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외

 

한자 : 號外[1]
일본어 : 号外
영어 : Newspaper ex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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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민군의 서울 점령 이후 사내 좌익 기자들이 만든 조선일보 1950년 6월 28일자 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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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26 사건 직후 배포된 조선일보 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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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9일 오후에 배포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에 관한 문화일보의 호외
1. 개요
2. 역사
3. 기타
4. 관련 문서


1. 개요


신문사가 중요한 뉴스속보하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펴내는 호수 이외에, 임시로 발행한 인쇄물. 보통 사회적으로 위급하거나 중대한 사건이 있을 때 그것을 알릴 목적으로 발행한다. 보통 거리에서 판매 또는 배포된다.
과거에는 기술의 부족으로 어떤 소식대중에게 바로 전달하는 것이 어려웠다. 따라서 긴급하거나 중요한 뉴스를 알리기 위해 신문사에서 석간, 조간 이외에 긴급하게 호외라고 불리는 간략한 신문을 제작해 거리에서 배포했다.
대개 조간의 경우 전날 오후 4시에 기본적인 판이 마감되고, 오전 3시에 최종쇄가 발행되고 5~6시경 각 가정이나 회사 등 구독처로 배달된다. 그리고 당일 있었던 각종 소식들은 오후 4시까지 조판되고 또 익일 3시에 최종쇄가 나오고... 의 반복이다. 물론 긴급한 사건이 터졌을 경우에는 오후 10시건 11시건 조판 하던 거 다 갈아엎고 새로 판을 짜는데, 이 경우 마감은 대개 아무리 연장해도 오전 1시 30분 정도. 일단 물리적으로 조판 및 검수를 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2]
따라서 신문을 통해 소식이 전파되려면 정규 조간 발행의 경우 빨라야 아침 5시, 석간의 경우 오후 5~6시나 되어야 독자가 사건 소식을 접할 수 있게 된다. 즉 아무리 짧아도 12시간의 텀이 생기는 것. 게다가 신문사들이 전부 조석간 동시발행을 하는 게 아니고 대개는 조간/석간 중 하나만 발행하기 때문에 사실상 24시간의 간극이 생긴다. TV와 라디오야 중간에 중간 중간에 속보를 내보내면 되지만 신문은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이 정보격차 상태를 최대한 메꿔주는 매체가 예전에는 호외였던 것이다. 작은 종이에 요점만 실은 기사를 실어서 최대한 빠르게 찍은 후 문자 그대로 거리에다 뿌려버리는 것이다. 또한 호외는 신문값을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푼돈 몇 전의 이문을 남기기보다는 자사의 기사를 보도록 유도함으로서 대중에 대한 미디어 영향력을 키우는 편이 신문사 입장에선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특히 SNS나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이 영향력이 훨씬 더 강해서, 일단 기선을 제압한 언론사는 향후 2~3일간은 아젠다를 이끌어갈 수 있었다.
호외라는 이름의 유래는 정규 발행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정규 마감을 거친 신문은 매 호마다 제호, 즉, 해당 호가 해당 신문의 몇번째 정기 발행물인지를 표기하는 것이 전통이며, 지금도 종이 신문들은 상단에 발행 날짜와 함께 제 XXXX호가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3] 특별 발행물인 호외는 제'''호'''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호외라는 이름이 붙었다. 영어로도 Extra라고 하며 특별 발행물이니 일맥상통. 여러 번 발행될 경우 1보, 2보, 3보 식으로 발행 순서에 따라 숫자가 붙으며, 이것은 인터넷 신문에서도 볼 수 있다.[4]
중대 사건을 보도하는 만큼 대문짝만한 크기로 볼드 처리한 헤드라인을 달고 발행되는 경우가 많으며, 미국 신문들은 눈이 아플 정도로 대문짝만하게 제목을 적는다고도 한다. 인터넷 뉴스가 보편화된 지금은 뭔 의미가 있나 싶지만, 종이 매체이기 때문에 대문짝만한 제목을 달고 인쇄하는 것은 매우 인상 깊은 보도 방법이다.
그래도 신문인 만큼 정보를 전달하기는 해야 하므로 제목을 제외하고는 글자를 빼곡히 박아넣는 경우가 많으며, 제목이 첫장을 모조리 점령할 정도로 큰 경우는 역사적으로도 매우 드문 편이다. 예외라고 하면 어느 미국 신문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사망을 알린 것 정도.
2000년을 전후해서 인터넷이 대중화됨에 따라 긴급하고 중요한 소식을 바로바로 알 수 있게 되었고, 특히 2010년대 이후로는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었기 때문에 아주 중대한 사건이 아닌 이상 발행할 필요가 없어졌다. 따라서 워낙 엄청난 사건이 있어야만 발행되는지라 일종의 기념판(쇄) 취급을 받고 있기도 하다.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에는 대부분 발행되었다. 본 문서 상단 사진의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 외에도 1986년 김일성 사망 소동, 6.29 민주화 선언 및 6공 개헌안 통과 때에도 호외가 발행되었고 특히 1994년 김일성이 진짜로 사망했을 때에는 각 중앙 유력 언론사들의 호외가 각 아파트 우편함에 전단지처럼 무작위로 꽂혀서 배포될 정도였다.[5]
근래(이명박 정부 이후) 나온 것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北 연평도 해안 포격 사건, 北 김정일 사망,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 2018년 남북 판문점 선언 발표 등이 있다.[6]
지방지도 발행하는데, 메르스 사태 당시 충북에서 처음 메르스가 발생했던 옥천군에서도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해 군정 소식지 호외를 발행했다.메르스 발생 지역 옥천군 '군정소식지' 호외 발행, 15/06/15, 경향신문

