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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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청와대 만찬에 초청 받은 육예수(가운데 인물). 사진이 많은 둘째 언니 육영수와 달리 현재 전해지는 육예수의 사진은 드물다.
陸禮修
1929년[1] 5월 1일 ~
박정희의 두 번째 아내 육영수의 여동생. 그리고 박정희 - 육영수 사이에서 태어난 박근혜와 박지만, 박근령, 육인순과 홍순일의 아들딸인 홍세표와 홍소자에게는 이모다.
그리고 현재 육영수의 직계 일가족들 중 유일하게 생존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허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2015년에 사망했던 형부 박정희의 조카이면서 형부의 독재 정권 아래에서 실세 국무총리를 지내던 김종필 전 총리의 부인이자 동갑인 박영옥과 그녀의 남편인 김종필, 또는 2020년에 노환으로 사망한 형부와 형부의 전처 김호남의 딸 박재옥처럼 언제 세상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1929년, 충청북도 옥천군에서 갑부 육종관과 본처 이경령 사이의 1남 3녀 중 3녀로 태어났다. 위로는 언니 육인순과 육영수, 오빠 육인수가 있다. 박정희에게는 각각 처형, 손위처남, 처제다.
1950년, 둘째 언니 육영수가 박정희와 결혼한 이후에 훗날 남편이 되는 조태호와 결혼했다. 정확한 결혼 연도는 불확실하다. 슬하에는 아들만 하나 있다. 5.16 군사정변으로 박정희가 정권을 잡자 육예수의 남편인 조태호는 박정희의 특혜와 배려로 박정희 일가의 재산관리를 맏는 등 특혜를 받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조태호는 정수장학회 이사(65 ~ 68년)를 지내는 한편 MBC 이사도 지내며(1968년) 박정희 정권 하에서 박정희 - 육영수 부부의 특혜를 받으며 이들 내외는 승승장구하였으며, 1974년과 1979년에 언니 - 형부 내외가 총에 맞아 사망한 이후에 전두환의 제5공화국 정부가 들어선 1980년대에도 안정된 생활을 누렸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비운의 여인일지도 모른다. 주변의 가족들이 죽어가거나 불미스런 사태에 엮이는 비극적인 경험을 자주 겪었기 때문이다. 1965년에 친정아버지였던 육종관이 사망했고, 1972년에는 큰언니 육인순이 사망했으며, 첫째언니가 사망한지 2뒤인 1974년에 작은언니 육영수가 문세광의 총탄에 맞아 숨졌으며, 뒤이어 친정어머니 이경령이 1976년에 사망하였으며, 5년 후인 1979년에 형부 박정희가 김재규총탄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남편 조태호도 1988년, 암에 걸려 투병 중 숨졌으며, 2001년에 오빠 육인수도 사망하였다. 게다가 가족 구성원들이 사망한 것에 그치지 않고 둘째 언니 소생의 조카들 중에서 박근혜는 최태민 - 최순실 부녀의 영세교에 빠져 이들에게 헤어나오지 못하다 대한민국 대통령 시절 저지른 최악의 국정농단 게이트 사태로 탄핵당해 구치소에 갖힌 죄수가 되어버렸고, 박근령 역시 잦은 구설수로 말이 많으며, 또 박근령의 남편 신동욱도 박근령과 똑같으며, 박지만은 여러 차례 마약에 상습적으로 손을 대며 약물 범죄 사건을 일으키던 마약 범죄자로 여러 번 구속과 투옥을 반복하며 이모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내버렸고, 그 외에도 음주운전 및 이런저런 사건사고를 수시로 일으켰다. 심지어는 비교적 최근인 2015년에 자기 친아들한테도 폭행을 당하기도 했으니 그저 안습. 그러나 첫째언니 육인순의 자녀이자 다른 조카인 홍소자는 한승수국무총리와 결혼한 이후 범법행위를 자행하거나 민폐를 끼치지 않고 정치가의 아내로 조용히 생활하고 있으므로 이모인 육예수와 마찬가지로 별 탈 없이 조용히 잘 지내고 있다.

[1] 박정희의 조카딸이자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아내 박영옥과 동갑이다. 육영수에게는 동생과 시조카가 동갑인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