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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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인'''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그리스-로마 시대 이집트인'''
파이윰 미라 초상화
전 이집트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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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이집트인'''
2대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
'''콥트 이집트인'''
콥트 정교회 117대 총대주교 쉬누다 3세
이집트의 배우 Mona Zaki
이집트어
<colcolor=#000000>Rmṯ (n) km.t
콥트어
ⲣⲉⲙⲛⲭⲏⲙⲓ(Remnkhēmi)
이집트 아랍어
مَصريين(Masˤreyyīn)
표준 아랍어
مِصريّون‎(miṣriyyūn)
그리스어
Αἰγύπτιοι
영어
Egyptians
독일어
Ägypter
러시아어
Египтяне
라틴어
Aegyptiorum
히브리어
העם מצרי
터키어
Mısırlılar
중국어
埃及人
일본어
エジプト人
에스페란토
Egiptoj
1. 개요
2. 정체성
3. 이집트인의 역사
3.1. 종교
4. 지역갈등
5. 문화
5.1. 복식
6. 논란
6.1. 현대 이집트인은 고대 이집트인의 후손이 맞는가?
6.2. 고대 이집트인은 흑인이었는가?
7. 오해 및 편견
7.1. 콥트교인들이 갈굼당하고 있는 현실은 이집트 무슬림의 본질적인 특징이다
7.2. 고대 이집트를 잘 알고 있다
8. 창작물에서의 이집트인
8.1. 이집트인, 혹은 이집트 출신의 캐릭터 일람
9. 나무 위키에 항목이 존재하는 이집트인 목록
10. 관련 문서


1. 개요


이집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을 지칭한다. 인구는 2016년 기준으로 9,500만 명 정도. 엄청나게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집단이지만 그와 동시에 최소 4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보기 드문 특성을 지닌 민족이기도 하다.

2. 정체성


각각 고대 이집트인의 후손으로의 정체성, 헬레니즘 시대의 중심지로서의 정체성, 콥트교도로의 정체성, 아랍인으로의 정체성인데 여기에 간혹 아프리카인, 지중해인으로의 정체성이라는 명분이 더 붙기도 한다. 현대 이집트인은 아랍인의 정체성이 강하다. 물론 아런 정체성이 완전히 상충되는것은 아닌지라 아랍인으로써의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고대 이집트인의 후손으로써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많으며 이들은 경제적으로 좀 후달리기는 하지만 어쨌든 자국의 장구한 역사와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헬레니즘적 정체성은 먼 과거엔 그리스인들과 동화 된 소수의 일부 지배층들이 가지고 있었다. 헬레니즘 시기에 지배층 중 당시 대다수 이집트인이 사용하던 이집트어를 할 줄 아는 것은 파라오 하나뿐이었고 그것도 마지막 통치자인 클레오파트라 하나일 정도였다. 대부분 헬레니즘 사상을 가진 도시에서 과거 해외 식민지였던 폴리스의 연장선과 같이 살아 이집트인과 격리되다시피 살던 지배층 그리스인과 피지배층 이집트인들은 이질적인 성질을 유지했고, 후에 로마제국 시기에는 소수의 칼케돈 정교도 청색당 그리스-로마인에 대항해서 대다수 이집트인들이 단성론 녹생당 콥트 민족주의[1]를 가지고 있었다. 이슬람 발흥 이전 동로마의 오리엔트(시리아-이집트) 속주들을 대변하는 녹색당과 중앙의 그리스인을 대표하는 청색당의 갈등은 매우 심각해서 국정을 좌우 할 수준이었고 황제가 안정적으로 권력기반을 다지려면 한 당파의 지지를 얻어야지 가능했다. 서기 642년, 이슬람 제국에게 알렉산드리아가 점령당했을 때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민들이 거리를 나와 환호하며 만세를 불렀다는''' 기록조차 있을 정도로 갈등이 심각했다.
이슬람의 점령 이후에는 헬레니즘 문화의 씨가 말라버렸다. 물론 이후로도 상당기간 동안 그리스어가 학문언어로 쓰이는 등 영향력 자체가 완전히 없어진것은 아니지만 색깔이 옅여진건 사실이다. 콥트 문화는 이슬람 정복 이후에도 반천년정도 대다수 문화의 자리를 차지했고 그 이후로도 질기게 살아남은 상황과 크게 대조를 이룬다.
현대 이집트를 구성하는 가장 큰 축은 뭐니뭐니해도 이슬람 문화라 콥트 정체성은 생략하는 경우도 많다. 반대로 콥트교도들은 무슬림으로의 정체성을 느끼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런 주장은 어차피 콥트교인들도 무슬림 사회에 몸담은지 오래라 영향을 안 받으려야 안 받을 수 없다보니 묵살되는 편이다. 정작 문화적 연속성이 강한 고대~콥트시대에 비해서 아랍 이슬람 시대는 이질감이 크다는 걸 생각하면 재미있는 부분이다.