2. 역사


기원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미국에서 최초로 확인되는 것은 1704년 6월 30일 보스턴 뉴스 레터에서 보도한 해적의 처형에 대한 뉴스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중외신문에서 보도한 1868년 5월 우에노 창의대의 사변 뉴스가 최초이며, 한국에서는 1902년과 1905년에 발행된 적이 있으나 본격화된 것은 1920년 동아일보조선일보가 창간된 이후라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호외 [號外] (두산백과)

3. 기타


'신문의 대국'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한 일본의 경우에는 굉장히 자주 나온다. 일본의 신문사 역시 번화가에서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1~2면 짜리를 제공하는데 한국과는 달리 별로 중차대한 사건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사건이 터져도 발행한다는 점이 다른 점. 일례로 아사히 신문을 보면 2017년 3월 10일(금) 박근혜 파면 호외라든가 2017년 3월 17일(금) 원전 사고 국가책임 판결 호외 같은 중대한 것 외에도 2017년 3월 10일(금) 제89회 춘계 고시엔 32강 대진 결정 같은 것도 뿌리고 있는데, 주관사라는 점과 일본 사회에서 고시엔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중차대한 것이기는 하다. 참고로 일본에서 호외로 뿌리는 신문은 기본적으로 무료다.
이는 신문 매체가 확고하게 자리잡힌 일본의 매체상황과 연관이 깊다. 아무리 주요 TV방송사들이 신문사와 계열사 관계라지만 아직도 신문구독률이 높으며 TV와 인터넷보다는 좀더 품격있는 이미지 때문에 스마트폰 시대에 와서도 신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동일본 대지진, 아키히토 천황 사전 퇴위 등 중대한 사건은 기본이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치로 3천 안타가 터졌을 때에도 길가에서 뿌렸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에서만 발간하는 최종판 인쇄 이전의 가판 신문과 비슷한 역할이다.
다양한 창작물에서 신문팔이 소년이 뉴스보이 캡을 착용하고는 신문을 들고 "호외요, 호외!(Extra, extra!)"라고 외치는 것은 잘 알려진 클리셰.

4. 관련 문서



[1] 대만, 홍콩에서도 똑같은 단어를 쓴다.[2] 이는 전통적인 윤전기 인쇄의 경우이고,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 현대의 경우 보다 수월해지긴 했다.[3] 이런 발행 기록을 지령이라고도 한다. 첫 발행인 1호부터 차곡차곡 쌓아가게 되는데, 몇만 단위 넘어가는 건 한국에서는 1920년대 발행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정도이고 해방 후 발간한 신문들은 이보다 단위수가 좀 더 낮다. 즉 지령 = 그 신문의 역사 라고 볼 수 있다.[4] 영어로는 1st Extra, 2nd Extra, Final 같은 식이다.[5] 지금이야 남북대화를 하네마네 북한이 도발을 핵개발을 하네 어쩌네 하며 좀 신경이 닳은(?) 감이 있는데, 7080 시절 남북대치는 진짜로 전쟁을 상정하고 살았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즉각 전쟁을 대비하고 살던 시절이었고, 그 원인이던 김일성의 사망은 남한 사람들에게도 "시대가 전환한다"는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6] 그 밖에 통일교와 연관이 있는 세계일보에서 통일교 창시자 문선명이 사망하자 호외를 낸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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