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성
1. 개요
대한민국의 작가."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
꿈꾸는 다락방 中
2007년 《여자라면 힐러리처럼》이 40만 부 판매를 기록하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스타 작가이다. '인문학 전도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인문학 관련 자기개발서 작가 중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 판매 부수는 엄청나다. 2015년에는 인세가 50억을 넘었다고 한다.
2. 삶
1974년 서울특별시 출생. 어렸을 때 전북 전주로 이사하여 성인이 될 때까지 거주하였다. 본명은 고요셉이며, 이지성은 필명이다.
또 옛날 가족사진을 보면 집에 인문고전들이 가득하다고 나오는데, 정작 인문고전으로 천재가 되셨을 그의 부모님은 빚보증으로 20억원의 빚을 졌다고 한다....
2.1. 대학 및 군대 시절
1992년 고교 졸업, 재수를 통해 1993년 전주교육대학교에 입학했다.[3] 하지만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라 부친이 강력히 권유해서 간 것이어서, 대학 입학 후 교육 관련 공부보다는 글 쓰고 책 읽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에게 "중퇴해야겠다. 교사는 안 맞는 것 같다. 산에 들어가서 책 읽고 글을 쓰겠다."라고 했다가 빗자루로 얻어맞았다고 한다.
이 시기 '이지운(二志雲)'이라는 필명으로 학교 복사실에서 원고를 무더기로 복사한 뒤 출판사 20~30곳에 보냈지만, 글을 잘쓰는 작가가 아닌지라[4] 단 한 번도 채택되지 않았다. 교육 관련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고, 자주 결강했기 때문에 학점은 2.2/4.5 근처에 머물렀다.
1996년에는 2.2/4.5는 초등 임용고시 응시 자격이 없었다[5] . 이 때문에 전북대학교 법대 3학년에 학사편입학했다. 법학과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군 입대를 늦추기 위해서였다. 1997년 시집 2편을 냈지만 팔리지 않았다. 1998년 전북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군 입대를 하게 되었다.평판은 나빠졌다. “병x미xx사xx또xx 등 별 얘기 다 들었어요. 그때 교대 분위기가 공부 안 하는 학생은 사람 취급을 안 했어요. 그렇게 멸시받은 건 난생 처음인 듯해요.”
후배들도 피했다. "같이 있으면 인생 조지니까 옆에도 가지 말라."
육군에 입대한 뒤에도 충돌은 계속되었다. 당시 이등병은 책을 보거나 글을 쓸 수 없었다. 독서를 허용해 달라고 대대장에게 간청하자, '여기는 군대'라면서 거절했다. 그는 "허락 안하면 청와대에 터뜨리겠다"라고 했다. 다음 날 내무반장이 "이등병은 매주 독후감을 써서 보고하라"고 하달했다. 자대 배치 직후 그는 교회에 갔다. 내무반에서 유일했다. 유령 취급을 받았다. 아무도 말을 안 걸었다. 그는 교회에서 초코파이 2상자를 얻어다 내무반에 풀었다. 6개월간 반복했다. 사납던 내무반장이 점호 후 말을 걸었다. "막내가 큰일 했다." 그는 제대 전 9개월간 군종병으로 일했다.
IMF 직후의 명예퇴직을 메꾸기 위한 대량 신규 채용이라는 정책적 배려 덕에 임용고시 응시 자격이 생겼다. 병장 시절 군복을 입고 경기도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지원자 1,100명 중 903등이었다. 그는 2000년 8월 전역하고 다음 달 성남시 분당구의 서현초등학교로 발령났다.
2.2. 교사 시절
주말과 퇴근 후 저녁 시간을 이용해 자기계발서를 집필하는 데만 열중했다. 텔레비전을 집에서 치워 버렸다. 그의 말로는 첫 3년간 2,000권의 책을 읽고 150여 권을 필사했으며 국내외 유명 작가의 자서전과 인터뷰를 수집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당시 4억 원 정도의 빚을 지고 빈민가 옥탑방에 살았는데, 그 학교에 신규 발령을 받아 오는 여교사가 있으면 선배 여교사들이 끌고 가서 얘기했다. "총각 선생이 하나 있는데 빚더미에 올라 있으니 아예 말도 붙이지 말라." 나중에 다른 학교로 옮기면서 "그런 얘기 때문에 선생님을 멀리했다. 미안하다."라고 하는 교사도 있었다.교사 생활은 엉망이었다. 학생이 군대 졸병처럼 보였다. 월급날만 기다렸다. “그토록 싫다며 피했던 길인데 작가로 첫발도 못 떼고 원점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죠. 애들이랑 학부모에게 상처를 많이 줬어요. 악덕 교사였죠.”
