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비

 


정식 칭호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비 키코
(秋篠宮文仁親王妃紀子)[1]
생년월일
1966년 9월 11일(58세)
출생지
일본 시즈오카현
아버지
카와시마 타츠히코(川嶋 辰彦)
어머니
카와시마 카즈요(川嶋 和代)
형제
남동생 카와시마 슈(川嶋 舟)1973년생
시아버지
아키히토 상황
시어머니
미치코 상황후
시아주버니
나루히토 덴노
손윗동서
마사코 황후
남편
후미히토 친왕황사(皇嗣)
시누이
구로다 사야코(前 노리노미야 사야코/紀宮清子)
자녀
첫째(장녀) 마코 공주
둘째(차녀) 카코 공주
셋째(장남) 히사히토 친왕
시조카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
오시루시(お印)[2]
부채붓꽃
학력
가쿠슈인 초등과[3]
가쿠슈인 여자 중등과[4]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
가쿠슈인 대학 문학부 심리학과(학사)
가쿠슈인 대학 대학원 심리학과(석사)
국립오차노미즈여자대학 대학원(박사)
[image]
1. 개요
3.1. 자녀들
5. 친정 문제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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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비 키코 (秋篠宮文仁親王妃紀子)
1966년 9월 11일~
일본 상황 아키히토의 작은아들인 후미히토 친왕의 아내(친왕비). 아키히토미치코 상황후의 작은며느리이며, 마코 공주카코 공주, 히사히토친왕의 어머니이다.

2. 키코 비/결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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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쿠슈인 여자 고등과 시절의 모습.
학자 집안의 딸로 태어났으며, 미국유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귀국자녀이다. 귀국 후에는 가쿠슈인편입학했다. 학창 시절에는 밝고 명랑한 성격에, 부지런한 노력파로 성적도 우수했으며, 청순하고 예쁜 외모로 남학생들에게 인기도 많았다고 한다.
남편 후미히토 친왕과는 가쿠슈인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로 만나 교제하다가 1989년 약혼, 1990년 결혼했다.

3. 키코 비/결혼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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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6월 29일, 시집가는 날 아침의 키코 (당시 만 23세).
시어머니 미치코 상황후나 형님 마사코 황후와는 다르게, 스스로 원하여 일본 황실로 시집왔다고 한다. 황실에 잘 적응하여 살면서 공무도 열심히 하고, 황실 가족들에게도 사근사근하고 상냥하게 잘 하고, 시집온 지 얼마 안 되어 금방 두 공주를 낳았으며, 특히 '''41년 동안 후계자(남성)가 없던 황실에서 아들 히사히토(2006.09.06.출생)를 낳아''' 황실과 국민들로부터 환호를 받았으며 황실에서의 입지를 굳혔다.
5월에 시아주버니인 나루히토 황태자가 황위에 오르며 히사히토는 황위계승 서열 2위가 되었다.
그러나 갑질 논란으로 일본 여론이 점점 안 좋아지면서 남편아들의 승계가 위험해지게 되었고 마사코 황후의 병 회복을 방해했다는 말까지 있어서 점점 일본 국민들의 키코 비의 이미지가 막장으로 가는데다 그 편들어주던 궁내청도 키코 비의 시종이 되는 것을 꺼리는 등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이 더 커짐에 따라 국민 밉상이 되었다.

