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다 아츠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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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이케다 다카마사와 함께 찍은 사진.
池田厚子, 1931년 3월 7일~ (현재 93세)
1. 개요
2. 성장
3. 결혼
4. 질병 및 활동
5. 과묵한 성품과 조용한 말년
6. 관련 문서


1. 개요


쇼와 덴노(히로히토)와 고준 황후(나가코)의 2남 5녀 중 4녀. 아키히토 덴노의 넷째 누나. 미혼 시절의 이름은 요리노미야 아츠코(順宮厚子) 내친왕.
결혼 후 딸만 줄줄이 4명을 낳은 나가코 황후는, 사람들로부터 '''온나바라(女腹)'''[1]라고 불리며 비난을 당했다. 심지어는 후궁 제도의 부활까지도 거론될 지경이었다고. 실제로 신하들은 화족 가문의 딸들 중에서 후궁 후보를 물색하고 있었다.
그러나 쇼와 덴노가 이를 거부했고, 2년 후인 1933년 장남 츠구노미야 아키히토 친왕이 태어나고 4년 후인 1935년 차남 히타치노미야 마사히토 친왕이 태어나면서, 후궁 제도 부활론은 잠잠해졌다.

2.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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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 아키히토 황태자, 여동생 스가노미야 타카코 공주와 함께.
일본 황실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친부모 대신 시종들에 의해 양육되는 것이 전통이었다.[2] 아츠코 공주도 1936년부터 부모와 떨어져, 구레타케(呉竹) 기숙사에서 첫째 언니 데루노미야 시게코 공주, 셋째 언니 다카노미야 가즈코 공주와 함께 자랐다.[3] 1939년 태어난 막내 스가노미야 타카코 공주도 구레타케 기숙사에 합류했다.
여자 가쿠슈인에 입학하였는데, 아츠코 공주가 재학 중이던 시절에 학제가 바뀌어 오늘날의 가쿠슈인 여자 중등과와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가 되었다.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를 졸업한 후에는 가쿠슈인 여자단기대학[4] 문과에 입학, 2학년 때 가정생활과로 전과하여 졸업했다.

3. 결혼


1951년 시코쿠를 방문하였다가 오카야마에서 '''이케다 다카마사(池田隆政)'''를 만나, 선을 보고 약혼했다. 당시 아츠코 공주의 할머니 사다코 태후가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쇼와 덴노궁내청 장관에게 명하여 약혼을 정식으로 발표하도록 했다. 그리고 1952년 10월 10일, 아츠코 공주는 다카마사와 결혼하여 황족의 신분을 이탈했다.
화족 가문의 아들이지만[5], 공주의 신랑감이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오카야마의 농장주'''라는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다카마사의 농장은 1953년 이케다 산업 동ㆍ식물원을 거쳐 1960년에는 주식회사 이케다 동물원이 되었고, 다카마사가 원장으로 취임했다.
한편 다카마사는 아츠코의 작은올케인 히타치노미야 하나코 비와 육촌 친척이기도 하다.

4. 질병 및 활동


1965년 무렵, 이케다 아츠코는 '''패혈증'''으로 오카야마대학 의학부 부속병원에 '''장기 입원'''했다. 이미 차녀 히사노미야 사치코 공주(생후 6개월)와 장녀 히가시쿠니 시게코(만 35살)의 죽음으로 큰 충격과 슬픔을 겪은 히로히토 덴노와 나가코 황후 내외는, 아츠코마저 앞세울까 크게 걱정하여 도쿄에서 오카야마까지의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자주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아츠코는 병에서 회복하였지만, '''자녀는 끝내 낳지 못했다.'''
병에서 회복한 아츠코는 일본 적십자 오카야마 지부 유공회 명예회장 등을 맡기도 하였고, 1988년부터는 셋째 언니 다카쓰카사 가즈코의 뒤를 이어 '''이세신궁신관'''을 맡았다. 아츠코가 점점 늙고 쇠약해짐에 따라, 2012년부터는 '''조카 구로다 사야코가 보조 신관'''이 되어 고모를 도왔다.

5. 과묵한 성품과 조용한 말년


활달한 성격과 화려한 언동으로 유명한 막내 여동생 시마즈 타카코와는 대조적으로, 아츠코는 '''수수하며 남의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한데다가,''' 다른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는 한 먼저 말하지 않는 등의 '''과묵'''하고 별난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2006년 9월 6일, 조카며느리 키코 비히사히토 친왕을 낳자, 아츠코는 남편 다카마사와 함께 '''"무사히 출산했다니 기쁘고 마음이 놓입니다. 축하하며 아기가 건강히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라며 기쁨과 축하를 표현하였다.
2012년에는 다카마사와 사별하여 혼자가 되었다.
2020년 기준으로 아키히토 덴노의 여자 형제들 중 시마즈 타카코와 더불어 유이하게 생존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렇지만 노령으로 많이 쇠약해진 탓인지 2017년 6월부터는 이세신궁 신관직을 퇴임하였고, 보조 신관이던 조카 구로다 사야코가 새 신관으로 취임했다.

6. 관련 문서



[1] 딸만 낳는 여자[2] 이 오랜 전통을 깬 것은, 1959년 아키히토 황태자에게 시집온 쇼다 미치코였다. 미치코 황태자비는 2남 1녀 모두를 자신의 곁에 두고 키웠고, 이때부터 일본 황실에서도 아이들을 친부모의 곁에서 키우기 시작했다.[3] 둘째 언니 히사노미야 사치코 공주는 생후 6개월 때 병으로 죽었다.[4] 오늘날의 가쿠슈인 여자대학[5] 다카마사의 아버지 이케다 노부마사(池田宣政)는 1947년의 신적강하 이전까지 후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