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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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주요 주장
3.1. 20대들의 학벌주의
3.3.1. 반론
3.3.2. 옹호
3.4.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3.4.1. 반론
3.4.2. 옹호
3.5. 20대들은 왜 이렇게 되었나?
4. 궁극적인 주장
5. 비판


1. 개요


'''암울한 시대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이십대의 진짜 얼굴을 보자''' - 뒤표지 문구

오찬호가 2013년에 처음 선보인 사회학 저서이자 대표작이다. 정확한 제목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이다. 뒤표지의 문구를 그대로 빌려 쓰자면, ''''이 암울한 시대에 암울하게 변해버린 20대들의 슬픈 몽타주''''를 설명하는 책이다. 극심한 입시경쟁, 취업난 따위로 인하여 살아가기 힘든 '''헬조선'''에서, 괴물처럼 변모하고만 8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난 에코세대(당시 20대)의 심리, 사고 방식을 탐구한다.
이 책의 제목은 극심한 경쟁 속에서 타인을 매몰차게 밀어내야만 하는 20대의 자화상을 드러내고 있다. 상당히 불편한 진실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바람에 사회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1]
또한 뒤표지 문구에서 20대들을 '''피해자이자 가해자'''라고 칭한 것은, 현 한국 사회의 폐단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는 피해자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이들 스스로가 안고 있는 문제 또한 탐구하자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사실 이게 이 책의 핵심이며, 오찬호가 사람들에게 일깨우고자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정작 저자는 뭐가 급했는지 28살에 박사수료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야말로 높은 학벌을 내세우기 위해 쉬지않고 달려왔다고 할수 있다. 그런 그가 요즘 청년들의 경쟁주의적 사고와 사회현상에 대해 결론을 미리 선정하고 접근하는 연구 형태는 그다지 정당하지도 않으며, 가히 위선적이라는 평가가 따라와도 무리는 아닐것이다

2. 상세


이 책은 자신의 박사학위논문 '불안의 시대, 자기계발 하는 20대 대학생들의 생존전략'(2012)을 대중교양서로서 풀어 쓴 것이다.
이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대학 강사로서 2008년경 경기도 한 대학의 수업시간 중 KTX 비정규직 여승무원 전환 문제에 대해 토론하다가 학생들의 반응을 보게 된 것이라고 한다. 한 경영학과 4학년 학생이 '비정규직이 노력없이 지위가 전환되는 건 불공평하다'고 했을 때, 저자는 내심 이 학생이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을지 걱정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약 2/3의 학생들이 이 학생에게 찬성한다는 쪽에 손을 들자 저자는 이 현상에 대해 사회학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이는 약 4년간의 연구를 통해 박사학위논문 및 책으로 완성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학위논문이라도 연구는 연구이다, 개인의 편견을 그대로 반영하고, 결론을 미리 정해두는 태도는 정당한 연구라고 할 수 없다
'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건 너의 노력 부족'이라는 논리가 팽배한 현실에 대한 비판이 이 책의 주요한 뼈대다.
이 책에 나온 비유는 아니지만 비유를 하나 해보자. 단국대 철학과 박사는 1년에 약 2명을 모집한다. 하지만 단국대 철학과 교수는 5년에 1명 꼴로 채용한다. 박사를 마치는 모든 졸업생이 교수직을 거절하지 않는다고 할 때, 교수가 될 수 있는 사람은 10%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박사를 하고도 교수가 되지 못한 90%에게는 더 연구를 잘 하지 못한 잘못이 있는 것일까? 그것보다는 교수직이 부족한 상황이 문제라고 말하는 게 합당하지 않을까? 따라서 개인의 노력 부족을 무조건 탓할 것이 아니라 사회 환경을 문제 삼고 바꿀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또한, 그런 말이 통하기 위해서는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고, 과정이 전부 공정하고, 돌아오는 결과 또한 정의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가 그렇지 못하므로''' 이런 논리는 부당한 현실에 순응해버리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저자 인터뷰에 따르면, 때로 영화 보고 치맥하고, 1년에 한두 번 여행 가는 건 굉장한 사치가 아니지만 한국의 자본주의는 악질적이기 때문에 이런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3. 주요 주장


이 책에 나오는 오찬호의 주요 주장을 정리.

