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욱(1968)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前 공화당 대표이다. 물론 신동욱의 공화당은 민주공화당과는 별개의 정당이며, 후술된 것처럼 그냥 사무실 하나 빌려놓고 정당 이름표만 걸어 놓은 것이다.
2. 생애
1968년,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태어났다. 부산광역시 성도고등학교와 남서울대학교 광고홍보학과를 졸업했다. 영화 수입사를 하다가 부도를 낸 후 애견사업을 하면서 애견 관련 책을 내기도 했다. 이후 2005년 ~ 2009년까지 4년 동안 백석문화대학교[1] 광고마케팅학부 겸임교수를 지냈다. 백석문화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한나라당 전국위원으로 정치계에 입문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서울 중랑구 을 선거구에 예비후보로 나섰지만 진성호에 밀려 공천 탈락하였다. # 이후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2014년 공화당을 창당해 총재를 맡았다.
1998년에 다른 여자와 결혼하였으나 결혼 6년 만인 2004년에 이혼하였고, 4년 후인 2008년, 박근혜의 친여동생 박근령과 재혼했다. 참고로, 박근령도 신동욱처럼 이혼 이후 재혼이며, 짧은 결혼생활을 한 동안 자식 하나도 생산하지 못한 박근령과 달리 신동욱은 전처 사이에서 1남 1녀를 뒀다.[2] 2006년에는 신동욱이 자신의 싸이 홈피에 전현직 대통령들을 개에 비유한 칼럼을 쓴 적이 있는데[3] , 이 칼럼을 본 박근령이 만나자고 해서 처음 대면했고, 이후 박근령의 요청으로 육영재단 자문위원, 감사실장 등을 맡으며 인연을 쌓았다고 한다.
[image]
2009년, 통일교에서 주최하는 합동결혼식으로 다시 한 번 결혼식을 올렸다. 백석대학교는 기독교학부까지 있는 개신교계 대학이기 때문에, 이 해에 겸임교수 자리를 잃었다.
3. 처형 박근혜, 처남 박지만과의 갈등
결혼 당시 박근령의 남동생 박지만이 심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남매 사이가 틀어졌다. 그 후로 박근령과 박지만 사이에 재산 분쟁이 벌어지는가 하면, 신동욱은 "박지만이 사람을 시켜 나를 중국으로 유인해 죽이려 했다"고 주장하고 박지만은 "헛소리"라고 반박하며 고발하는 등, 남보다도 10배는 못한 관계가 되었다. 나중에 삼성그룹의 이부진과 임우재의 이혼소송 및 폭로전이 언론에 보도되자, 이런 명언(?)을 페이스북에 남겼다.
처남 박지만과는 원래 견원지간이며, 처형 박근혜와도 불화를 일으켰다. 2009년에 박근혜 당시 의원의 미니홈피에 육영재단 관련 비방글을 수십차례 올렸다가 본인한테 고소당해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는데, 이후에도 비슷한 행동을 계속하다가 구속되어 결국 2012년에는 징역 1년 6월이라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박근혜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수감생활을 했었던 그는 박근혜에 대한 명예훼손 재심을 추진하고 있다.#그래도 임우재가 나보다는 나은 처지입니다. 임우재 고문이 ‘옛 시절에 부마는 잘못하면 산속에서 살았다’는 모욕적인 이야기를 들었다지만, 나는 ‘부마는 공주의 부속품이니 인간 신동욱은 없다’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힘없는 게 죄입니다.[4]
박근혜는 측근인 박채윤에게 "신동욱은 대한민국에서 고르기도 힘든 나쁜 사람"이라며 악평하였다고 한다.# 박근혜는 박지만과 함께 신동욱과 박근령의 결혼을 반대하였고, 결혼식에는 아예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정반대 입장[5] 인 김어준과 주진우와 묘한 친분이 있는듯. 김어준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종종 출연하고 있다. 김어준과 주진우가 파헤치는 박근혜 5촌 살인사건에서 박근혜-박지만에 대항하는 공동전선을 치고 있'''었'''다.
