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상형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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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象形文字
영어
Hieroglyph

'''𓈖𓄿𓈗𓅱𓇋𓎡𓇋𓏛𓏥, 𓊃𓇋𓅱𓏏𓈖𓏥𓂝𓂝𓆮𓅓𓃀𓅱𓌡𓏤'''

-

'''나무위키, 여러분이 가꾸어 나가는 지식의 나무.'''

1. 소개
2. 변화 과정
3. 신관문자와 민중문자
4. 문자의 종말
5. 기타


1. 소개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사용된 문자를 이르며, 상형문자로 분류된다. 기원전 3000년대 초반에 발생하여 기원전 2700년대에는 문장을 표현[1]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상형문자였으며, 그림문자[2] + 표의문자[3] + (자음만 있는) 표음문자로 이루어진다.
가장 이른 예시로 아비도스의 무덤에서 기원전 33세기에 기록된 상형문자가 발견되었다. 이전까지 이집트 상형문자는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의 영향 아래 만들어졌다는 설이 강했는데, 기원전 33세기의 이집트 상형문자가 동시기의 쐐기문자보다 형태가 더 발전된 문자체계였음이 밝혀져 오히려 쐐기문자가 이집트 문자보다 더 오래되었는지 여부조차 불분명해졌다.
문자체계가 갖추어진 후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상형문자로 기록된 가장 최근의 비문은 서력기원 394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거의 3500여 년 가까이 쓰였으니 가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오랫동안 쓰였던 문자'''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자는 고전 이집트어를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이 고전 이집트어의 후예가 중세까지 쓰던 콥트어이다. 현재는 아랍어로 대체되어 사어가 되었고, 이집트 아랍어에서 쓰이는 단어들을 제외하면 실생활에서는 당연히 쓰이지 않는다.[4] 다만 학자들과 학부생들을 중심으로 수요는 있는 편. 한편으로 이집트 상형문자가 표음성을 갖게 되고 유럽과 중동 각지로 전파되면서 그 지역의 고유 문자가 되었기에 '''거의 대부분의 표음문자는 이집트 상형문자를 먼 기원으로 둔다.''' 이집트 상형문자가 기원이 아닌 표음문자는 가나, 한글, 주음부호, 마야 문자 등 정말 몇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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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제1왕조의 파라오인 호르 아하의 이름이 적힌 도편. 이 시절에 이미 이집트 상형문자의 초창기 형태가 드러난다. 참고로 '''이 사람은 대략 기원전 31세기 인물이다.'''
흔히 '히에로글리프'라고도 하며, 이는 그리스어로 '신성한 글귀'라는 뜻의 'τὰ ἱερογλυφικὰ γράμματα'(타 히에로글리피카 그람마타)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이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자신들의 문자를 mdw nTr(메두 네체르 = 신성한 글귀)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하였으며, 이 때문에 히에로글리프를 '신성문자'로 번역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문자의 해독과 관련된 이야기는 로제타 석 문서 참고.