3.1. 20대들의 학벌주의


'''연세대는 서강대를, 서강대는 성균관대를, 성균관대는 ...(중략)... 성결대를 무시한다.''' - 86쪽

옛날에도 물론 학벌주의가 있었다. 그러나 단지 'SKY냐 아니냐', '인서울이냐 아니냐' 정도였을 뿐, 지금처럼 LOL 랭킹전처럼 점수 1점, 등급 한 컷단위로 극도로 체계적이지는 않았다. 2000년대 초반 경희대 법과대학 재학생에 의해 만들어진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라는 용어가 바로 그것이다. 태정태세문단세와 비슷하게 체계적으로 암기되며 서열이 낮은 대학이 자신의 대학을 더 높은 대학과 비슷한 대학으로 퉁쳐버릴라치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면서 호들갑을 떠는 바로 그것 말이다.
오찬호는 20대들은 수능카스트제도처럼 신봉한다고 주장한다. 그 20대에게는 카스트 제도보다는 LOL 랭킹전 등급 다이아,골드,실버,브론즈 같은 수능 등급과, 다니는 대학 이름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해버리고, 수능 점수가 자신보다 높으면 열등감에 자신이 왜 수능 점수가 낮은지에 대한 비열한 핑계를 대며, 자신보다 낮은 점수를 받거나 서열이 낮은 대학에 간 사람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20대들의 주장은 이렇다.
'''수능은 초중고 12년간의 노력이 집대성된 결과 아니냐.''' 이것 자체는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등급 하나만으로 직접적으로 확인한 바도 없으면서 사람의 전체를 판단해버리는 것이 바로 문제라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공부 안 하고 논 애들은 지방대랑 전문대에 들어갔다', '실제로도 지방대 애들은 수준이 떨어진다', '지방대 애들이 지하철에서 술 취해서 떠들고 쓰레기 버리는 것도 봤다' 하는 것 따위를 근거라며 내세우는데, 이는 당연히 '''명백한 논리적 오류다.'''[2]
SKY 학생들이라고 해서 지하철을 비롯한 공공장소에서 민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확인한 바도 없으면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는 데에 불리한 사실은 죄다 무시한 채''' 색안경을 끼고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대학의 학생들을 바라본다는 것이다.[3]
이 논리가 사실 어디서 나왔냐면, 대한민국 법조계,의학계,언론계에서 나온 논리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으신 직군중 하나인 법조계는 과거 사법고시때부터 지금의 로스쿨까지 철저하게 시험점수로 카스트를 정하는 서열위주 사회다. 딱 사시 패스 이후 사법연수원에서 시험성적으로 판사-검사-변호사[4]로 서열을 갈라놓고 연수원 성적과 고등학교 최종 성적으로 법관,검사,변호사들끼리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위아래를 갈랐다. 이 논리가 로스쿨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져서, 지금의 젊은 법조인들조차 이 논리에 아주 당연하게 물들어있다. 의학계는 2020년 매년 전교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라는 문구 하나로 완전하게 설명할 수 있다. 언론계도 마찬가지다. 언론계는 아예 언론고시 성적과 입사 언론사 서열을 가지고 아예 순위를 정해놓고, 방송은 지상파 3사의 보도를 내리 복붙하고 신문은 조중동 3사의 보도를 내리 복붙한다.
저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 모두 '''대한민국에서 성공가도를 탄 사람들이라는 것'''이 비극의 연속이다. 현시대 20대는 사회나가 저런 것을 하기 위해 죽어라 공부하고 죽어라 경쟁하며, 이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독창적인 생각을 하는 같은 또래들을 관종이니 관심병자니 같은 식으로 비하하고 왕따하는 게 당연하도록 만든 교실 풍토에 푹 절여진 시대를 살았고, 이를 가고있는 지금 학생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20대들 사이에서 만연한 학벌주의의 최대 해독은 '''피해자가 동시에 가해자도 된다는 점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대학에게 무시를 받는 피해자들은 동시에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대학을 무시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이럼으로써, 학벌주의로 인해 피해를 당하고 있는 사람들마저도 학벌주의가 더욱 공고하게 유지되는 데에 기여하는 셈이라고 오찬호는 주장한다.
현재의 학벌주의가 얼마나 걷잡을 수 없을 정도냐 하면, '''연세대가 서강대보다 서열이 높은 건 연세대에는 의대가 있어서'''라는 논리를 신봉하며 어처구니없는 자부심을 가지는 연세대생들이 있을 지경이다. 더 어이없는 것은, '''내가 연세대생보다 뒤떨어지는 건 연세대는 의대가 있는데 서강대는 없어서'''라는 논리에 어처구니없는 열패감을 느끼는 서강대생들마저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의대의 유무로 열등감이나 자부심을 갖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연세대와 서강대가 같은 신촌에 자리잡고 있는데다가 탐구 한두문제 차이로 쟤네는 스카이로 묶이고, 우리는 비스카이로 묶인다는 사실에 열등감을 심하게 느낄 뿐. 서울대와 연고대의 갭이 연고대와 서강대의 갭보다 큼에도 '''스카이와 비스카이의 구분'''이 워낙 명확하여 그 마지노선격인 서강대생들이 그러한 사실에 열등감을 강하게 느끼는 편이다.
사실 이 문제의 시발점은 그들의 부모에게도 일부 있다. 이 20대들의 부모 세대인 40~50대들은 90년대 초중반에 사회에 나와 마지막 경제 대호황시기를 누렸고, 정작 부모가 되자 IMF를 맞았다. 그리고 그들이 학부모가 되었을때는 자신들이 학력고사or수능 점수로 서열정리하던 시대가 아닌 대입제도 격변기에 있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의 부모인 4050대는 9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 공교육의 첫 세대였고, 그들이 배워왔던 공교육 토대인 신자유주의는 이명박근혜시대 급속도로 진행되어왔으며 이들은 자녀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신자유주의를 주입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인 것.