그러다가 10년만에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한때 적이었던 박지만을 만나 서로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했다. #
3.1. 박근혜 5촌 살인사건
박지만, 박근혜와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사람이 여럿 죽어나가는 으스스한 사건이 터졌다. 이래저래 말이 많지만, 현재 대한민국 최악의 호러 미스터리인, 박근혜 5촌 살인사건에서 중요한 증언자다. 박근혜 5촌 살인사건 문서 참조.
일단 신동욱이 중국에 납치당해서 변을 당할 뻔한 일이 있었다는 것은, 2016년 12월 17일 방영된 박근혜 5촌 살인사건에 관한 <그것이 알고싶다>와 김어준의 파파이스 122화를 통해 사실이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2007년 당시 신동욱은 박근혜의 5촌 조카인 박용철과 중국 칭다오에 갔다. 박근혜 캠프의 사람들과 중국 재정경제부 부장을 만나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비행기는 위하이에 내렸고, 위하이에서 차로 3시간을 달려 청도에 도착하고, 전날 저녁 회를 대접받고[6] 2차로 간 무슨 룸싸롱 같지만 오픈된 술집[7] 에 갔다가 마약을 단체로 흡입하는 광경을 보고[8] 술을 마시다가 상황이 함정이라는 것을 깨닫고 정신 똑바로 차리려고 각오를 했는데, 그 순간 정신을 잃고 호텔 방에서 깼는데, 중국 공안들이 오픈된 술집에 함께 있던 아가씨들을 데리고 간 후, 신동욱이 일행들이 걱정되어 박용철의 방에 들어가봤으나 '''사람이 있던 흔적이 없었다고 한다'''. 날이 밝자 파출소에 간 신동욱은 자기 방에 함께 들어왔었다 공안한테 잡혀갔던 아가씨가 조사를 받고 있는 걸 봤는데, 별 일이 없었던 것이 확인되어 신동욱은 무혐의로 처분되어 호텔로 돌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토가 쏠리기 시작하던 것. 신동욱은 '''횟집과 술집에서 만난 삼합회 두목 같은 사람'''에게 전화해달라고 호텔 매니저에게 부탁했으나 '''그 번호는 없는 번호'''라는 매니저의 말이 이어지고, 잠시 뒤 남자 매니저가 와서 '''신동욱을 구타하기 시작'''한다. 호텔에서 일하는 남자 둘이 와서 급히 팔을 부축했는데 '''어째 짐짝 취급하는 게 딱 보이더라는 것'''이다. 방이 어디시냐고 묻는 일하는 남자 둘을 공작원이라고 추정한 신동욱은 일부러 반대 방향의 방(박용철이 묵던 쪽)을 이야기한다. 천만다행으로 속아준 남자 둘은 박용철이 묵던 그 방에 신동욱을 넣어주고는 사라졌다. 박용철은 당연히 보이지 않았고, 신동욱은 급하게 탈출을 계획하고는 커튼을 열어젖힌 후 속옷만 남기고 지갑만 챙긴 채로, 통유리 옆 환기구에 달린 조그만 문으로 빠져나가 2층 연회장 옥상으로 떨어지고, 철대문이 잠겨있자 거기서 또 한번 뛰어내려 다리는 부러졌으나 탈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질질질 다리를 끌어 어찌어찌 한국 대사관 주변에 도착했는데, 거기서는 (위 주석에 있듯) 김모 영사에게 마약사범+삼합회와 한패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대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영사 자격으로 와있던 신동욱은 자신의 신분을 어떻게든 증명하려고 했고, 그렇게 해서 김 영사와 신동욱 두 사람의 여권을 비교하여 같으면 신동욱이 영사자격으로 온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김 영사의 여권에는 '''복사 자국이 남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신동욱은 부러진 다리도 못 고친 채 표를 새로 사 허위허위 한국으로 돌아오지만, 발이 묶인 사이 이미 이 사건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 육영재단은 최태민 일가에 의해 조종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위 주석에서 이야기했듯 '''신동욱은 한국에 와서 또 마약사범으로 몰려야 했다'''. 이 상황을 그 호텔 직원이 "그날 밤, 객실 창문 사이로 어떤 한국인이 그 좁은 창문 틈으로 빠져나간 걸 봤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주진우의 말에 의하면 박용철과 함께 갔던 김씨와, 위하이와 칭다오의 중국 깡패들 역시 그날 신동욱을 무력화시킬 계획이 있었다고 언급해주었다고... 이 무력화시킬 계획은 원래 '''중국에서 마약 현행범으로 체포'''되게 만들어 최대 '''사형''' 혹은 최소 '''10년 정도의 징역'''을 때려 '''신동욱을(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죽여버려서''' 박근령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지경으로 만드는 것이었지만, 계획이 틀어져 '''신동욱을 호텔에 감금'''하려고 하고, 또 계획이 틀어져 신동욱을 한국법을 적용받게 하여 '''마약사범으로 한국에 인도시켜 감옥'''으로 보내는 것까지로 계획이 후퇴했으나 세 가지 모두 실패하였다.
