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하라 유지로

 

[image]
[image]
리즈 시절.
말년 시절.
'''이름'''
石原 裕次郎, Yujiro Ishihara
이시하라 유지로
'''출생'''
1934년 12월 28일, 일본 제국 효고현 고베시 스마구
'''사망'''
1987년 7월 17일, 일본 도쿄도 신주쿠구 시나노마치 (52세)
'''신장'''
178cm[1]
'''직업'''
배우, 가수
'''소속'''
이시하라 프로덕션 (대표이사)
'''활동 시기'''
1956년 ~ 1987년
'''가족'''
이시하라 신타로
배우자 이시하라 마키코[2]
조카 이시하라 노부테루, 이시하라 히로타카
1. 개요
2. 행적
3. 기타


1. 개요


일본 쇼와 시대를 대표하는 영화배우이자 가수다. 형은 망언으로 유명한 전 도쿄 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이다.
1987년 7월 17일(금요일)에, 중년때부터 생긴 지병인 간암으로 사망하였다.

2. 행적


일본 태양족의 아이콘이었고 청춘영화 주인공을 도맡아 했다. 일본 영화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사인 닛카츠도호도에이에 비해서 세가 약할 때 닛카츠를 먹여 살린 배우이다. 가수로도 유명했다.
태양의 계절[3] 세트장에서 스텝과 배우들이 이시하라 유지로의 모습을 보았고 너무나 인상적이어서[4] 영화 미친 과실[5]에 데뷔시킨다. 여기에서 주연을 맡아서 훗날 부인이 되는 키타하라 미에(北原 三枝)와 함께 열연하게 되며[6] 둘은 우리나라 신성일 엄앵란의 원조로서 청춘영화의 단골이 된다.
실제로 이시하라 유지로는 신성일의 롤모델이나 마찬가지다. 신성일이 당시 이시하라 유지로의 스포츠머리 헤어스타일과 캐주얼한 복장, 쿨해보이는 연기스타일을 많이 따라했다고 전해진다.
이시하라 유지로가 지금까지 일본인이 가장 사랑한 남자라는 애칭으로 불리면서 사후까지도 추모제를 하고 박물관까지 있는 것은 이시하라 유지로가 유쾌하고 스스럼없는 태도와 친대중적인 성향뿐만이 아니라 어느 세대에나 기억에 남을 만한 캐릭터로 연예인으로서 성실한 부분이 크다.
닛카츠영화사는 원래 일본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영화사인데 토호 , 도에이 등에 밀려서 이렇다 할 힘을 못 쓰다가 50년대 중반 이시하라 유지로를 필두로 액션영화와 청춘영화를 개척하면서 다시 일어서게 된다. 이시하라 유지로는 닛카츠의 간판이었고 이시하라 유지로는 물론이고 고바야시 아키라, 요시나가 사유리, 아카기 케이치로, 시시도 조, 아사오카 루리코, 그리고 현재 마지막 닛카츠의 액션스타인 와타리 테츠야다.
닛카츠영화사가 당시 시대극과 문예물이 대세를 이룰 때 무국적액션영화라든지 청춘영화로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컬러TV가 나오면서 영화관람객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어 일본영화계에 불황이 찾아오는데 이 때 이시하라 유지로도 닛카츠를 나와서 이시하라 프로모션을 운영하게 된다. 일본에서 스타가 개인프로덕션을 세운 거의 최초의 사례이고 몇몇 대형영화들은 성공했지만 그래도 경영이 매우 부진해서 고생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주로 TV 형사 드라마 출연에 주력하게 된다. 대표적인 작품이 태양을 향해 외쳐라서부경찰 시리즈. 이때 병으로 고생하다가 겨우 소속사로 복귀한 와타리 테츠야도 이시하라 유지로와 함께 대도시 시리즈와 서부경찰 시리즈에서 많은 활약을 보였다.
이시하라 유지로는 당시 기준에서 키도 크고(178cm) 다리도 길고 피지컬도 좋고 잘생긴 데다, 영어도 능통하고[7] 각종 스포츠와 해외여행을 즐기며[8] 유명인사들과 어울려 파티로 시간을 보내는 셀럽으로서의 멋진 삶을 보여줬기 때문에 당시 일본인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술을 달고 살고[9] 줄담배를 피우던 습관 때문에 40대 중반부터 급격하게 건강에 이상이 온다. 이시하라 유지로는 식도락을 즐기고 음식 만들기를 좋아했던 사람인데 고기를 좋아하고 과식하는 식습관도 그의 건강에 좋지 않았고 부상과 각종 질병에 늘 시달리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처럼 일생동안 수없이 병치레를 많이 했다.
80년대 내내 병마와 싸우기 전부터, 즉 아주 어릴 때부터 간이 나빴다. 문제는 술과 담배를 가까이 했고, 툭하면 부딪치고 골절상을 입었다. 터프가이로 불린 애칭과는 달리 몸 안쪽은 엄청 망가진 셈이다.[10]
이시하라 군단이라고 해서 와타리 테츠야, 타치 히로시, 칸다 마사키를 비롯한 이시하라 프로모션으로 유명한데 이시하라 유지로가 워낙 스캔들이 없고 남자들끼리만 어울려서 오해를 샀는데, 말년에 마츠다 세이코랑 염문설도 있었다. 그러나 이시하라 유지로는 60년대 말에 큰 병으로 한 번 병원에 실려간 70년대 말부터 건강이 망가졌다, 그리고 80년대에 드문드문 방송을 하기도 했지만 항암치료때문에 성생활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마츠다 세이코와의 관계는 정신적인 교류를 제외하고는 정상적인 연애관계가 될 수가 없었다.[11]
이시하라 유지로의 화보집을 보면 하와이에서 이시하라 유지로 부부와 이시하라 군단, 마츠다 세이코가 어울려서 노는 장면이 제법 있다. 이시하라 유지로는 오랜 투병 생활을 하다가 1987년 7월 17일 간암으로 5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전 일본이 울었다.[12]
국민장으로 거행된 장례식 때 전국에서 많은 이들이 조문을 왔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약 3만 명이 찾았었다고 한다.여기 참조. 유해는 요코하마시에 있는 선종사찰 소지지(総持寺) 경내 묘지에 봉안됐다. 2년 뒤 일본 가요계의 여왕으로 군림하던 미소라 히바리쇼와 덴노 마저 사망하고, 이때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쇼와 시대를 대표하던 3명이 비슷한 시기에 연달아 사망하면서 한 시대가 완전히 저물었다는 인상을 갖게 했다고 한다.