3.2. 자기계발서


몇십 년 전까지는 한국의 산업사회가 전 세계에 그 유례가 없을 정도의 전설적인 고도 성장을 이루었기에 무언가 노력을 하면 꼭 완벽하지는 않아도 어떤 보상이 분명히 돌아왔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죽을 만큼 노력해도 안 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되었다. 인간이라면 누려야 마땅할 행복을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한국 사회에서, 어쩌다 성공을 한, 즉 노력을 죽어라 해서 그 보상을 받아낸 희귀하고 특수한 사례를 내세우면서 ''''그러니까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너도 할 수 있으며, 실패란 없다'''' 같은 공허한 결론을 내리는 게 요즘 자기계발서라는 것이 오찬호의 주장이다.
책에 나온 건 아니지만 비유를 하나 해보자. 박사 졸업 직후 조교수로 임용된 사람을 가리키며 박사 졸업 후 시간강사를 하며 5년 넘게 임용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에게 말하기를, '봐, 하니까 되잖아, 너도 최근 3년간 SSCI 주저자 2편 있고 영어 강의, 데이터 분석 강의 가능하면 교수 임용 된다고' 하는 것이랑 다를 바 없다. 보통 시간강사들은 아무리 학문을 갈고 닦고 해도 교수 되기 힘들다.
자기계발서의 세계에서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것은 노력 부족 때문이라면서 개인의 잘못으로 간단히 이야기가 정리되고 만다. 오찬호는 이런 논리를 비판한다. 성공이 그렇듯이, 실패 또한 100% 개인적 역량으로 인한 결과는 아니므로 그런 논리는 부당하다고 말한다. 또한, '위기가 찾아와도 노력' 운운하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세상이 떠들어대는 이 말로 20대들을 위로하는 것은 가당찮은 일이라고 말한다. 앞서 말했듯이 노력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돌려주는 사회라야, 또 위기의 정도가 어지간해야, '지금 힘들어도 조금만 버텨라. 결국 달콤한 열매가 찾아온다.'라는 말이 통하는 것인데 '''지금 한국 사회가 그렇지 못하다는 말이다.'''
또한, 현재의 자기계발 동향은, '이렇게 해라'라는 말만 있지, 그래서 그렇게 했을 때 무엇인가 달라지는 것이 없다. 20대들은 아무것도 얻어가는 것이 없는 채로 자기계발만을 되뇌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안 하는 것보단 이런 게 나은 거니까'''라는 생각이 20대들을 이 악순환 속에 단단히 붙잡아둔다. 사실 이 생각이 틀렸다고도 할 수 없다. 정말로 안 하고 앉아 있는 것보다야 하는 게 낫다. '''그래서 했는데 좋은 결과가 없으니''' 이것이 한국 사회의 핵심적인 해독이다.