2. 변화 과정


사용된 기간이 매우 오래된 탓에 시대에 따른 변화 정도가 큰 편으로, 대체로 시대가 갈수록 자형이 점차 단순해지고, 글자수는 더 많아지는 양상을 띈다. 이 때문에 후기의 히에로글리프는 그림을 그대로 문자로 만든 상형문자보다는 기호화된 표의 문자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이며, 표음 문자로서의 기능 또한 가지고 있는 복잡한 체계를 가지게 된다. 순수 상형문자에서 시작한 한자의 변천과정과 유사하다. 그리고 표음자와 표의자를 상하좌우 빽빽이 겹쳐놓은 구조 역시 한자와 비슷할뿐더러, 파피루스에 갈겨쓴 신관문자를 보면 모양조차도 한자의 초서체처럼 생겼다.
가령 이집트어로 '가르치다'라는 뜻의 동사는 오리 모양의 글자와 발 모양의 글자, 이집트독수리 모양의 글자 그리고 매를 들고있는 남자의 그림으로 표기되는데, 여기서 오리 모양의 글자는 s, 발모양의 글자는 b, 이집트독수리 모양의 글자는 A[5]의 음가를 나타내는 발음기호이며, 맨끝에 매를 들고있는 남자의 모양이 바로 sbA의 뜻이 무엇인지 한정시켜주는 한정사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격언 중에 '''"학생의 귀는 등에 있다. 때려서 귀를 열어주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매를 든 남자는 바로 선생을 묘사한 것.
그런데 이집트 문자는 모음을 전혀 표기하지 않을뿐더러, 이집트어는 문법에 따라 모음이 바뀌는 굴절어이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원 발음을 온전히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따로 참조할 만한 단서가 없는 이상 학계의 발음 관행에 따라 읽는 경우가 일반적으로, 편의상 문자 '이집트독수리⟨A⟩ˈ와 '앞팔⟨a⟩ˈ, '갈대 하나⟨i⟩'는 /aː/로, '메추라기⟨w⟩'는 /uː/로, '갈대 한쌍⟨y⟩'은 /iː/로 읽고, 이외의 자음들 사이에는 /ɛ/를 붙여 읽는다. 예컨대 상술한 ⟨sbA⟩를 /sɛbaː/(세바)로 읽는 식. 당연히 당대에 실제로 사용되었을 발음과는 차이가 있다.[6] 실제 발음은 다른 주변국의 기록에 나오는 이집트 인명, 지명 등을 대조하여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아카드어 비문과 점토판은 숫자도 많은 편인 데다 그 언어부터가 신왕국 시기까지 국제어로 널리 쓰였고, 무엇보다 아카드어 표기에 사용된 쐐기문자의 표음자들은 음절문자라 모음까지 알 수 있었으므로 청동기시대 이집트어 재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그리스어콥트어 문헌도 큰 역할을 했다. 현대인들에게도 친숙한 세트(그리스:Σήθ, 콥트:Ⲥⲏⲧ), 토트(그리스:Θώθ, 콥트:Ⲑⲱⲟⲩⲧ) 등 이름이 바로 여기에 나오는 표기를 따른 것이다. 그 외에 파라오(Φαραώ)란 단어도 70인역 성경의 그리스어 표기에서 비롯된 발음이다.
초기의 상형문자는 상하 이집트를 통일한 나르메르 왕을 묘사한 나르메르 팔레트# 그리고 나르메르 이전의 왕이었던 전갈왕의 지팡이 머리 장식인 스콜피온 메이스헤드#가 있다.

3. 신관문자와 민중문자


이집트 상형문자는 다른 문자들과 마찬가지로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가령 기원전 24세기경부터 문자를 기록하던 서기들은 공식기록이외에 정부문서나 행정업무를 위한 기록을 위해 기존의 복잡한 도형들을 간소화한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을 신관문자(Hieratic), 또는 승용(僧用)문자라고 부른다. 신관문자는 시대에 따라 점차 더 추상화되는 양상을 띠는데 가령 중왕국 시대의 신관문자와 신왕국시대의 신관문자만 하더라도 전문가조차 파악이 어려울 정도로 흘려쓴 것이 보인다. 이후 식자층이 좀 더 광범위하게 퍼져가면서 극도로 단순화된 글자체가 나타났다. 이것을 '민중문자(Demotic)'라고 부르는데 이집트 상형문자의 최종진화형으로 여긴다. 유명한 로제타 석에 기록된 문자도 그리스 문자와, 오래전부터 내려온 정체, 그리고 민중문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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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관문자의 좋은 예시. 이집트 제18왕조 시절인 아멘호테프 1세 때(기원전 1514~1493년경) 글씨연습용 석판에 쓴 글귀로 중왕국시대의 문학작품인 <아메넴하트의 교훈>을 담았다. 본 텍스트는 제12왕조의 개창자 아메넴하트 1세가 아들 센우세레트 1세에게 써준 교훈서로, 쿠데타로 전왕을 죽이고 왕이 된 아메넴하트 1세의 사정을 반영하듯 '네 주변 부하들을 항상 철저하게 감시하라. 아무도 믿지 마라. 네 형제도, 알고지내는 친구들도, 친밀한 관계를 만들지 말아라.'고 쓰였다.