3. 이집트인의 역사


길게 잡으면 약 8천년 전부터 나카다 문명, 바다리 문명같은 식으로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던 것으로 보이며 스콜피온 킹 나르메르에 의한 상하 이집트의 통합 뒤 힉소스인, 누비아인, 페르시아인, 베르베르인, 바다위인, 그리스인, 로마인, 터키인 등의 혈통이 섞여 현재의 이집트인을 형성하게 되었다. 자세한 것은 이집트/역사 항목을 볼 것.

3.1. 종교


이집트 신화를 바탕으로 한 전통 신앙이 있었으나 로마 제국테오도시우스 1세가 필레에 남아있던 마지막 신전을 폐쇄한 뒤 정상적인 형태로 남아있을 수 없어 사라진 종교가 되었다.[2] 하지만 이후 한동안 민간신앙 비슷한 형태로 남아있었다는 설은 있고 기독교화, 이슬람화를 연달아 겪은 지금에도 알게모르게 그 흔적이 남아있음을 알 수있다. 아랍인 중에서 성이 '아바후르(أباهور)', '바누브(بانوب)', '바유미(بيومى)' 같은 식이면 대부분 이집트인이라고 볼 수 있다. 각각 '호루스의', '아누비스의', '바다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고대 이집트의 신앙 자체는 사멸했지만 그 흔적은 아직도 남아있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대놓고 드러나는 정도는 아니고 이런 쪽으로 어느정도 공부를 해야 보이는 수준이지만.
현대 이집트인들은 90% 가량이 이슬람을 믿으나 기독교를 믿는 이집트인도 의외로 많다. 통계에 의하면 10% 정도라고 하는데 대부분이 오리엔트 정교회의 분파인 콥트 정교회 신자이다. 10%라 함은 전체 인구에서 절대로 큰 비율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이집트의 인구가 1억에 가깝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단순한 수로는 결코 적지 않은 수라는 것을 암시한다. 사실 이슬람 제국 초기 시절 아므르 이븐 알 아스가 이집트를 점령하고, 그동한 수세기 동안은 (적어도 피지배층 내에서는) 콥트교도들이 다수였지만 여러가지 불이익과 십자군 전쟁[3]으로 인해 13세기경 무슬림 인구에게 추월당해 17세기에는 그들이 사용한 콥트어는 전례어로만 남게 되는 수모를 겪었다.
물론 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콥트 정교회는 칼케돈 신경을 거부함으로써 가톨릭과 정교회로부터 단성론파라고 이단시되어 소외되었다. 신학적 이유 외에도 경제적 및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이들은 자신들이 합성론을 믿고 있다고 하지, 단성론자라고 하는 것은 부정한다. 동로마 본국에서 표면상으로 신조를 따르지 않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겼고 이집트의 콥트교도들 역시 이러한 시선을 불쾌하게 여겨서 독립할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게 되었서 아므르 이븐 알 아스가 이끄는 이슬람의 3천군사에게 사실상 자진하다시피 항복을 했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대로 이슬람 제국은 일종의 특별세금인 지즈야를 내면 피지배자에게도 종교의 자유를 줬기 때문이었으며 이슬람 발흥 당시만 하더라도 이슬람을 기독교의 이단 분파로 보아 호의적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이집트를 점령한 이후에는 이슬람의 관용이 크게 중요치 않게 되었다.''' 또한 제도적인 차별은 없다하더라도 사회적 천시와 냉대는 엄연히 존재하였기에 결국 지금의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4] 지금도 정국이 조금만 뒤숭숭해지면 얻어맞는 게 콥트교인들인데 이미 천년 넘게 핍박을 당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외부에서 마냥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이집트는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징병제를 실시하는 나라인데, 군복무 기간이 고졸 이하는 3년, 대졸 이상 혹은 현 대학생의 경우 1년, 콥트교도, 형제가 없는 집의 남자아이는 군복무가 면제되며 이중국적자도 마찬가지로 면제된다. 또한 30세가 넘으면 징집대상이 될 수 없다. 콥트교도들은 비무슬림 소수민족이라서 병역에서 배제한 것인데 사실 오히려 콥트교도들은 사회적 냉대를 피하기 위해 무슬림 행세를 하든가 아예 무슬림으로 등록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콥트교도라도 갈 사람은 가게 되는 셈이다. 하다못해 이게 정말로 별 의미가 없는게, '''이집트에서는 병역을 치르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안 할 정도'''인데다 사지 멀쩡한 남성이 군면제를 받았다고 하면 '나 콥트교인이요'라고 대놓고 만천하에 광고를 하는 꼴이라 취직에 심각한 애로사항이 꽃피게 되어서 사실상 자영업을 하는 수 밖에 없다. 결국 위에서 저런 조치를 취해도 받을 차별은 받는다는 것이다. 이집트는 1952년 혁명때부터 무함마드 무르시가 집권했던 기간(2012-2013)을 제외하면 군부가 정권을 좌지우지 하고 있기때문에 군부의 영향력이 강한 것. 콥트교인들도 군대에 당당히 간다.
물론 성공한 콥트교인들이 있고 개중에는 오라스콤처럼 재벌도 있기는 하지만 상당수 콥트교인들이 여전히 직간접적으로 남아있는 차별과 높은 스트레스를 감당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신이교주의의 한 종류인 '케메티즘'이 고대 이집트 종교를 복원한 것인데, 주로 유럽에서 발견되고[5] 알레이스터 크로울리 역시 이 사상에 심취해있었다고 한다. 몇몇 흑인 우월주의자들도 후술할 흑인 이집트설 때문에 신봉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 사람들이 고대부터 신앙을 간직해온 사람들일 리는 없고 현대에 들어서 갑자기 생겨난 세력이다.