3.3.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 책에서는 서울대학교 교수 김난도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비판한다. 노력을 했을 때 정당하고 확실한 보상이 돌아오는 사회에서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성립하는 것인데, 지금의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해도 겨우 중간 갈까 말까 한 세상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따진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는 '인생을 24시간으로 환산하면 20대는 잠에서 일어나는 오전 7시'라고 하는데, 이는 20대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달리기를 하고 있는지 간과한, 공허한 비유일 뿐이라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새벽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다치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주장이다.
김난도는 서울대 교수이고, 서울대 학생들을 만난다. 책에서, 김난도는 '''서울대 교수를 할까 말까''', 그의 제자들은 '''유엔의 기구에서 일할까 말까'''를 고민한다.[5] 이들은 소수의 특수한 모습일 뿐 일반적인 20대들의 모습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김난도의 조언들은 서울대 학생들한테나 어울리는 '서울대스러운' 얘기들이라고 말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사실 '노력하면 당장은 힘들어도 나중에 보상이 돌아오니 힘내라'와 다를 바 없는데, 앞서 언급한 대로 '''지금 한국에서 노력이 정당한 보상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찬호 외에도 해당 책에 대해 이런 비판이 많다. 물론 사회 유명 인사나 다른 책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추천하는 경우도 있고, 창비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일부가 수록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책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이 책은 '''한국 출판 사상 최단 기간 밀리언셀러를 달성'''하고 현재는 300만 부 이상이 팔려 나간 베스트셀러가 되어 김난도는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자세한 것은 아프니까 청춘이다 문서 참조 바람. 문서에 비판에 관한 분량이 많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3.3.1. 반론


김난도가 유엔 국제기구에서 일할까 말까 고민하는 '일반적인 20대의 모습'이라 할 수 없는 독자를 대상으로 책을 썼다는 것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다. 저자가 목표 독자를 누구로 설정할지는 저자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서울대 교수인 저자가 서울대 제자들의 어려움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 책이다.

"이 책이 그렇게 대중을 상대로 쓴 책이 아니었고요. 제 아이하고 우리 제자들 상대로 그냥 개인적인 소회, 수업시간에 했던 얘기들을 묶은 책인데요. 갑자기 너무 화제가 돼서 물론 기쁜 측면이 없는 건 아닌데요. 요즘 청년들 참 힘들잖아요? 생각보다도 훨씬 더 많이 힘들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심경이 복잡한 면이 있네요." - 2011년 언론기사 참조

그리고 옹호론에서 이 '책을 통해 유명세를 얻은 뒤' 다른 대상에게 강연하는 것은 '은근슬쩍 얘기를 바꾸는 것'이라는 비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온당한 주장으로 바라볼 수 없다.
첫째로, 김난도는 아무 것도 없다가 갑자기 '아프니까 청춘이다 (2010)'를 써서 유명해진 뒤 그거 팔아먹으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최소 2002년부터 이미 서울대 교수이자 소비자학의 전문가로서 언론 인터뷰를 꾸준히 해 왔다.
둘째로, 사람이 평생 1명과만 이야기하고 나머지 사람과는 침묵하며 사는 게 아닌 이상 여러 대상과 소통하는 것은 화자의 자유이다. 김난도 교수가 서울대 제자 대할 때는 '유엔 국제기구에서 일할까 고민하는 20대, 사법시험 떨어지고 고민중인 20대'에 대해 말할 수 있어도, 대상이 '일반 대학생'으로 바뀐 강연을 할 때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다룬 주제 중 '서울대 제자에게는 맞고 부산 지역 대학생들에게는 맞지 않는 주제'까지 일괄적으로 강연하는 게 아니다. 가령, 김난도가 부산 지역 대학생들 대상으로 강연할 때는 자신의 여러 생각 중 "나를 돋보이게 하는 무언가가 없는 것이다. 청춘이라면, 나를 고를 수 있는 단 한가지의 이유를 제대로 만들자. 자신의 고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평생을 24시간으로 따지면 우리는 아직 새벽에 해당한다. 새벽에 뭐 하나 잘못했다고 해서 그 날 하루 다 포기해버리지 말자." 등 청자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주제에 한정해서 말한다.

3.3.2. 옹호


저자 본인도 결국 저 책의 타깃을 대한민국 모든 젊은 청춘들로 은근슬쩍 바꿨다는 것이 주 비판 쟁점이다. 김난도 교수는 저 책을 통해 유명세를 얻은 뒤 청춘시네마 등에 출연하며 대외활동까지 했으며 서울대 바깥으로 나가 책 내용에 대해 강연하며 서울대생들의 청춘을 현재 모든 젊은이들의 청춘으로 일반화했다.