분당 서현초등학교 재직 당시에는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에게 주 4일간 30분씩 고전을 읽혔다. 이런 시도를 3년간 했다. 플라톤의 《파이돈》, 장자의 《장자》, 손자의 《손자병법》 등을 읽혔다. 처음엔 애들이 이해나 하겠느냐는 학부모들의 볼멘소리도 나왔다. 이 같은 수업에 불만을 가진 학부모들이 찾아왔다. 학부모들은 다른 반 아이들처럼 그냥 문제집을 푸는 수업을 원했다. 이지성은 "아이들이 행복해하고 있으니 2달만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학부모들의 우려와는 달리, 1학기 시험 때 이지성의 반이 전 학년에서 1등을 했다. 그 후로 학부모들의 불만은 줄어들었다."교사 하면서 중산층 동료들에게 받은 멸시는 지금도 소름이 끼쳐요. 그때 그 눈빛들, 수군대는 소리들, 그 비참함. 노회한 아줌마 선생님들이 잘 대해주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제 욕을 하고. ‘쟤는 영원히 끝났다’는 교직사회의 멸시는 안 받아본 사람은 몰라요."
1997~1998년에 낸 시집, 2003~2006년에 낸 자기계발서 10여 권 중 상업적으로 성공한 게 단 하나도 없었다. 이 시기까지 총 80여 곳의 출판사에서 거절당했다. 동료 교사들은 '아무도 안 읽는 책만 쓰는 또라이'라고 손가락질했다고 한다. 2004년 12월 31일 밤 대학 동창이 취해서 전화를 걸었다. "너 너무 비참하다. 난 너를 존경하지만 13년 글을 써도 안 됐으면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겠니. 가슴 아프다. 정신 차려서 결혼도 하고 정상적으로 살면 좋겠다."라고 했다. 그는 "알았다"라며 끊었다."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독서에 자신감을 갖게 되더라고요. 3월 진단평가에서 꼴찌반이었는데 1년간 고전 읽기를 한 뒤 학년말 시험에선 1등반이 된 경우도 있어요."
그러다 2007년 《여자라면 힐러리처럼》이 40만 부 판매를 기록하면서 그 이전에 발표되었던 《꿈꾸는 다락방》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이후로 많은 인세를 받게 되는 소위 스타 작가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또, 전업 작가 생활을 시작하면서 교직도 그만두게 되었다.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대기업 간부들을 모아놓고 강의를 하면 강의료가 시간당 300~400만 원이었다고 한다.
2.3. 전업 작가 시절
계속해서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있다.
아내는 전(前) 당구선수 차유람으로, 13살 연하이다. 2014년 혼인 신고하고 2015년 결혼 발표를 했다. 이지성이 작가로 유명해진 뒤 차유람이 《리딩으로 리드하라》를 읽고 인문 고전 독서 모임에서 만나게 되었다. 둘의 첫 여행은 인도 델리의 빈민촌 학교였으며 가서 자원봉사를 했다고 한다. 특히 이지성이 《생각하는 인문학》을 쓰고 나서 첫 독자로 차유람을 선택했다고 한다. 둘 다 개신교 신자인 점도 공통점으로 작용했다.
2.4. 근황
알라딘평가1, 알라딘평가2, 알라딘평가3, 알라딘평가4
최근 평판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지금껏 평점 높은 책도 비판글이 늘었다.
이는 사회적인 현상으로 고찰해 볼 수 있다. 2006~2007년은 경제적 호황기이기도 하였고, 사회적 낙관론이 대중을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인문학 기반 자기계발서도 많이 팔리게 되었다. 하지만 2008 금융위기이후로는 대중적 낙관론은 급격히 붕괴되고, 그 자리를 비관론이 채웠다. 현실적인 책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제 구체적인 공부법, 업무방법에 대한 책을 읽고, 비관적인 사회현실에 대한 책을 원하는 사람들은 사회학 대중교양서를 읽는다. 어느 쪽이든 인문학 대중교양서가 낄 자리는 없다. 때문에 이지성 책도 서서히 사장될 수밖에 없다.
현재는 꿈꾸는 다락방, 일독, 이독과 같은 기존 저서들의 우려먹기를 반복 중이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다만, 한국 경제가 파탄날 것이라는 내용이나 한국이 미국 중심 국제 질서에서 퇴출되었다 등 자국혐오성 음모론 영상이 많아 주의를 요한다.