4. 지역갈등


무지막지한 지역갈등도 문제이다. 고대시대부터 하이집트(카이로를 중심으로한 나일 델타지역) 사람들은 상이집트 사람들을 '촌놈'이라고 무시했는데, 현재도 상이집트 사람들은 '사이디(صعيدى)'라고 불리며 촌놈 취급을 받는다[6](서독인이 동독을 까는 유머를 만들던 것과 비슷한 맥락). 이들을 놀리는 유머도 있는데, 몇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한 사이디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친구가 물었다.
"무함마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거야?"
그러자 사이디가 무릎을 탁 치며 말하길…"아! 무함마드였지!!!"[7]
2. 한 사이디가 밤에 나와 밭을 갈고 있었다. 삽을 들고 땅을 내리치는데, 어디선가 "아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사이디는 어리둥절했지만,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또 한 삽 내리치는 순간 또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사이디는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했지만 애써 진정하고 작업을 계속했다. 그러자 또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드디어 무서워진 사이디는 서둘러 집에 돌아갔다.
집에 돌아가서 신발을 벗는 순간…아뿔싸! 사이디의 오른쪽 발가락 세개가 없어져있는 것이 아닌가!!! [8]
우습게도 상하이집트를 통합한 나르메르왕(혹은 메나왕)은 상이집트 출신이었는데 이는 하이집트가 권력의 중심이 계속 바뀌었던 반면 상이집트는 권력이 중심이 테베로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통일 이후 상이집트에 비해 발달된 하이집트의 문명에 데꿀멍(...).

5. 문화



5.1.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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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옷'이라고 하면 '''아직도''' 고대식으로 남자는 웃통을 벗고 통으로 된 치마와 바가지머리 가발에 여자는 속이 훤히 비쳐보이는 드레스[9]나 화려한 의상을 입고 생머리에 황금 액세서리를 하고 다니는 줄 아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뭐 이것도 고대 이집트인들의 전통 의상이긴 하니 틀린말은 아니지만 '''지금도 저런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적어도 이집트 내에는 그냥 없다고봐도 무방하다.''' 쉽게 말해서 외국인이 한국인들의 의복문화를 생각하는데 조선시대 복식이 아닌 삼국시대 복식(...)을 떠올리는 상황에 매치시켜보면 이해가 빨리 갈 것이다.
이렇게 매체들에서 등장하는 고대의 복장들은 정확하게 복원되었다고 보기는 힘든데, 현대 미디어에서 등장하는 이집트의 복식이 현대의 기준에서 상품화된 경향이 있으며, 원본인 벽화 자체가 매우 기호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여성의 복장으로, 이집트 벽화의 종교적인 특성 때문에 최대한 신체적인 특징을 드러내고 있으며, 벽화 자체가 기호적인 특징을 띄고 있기 때문에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는데[10] 이를 (상업적 어필, 서양인의 오리엔탈리즘적 관점 등의 배경을 두고) 무비판적으로 복원에 적용시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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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화된 이후의 이집트 전통 복식은 '갈라베야'이다. 현대 그리스인들이 입는 '푸스타넬라'가 고대 그리스의 키톤의 양식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데 비해 갈라베야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집트의 옷인지 전혀 상상하지 못할 법한 디자인이다.[11] 실제로도 토착 이집트 양식과는 관계가 없는 의복이고 베두인들의 '토브'라는 의복을 수용한 것이다.[12] 만주족치파오중국인들이 입는다고 한들 치파오가 한푸와 별 상관이 없는 것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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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이집트의 복식에 고대적인 요소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게 아쉬웠던 건지 유희왕의 묘지기 카테고리의 캐릭터들은 아랍 전통복식과 이집트 전통 복식을 합한 듯한 디자인의 옷을 그려내기도 했다.
물론 현대 이집트도 의복에 있어서 서양화되어있는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남성들의 경우에는 일하거나 멋있게 차려입을때 정장이나 티셔츠같은 서구복식으로 차려입는것이 보편적이고, 여성들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기해서 히잡을 입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머리카락 정도만 히잡으로 가리고, 옷은 전형적인 서양식 복식을 하고 다니는 경우가 빈번하다.