3.1. 자녀들



4. 키코 비/논란




5. 친정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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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아버지와 함께.
키코 비의 아버지 가와시마 타츠히코 교수는, 일본에서 괴짜로 유명하다고 한다. 외국 유학을 오래 한 덕에 성격이 꼿꼿하고 괄괄하다고. 위에 나와 있다시피 딸의 결혼 문제로 황궁에서 난리를 친 적도 있고, 사위 후미히토 친왕의 망나니 기질(…) 때문에 아키히토 덴노에게 직접 찾아가 담판지은 적도 있다고. 상대가 덴노인 만큼 감히 화내진 못하고 완곡한 어조로 종용을 했다고는 하지만, 일단 군주에게 담판지으러 찾아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어머니 가와시마 카즈요는 이 황실로 시집가길 원해서, 황실 예법 등을 가르쳤다고 한다.
남동생 가와시마 슈는 '''아내의 간통으로 인해 이혼'''했다고 한다. 슈는 2006년 4월, 타시로 마사미(田代麻紗美)라는 여성과 결혼했다. 이 결혼은 속도위반이라는 말도 있다고. 마사미는 소마 나카무라(相馬中村) 신사신관인 타시로 세이신(田代誠信)의 장녀이며 보조 신관이었는데, 수의사인 슈는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의 한 목장에서 일하다가 마사미를 만났다고 한다.
그러나 마사미는 도호쿠 대지진 구호활동에서 알게 된 한 남성과 부적절한 관계가 되었고, 5살짜리 딸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방임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결국 슈와 마사미는 이혼하고, 딸은 슈가 키우게 되었다고.
후쿠시마현 소마시는 지방의 좁은 지역사회이며, 소마 나카무라 신사는 역사와 전통이 오래 된 신사. 게다가 마사미는 퍽 화려한 외모의 여성이라는 듯[5]하다. 때문에 마사미의 행동은 단번에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고, 지역 주민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아 마사미는 신사의 제사에 일절 참가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2019년 보도에 의하면 가와시마 슈는 2017년부터 NPO 회장으로 있으면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복구 관련 업무를 수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누나의 이름을 팔아서 활동하다가 돈 문제로 결국 사임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2019년 5월 말 한 보도에 의하면 아버지 가와시마 타츠히코 교수와 친분이 있는 일본 최초의 프렌차이즈 파칭코 회사를 세운 미츠이 사장이 함께 한국에 비밀리에 방문했다는 것에 궁내청은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미츠이 사장은 조총련 본부 매각에 관여한 의혹도 있는데다 본인이 부인하긴 했지만 민단 니이가타 지부에서 직원과 싸운 적도 있으며, 과거 도쿄 지방 검찰청 특수부로부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을 당하는[6] 등 문제가 많은 사람이기 때문.
이러한 보도가 나가자마자 가뜩이나 키코 비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가 더 안 좋아지고 있다. 코무로 케이마코 공주결혼 문제와 맞물려서 키코 비의 친정 가족들이 황실을 팔아 자신의 사적 이득을 취하고 있는 것[7]으로 보여 일본 국민들의 키코 비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는 더 확대될 전망이며 특히 가장 최근에 알려진 키코 비의 부친 관련 보도에 대해서 그동안 후미히토 일가의 편을 들어주는 극우들의 역린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 관련 부분을 확실하게 건든 것이기에 향후 이들의 보조를 받는 게 더더욱 어려워졌다.[8]

6. 관련 문서


[1] 더 줄여서 아키시노노미야 키코(秋篠宮紀子) 비 혹은 후미히토 친왕비 키코(文仁親王妃紀子)이다. 성씨처럼 쓰이는 궁호 '아키시노노미야'보다 '후미히토 친왕비 키코'가 조금 더 공식적이다. 한국에서는 비공식적으로 '키코 왕자비' 혹은 '키코 왕자빈'이라고도 한다.[2] 일본 황족에게 주어지는 개인 표식. 주로 식물이며, 사용하는 물건 등에 붙는다.[3] 공립초등학교에 다니다가 가쿠슈인 초등과에 편입학했다. 그러나 졸업하지는 못하고, 중간에 가족과 오스트리아로 떠났다.[4] 오스트리아에서 귀국하여 중간에 편입학.[5] 얼굴이 나온 2012년 신문기사(링크)[6] 보통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로부터의 압수수색은 유럽 등에서 인권 탄압 등이라고 불릴 정도로 당사자의 장기간 구속을 위한 사전작업임을 감안하면, 그는 압수수색 이후에도 구속되지는 않았기에 당시에도 이에 대해서 여러가지 말이 있었다고 한다.[7] 혹자는 이를 두고 "키코 비도 일본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는 코무로 케이 일가와 하등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8] 사실 일부 극우들 사이에서는 덴노에게 결혼 담판한 것부터 마음에 안 들어하는 여론이 제법 되었으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이러한 사정을 알면서도 키코 비의 편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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