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즈 타카코

 


島津貴子, 1939년 3월 2일~ (85세)
1. 개요
2. 어린 시절
3. 결혼
4. 명랑하고 활동적인 성격
5. 자녀


1. 개요


쇼와 덴노(히로히토)와 고준 황후(나가코)의 2남 5녀 중 막내. 아키히토 덴노의 여동생. 결혼 전의 이름은 스가노미야 타카코(淸宮貴子) 내친왕.[1] 오시루시(お印)[2]이었다.
'스타'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데, 칭호#s-3[3]인 '스가노미야'와 이름인 '타카코'에서 첫 글자를 따와서 지은 것이라고.
쇼와 덴노고준 황후의 딸들 중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삶을 살아간 인물이다. 타카코의 언니들은 일찍 죽거나, 남편이 바람을 피우거나, 과부가 되거나, 건강이 나쁘거나, 자녀를 낳지 못하는 등등 순탄치 못한 삶을 살았다.

2. 어린 시절


일본 황실의 전통에 따라, 부모와 떨어져 언니들과 함께 구레타케(吳竹) 기숙사에서 신하들의 손에 양육되었다. 어머니 고준 황후가 이미 두 아들 아키히토마사히토를 낳은 후라 마음이 비교적 편안할 때[4]였고, 바로 위의 언니인 요리노미야 아츠코 공주보다도 8살이나 어려서 귀여움을 많이 받았는지, 매우 발랄하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자라났다고 한다. 기록된 사진들을 봐도 매우 밝은 성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느 일본 황족들과 마찬가지로 가쿠슈인에서 공부했다.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를 졸업한 후 가쿠슈인 대학 영문과에 진학했으나, 결혼으로 인해 중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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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의 히나마츠리 때, 어머니 고준 황후의 품에 안겨 있는 타카코 공주. 오른쪽은 첫째 언니 데루노미야 시게코 공주, 왼쪽은 셋째 언니 다카노미야 가즈코 공주이다. 공주들의 히나마츠리답게, 뒤쪽에 마련된 히나인형 제단의 규모와 크기가 상당하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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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쿠슈인 초등과 1학년 시절, 셋째 언니 다카노미야 가즈코 공주, 넷째 언니 요리노미야 아츠코 공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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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황태자였던 큰오빠 아키히토 덴노와 함께.

3. 결혼


1960년 초, 일본에는 겹경사가 일어났다. 2월 23일에 나루히토가 태어나더니, 그 여운이 채 가기도 전인 3월 10일에는 타카코 공주가 시집을 가게 된 것이었다. 신랑은 5년 연상의 시마즈 히사나가(島津久永)로, 타카코 공주는 결혼 후 황적에서 이탈하고 평민 신분이 되었다. 히사나가는 당시 일본수출입은행 직원이었으며, 타카코 공주의 큰오빠 아키히토 황태자의 가쿠슈인 동창이며, 어머니 고준 황후의 외사촌 동생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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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 발표 기자회견 당시 타카코 공주가 보여주었던 밝은 모습은, 새로운 시대를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또한 '''"제가 고른 신랑을 좀 보세요!!(私の選んだ人を見て下さって)'''"라는 타카코 공주의 발언도 화제가 되었다. 물론 타카코 공주와 히사나가의 결혼은 일본 황실궁내청에서 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점점 중매결혼에서 연애결혼으로 풍속이 바뀌어 가고 있던 당시 일본의 풍속을 반영한 발언이라고. 이 발언은 당시 유행어가 되었으며, 또한 이 발언을 계기로 연애결혼이 늘었다고도 한다.
결혼 직후, 도쿄도 세타가야구에 마련된 신혼집 근처에는 한동안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1963년 10월 26일에는 시마즈 타카코를 유괴하여 몸값 5천만 엔을 요구하려던 남자가 체포되는 납치 미수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범인은 같은 해 11월 21일 체포되었다. 셋째 언니 다카쓰카사 가즈코 또한 강도를 당한 적이 있었다. 카즈코와 타카코의 사고로 인해, 이후로는 시집가서 평민이 된 공주들도 경찰의 경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4. 명랑하고 활동적인 성격


인테리어 코디네이터 자격증을 취득하여, 1969년에는 프린스 호텔 내의 쇼핑몰인 피사(ピサ)에 근무하기도 하였다. 황족 출신으로서 민간 기업에 취업한 최초의 사례라 하여 화제가 되었다. 그 후로 타카코는 프린스 호텔 명예임원까지도 맡았다.
1970 오사카 엑스포에서는 개회식과 폐회식의 사회를 맡았다. 2005년 조카 노리노미야 사야코 공주가 평민 구로다 요시키(黑田慶樹)에게 시집갈 때도[7] 건재했던 타카코는, 각종 TV 특집 방송이며 매체에 게스트 등으로 활발하게 출연하며 입담을 과시하기도 했다.
타카코의 이러한 화려하며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은, 특히 바로 위의 언니 이케다 아츠코와 대비되는 면모이다. 아츠코는 타카코와 대조적으로 남의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하고, 수수하며, 다른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는 한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등 조용한 성격이라고 한다.

5. 자녀


1962년 4월 5일, 시마즈 요시히사(島津禎久, 61세)라는 아들을 낳았다. 요시히사는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이탈리아 등에서 공부한 사진작가이며, 1994년 캐나다 퀘벡에서 캐나다 여성과 결혼했다.# 가와시마 타츠히코(川嶋辰彦)[8]와 함께 작업을 하기도 했다.
[1] 천황의 딸, 손녀까지 내친왕, 증손녀부터는 여왕이라 한다. 단 1947년 이전에는 4대손까지를 내친왕, 5대손부터를 여왕이라 했다. 남자는 친왕/왕.[2] 일본 황족에게 주어지는 개인 표식. 주로 식물이며, 사용하는 물건 등에 붙는다.[3] 천황과 황태자의 자녀에게 주어지는 개인 이름.[4] 고준 황후는 결혼 후 딸만 줄줄이 4명을 낳아 비난을 당하다가, 다섯째(아키히토)와 여섯째(마사히토)로 아들을 낳았다.[5] 본디 히나마츠리에서 사용되는 인형인 히나인형은 크기와 정교함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집안 형편에 따라 히나인형 제단의 크기가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황실은 어떻겠는가.[6] 큰언니 히가시쿠니 시게코처럼, 친족인 5촌 당숙과 결혼하였다.[7] 천황의 딸이 시집가는 것은 무려 45년 만이었다.[8] 아키히토 덴노의 작은며느리인 키코 비의 친정아버지. 즉, 키코 비는 시마즈 타카코에게는 조카며느리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