6. 논란



6.1. 현대 이집트인은 고대 이집트인의 후손이 맞는가?


해당 주장은 정치적, 종교적 입장마다 견해가 달라진다. 이집트 콥트교 보수파는 모세를 콥트교인으로 규정하며, 반면 콥트교 세속주의자들과 무슬림 세속주의자들 중에서는 파라오가 모세보다 우월하다는 입장을 가진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는 자신들이 고대 이집트인의 후예라는 정체성을 가진 경우이다. 다만 오늘날 무슬림 형제단이나 사우디 아라비아의 와하브파 선교 자금을 지원받는 알 누르당 같은 이슬람주의자들의 경우 이집트가 고대 이집트의 후예라는 점을 이슬람 근본주의적 관점에서 부정하는데, 고대 이집트 문화 유산조차 우상숭배라고 파괴하자는 자들이 과연 고대 이집트인의 후예라는 정체성을 가졌는지는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
하플로그룹 연구 결과 현대 이집트인은 고대 이집트인에 비해 더 많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과 많은 조상을 공유한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에 고대 이집트인은 아라비아, 북동아프리카, 소아시아, 발칸 등 근동(Near East) 지역 고대인과 더 가까웠다. 이집트로의 인구, 유전자 유입이 지난 1500년 사이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현대 이집트인은 고대 이집트인보다 8% 많은 조상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문화적으로 고대의 이집트와 헬리니즘화된 이집트, 기독교화된 이집트와 특히 이슬람화 된 후 이집트의 차이[13]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과연 현대 이집트인이 고대 이집트인의 후예가 맞을까?'하는 의문이 자주 제기되며 이집토마니아들도 이런 질문을 일반인들에게 자주 듣는다. 사실 기원전 332년, 이집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정복된 이래로 900여 년의 오랜 세월 동안 헬레니즘 왕조와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았고 이 시기를 전후하여 클레오파트라를 마지막으로 파라오가 사실상 사라지면서 이집트 고유의 신앙도 상류층들을 중심으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알렉산드리아에 정착한 페니키아인, 유대인, 그리스인들을 중심으로 기독교가 자리 잡게 되었고 이집트 상형문자도 그리스 문자로 대체되는 등 고유의 색채는 희미해져 갔다. 그 후 이집트를 정복한 무슬림 라쉬둔 왕조가 페르시아도 같이 정복하고 나서는 그리스와 로마의 영향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와 아랍의 영향도 같이 받게 되어 광범위한 문화혼합현상이 일어났고 언어도 점차적으로 콥트어에서 아랍어로 대체되어갔기에 자연히 고대 이집트와는 중세 이후의 이집트 간의 차이가 현격하게 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상술한 것처럼 하플로그룹 연구 결과에는 8%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하나, 실질적으로 2~5'''천년 전''' 이집트인과 오늘날의 이집트 아랍인 간의 차이는 클 수 밖에 없다. 오히려 우리는 현대 이집트인과 고대 이집트인의 차이보다 어떻게 해서 기원전 3천년 경 이집트 고왕국과 헬레니즘 시대 이집트가 어떻게 3천년 된 간격을 두고 공통된 이집트 문화와 이집트인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주목해야 할지도 모른다.
역사가 진행되며 외부혈통, 외부문화가 유입되고 섞이는건 만국공통의 역사이다. 이집트 고왕국 시대의 정체성이 심지어 보수적이고 이슬람화된 이집트 아랍인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은 이집트 문화의 역사적 영향력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6.2. 고대 이집트인은 흑인이었는가?