신동욱은 자기 변호를 나름대로 열심히 해가며 상황을 겨우겨우 타개해 나가지만, 박근혜 명예훼손 크리로 또 어려운 상황에 몰리고 만다. 그런데 갑자기 재판 내내 신동욱을 까는 증인이었던 박용철이, 안그래도 재단에서 점점 밀려나가고 있던 상황이 되었을 때 갑자기 변심을 해서 이때 신동욱을 박지만이 죽이려고 했다고 이야기한 정용희와 박용철 간의 녹취록이 가족이 있는 캐나다에 있다는 충공깽 증언을 하고 만다.
그리고 신동욱은 법정 증언문을 기반으로 박지만 측을 맞 고소하지만, '''박용철의 증언사실이 없어''' 1심 유죄를 선고받는다.
그리고 2심 때 박용철의 증언을 다시 듣기 위해 신동욱은 박용철이 재판에 나와주기를 청했으나,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불과 며칠 전 박용철이 '''살해당하였기 때문'''이다.
4. 활동 및 논란
목소리는 진지한데 하는 활동들이 조금 엇나가 있으며, 이런 불일치가 상당히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또한 '''정치 활동과 논란이 사실상 일치'''한다.
'공화당 총재'라는 엄청나게 그럴듯한 직함을 달고 있지만, 사실 이 공화당이란 것이 허경영의 친허연대[9] 와 합당할 정도로 별 의미가 없는 일종의 개인 정당이다. 오죽하면 박근령이 20평짜리 집에서 살고 있으며 수도요금과 전기요금도 자주 체납하고, 8억의 채무를 갚지 못한다는 기사가 뜰 정도.[10]
박근령의 남편이고 무슨 사건이 터질 때마다 등장해서 꽤 자극적인 말을 하기 때문에 받아써주는 기사가 많지만, 본질만 보면 성공한 관심종자 기질이 농후하다. 즉, 박근혜를 비난하다가 옹호하기도 하고, 극우 발언을 서슴치 않는가 하면 좌파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하는 '''이 사람의 온갖 기이한 행동들은 대부분 그때그때 관심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거창한 의미를 찾으려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단, 신동욱 본인도 뒤가 구린 사람이긴 하지만, 어쨌든 박근혜·박지만·박근령 3남매 사이의 분쟁에서는 중요한 증인임이 확실하기 때문에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을 비롯한 관련 사건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주목하는 매체가 많은 편.[11]
특징적인 어투가 있는데, 부정적인 것에는 "~한 꼴이고 ~한 꼴이다.", 긍정적인 것에는 "~한 격이고 ~한 격이다."를 반복하는 식이다라는 것. 꼴 예시, 격 예시. 물론 언론에는 꼴이 압도적으로 더 많이 언급된다.
