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거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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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dy Guthrie
1912.07.14 ~ 1967.10.03
'''"THIS MACHINE KILLS FASCISTS(이 기계는 파시스트를 죽입니다)."''' - 자신의 기타에 적힌 글귀
1. 개요
미국의 대표적인 포크 음악가이자 민중가요를 만들고 부른 싱어송라이터. 그는 '''미국 포크와 민중가요의 전설'''이다. 그의 음악은 뒷날 밥 딜런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거스리는 사물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깊은 감정이 넘쳐 흘렀고 힘찼으며 리듬이 살아 있었다. 진지하고 강렬했으며 그 목소리는 칼처럼 날카로웠다. 우디 거스리는 그때까지 들었던 다른 그 어떤 가수들과도 달랐다.”'''
― 밥 딜런
2. 생애
우디 거스리는 1912년 미국 오클라호마 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그는 가족들의 잇따른 투병[1] 과 죽음, 그리고 아버지의 투자 실패 때문에 불우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주변 인물들로부터 여러 음악들을 듣고 악기들을 연주하면서 음악에 발을 들였다.[2] 고등학교를 중퇴한 거스리는 음악을 계속 공부하며 버스킹 등으로 소일거리를 계속 했고, 19살의 나이에 결혼하여 아이 셋을 가진 아버지가 되었다. 결혼 후 1930년대에 그는 더스트 볼 지역을 건너 캘리포니아에서 노동자로 살아갔다. 그 당시는 대공황이 일어나던 시기인지라 그는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미국 민중의 현실을 보았고 많은 음악적 영감을 얻는다.[3] 그러던 중 'KFVD'라는 라디오 회사와 인연을 맺는데, 이 회사는 진보 성향을 띠고 있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이었고 거스리는 곧 그들과 친해졌다.[4] 이 때부터 그는 조금씩 저항적 의미를 띠는 민중가요들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거스리는 캘리포니아에서의 생활을 접고 가족들과 함께 텍사스로 이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스리는 한 동료부터 뉴욕에 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1940년 그는 뉴욕에 도착해 머무르며 <This Land is Your Land>라는 명곡을 작곡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설가 존 스타인벡[5] 과 음악가 피트 시거[6] 을 만나 친한 사이가 되었다. 이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더욱 더 사회참여적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여, 1940년대 동안 그는 많은 민중가요를 작곡하고 불렀다. 거스리는 파시즘에 적대적이었고,[7][8] 노동조합과 사회 운동을 지지하면서[9] '''사회 현실에 대한 자신의 메시지와 민중에 대한 지지와 소망, 그리고 희망을 노래에 담았다.''' 이런 노래들은 민요나 전통 가요 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대중적 요소 또한 지니고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거스리는 또한 피터 시거를 포함한 음악가들을 규합하여 '알마넥 싱어즈(Almanac Singers)'를 결성하여 인권, 평등, 차별 철폐 등을 주제로 한 민중가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외에도 방송, 콘서트, 칼럼 등의 방식으로 사회 운동을 계속 했다. 이러한 그의 활동들은 '''포크가 성장하고 발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음악가들의 사회 참여에도 도움을 주었다. 한편 이런 활동과 더불어 민요 수집과 서정적인 노래 작곡을 하기도 했다.
1950년대 들어 거스리의 건강은 매우 악화되었다. 그는 유전병인 헌팅턴 무도병에 걸려 투병생활을 해야 했다.[10] 결국 1954년 거스리는 음악을 그만두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만다. 그 후 1967년 10월 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3. 음악
- This Land Is Your Land
[11]'''This land is your land, this land is my land(이 땅은 너의 땅, 이 땅은 나의 땅).'''
1940년에 작곡되어 1944년에 발표된 거스리의 대표작. 그는 <God Bless Ameirca>라는 곡을 들었는데 이 곡이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에 응답하는 의미로 작곡을 했다고 한다. 이 노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미국 민중에게 큰 인기를 얻었으며 미국 초등학교에서도 자주 불려지는 노래다. 나중에는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서 저항의 의미를 담은 민중가요로 개사되어 불려졌다.
사유재산을 비판하고, 당대 미국의 빈곤층을 다루고 있는 4절과 6절은 사회주의적 색채를 띤다 해서 냉전 기간 동안은 잘 불러지지 않았고 이 부분이 수정되어 불러지기도 했으며 현재도 보수적인 주 일부에서는 수정된 가사로 불려지기도 한다. 현재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람이 아닌 이상 원작자의 뜻을 존중하는 뜻에서 그대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공연에서도 제창되었고 전설적인 민중가요 가수인 피트 시거와 락스타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불렀다. 여기서는 해당 가사를 그대로 불렀다. 실제 공연 영상
* Miss Pavlichenko
독일군 300명 이상을 저격한 전설적인 스나이퍼 파블리첸코를 다룬 노래다. 영화 세바스토폴 상륙작전에서도 나온다.
[1] 우디 거스리의 사인인 헌팅턴 무도병으로 보아 가족들의 다수가 헌팅턴 무도병으로 사망했음을 알 수 있다.[2] 거스리는 아버지의 친구들로부터는 영국와 스코틀랜드의 전통 음악 등을 배웠고, 어느 흑인 친구로부터는 하모니카를 전수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이 있는지라 삼촌이 이끄는 유랑쇼에 참여한 적도 있다고.[3] 이러한 경험은 그의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4] 또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도 관심을 가져 그 쪽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도 했다.[5] 분노의 포도의 저자이다.[6] 미국의 포크 음악가이자 사회운동가[7] 그는 자신의 기타가 '파시스트를 죽이는 기계'라고 정의했으며 그걸 기타에다 써놓기까지 했다. 한편 파시즘을 비판하는 곡으로 <Tear The Fascists Down> 등이 있다. [8]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입대하여 군인 신분으로 살기도 했다. 군대에서 그는 반(反)파시즘 음악을 작곡했고, 전쟁 희생자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었다.[9] 그의 노래 <Ludlow Massacre>, <Roll The Union On>, <Union Burying Ground>, <You Gotta Go Down And Join The Union> 등이 대표적이다.[10] 그의 어머니가 헌팅턴 무도병에 걸렸었다. 그것이 거스리에게 유전이 되어 그가 40대일 때 발병한 것이다.[11] 해당 영상은 마지막 구절인 6절이 생략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