그래서 종종 흑인 우월주의자들이나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는 ''야 봐봐!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다지만 조상과 후손의 문화가 많이 다르니[14] 어쩌면 고대 이집트인은 이슬람 이후 이집트인들과는 전혀 다른 족속이었을지도 몰라?"라는 의미에서 '흑인 이집트설'이라는 것이 제기되고 아니나다를까 몇몇 흑인들, 특히 백인의 압제를 받던 신대륙의 흑인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15] 작가가 백인인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에서도 그냥 대놓고 흑인[16]으로 묘사했다. 물론 이집트에 흑인들의 유입이 없는것은 아니라서 지금 수단 아랍인들의 조상쯤 되는 누비아 인들을 용병으로 썼고 백년 정도 이긴 하지만 피예와 샤바코 등 쿠시 왕국 출신 흑인 파라오도 있었고, 소말리아나 에티오피아 등 동아프리카 일대와도 교역망이 깔렸기 때문에 흑인의 유입이 다수 있던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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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리비아인, 누비아인, 서남아시아인, 이집트인. '''즉, 이집트인들은 분명히 스스로를 흑인과 다른 피부색으로 구분지어 그려놓았다.'''
이외에 고대에 제작된 그림이나 부조, 조각 등에서 검은 피부와 넓적한 코처럼 흑인을 연상시키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흑인이 아니었나하는 설도 있긴 하지만 검은 피부는 어디까지나 예술적 표현의 하나였고[17] 대부분 남자는 검붉은 피부(밖에서 일을 하니까 살이 타므로), 여자는 누런 피부로 표현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또한 조각의 코는 원래 넓적했던 것이 아니다.
또다른 주장으로 고대 이집트인들이 스스로의 나라 이름을 검은 땅이라는 뜻의 '케메트'라고 불렀다는 것에 착안하여 '지금도 아프리카를 검은 대륙이라고 부르듯 고대 이집트인들도 흑인이어서 그런 이름을 붙인게 아니냐'는 설도 있는데 이 또한 신빙성이 떨어진다. 여기서 말하는 '검은 땅'은 주민이 흑인이어서 그런 이름을 붙인게 아니라 나일 강이 범람하고 나면 남는 시커먼 흙이 비옥하여 농사가 잘 되었기에 '검은 땅'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기 때문이다.
더 알아보고 싶은 위키니트는 이 링크의 의견도 참조할 것. 최소한 어느 한 인종'만'으로 구성되어 있진 않았을 것이라는 게 주 학계의 의견이다. 실제로 현재도 이집트 남부지역은 수단지역과의 교역이 잦았기에 이 지역 주민들의 피부색이 북부지역 주민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검은 편이기는 하다. 아무튼 현재 주류 학계에서는 백인인지 흑인인지 피부색과 관련된 주장을 무시하며 이를 구분하지 않고 사하라 인근 지역과 유전자풀이 일치하는 비율이 높다 하는 식으로 분석 중이다.
이러한 흑인 우월주의적 떡밥은 이미 제국주의 시절부터 흔해왔고 아직도 유튜브 등지에서 문명 시리즈, 미이라처럼 고대 이집트인이 백인으로 묘사되는 작품의 리뷰나 플레이영상이 업로드되기만 하면 아직도 몇몇 유저들이 '고대 이집트인들 흑인이었다고!! 너네들 현대 이집트인들은 파라오 후손도 아냐!!'라는 악플을 다는 것을 '''정말''' 많이 볼 수 있다. 한술 더 떠서 간혹 박물관같은 곳에서 이집트유물을 전시할때면 흑인들이 고대 이집트 문명은 흑인이 세운 문명이었으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문명권의 전시물과 가까이에 배치해달라는 식의 농성을 부리기도 할 정도.
흑인 이집트설이라는 것이 서구권에서는 꽤 매력적인 소재로 다가오는 건지 각종 서브컬처에서도 고대 이집트인 중 흑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지금보다 크다거나 아예 흑인들로만 구성되어있는 사례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예컨대, 전술한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는 아예 전부 흑인으로 나타나있고 이집트 왕자에 등장하는 히브리인 노예들은 전형적인 유대인, 아랍인스러운 셈족 백인상을 하고 있지만 이집트인들의 대부분은 인종을 가늠하기 힘든 외모를 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대놓고 흑인에 가깝게 그렸을 정도. 주인공에 반대하는 세력의 인물들을 흑인으로 묘사한 셈이지만 말그대로 애매한 외모라서 그런건지 고대 이집트 문명을 간지나게 묘사해서 대범하게 넘어간건지는 몰라도 이것과 관련해서 크게 문제가 된 사례는 없는 듯하다.
이 흑인판 환빠성 떡밥 때문에 리들리 스콧엑소더스: 신들과 왕들도 개봉 훨씬 이전부터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고대 이집트인들을 다루면서 백인 배우들을 기용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1992년에 발매된 마이클 잭슨의 곡 'Remember the time'도 고대 이집트 왕실이 배경인데, 여기서는 아예 파라오부터 시작해서 거의 다 흑인들로 캐스팅되어있다. 파라오로 에디 머피가 나온다.
아스테릭스같은 작품에서도 높은 확률로 흑인이 한두명 정도는 등장한다. 다만 비중있는 역할로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고 허드렛일을 하거나 시종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7. 오해 및 편견