4.1.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서울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분향소에 검은 리본 수백개를 달아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노란 리본이 아니라 검정 리본이다.''' 노란 리본의 의미는 무사 귀환을 바라는 의미에서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는데, 그 당시 노란 리본 달기 캠페인이 벌어진건 실종자들이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의미였는데, 고인을 추모하는 의미를 가진 검은 리본을 달았으니, 당연히 많은 이들의 빈축을 샀다.
4.2. 2015년
[image]
[image]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 때 석고대죄를 하였다. "석고대죄는 원래 왕족이 하는 것"이라는 봉건주의적인 발언을 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5년 8월 18일에는 노란 리본을 단 김연아를 '''종북이라고 비난했다.'''(...) 공화당에서는 노란 리본을 종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청소년의 이념관에 해를 끼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논리대로라면 노란 리본 캠페인에 동참한 '''청와대'''도 종북이고, 처형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종북의 우두머리가 된다. 결국 3년이 지난 2017년에서야 비로소 사과했다. #
2015년 8월에는 박근령의 니코니코 인터뷰 사건에 대해 "박 다르크"라며 "총대를 맨 용감한 행위"라고 옹호하였다. 이 일과 관련해 10일 6시경에 MBN 뉴스에 인터뷰로 참여해 앵커와 거친 대화를 나누었다. '''"보수단체'''인 '''일베를 보면''' 아내의 발언이 얼마나 발언이 옳았는지 안다"고 뉴스에서 호소하였고, 팩트의 중요성에 대하여 짧게 발언하였다. 11일에는 패널에 출연하여 여러가지에 대해 이야기 한 듯 하다. 논점이 왔다 갔다 했지만, 끝은 항상 노무현 탓이다. 이 덕분에 의외로 1968년생치고 얼굴이 동안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4.3. 2016년
2016년 2월 18일에는 성매매 합법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우리나라에도 성매매 합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고, 공화당의 당론을 성매매 합법화로 바꾸고, 성현아한테 입당과 동시에 공화당 대변인을 맡아줄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당 역사상 최초로 성매매 합법화의 필요성을 주장한 점도 주목할 만 하다. 하지만, 정작 성현아는 아웃 오브 안중인 모양이다.
이때 함께 공화당 입당제안을 한 인물이 누구냐면, 강용석과 불륜으로 이야기가 많았던 도도맘 김미나. 강용석이 용산구에 출마한다는 이야기가 돌자 김미나에게 대변인을 맡아 달라, 총선에 출마하라 등 제안을 하다가관련기사, 강용석이 새누리당 복당시도를 하다가 실패하자 이번에는 강용석에게도 입당을 제안하기도 했다.관련기사 물론 모두 실패했다.
이후로는 "가족으로써의 도리를 다 했으나 가슴에 묻었던 1년 6개월의 억울한 옥살이를 밝히고자 4차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라며 박근혜 탄핵 집회에 참여해 박근혜의 퇴진에 목소리를 보탠 것은 물론,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조사 과정에서 '육영재단 폭력사태'와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의 수사를 시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협조해 자료를 제공하고, '''"10년치 자료를 가져갔는데 특검이 받은 건 1달치였다."'''라며 "특검에 수사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식의 비난을 가하기도 했다.
4.4. 2017년
무엇 때문인지 태도가 돌변, 2017년 1월 15일 열렸던 12차 촛불집회에선 친박단체 박사모가 주최하는 태극기 집회에 참여해 "신동욱 총재는 촛불집회에 참가했지만 신동욱 씨는 탄핵기각 태극기 집회에 참석했다. 박근혜 전대통령은 신동욱 씨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신동욱 총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후 탄핵기각을 주장하는 태극기 집회에 거듭해 참석했으며 3월 초 박근혜 탄핵 인용 선고가 나오자 "정치적 타살" 이라 주장한 것은 물론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종북세력의 정치공작" 이라 주장하며 완벽하게 태세를 전환했다. 그 와중에 정유라의 담당 변호사가 돌연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SNS를 통해 5촌 살인사건을 다시 언급하며 "이번엔 내 차례인가." 란 발언을 꺼내는, 얼핏 이해되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것은 덤이라 하겠다.