자신이 북한 해커부대의 감시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아래 비판 등에서 보듯이 착각 또는 과장된 내용일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요인도 아닌 일개 작가를 북한이 감시할 이유가 없다.
2.5. 북한 인권활동
다만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 정도를 가지고 북한 인권활동이라고 평가하는 건 좀 오바이다.먼 후일, 북한이 해방되고 정치범 수용소가 공개될 때 세계는, 역사는, 우리 아이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물을 것이다.
"당신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쳐 히틀러의 아우슈비츠보다 더 잔혹한 인권 말살이 자행된 북한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2019.12.13 페이스북 #
3. 팔린 이유
1. 작가가 자기 삶으로 R=VD를 증명했다.
4억의 빚이 있는 상황에서 자기계발서를 쓰기 시작해서 15년 만에 인세로 50억을 벌어들이며 자신의 주장을 실현했다.[7] 저자는 실제로 자기가 인문고전을 제대로 읽게 되었던 나이가 20대 중반쯤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 전에는 평범했다는 것이다.
이지성은 늘상 스티브 잡스가 되어라. 힐러리가 되어라. 등등 하랬지만, 정작 본인은 50억 정도의 부자 에 불과하다는 반론이 있다. 이는 자기계발서 작가들의 공통된 맹점으로, 자기계발서는 "늘 00가 되어라" 하지만 정작 그걸 이루는 자는 없다는 것이다.
2. 동기 부여
스스로를 비난하고 우울해지는 것보다는, 할 수 있다며 자신감에 가득차서 뭐라도 도전하는 게 좋음. 전자는 그냥 절망 속에 빠진 상태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이지만, 후자는 최소한 조금이라도 얻는다는 면에서 전자보다는 낫다.
3. 지적 착각
내가 비록 인문학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나도 인문학에 한걸음 들어갔다는 착각을 주기 때문에, 약간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이지성은 전문가가 아니다. 따라서 맹신하지 말 것. 특히 한국사의 경우에는 《단기고사》나 《규원사화》를 추천하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 또, 그의 책은 이 책에 대한 내용도 없이, 그냥 이런 책이 있어 정도라서(설명도 없이 그냥 나열한다) 굳이 권하지는 않는다. 차라리 권한다면, 구글 등에서 쳐서, 전공자들이 추천하는 책을 보는 것이 좋다. 구글 등에 정보가 널려 있다. 그리고 기존 교과서에서 단편적으로 다루어졌던 책을 한번 깊게 읽어보는 동기, 계기 정도를 제공해준다.
4. 당대 분위기
국가적 호황기였던 2000년대의 낙관적 분위기를 잘 탔으며, 당시 불었던 자기계발서 열풍과 함께 적정한 시기와 시대를 잘만났다.
5. 욕망충족
독자들은 이지성의 성공스토리에 대한 소비를 하는 것에 가깝다. 신화에 가까운 그의 성공스토리에 대리욕구를 충족하는 것.
4. 작품 목록
- 자기개발서
- 《18시간 몰입의 법칙》(2004)
- 《20대를 변화시키는 30일 플랜》(2006)
- (개정판) 《20대, 자기계발에 미쳐라》(2008)
- 《꿈꾸는 다락방》(2007)[8]
- 《여자라면 힐러리처럼》(2007)
- 《행복한 달인》(2007)
- (개정판) 《지금부터 행복해지는 일》(2012)
- 《꿈꾸는 다락방 2 실천편》(2008)[9]
- 《노 시크릿》(2008)
- 《스물일곱 이건희처럼》(2009)[10]
- 《꿈꾸는 다락방 스페셜 에디션》(2009)
- 《리딩으로 리드하라》(2010)[11]
-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2011, 정회일 공저)
- (개정판) 《일독日讀》(2018, 스토리베리 공저)
- 《고전혁명》(2012, 황광우 공저)
-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 2》(2012)
- (개정판) 《이독異讀》(2018, 스토리베리 공저)
- 《생각하는 인문학》(2015)
- 《하루관리》(2015, 황희철 공저)
- 《스무 살 클레오파트라처럼》(2017)