'''sAq tw r smdt r.f tmt xpr'''

'''tmmt rdi ib m-sA Hr.s'''

'''m tkn im.sn m waw.kwi'''

'''m mH ib.k m sn m rx xnms'''

'''m sxprw n.k aqw nn km i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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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로부터 너를 보호하여라 - 그것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들의 마음을 항상 공포심으로 가지는 사람들 누구나'''

'''그들에게 함부로 다가가지 말거라'''

'''너의 형제를 믿지 마라'''

'''동료를 만들지 마라, 아무 이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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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850년 무렵에 만들어진,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민중문자[7] 수학서이다.# 바구니 (반원)의 겉넓이를 다루었다.

'''tp n jr.t nb.t '''

'''mj Dd n=k nb.t m tp-r'''

'''r 4-1/2 m aD HA'''

'''dj=k rx=j, AH.t=s jr.xr=k'''

'''jr=k 1/9 n 9 Hr-ntt jr nb.t'''

'''gs pw n j[...] xpr.xr 1'''

'''jr.xr=k jr=k DA.t m 8'''

'''jr.xr=k 1/9 n 8'''

'''xpr.xr 2/3 1/6 1/18 jr.xr=k'''

'''jr=k DA.t n.t pA 8 r-sA pA 2/3 1/6 1/18 xpr-xr 7-1/9'''

'''jr.xr=k jr=k 7-1/9 sp 4-1/2'''

'''xpr.xr 32 mak AH.t=s pw'''

'''gmj=k n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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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구니를 계산하는 방법'''

'''그들이 너에게 지름'''

'''4+1/2의 높이를 가진'''

'''바구니의 표면적을 알려달라고 하면.'''

'''너는 1/9의 9를 계산할 것이다'''

'''바구니는 알을 반으로 자른 모양(반구)이기 때문이고 결과는 1이다'''

'''그러면 나머지인 8을 계산할 것이다'''

'''그러면 8의 1/9를 계산하고'''

'''결과는 2/3 + 1/6 + 1/18이다'''

'''그럼 너는 8에서 이들, 곧'''

'''2/3 + 1/6 + 1/18에서의 나머지를 구할 것이고 결과는 7+1/9다'''

'''이제 너는 7+1/9를 4+1/2로 곱할 것이고'''

'''결과는 32다. 이것이 표면적이고'''

'''이 답은 맞다'''[실제_답]


4. 문자의 종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들어서자 이집트인들은 빠르게 그리스 문화에 물들기 시작하여 그리스 문자를 바탕으로 한 콥트 문자를 사용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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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로 새겨진 이집트 상형문자 비문의 모습. 상형문자 자체가 쇠락하던 시기라 그런지 전성기에 비하면 글씨도 매우 조잡하고 상태도 별로 좋지 않다. 문구로는 이렇게 쓰였다.
>m-bꜣḥ Mꜣ-w-r sꜣ Ḥr m-ʿ=f Ist-mḍ-iḫm s* r'Ist1-md ḫm-nṯr
> -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치세로부터 110년(394년 8월 24일), 호루스의 아들 메룰 앞에서, 에스멧 아콤 (판독(칭호)불가) 손에 의해 (판독(계승)불가) 에스멧의 아들이자 이시스 여신의 두번째 가는 예언자, 영원할지어다. 위대한 신이자 아바톤의 군주 메룰[8]이 말하다.
그림에는 실려있지 않지만 아무래도 기록자가 상형문자를 제대로 모르는지 아래에는 민중문자 비문도 있는데, 민중문자로는

