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아제르바이잔 관계
1. 개요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의 관계.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은 역사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었고 언어, 문화, 종교에서 매우 가깝다.
2. 역사적 관계
2.1. 고대
본래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은 페르시아계 주민들이 거주했다. 과거 해당지역은 이란어 타트어군 언어를 사용하는 주민들이 거주했고, 페르시아도 아제르바이잔 지역을 영토로 두고 있는 등 여러차례 교역과 교류가 많이 있었다. 조로아스터교가 고대 아제르바이잔 지역(캅카스 알바니아)에서 번성했다.
2.2. 중세
7세기 ~ 8세기에 아랍인들이 페르시아를 정복하면서 이슬람교로 개종했고 아제르바이잔 지역도 페르시아와 아랍의 영향으로 이슬람교를 받아들였다. 다만, 이 당시에도 아제르바이잔 지역은 튀르크화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종교에서도 가까웠고 언어, 혈통에서도 가까웠다. 당시 이란 북부와 아제르바이잔 일대에서는 조로아스터교 부흥 운동을 펼치던 호람딘이 아제르바이잔과 이란 북부 일대에서 활동하였고, 이들은 후에 시아파로 개종하게 되었다.
셀주크 제국이 페르시아를 지배하자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던 오우즈 튀르크족들이 아제르바이잔 지역에 정착하고 아제르바이잔 지역의 주민들은 튀르크화되면서 지금의 아제르바이잔인이 되었다. 몽골 제국의 침략 이후 원주민들이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나서도 상당수의 오우즈족들이 이주해왔다.
몽골 제국이 아시아의 대부분 지역을 차지하면서 페르시아 지역은 일 칸국이 되었다. 아제르바이잔 지역도 일 칸국의 영토가 되기도 했다. 아제르바이잔 내 페르시아계 농경민들은 타트인이라고 불렸는데, 몽골 제국의 침략 이후 인구 구성이 튀르크인 위주로 변한 이래 아제리인들에게 점차 흡수되면서 오늘날에는 소수민족으로 전락하였다.
2.3. 근세
아제르바이잔 지역이 튀르크화되면서 언어에서 달라지게 되었지만, 페르시아는 아제르바이잔 지역에도 영토를 두고 있었다. 아제르바이잔 일대에서 발흥한 사파비 제국이 이란을 장악하면서 이란은 아제르바이잔 내 사파비야 키질바시의 영향으로 순니파 주류 국가에서 시아파 주류 국가로 변모한다.
카자르 왕조가 아제르바이잔 지역에도 영토를 두고 있었지만, 점점 세력이 약해지면서 영토를 확장중인 러시아 제국과 전쟁을 치렀다.
2.4. 19세기
결국 19세기 초에 들어서면 아제르바이잔이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피하기 위해 아제리인들중에도 이란 지역으로 이주한 경우도 생겨났다. 이때를 기준으로 이란과 아제르바이잔는 상당히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은 남아제르바이잔에 해당하는 지역까지는 장악하지는 못했고, 남아제르바이잔 지역은 이란으로 귀속된다.
2.5. 20세기
러시아 제국이 혁명으로 몰락한 뒤 소련이 출범하고 아제르바이잔 지역은 소련의 공화국이 되었다. 다만, 남아제르바이잔은 소련의 영향을 받아 잠시 공산주의국가가 되기도 했지만, 현지 주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이란에서 물러났다.
아제르바이잔 지역은 소련의 공화국이 되다가 91년에 소련이 해체되고 독립국이 된 뒤에 이란과 수교했다.
2.6. 21세기
양국은 언어, 종교, 문화에서 매우 가깝다.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교 쉬아파를 믿고 있고, 이슬람 협력기구의 회원국이다. 다만, 정치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아제르바이잔이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영향으로 세속국가이자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반면, 이란은 70년대말에 이슬람 혁명으로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가 되었으며 동시에 인구 40% 가까이가 소수민족인 국가라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 있다. 이들이 비교적 이란 사회에 잘 동화되었다지만 소수민족이 많은 이란으로서는 혹시 모를 분리주의 때문에 아제르바이잔을 경계한다.