7.1. 콥트교인들이 갈굼당하고 있는 현실은 이집트 무슬림의 본질적인 특징이다


비이슬람권의 이슬람혐오자들은 콥트교인의 현실을 인용하여 '''이슬람은 광신적이고 비인간적이다.'''라는 프로파간다를 퍼트리고 있는데 이는 겉만 보고 원인을 잘못 파악하는 것이다.
현재 이집트는 독재와 빈곤이 만성화되었고 이런 현실에 절망하고 고난하고 있기 때문에 강약약강으로 만만한 콥트교인을 갈구게 된 것이다. 이는 중세 유럽인들이 흑사병같은 혼란이 생겼을 때 당시 사회적 소수자였던 유대인을 갈군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게다가 현재 이집트 군사독재 정권은 콥트교인을 대상으로 적극적 우대조치를 하고 있는데 이는 서양의 대안우파의 반발처럼 사회적 다수자에 속하는 이집트 무슬림들에게 반발당하고 있다.
이집트가 지리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가장 가깝기 때문에 사우디인 이슬람주의자들이 홍해만 건너면 손쉽게 이집트 무슬림들에게 이슬람주의를 전파할 수 있고 이집트의 열악한 현실에 이슬람주의, 살라피즘이 쉽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집트 정부는 친미이고 부정부패가 심각하기 때문에 똑같이 친미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런 언행을 대놓고 막을 수가 없고 빈곤퇴치를 안하고 콥트교인을 대상으로 적극적 우대조치만을 하는 무능한 행정만을 시행하고 있다.
무슬림 형제단이라는 온건해 보이는 이슬람주의 정당에 반발하는 세속적인 이집트인들조차 콥트교인을 갈구고 있기 때문에 이는 종교 문제가 아닌 정치경제적 문제이다.

7.2. 고대 이집트를 잘 알고 있다


현대 이집트에서 당연히 의무 교육과정에서 자국의 역사를 가르치고 있고, 딱히 교육적인 면을 따지지 않더라도 고대 이집트에서 만들어낸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미라 등의 관광자원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고대 이집트가 이렇게 대단한 나라였구나라는 식의 지식을 가진 경우는 많다. 그렇다고 다 해박한것이 아니라는것이 이상해보일수도 있지만 한국인이라고 해서 한국사를 누구나 줄줄줄 외우는 수준은 아닌것과 일맥상통하다.

8. 창작물에서의 이집트인


이집트에서 만든 창작물을 제외하면, '''절대다수가 고대인 내지는 고대 문화에서 차용한 디자인으로 묘사된다.''' 워낙 고대 이집트라는 걸출한 고대문명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중세 이후의 이슬람 이집트인이 레귤러로 등장하는 경우는 정말 찾아보기 힘들며[18] 이집트 문화 자체가 생소한 편인지라 주인공인 경우는 드물며 동양권 배틀물이나 남성향, 혹은 소년 취향의 작품에서는 보통 중후반부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경향이 있으며 최강에 필적할 정도는 아니지만 흠좀무한 능력을 발휘하는 괴인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잦다. 서양권 만화에서도 종종 괴인 비슷한 설정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서양인들이 일본이라고 하면 Ninja들이 판치고 동양인들이 인도라고 하면 요가 파이어를 뿜고 공중부양을 하는 기인들의 나라를 연상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19] 고대 문명을 기반으로 한 마법사 이미지 외에는 클레오파트라처럼 세계사에 이름이 남은 미녀의 영향 때문인지, 로인클로스 차림에 건강미 넘치는 갈색 피부의 섹시한 이집트 출신 미소녀 캐릭터로 등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는 모계사회의 풍습이 많이 남아있어서 동시대의 국가들보다 좀 더 여성을 챙겨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깊이 생각하면 이들도 오리엔탈리즘의 피해자들 중 하나인 셈.
물론 처음부터 이집트가 배경이거나 이집트인이 주인공일 경우는 그런 거 없이 여타 작품에서도 흔히 등장할 법한 인물들로 등장하지만 문제는 미이라 등의 매체로 인해 '''이집트가 온갖 미스테리와 오컬트로 넘쳐나는 이계'''로 각인이 되어버린지라 이집트인이 주인공으로 발탁되는 경우 자체가 드물다는 것(...).
다만 이집트인이 주인공이고, 후반부 배경이 고대 이집트인 천운을 타고난 일본 만화가 서브컬처계에도 어느 정도 이집트인을 알리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별로 유행을 타지 못하고 이 작품의 팬들에게만 화자되는 수준으로 그쳤다.
아스테릭스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같은 서구권 매체에서는 유난히 '''코를 강조해서''' 그리는 경향이 있다. 유명한 파라오인 람세스 2세가 코가 유난히 큰 것을 의식한 건가? [20] 실제로 람세스 2세는 자신의 매부리코를 굉장히 자랑스러워 했다.
반면 큰코에 착안해서인지 이집트인의 검열삭제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미이라나 유희왕처럼 도굴꾼이 고대인의 심기를 건드리는 작품에서는 은근히 유럽인이나 아랍인을 관광태우는 역할로 자주 등장한다(...).