- 《나를 세우는 단단한 힘 문사철文史哲》(2017)
- 《에이트》(2019)
- 교육
- 《학원 과외 필요없는 6. 3. 1 학습법》(2003)
- 《솔로몬 학습법》(2004)
- 《성공하는 아이에게는 미래형 커리큘럼이 있다》(2005)
- (개정판) 《당신의 아이는 원래 천재다》(2011)
- 《왕의 자녀 학습법》(2007)
- 《피노키오 상담실 이야기》(2007)
- (개정판) 《빨간약》(2011)
- 《내 아이를 위한 인문학 교육법》(2016)
- 《내 아이를 위한 칼 비테 교육법》(2017)
- 에세이
- 《스무 살, 절대 지지 않기를》(2011)[12]
- 《인생아, 고맙다.》(2012)
- 《가장 낮은 데서 피는 꽃》(2012, 김종원 공저)
- 시집
- 《언제까지나 우리는 깊디깊은 강물로 흐르리라》(1997)
- 《그리움》(1998)
- 《울고 웃고 나 그대를 더 사랑하고》(2007)
- 《수호기사의 편지》(2008)
- 종교
- 어린이
- 《너는 네 생각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어》(2007)
- 《12살에 시작한 진짜 공부》(2008)
- 《큰 꿈을 이룬 100명의 꼴찌들》(2009)
- 《꿈을 이룬 99명의 꼴찌 이야기》(2010)
- (개정판) 《초식스가 된 승호》(2013)
- 《돼지키오와 괴짜 친구들》(2012)
- 기타
- 《부부의 집짓기》(2018, 차유람 공저)
5. 비판
6. 논란 및 사건사고
- 도갤 고소 사건: 도서 갤러리에서 이지성을 비판하자 이지성 본인이 고소하려던 사건. 이지성 책을 정당하게 비판한 자도 고소먹을 뻔했다.
- 김두식의 고백 인터뷰 논란
- 노시크릿 논란
- 뉴스펀딩이 영리목적으로 쓰이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심지어 돈을 받는 단체인 차이에듀는 영리단체다.
- 생각하는 인문학에서 지식소매상을 비판했다. 유시민을 저격한 게 아닌가 싶다.
- 짜깁기 논란이 있다.
- 정치성향이 홍준표와 같아서 홍준표가 쓰는 과격한 용어를 쓴 바 있으며, 요즘도 언론 인터뷰나 본인이 운영하는 유튜브에서 발언을 들어보면 굉장히 과격하고 우편향적이다.[13]
[1] 2015년생 딸 고한나, 2018년생 아들 고예일[2] 본명인 고요셉에서 볼 수 있다시피 대대로 개신교 집안이라고 한다. 양친, 형제들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꾸준히 출석하였고, 덕분에 군 복무 중 군종병으로 복무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가끔 성경 구절을 언급하거나 결혼식도 교회에서 올렸을 정도로 신앙심이 상당히 독실한 편. 여담으로 배우자인 차유람도 개신교 신자다.[3] 1974년생인데 재수 후 1993년에 교대에 입학했다는 걸 봐서는 빠른 74년생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인 74년생이 고교졸업 후 재수하지 않고 현역으로 대학에 진학할 경우 1993년에 입학하게 되기 때문.[4] 지금도 이지성은 글솜씨로 비판받는다.[5] 응시자격이 없던 것이 아니라 대학교내신을 포함한 성적으로 임용경쟁시험을 보기 때문에 합격을 하지 못 함[6] 본문에 언급된 추천사는 《20대를 변화시키는 30일 플랜》 에 실려 있다.[7]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아 대기업에 입사하고, 운이 좋아 해고당하지 않고 25년 동안 열심히 일해도 20억 정도밖에 벌 수 없다는 점을 비교해보자.[8] 2017년 《이지성의 꿈꾸는 다락방》 10주년 개정증보판. 초판에만 실렸던 VD 기법 심화편 등이 추가됐다.[9] 2018년 《이지성의 꿈꾸는 다락방 2》 개정판. 기존 2편과 스페셜 에디션을 재구성했다.[10] 2015년 개정판에는 이건희의 생각 시스템을 만든 도서목록, 삼성 가문 100년을 만든 인문학 독서법, 이건희 어록이 추가됐다.[11] 2016년 개정판에 추가된 인터뷰는 YES24 채널예스와 인터파크 북DB에서도 볼 수 있다.[12] 2016년 개정증보판은 절반 이상이 새로운 내용이다.[13] 당장 '현황' 문단에 있는 링크의 기사만 보더라도 수학을 소홀히 하는 주사파 정권 때문에 한국은 퇴보할 것이고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해야할거라는 과격 언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