3.4.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스님의 저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비판한다. 이 책 역시 200만 부가 팔려나간 베스트셀러이지만 오찬호는 이 책에도 맹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세상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쉬면 세상도 쉽니다'라는 문구를 인용하는데, 이에 대해 '내가 먼저 놓으면 세상살이도 편해진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현재 20대들은 놓고 싶어도 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결국, 뭐든 세상 탓만 할 일이 아닙니다', '상대가 나를 칠 때 지혜로운 이는 굽힐 줄 압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다', '누가 나를 욕하면 나를 낮추십시오' 등의 말에 대해서는 사회의 구조에 대한 불만을 멈추고 자신을 낮추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냐는 물음을 던진다. 오찬호는 이 책이 세상 탓을 멈추고 순응하여 살기를 부추김으로써 사회를 개선하지 못하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3.4.1. 반론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법에 관한 책이다. 마음의 혼란을 가다듬고 자신을 성찰하는 법을 일러준다. '세상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쉬면 세상도 쉽니다'라는 문구를 꼭 그런 식으로 해석하여 비판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는가? 그저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를 시도하라는 의미일 뿐이다.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심리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이유를 찾아가라는 조언인데, 그것을 굳이 헬조선이나 20대들의 사고방식 따위와 무리하게 접목하여 지나치게 각박하게 해석한 것은 아닐까? 이는 사회 현상을 갈등론적관점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해석한 것이다.
또한, 혜민 스님의 말은 자신의 성장을 방해하는 비생산적인 남 탓을 하지 말고 자신을 성찰하란 뜻이지, 결코 부당한 것에 따지지도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 아니다! 이것 역시 혜민 스님의 의도를 왜곡하는 것이다. 오히려, 혜민 스님이 말하는 휴식은 문제 제기를 위해서 진정으로 불합리한 것이 무엇인지 차분히 돌아볼 시간을 가지게 한다는 점에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불합리한 사회의 본질적 허점이며 이를 논파할 근거를 정리할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휴식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3.4.2. 옹호


중요한 것은, 의도가 어찌됐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말들이 20대들로 하여금 불합리한 사회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도록 만드는 데에 일조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결과는 결국 제대로 글을 쓰지 못한 혜민 스님에게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3.5. 20대들은 왜 이렇게 되었나?


책이 나온 2013년 기준 20대들은 80년대 중반 ~ 90년대 중반생이다.[6] 어린 나이에 IMF 외환위기가 닥쳤다. 부모님들이 하루아침에 실직하고 살기 힘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돈 벌어서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최고'라는 가치를 은연중에 주입당했다. 오찬호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때문에 20대들의 몽타주가 이렇게 '괴물'이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즉 이 세대들은 저자가 표현한 것처럼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된" 것이다.
2020년 6월의 코로나 시국에서도 이러한 문제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요원 정규직 전환 절차 논란'의 격전장이 되어버린 포탈 뉴스 댓글등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정의다","공부한 우리가 되레 역차별 받는다"라고 적는 수많은 분노의 댓글을 보노라면 현재 20~30대 청년들의 감정과 태도는 2013년 이 책에서 예로 들었던 <KTX 여승무원 비정규직 사태 >때 청년들의 반응과 판박이며, 저자가 표현한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굴레에서 청년들이 계속 맴돌고 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아이러니한 건, 이러한 청년들의 차별의 명목이 '''공정''', '''평등'''이란 점이다. 즉 기회의 평등, 공정한 결과를 매우 강조하는 동시에 경쟁에 따른 결과의 차별을 합리화, 정당화한다는 것. 말하자면 두 개가 서로 상충하는 상황이다.