8.1. 이집트인, 혹은 이집트 출신의 캐릭터 일람


※ 해당국의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는 제외한다.
☆ 표시는 고대 이집트와 관련되었거나 혹은 고대 이집트 이미지가 반영된 캐릭터.

9. 나무 위키에 항목이 존재하는 이집트인 목록



10. 관련 문서


※ 밀라드 한나 저 <이집트를 떠받치고 있는 일곱 기둥>[30]을 참고할 것.

[1] 근현대의 내셔널리즘과 동일한 수준의 민족주의이다. 그리스어 배척, 반헬레니즘을 공식적으로 내걸었다.[2] 사실 이집트인이 자주적으로 통치했을 당시에도 신앙의 형태가 바뀌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이는 이집트 전통 신앙이 처음부터 통일된 형태를 띤것이 아니라 헬리오폴리스 신앙, 멤피스 신앙 하는 식으로 각 주(州)마다 다른 형태를 띠었으나 이집트가 점차 하나의 통일 국가로 발전되면서 내용이 첨삭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자우티 지방(지금의 아시우트, 그리스인들은 뤼코폴리스라고 불렀음)의 토속 신이었던 늑대사신 웨프와웨트가 마찬가지로 다른 지방의 늑대사신이자 역할마저 비슷했던 아누비스에게 합쳐진 일이라든가 초기에 최고신의 지위가 언제는 라였다가 아문으로 바뀌고 일신교 비슷한 형태로 바뀌었다가 다시 아문으로 돌아갔다가 라랑 합쳐졌다 하는 식으로. 더욱이 그리스와 로마에게 점령당할시 그들의 신앙과 결합되기도 해서 이 문제는 산으로 간다(...)[3] 오리엔트 정교회 신도들은 십자군을 반겼으나 가톨릭 십자군 눈에는 유대 이슬람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이단으로 판단되어 2등 시민으로 취급당하고 경우에 따라 학살당하는 경우도 드물지는 않았다. 오리엔트 정교회 신도들은 투르코폴레스로 참전한 경우마저 유럽 출신 가톨릭 기사들과 식사 때 겸상할 수 없다는 규칙이 있었으며, 이후 맘루크 왕조가 십자군 잔당들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같은 기독교인들이라는 이유로 상당수가 학살당하거나 노예로 끌려갔다. 이집트의 경우 십자군에게 이집트 전체가 정복되거나 한 적은 없었지만 맘루크 왕조는 십자군 시절 경험으로 이들에게 좀 더 냉정한 편이었다.[4] 사실 이집트에서 최초의 박해가 시작된 것은 괴짜 군주로 유명한 알 하킴(996~1021, 파티마 왕조 제6대 칼리프) 때의 일이다(1007년~1012년). 하지만 5년만에 박해는 취소되고 교회 재산을 돌려주었다니 그야말로 괴짜 군주의 변덕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재위는 홀연히 나귀를 타고 궁성을 나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서 끝났다. 수색을 해 보았지만 나귀와 피 묻은 옷(…) 외에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고. 이외에도 시대적 상황에 따라 콥트교인들에 대한 대우가 이랬다저랬다 하는 등 항상 대우가 나빴던 것만은 아니었다.[5] 서양 문화의 근원이다보니 서양인들도 종종 자신들과 매우 친숙한 역사 정도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로마가 미국의 역사는 아니지만 미국의 매체에서도 로마를 아무 거리낌없이 등장시키듯. 일례로 어린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이나 동화책에서도 고대 이집트를 주제로 삼은 에피소드가 꼭 하나씩은 나온다.[6] '사이디 아랍어'이라는 방언이 별도로 존재할 정도.[7] 즉, 자기 이름을 기억 못하고 있던거다(…).[8] 그러니까 자기가 발가락을 삽으로 찍고 비명을 지른거였다(…).[9] 이를 로인클로스라고 한다.[10] 일례로 벽화의 인물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가슴을 노출시키는 것.[11] 사실 이슬람교에서는 과도한 신체노출을 좋지 않게 여기니 특성상 노출이 많았던 고대 전통복식이 이슬람화 된 이후로 유지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12] 실제로 현대 이집트 복식보다는 엉뚱하게도 베르베르인의 타크시타라는 복식이 토착 이집트 영향을 받았다. [13] 그중에서도 특히 의복 문화라든가 미술 및 건축같은 분야[14] 그러나 위 문단에서 반박되었듯이 이는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고구려와 고려, 대한민국은 문화가 같은가?