나는 에스멧 아콤이며, 이시스 여신의 기록의 (판독불가) 집의 서기이자, 이시스 여신의 둘째가는 예언자이자 어머니가 에스웨레인 에스멧 하네카테의 아들이다. 나는 이 만둘리스[9]

의 조각을 영원히 남기는데, 그는 나에게 언제나 자애로운 얼굴 (판독불가) 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오시리스의 탄신일 그의 (판독불가) 봉납축제에서, 110년

한편 이집트가 그리스 문화권에 들고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상형문자를 아는 이들의 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사실 그 이전부터 정통 글씨체를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신관들밖에 없었고, 민중문자는 로마 제국 통치기에는 콥트 문자에 밀려 거의 사라진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이교도를 탄압하느라 사원들을 폐쇄하자 상형문자를 아는 이집트인은 더더욱 줄어들었다. 결국 540년 아스완의 필레 섬에 있던 마지막 사원 이시스 신전이 폐쇄되면서 상형문자를 전수해줄 수 있는 사람이 사라졌다. 이후 불과 100년 후인데도 이슬람 제국이 이 땅을 정복했을 때에 이집트 상형문자는 깡그리 잊혀서 당대에 이미 악마의 주문이 새겨진 비밀의 문자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당시 사람들도 무조건 바보들만 있진 않았다. 몇몇 중세 이슬람 학자들도 이것이 파라오 시절 이집트의 문자라고 여기고 해독하려고 연구하기도 했다.[10] 그러나 당시 아직 로제타 석이 발견되기 전이라서 근대 서양 학자들과는 달리 중세 이슬람 학자들은 맨 땅에 그냥 헤딩하는 식으로 파고들다가 결국 실패했다. 대신 서양인들이 로제타 석을 발견하여 해독에 성공하기에 이른다. 상형문자 해독에 관한 내용은 로제타 석 참조.

5. 기타


고대 이집트어로 '안녕하세요!'를 Iwy em hotep(이위 엠 호텝)이라고 한다. 뜻은 '평화 속에서'인데, 이 가운데 htp(호텝)은 한 글자로 제단 위에 놓인 제물(빵)을 본땄다. 또한 고대 이집트어를 계승한 콥트어로는 인사를 ⲛⲟϥⲣⲓ(nofri)라고 하는데, 고대 이집트어의 nfr에서 온 단어이다. 이 단어도 한 글자로 표기하는데 '시스트럼'이라는 신을 위한 제사 때 흔들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 모양에서 가져왔다. 뜻은 '즐겁다', '좋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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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텝' 글자의 모습.
국내에서 가끔 이집트 관련 행사가 열리면 자기 이름의 이니셜을 상형문자로 그려주는 이벤트가 거의 포함된다.
2009년 10월에 유니코드에 등록되었으며, U+13000 ~ U+1342F 영역으로 무려 1072자. UTF-8로는 한 글자당 4바이트를 잡아먹는다.
음모론자들이나 호사가들은 상형문자 중 일부는 헬리콥터를 의미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관련 항목 참조.
오션월드에 가면 곳곳에서 이집트 상형문자를 볼 수 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여기 컨셉이 이집트라 그렇다.
여담으로 음경을 모티브로 한 문자가 있다. 유니코드 U+130B8인 𓂸[11] [12]
이집트어에도 야민정음이 있었다. 예시로 에스나 신전 벽면[13]에 새긴 악어 찬송가가 있다. 이집트에서 악어 모양 글자는 jt, xntj, Hnt, Ad로 읽혔는데, 이렇게 한 글자에 여러 가지 음가가 있다는 특징을 활용해서 악어 모양 글자로만 찬송가를 적은 것이다.
또, ~'안에'라는 뜻인 m-Xnw를 정석대로 쓰자면 𓅓𓄚𓈖𓏌𓉐라고 써야 하는데, 이집트인들은 이것을 𓏌𓈗라고 쓰기도 했다. 𓏌𓈗는 모양 그대로 읽으면 '항아리 밑에 있는 물'인데 이를 이집트어로 번역하면 mw-Xr-nw가 된다. 바로, mw-Xr-nw가 m-Xnw와 발음이 비슷함을 이용한 것이다.