박근혜 前 대통령에 대한 옹호 입장으로 돌아선 직후 3월 말, 구속영장에 대한 실질심사가 있기 하루 전 발생한 '구룡마을 화재 사건' 을 두고 "불은 행운이고 길조의 상징인데 정치인 박근혜의 부활의 징조다" 라 이야기하는 바람에 논란을 빚었다.관련기사
19대 대선 이후에는 또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를 찬양하며 박근혜와 자유한국당을 까는가 싶다가도, 바른정당을 '썩은 고기 정당'이라고 비난하고 홍준표의 신보수주의를 예찬하는 등 모순적인 듯 일관된 관심병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바른정당 역시 그냥 비난한 게 아니라 유승민은 까고 이혜훈은 추켜세우는 이상한 스탠스를 갖고 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로는 박근혜를 옹호하는 반응을 보이며, 문재인을 예찬한 전과 다르게 말한다. 전형적인 얌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
부산 사하구 여중생 폭행 사건에 대해서 '안보가 무너지니 치안도 무너진 꼴이고 문재인 정부 불신 도미노 현상 꼴이다.'란 트윗을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의 세계시민상을 수상하자 "문재인 대통령 '세계시민상' 수상. 북한 핵무기 위협을 즐기는 꼴이고 쇼미더 북핵 꼴이고 쇼미더어워드 꼴이다. 양심에 털 난 꼴이고 세계인의 웃음거리 꼴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수상 꼴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염치없는 수상 꼴이다. 사필귀정."이라고 트위터에다 썼지만 정작 네티즌들은 신동욱을 악성 관심종자로 분류하며 아웃 오브 안중이다.
김진태 의원이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이를 자축하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철원 일병 피격 사망 사건이 터지자 이를 아무런 근거도 없이 북한군의 소행이라는 헛소리를 날렸다. 당연히 사람들에겐 개소리 취급당하고 있다.
거의 모든 사건을 문재인 대통령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데, 신동욱의 이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들을 기레기들이 기사랍시고 써대는 것도 큰 문제다.
이젠 충청샘물과 문 대통령을 엮어서 까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차 구속시한 만기가 다가오자 "연장이 아닌 출소가 당연하다"며 '''"김정은'''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트윗을 올렸다.
박근혜가 자유한국당에서 제명된 이후에는 "이런 치욕의 날이 올 줄 알고 미리 공화당을 준비해두었다"고 트위터에 글을 게시했다.
최근에는 대한애국당이 주축이 된 박근혜 대통령 무죄석방 1천만 국민운동본부 주최로 개최하는 태극기 집회에 같이 참석하고 있다.
2017년 12월 10일에는 문재인 케어 반대 시위에 참여하여 '문재인 정부 사망진단서 발행한 꼴'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왜 반대하는 지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고 그저 포퓰리즘이라고만 비난했다. 의사들이 이 정책에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문재인 케어 문서 참조.
