이란 기대에 못 미치는 2012년 10홈런 56타점, 2013년 4홈런 18타점의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2014년에는 별 부상 없이 이토이 요시오, 윌리 모 페냐와 함께 팀 타선을 이끌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33경기 .269 24홈런 75타점 OPS .824.
2015년에는 타율은 .280로 전년도와 대비해 상승하였으나 11개의 홈런을 때려내는데 그쳤다. 타점은 51개.
2016년에는 장타력이 되살아났고 시즌 중반까지 3할을 넘는 고타율까지 기록하며 커리어하이를 노리는 듯 싶었으나, 조금씩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284 20홈런 76타점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그래도 이토이와 더불어 막장 오릭스 타선에서 사람 구실을 해준 몇 안 되는 선수였다. 시즌 종료 후 3년 계약을 맺어 당분간 FA 시장에 나오지 않고 오릭스에 남게 되었다.
2017년에도 좋은 활약을 이어갔지만, 후쿠라 준이치 감독의 이상한 기용으로 어느 한 타순에 자리잡지 못하고 1번부터 7번까지 수많은 타순을 오갔다. 중심타선을 대신 차지한 스테판 로메로, 크리스 머레로 등의 외국인 타자들이나,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가동되지는 못했지만 실력의 편린을 보여준 거포 유망주 요시다 마사타카 등이 분전했고 오카다 본인도 괜찮은 활약을 이어갔으나 오릭스의 추락을 막지는 못했다. 최종성적은 143경기(시즌 전경기 출장), 타율 .266 출루율 .374 장타율 .488(OPS .862) 31홈런 68타점. 홈런은 파리그 공동 3위, 타점은 10위, 장타율은 7위를 기록했다. 위에서 말했듯 여러 타순을 오간 기용 때문에 타점 수에서 조금 손해를 보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30홈런을 넘기며 그 해 일본인 타자로서는[4] 최다홈런을 치는 준수한 활약을 해줬다. 다만 팀은 만년 비인기에 B클래스 단골인 오릭스여서 그마저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게...
2018년엔 아예 부상과 그에 따른 타격부진으로 2군에서 시즌 개막을 맞이했고, 개막 후 금방 1군으로 승격되었지만 여전히 부진을 거듭하면서 결국 97시합 출장, 타율 .225에 13홈런 43타점으로 규정타석도 못 채우고 성적도 전년도보다 더 떨어져버린 폭망한 시즌으로 마무리지었다.
2019년 여름 그의 모교인 리세이샤 고등학교의 창단 이후 첫 일본 고시엔 전국제패 달성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이 시즌은 '''19경기에서 1홈런 타율 .122'''라는 '''역대급 쓰레기같은 성적을 남기고 광속으로 2군에 박혔다.''' 9월 초에는 방출 가능성이 높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그래도 투수친화구장인 쿄세라 돔에서 30홈런을 칠 정도로 파워가 있었던 타자고 나이도 아직은 몇 년 더 뛸 만하기에[5] 타 팀 이적을 시도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방출을 면하고 연장계약을 맺었다.
2020년 초반에는 3할 타율을 치며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다만 개막 직후에는 07년 다카하시 요시노부마냥 높은 출루율을 살려 1번(+ 외국인타자 로드리게스를 '강한 2번'으로 두는) 으로 나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5번으로 기용되는 등 방향성 없는 기용(...)은 계속되고 있다. 10월 3일까지 74시합에서 타/출/장 0.252/0.351/0.443, 12홈런 40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주로 당겨치기를 선호하는 극단적인 풀 히터로 파워가 좋고 컨택도 나쁘지 않지만[6] 선구안이 떨어지는 공갈포 스타일. 이 점을 의식했는지 2014년부터는 무조건 홈런을 노리기보다는 출루와 타점 생산에 중점을 둔다고 하였으나 출루율이 눈곱만큼 좋아진 것 밖에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 2017년에는 볼넷을 평년의 두 배인 83개를 얻기는 했으나 삼진이 평년의 1.5배 이상인 141개를 기록하면서 삼진왕에 등극... 거기다가 오랜만에 30홈런을 치고도 70타점도 못 넘기는 공갈포스런 모습을 보였다. 물론 타점이 적었던 이유는 상단에 나오듯 후쿠라 준이치 감독이 오카다의 부진을 고친답시고 오카다의 타순을 고정시키지 않고 이리저리 옮겨댔던 게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사실 오카다의 제일 큰 문제는 기복이다. 10년째 주전으로 뛰는 정통 슬러거가 20홈런을 넘긴 해가 4년, 30홈런을 넘긴 해가 2년밖에 없다. 만 22세에 홈런왕을 차지했는데 30대가 되도록 그 시즌이 커리어 하이라니 원... 그나마 한국 나이 32세로 아직 몇 년은 더 뛸 수 있기에 더 큰 성장은 어려워도 기복을 줄이면 대타자로 기록에 남을 수 있는 타자.
수비는 1루와 코너 외야밖에 못 보는데 신인 시절에는 블랙홀이었으나 현재는 두 포지션 모두 평균 이상 해 준다. 1루는 골든글러브도 수상했을 정도고 의외로 세이버 지표상으로는 좌익수 수비도 아주 좋은 편이다. 물론 포지션이 포지션이라 수비로 먹고살 순 없다.
주루는 거구라서 느려보이지만 중간급은 간다. 또한 주루 플레이를 성실히 하기 때문에 도루는 못해도 주루 자체는 괜찮은 편.
5. 관련 문서
[1] '''T! Homerun King! T! T! T-Rex! 遠く遠く派手に飛ばせ浪速の轟砲 岡田岡田 かっ飛ばせ貴弘(티! 홈런왕! 티! 티! 티렉스! 멀리 멀리 화려하게 날려라 나니와의 굉포 오카다 오카다 날려버려 타카히로)'''[2] 참고로 리세이샤는 오사카지역에서 매년 오사카토인고교와 함께 고시엔을 노리는 야구명문교이다. 오카다의 후배로 야마다 테츠토가 있다.[3] 마쓰이 히데키의 등번호도 55, 물론 이는 오 사다하루가 갖고있던 한시즌 최다홈런 기록에서 따온 것.[4] T-오카다보다 상위 클래스의 타자들은 더러 있지만 츠츠고 요시토모, 야마다 테츠토 등은 WBC 후유증으로 상당한 슬럼프를 겪었고 스즈키 세이야, 야나기타 유키 등은 부상으로 장기 이탈했으며 나카무라 타케야 같은 베테랑들도 노쇠화로 고전했다.[5] 한국 나이 32세, 일본 나이 31세.[6] 통산 .263, 커리어하이 .284긴 한데 일본야구의 투고타저를 생각하면 2할대 중후반이면 평균 이상의 타율이다. 일본야구의 평균 타율은 KBO 리그에 비해 3푼 이상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