4. 궁극적인 주장


책의 후반부에서 오찬호는 한국 사회의 행태를 자신의 군대 경험담에 비유해서, 궁극적으로 자신이 외치고 싶은 주장을 내비치면서 내용을 클라이맥스로 몰고 간다. 휴가에서 돌아오면 맛있는 음식을 사오는 악습이 생겼는데, 갈수록 음식을 사오는 스케일이 커진 것. 그래서 결국 분대장이 전 분대원 앞에서 경고하기를, '오늘부터 휴가자가 먹을 것 사오는 것 그만하자'는 것이었다. 누군가에는 굉장히 금전적 부담이 될 수도 있고, 처음에는 사소한 것에도 고마워하던 마음이 갈수록 커지는 음식의 스케일에 무뎌지므로 이 악습을 끊어버리자는 것이었다. 개인이 사회를 바꾼다는 것이 마냥 가능한 일은 물론 아니겠지만, 최초 한 사람의 문제의식이 있어야 사회도 바뀐다는 주장을 하고 싶었던 것. 20대들은 이 헬조선에서 사회적 약자이므로 아무것도 못 한다고 쳐도, 기성세대들은 왜 가만히 있느냐고 오찬호는 외친다. 휴가에서 돌아오면서 음식을 사와야 하는 상황에서 고민하는 이등병에게 '고민하니까 이등병이다'라고 말하고, '맛있는 거 사오면 일등병 된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한국 사회를 일갈한다. ''''고민하니까 이등병이다'라는 말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과 너무나도 닮지 않았는가.'''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말이 진정한 위로가 되기 위해선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슬로건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오찬호는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기회도 불평등하고, 과정은 불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롭지 못하게 나온다 는 사실을 조목조목 증명해 보임으로써 '아프니까 청춘이다' 따위의 힐링 담론이 잘못이라고 결론을 내리며 책을 마치고 에필로그에 들어간다.
결국, 다소 과격하게 말해서 '''해도 안 되는''' 이 사회에서 자꾸 '노력해라' 운운하는 것에서부터, 맹목적으로 '고진감래(苦盡甘來)'만을 강조하는 따위의 논리는 이제 그만두자는 것이다.

5. 비판


저자의 말에 따르면, 제자에게 한 기업의 합숙 면접에서 이 책을 논리적으로 비판하라는 조별 토론 주제가 주어졌다고 한다.

5.1. 연구방법론


이 책은 박사 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나온 교양서이다. 따라서 해당 박사 학위 논문에 대한 비판이 이 책에 대한 비판이 된다.
저자의 출신 대학에서 여러 학자들이 해당 박사 학위 논문의 연구방법론을 평가하였다. 연구 과정에서 녹음을 하지 않은 점이 신빙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되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신뢰를 얻기 위해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반론하였다.
또한 양적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이 면담자 수가 4명으로 제한된 조사 등에 대해 신뢰도와 타당도에 대한 비판을 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4명이라도 질적 연구의 특성상 충분히 가치가 있으며, 양적 연구에서 간과되기 쉬운 부분들을 포착한다는 점에서 질적 연구도 충분하다고 반론하였다. 그러나 양적 연구방법론을 통해 현재의 연구의 신빙성을 더 높일 수 있다. 가령 박사 학위 논문 중 대학생들의 생각을 알기 위해 설문조사를 한 부분이 여러 차례 있는데, 단순히 각 응답의 %를 내놓는 것에 그치지 말고 컨조인트 분석을 활용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7]

[1] 저자 오찬호는 이 책이 사회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부를 가져다주진 못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무래도 직시하기에 불편한 내용을 담은 책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한다.[2] 애초에 수능은 12년간의 노력이 집대성된 결과라는 것 자체는 사실이지만 여러가지 변수가 충분히 존재하는 시험이다. 이런 변수들을 고려할 때 지난 12년간의 노력이 어땠는지 점수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가치판단의 잣대를 한 가지로만 가지게 되는 위험하고 성급한 생각이다.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전까지만 해도 수능시험장에 당뇨병 환자인 수험생들이 혈당체크기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음을 생각해보자.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수능시험 이전에 시험보다가 쇼크로 죽을 수도 있다.[3] 여담으로, 대한민국의 입시주의 현실을 비판하는 영화인 명왕성에서도 이런 논리적 오류를 저격하는 장면이 나온다.[4] 이를 양지열 변호사는 막변이라고 불렀다. 연수원 나와서 막 변호사 됐다고.[5] 김난도 교수는 서울대 학생들에게조차 상당히 비판받았다.. 어지간한 서울대 출신들이 봐도 상당히 배가 부른 고민이었기 때문.[6] 즉 2020년 기준으로 이 연령대의 포지션이 책이 나온 당시와 크게 다르다. [7] 1980년대부터 마케팅과 의사결정 중심으로 활용되던 방법으로 오늘날에는 인사조직관리나 사회학에서도 활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