3. 기타


심야식당에서 소개된 일화로, 이시하라 유지로가 촬영장 식당에서 햄 에그 위에 얹고 소스를 뿌리고 포크로 먹었는데, 그게 멋있어서 '유지로 라이스'라고 불리며 촬영장에서 유행이 되었다고 한다.
아빠는 요리사의 132권에 주인공 일미의 어머니인 카츠요씨가 학창시절 친구였던 세츠씨와 함께 열광했던 아이돌로 나온다. 유지로가 세상을 떠난 7월 17일에 내리는 비는 생전에 비를 몰고 다니던 그가 죽는 날까지 비를 몰고 다녔다고 해서 유지로 비로 불리며, 생전에 자양화(紫陽花)라는 요리를 좋아해서 기일(忌日)이 자양화기(紫陽花忌)로 불린다고 소개된다.
지금은 성우로 유명하지만 알고 보면 아역배우 출신인 '''이케다 슈이치'''도 이시하라와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1] 당대로서는 장신이었다. 심지어 형인 이시하라 신타로는 183cm.[2] 1933년 7월 23일생. 1960년에 결혼했으며 자녀는 없는 걸로 알려져 있다. 배우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키타하라 미에(北原 三枝)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한국계 일본인이라는 설이 있으나 명확한 증거는 없다.[3] 친형이 쓴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라 본인도 스텝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4] 태양의 계절은 사실 이시하라 유지로 본인의 청년시절 모습을 모델로 삼아 신타로가 쓴 작품이었다. 롤모델이 등장했으니 모두에게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듯.[5] 이것도 형의 작품을 영화화한 것이다.[6] 결혼 후 배우 생활을 은퇴하고 이시하라 마키코로 개명. 2019년 현재 이시하라 프로모션 대표이사 회장.[7] 다만 1910년 런던-파리 비행 레이스를 배경으로 다룬 65년 코미디 영화 <Those Magnificent Men in Their Flying Machines> (일본 파일럿 '야마모토' 역할, 이시하라 커리어 가운데 유일한 해외 출연작이다.)에 출연했을 때는 일본어 음성만 이시하라의 것으로 살려졌고, 영어 대사들은 더빙됐다. 흠이 없는 이튼풍 영어를 구사한다는 배역의 설정으로 인해 영어 대사는 배우 제임스 빌러스 (James Villiers, 1933~1998)의 목소리로 후시 녹음.[8] 하와이에 자기 별장을 뒀을 정도.[9] 그 덕분에 소주 브랜드인 쇼치쿠바이 광고도 고정으로 하게 된다. 사후에 포니 케넌에서는 이시하라 탄생 80주년을 기념하여 이시하라 출연 광고만 따로 모아 DVD를 발매했다. 타계 후에 쇼치쿠바이 광고는 그의 오랜 절친이자 서부경찰 시리즈에서 다이몬 형사 역을 맡았던 와타리 테츠야가 맡았다. 하지만 와타리 테츠야도 2020년 8월 10일, 폐렴으로 타계하였다. 타계 전에는 이시하라 유지로가 생전에 나온 광고 영상에 크로마키 합성 기법으로 쇼치쿠바이 광고에 출연했다.[10] 일본어 위키백과 이시하라 유지로 항목에 기재된 부상, 투병 기록을 보면 고등학생 시절부터 술, 담배로 인한 황달이 발생했을 정도라 적혀 있다. 심지어 고등학교 3학년 때 농구를 하다가 왼쪽 무릎을 크게 다친 전력도 있다.[11] 대신 이시하라는 마츠다에게 칸다 마사키를 소개해준다. 마츠다 세이코 문서 참고.[12] 형 신타로가 쓴 <남동생(弟)> 드라마 판 마지막화 제목이 일본이 울었던 날(日本中が泣いた日)이다. 당장 멀리갈 필요 없이 같은 드라마 1화 오프닝에서 실제 장례식 장면이 나오는데,추도사를 읽던 형도 슬픔에 북받혀 눈물을 흘렸고,리그베다 위키에 기재된 이시하라 유지로 편을 보면 사망 소식호외뉴스 속보로 중계되었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