아제르바이잔인, 즉 아제리인은 이란에서도 전 인구 25%에 달하는 1500만명이 넘는 되는 만큼, 아르메니아와 더불어 이란에서도 무시못한다.[1]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지만 아주 좋은 관계도 아니다. 아제르바이잔 본국을 그리 고향같이 여기지 않은 이들도 많다. 게다가 아제르바이잔에게 원수같은 아르메니아와 사이좋게 지내는 이란인데다가 더불어 아제르바이잔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투르크계로 이란과 껄끄러운 터키와 매우 사이가 좋기에 이란으로서도 사이좋기 굴긴 껄끄럽지만 그렇다고 원수지간으로 지내지 않는다. 궁정언어로 아제르바이잔어가 상당기간 쓰인적이 있던 시절도 있고 무엇보다도 알리 하메네이가 바로 아제르바이잔계다.
양국은 자동차산업 분야를 포함한 여러 분야에 걸쳐서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 아제르바이잔이 이스라엘에 공군기지를 빌려주고 무인기 배치까지 허용하면서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이란과는 바로 코앞인데다, 아제르바이잔에 배치된 이스라엘 무인기는 테헤란까지 날아갈 수 있기에 이란에서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2] 하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이란이야말로 아르메니아군 연료를 책임지는 주제에 누굴 따지냐고 대응했다.
아제르바이잔이 독립한 직후 이란은 시아파가 다수인 아제르바이잔과 우호 관계를 맺으려고 했으나, 아제르바이잔은 이란보다는 터키를 파트너로 생각했고 특히 민족주의 성향의 애뷜패즈 엘치배이 정권은 친터키-반이란 성향으로 남아제르바이잔과의 통일을 지지하면서 이란과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결국 이란은 아제르바이잔보다는 아르메니아와 친선 관계를 맺게 되었다.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도 이란은 아르메니아를 지원했다.[3]
3. 문화 교류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에 나뉘어 거주하고 있는데, 이란쪽의 아제르바이잔인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아제르바이잔어는 아제르바이잔 본토에서 로마자로 쓰이고 있지만, 이란쪽에선 페르시아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양국은 시아파 12이맘파를 믿고 있다.
4. 여담
2000년 중반에 이란의 시사 만화가 Mana Neyestani가 자신의 만화에서 그냥 바퀴벌레가 아제리어로 한마디("뭐라고?(Namana?)"하고 대답)하는 묘사를 그리자 아제리인을 바퀴벌레로 봤다며 이란 거주 아제리인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아제르바이잔에서도 분노하며 이란 대사관 앞에 시위가 벌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시위 과정에서 최소 4명이 사망했고, 해당 만화가는 이 일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석방후 말레이시아로 망명을 갔다.
5. 관련 문서
- 이란/외교
- 아제르바이잔/외교
- 아제르바이잔인
- 남아제르바이잔
- 이란/역사
- 아제르바이잔/역사
- 카자르 왕조
- 이슬람 협력기구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서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캅카스 국가
[1] 별다른 차별도 존재하지 않고 문화, 경제적인 교류도 활발하기는 하지만 이런저런 재제를 받는 이란의 통치하에 있을 바에 차라리 아제르바이잔과 통일하자는 남아제르바이잔인들의 분리주의 의견이 간간히 나오고있다.(물론 통일하자는것이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다. 쿠르드인이라는 변수가 위낙 커서 이란과 싸워봤자 득이 될게 없기 때문이다.)[2] 거기다 아제르바이잔 공군도 이스라엘제 무인기를 구입하면서 아르메니아까지 반발하고 있다.[3]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 중립을 지키는 모습을 보였고 심지어 아제르바이잔군이 이란 국경으로 들어와 아르차흐 후방으로 포격하는 걸 못 본 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