4.5. 2018년
2018년 2월에는 변희재 등과 함께 광화문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갖고 '''"미국은 문재인을 무시하고 북한 핵시설을 폭격하라(...)"'''고 주장하였다. #
불금쇼에 나와서 빵빵터졌다. 태극기 집회 스토리도 얘기하며 일단 캐릭터로 자리잡은듯... 최욱이 신동욱은 사실 문빠라고 했고 신동욱은 부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생계형이라는 늬앙스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는 느닷없이 대한애국당 간판으로 구미시장 출마를 시사했으나 유야무야 넘어가며 없던 일이 되었다.#
2018년 7월 4일,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스스로 신청했다.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 모두가 부정적 의사를 밝히고 있는데, 신동욱 공화당 총재만 공개적으로 신청을 밝혔다.#
7월 14일에는 서울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것을 두고 동성애를 비난하며 "국립 동성애 전문병원을 만들자"고 주장했다가 성소수자들로부터 "양성애 전문병원, 무성애 전문병원도 만들어달라"(...)는 비아냥을 듣게 되었다. #
같은 달 23일에는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에 휘말려 투신자살하자 "노무현 따라하기 꼴", "정의당 해체하라"는 막말을 퍼붓기도 했다. # 그러다가 하루만인 24일에는 갑자기 고인에게 사과드린다며 직접 빈소를 찾아 분향하기도 했다. #
그러다가 11월에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한때 적이었던 박지만을 만나 서로 악수를 했다#
4.6. 2019년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청문회 이후 일거수일투족을 스토킹하고 이를 유투브에 올려서 물의를 빚고 있다. 단순히 집 주변이나 사용한 상가를 사용하는 것은 취재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 여지도 있지만, 이동중인 차량을 2시간동안 추적하는 영상은 직접적인 스토킹을 했단 영상 자료를 남긴 것이라 법적 조치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4.7. 2020년
21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 출마를 선언하고 후보로 등록했다. 기사. 하지만 당선을 목적으로 출마를 선언했다기보다는 그저 자신이 이끄는 공화당의 인지도를 알리고 해산 방어를 위해 출마한 것에 가깝다 보니 당연하게도 낙선하였다. 그것도 고작 '''57표'''로 말이다.
물론 더불어민주당 - 미래통합당 양당 구도가 강하게 나타난 21대 총선에서 군소 정당의 낙선 자체는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21대 총선에서 신동욱이 거둔 성적에는 특기할 만한 사항이 있다. 서울 종로 선거구에 후보를 낸 11개 정당, 그 중에서도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을 제외한 9개 군소 정당 중에서도 당당하게 꼴찌(...)를 기록하였다는 것이다.[12] 군소 정당 후보 중에 신동욱보다 높은 인지도를 보유했다고 볼 수 있는 인물이 전무함을 감안하면 실로 주목할 만한 성적.
7월 9일,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했다. 그 여파 때문인지 몰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공화당도 해산하였다.
5. 선거 이력
[A] 현재 삭제됨[1] 백석대학교와는 다른 대학으로, 같은 백석학원의 전문대학이다. 단, 캠퍼스는 공유한다.[2] 딸은 이혼 이후인 2006년에 전처와의 사이에서 얻었다.[3] 기사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개드립이 아니라 진지하게 비교한 글이다. 실제로 신동욱은 <애견학개론>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고, 상당기간 애견사업을 했었다.[4] 물론 대한민국은 신분과 계급을 부정하고 왕족 따위 없는 민주공화국이며, 임우재도 신동욱도 부마가 아니다. 사인의 사사로운 농담이라면 모르지만 정치인이 공개적으로 할 말은 아니다. [5] 김어준도 대놓고 말했다. '''정치적 입장으로는 영원한 평행선'''이라고.[6] 이미 여기서 뒤에서 나오는 '''삼합회 사람'''이 신동욱과 조우한 것으로 추정됨[7] 이 술집은 이후 폐업상태라고 한다.[8] 보기에도 '''삼합회 같은 험상궂은 사람들'''이 동행한 터라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대충 하는척만 하고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국에 돌아온 후 마약사범으로 몰릴 뻔했으나 경찰에 자수해 국과수 검사까지 받은 결과 마약 건에 대해서는 무혐의로 풀려났다.[9] 이후 2019년 국가혁명배당금당으로 분리되었다.[10] 사실 박근혜만큼은 아니어도 박근령의 재산도 적은 편은 아니었다. 그 재산은 신동욱의 정치 활동으로 탕진한 것으로 보인다. 박지만과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로는 지원을 받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는 듯 하다. 이런 면에서 신동욱을 박근령의 재산을 노린 사기꾼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11] 신동욱은 "일부러 관종 짓을 하는 이유는 이러하다. 중국에서 죽을 뻔도 했고, 계속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지라, 어떤 모양새든 꾸준히 카메라에 얼굴과 근황을 비치는 게 나의 생존법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다. 사람 자체가 실언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그런 관종과 실언들을 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 하다.[12] 57표, 11위. [13] 21대 총선 지역구 최저 득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