[15] 실제로 서구 흑인들에게는 매우 유명한 설이라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다룬 위인전에서도 토착 아프리카인인 '루오족'의 후예인 오바마가 어린 시절 급우들 앞에서 '''스스로를 파라오의 후예 정도로 떠벌리던 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물론 알고 보니 별 볼일 없는 소수민족임을 알고 데꿀멍. 이 다음 시점에서 오바마의 친아버지가 오바마의 급우들 앞에서 루오족에 대해서 한껏 어필하여 역으로 급우들을 데꿀멍 시킨다고 나온다.[16] 힉소스인이 이집트를 점령하는 장면에서 토착 이집트인들이 '참내 백인이 흑인을 지배하다니, 세상 오래살고 볼일이야!'라고 불평하는 컷이 그려져 있다. 뭐이건 먼나라 이웃나라처럼 입문용으로 읽는 책이기 때문에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진 말자. 하지만 입문용 책은 그 주제를 깊이 파고들 사람들이 아니라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더욱이 정설을 소개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 점에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참고로 힉소스는 셈어족 유목민족으로 원래 아리아인은 사실 아니며 되려 히브리인이나 아랍인, 아시리아인과 비슷하다. 이집트도 흑인은 남부 상이집트의 누비아인들 뿐이다.[17] 그러니까 흔히 인터넷 사이트에서 '먼 미래의 후손들은 현대에 만들어진 미소녀 피규어를 보고 고대 일본인들은 눈이 매우 크고 코는 작았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같은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 [18] 예외가 있다면 무함마드 압둘 정도? 근데 이 캐릭터도 대우가 썩 좋은 편은 아닌지라(...).[19] 다만 오버워치에서 아마리 모녀가 각각 비행과 사격이 이집트인의 소양이라고 하는 대사가 있는데, 이쪽은 어디까지나 한국어 더빙이 그런 것.[20]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세계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라는 격언에서 유래된 표현일지도 모른다. 정작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계 디아도코이의 후손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후손이지만.[21] 이집트 대표로 모나코 컵에 출전한 팀이지만 실은 모나코 국왕이 보낸 비밀경찰이다.[22] 이 두자매의 경우는 고대 이집트 왕조의 파라오의 후손이라는 설정이다.[23] 참고로 아버지는 캐나다 원주민이다.[24] 다비 형제, 펫숍은 각각 미국인, 매이므로 제외한다.[25] 하지만 이중국적인데, 각각 아랍 에미리트이집트다.[26] 이집트 국적인지는 불확실하고, 소속 학원인 아틀라스원의 소재지가 이집트이다.[27] 이집트 왕족 출신이었다는 설이 있다. 자세한 사항은 모세 항목이나 출애굽기 항목을 볼 것. 한국에서는 이윤기 덕택에 이 설이 유명해졌다.[28] 원래는 알바니아 출신의 터키인이었다.[29] 다만 그의 정체에 대하여 논란이 있다. 항목 참조.[30] 근데 비약이 좀 심한 책이다. 일례로 이슬람 이집트인이나 콥트 이집트인이나 같은 민족이기에 서로 차별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되도않는 헛소리가 적혀있다거나 콥트인들은 파라오의 후손이 아니라는 식의 개소리가 종종 나오는 편인데 차별이 없었다느니 운운하는 부분은 당장 콥트 정교회 항목만 봐도 반박할 수 있는 사실이며(시대에 따라 콥트인들에 대한 대우가 나쁘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고대 이집트 시절의 문화요소를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는 편인 콥트인들이 파라오의 후손이 아니라면 이슬람 이집트인들도 파라오 후손이 아니라는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콥트인들 중에는 아랍인으로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런 점은 지들이 뭘 몰라서 그런다는 식으로 완전히 무시하고 있으니 읽을 때 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