[1] 2왕조 세트페리브센의 무덤의 유물[2] 예를 들어서 오리 그림은 그림 그대로 오리를 뜻한다.[3] 오리 그림 옆에 ㉧(태양)이 있으면 sA ra라고 읽고 '태양의 오리'가 아니라 '라의 아들' 즉, 파라오를 뜻한다.[4] 하지만 콥트어와 그리스어의 영향을 받았고, 문법도 시대에 따라 달라져서 표준아랍어와는 적지 않게 다르다.[5] 모음 /a/가 아니라 아랍어의 자음 '알리프' 같은 성문파열음 /ʔ/으로, 원래 구개수전동음 /ʀ/였던 음가가 민중 이집트어 시기인 기원전 9세기에 변형된 것이다. 한편 이 문자를 옮겨적을 때, 혼동을 막기 위해 A대신 ꜣ를 도입한 표기법을 쓰는 경우도 많다.[6] 가령 제 6왕조 왕의 이름 nTry-kA-ra(또는 nṯrj-kꜣ-rꜥ)는 편의상 '네체리카라'로 읽지만, 그가 살던 기원전 22세기에는 '누츠리-쿠르-리우/nucˈɾij kuʀ ˈɾiːʕuw/라고 발음했으리라 추정한다. 제 18왕조의 DHwty-ms(또는 ḏḥwtj-ms)은 관행대로라면 '제후티메스'가 되겠지만, 그가 살던 기원전 15세기에는 '타하우티-미사우/tʼaˈħawtij ˈmissaw/'라고 불렸던 듯하다.[7] 사실 민중문자는 아니고 후기 북부 히에라틱이다. 하지만 민중문자가 본래 북부 히에라틱으로 유래된 것을 따져보아서 이는 히에라틱보다는 데모틱의 특성을 따르기 때문에 예시로 들어보았다.[실제_답] 실제로는 $$\dfrac{1}{2} \cdot 4 \pi \left(\dfrac{1}{2} \left(4+\dfrac{1}{2} \right)\!\right)^2 \approx 31.8086256\cdots$$이지만, 당시 수준을 고려하면 꽤 근접한 답이다.[7] 다만 그리스 문자도 기원을 따지고 올라가면 이집트 문자에서 기원한다. 페니키아인들이 이집트 문자를 받아들여 페니키아 문자를 만들고 그리스인들이 페니키아 문자를 받아들여 그리스 문자를 만든 것이다. 또한 이집트 종교를 사멸시킨 기독교 또한 유대교에서 기원하고 유대교는 이집트 파라오 아크나톤의 아텐 신앙에서 유일신 사상을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8] 아래의 만둘리스와 동일한 신이다.[9] 호루스가 누비아식으로 변형된 태양신의 이름.[10] 정형화된 기호나 그림들이 일정하게 배열되어 늘어졌으며, 몇몇 똑같이 생긴 기호가 반복해서 등장하기까지 하면, 누구라도 이것은 아무 의미 없는 그림이나 낙서, 부적이 아니라 당대에 쓰인 문자라고 충분히 추리할 수 있다.[11] 발음은 /mt/이다.[12] 이 가느다란 실 같은 건 오줌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정액도 된다. 왜냐하면 이 문자는 '교미(하다)'란 뜻인 단어의 한정사로도 쓰이고, '소변(보다)'의 뜻인 단어의 한정사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가디너 사인리스트에서는 이를 "Phallus with liquid issuing from it", 즉 '체액을 방출하는 남근' 정도 뜻으로 오줌과 정액 둘 다로 해석될 수 있는 단어 liquid라고 하였다.[13] 맞은편에는 숫양 찬송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