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이집트 관계
1. 개요
이탈리아와 이집트의 관계. 양국은 역사적으로 관계가 상당히 깊은 편이고 고대에는 로마 제국의 일부이기도 했다.[1] 오늘날에도 이집트와 이탈리아는 과거만큼은 아니더라도 교류가 많은 편이다.
2. 역사적 관계
2.1. 고대
고대부터 이탈리아 지역과 이집트 지역은 지중해를 통해 교류가 활발했다. 청동기 시대 이집트를 침공한 해양 민족 중 일부는 사르데냐 출신 혹은 사르데냐나 시칠리아를 거쳐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 그리스인들이 여러 폴리스를 세웠는데 그리스 문명은 고대 이집트와 전통적으로 활발했기 때문에 이집트 문화의 영향도 어느정도 스며들 수 밖에 없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때에 이집트가 정복되고 이집트가 급속도로 헬레니즘화되면서, 이탈리아 남부와 이집트는 같은 헬레니즘 문화권으로 통합되기도 했다.
고대 로마가 포에니 전쟁 이후 지중해 동부의 헬레니즘 국가들을 병합하는 과정에서 이집트는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는 클레오파트라와 연합한 안토니우스를 격파하고, 고대 로마 제국의 기반을 닦았다. 이집트는 로마 시에 밀과 렌즈콩을 공급하는 주요 속주 중 하나였다. 이집트가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된 뒤에도 이집트의 문화, 종교가 로마 제국내에도 퍼졌다. 로마 황제들은 로마 시를 꾸미시 위해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로마 시로 옮겨 세우기도 했다.
로마 제국 동부에 속했던 이집트에선 도회지를 중심으로 코이네 그리스어가 쓰이고 있었고 로마 귀족들도 그리스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대에는 양 지역간에 교류와 관계가 유지되었다. 로마 제국 동부가 서기 4세기 이후 기독교화하는 과정에서 이집트 역시 기독교가 퍼져 오늘날 콥트 정교회의 기원이 되었다.
5세기 칼케돈 공의회 이후 이집트와 시리아의 교회는 오리엔트 정교회로 분화하였고, 이후 로마 교황이 동로마 제국 황제로부터 독립하면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지역은 가톨릭으로 갈라졌다.
2.2. 중세
고대 말 로마 제국 서부 이탈리아를 포함한 라틴어 사용 지역의 경제력과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던 것과 다르게 로마 제국 동부 그리스어 사용 지역은 인구와 경제력을 어느 정도 보존하는데 성공했다.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라틴어 사용 지역은 게르만족들이 대거 정착하며 분열되었으며, 동로마 제국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시대 이탈리아가 재정복 과정에서 초토화된 것과 다르게 이집트 지역은 전쟁에 의한 피해가 적었고, 이로서 고대와 달리 정체성, 문화, 종교, 언어에서 차이가 커지고 달라지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결국 이후 여러 도시국가들이 들어서고 노르만계 왕조 등이 들어서며 라틴어에 영향을 받은 여러 방언을 사용하게 되었다.[2]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로마 제국의 기독교화 이후 이탈리아는 그리스어 사용자가 사멸당하고 동로마 제국과의 갈등 과정에서 이 과정은 가속화되었다.
동로마 제국의 가장 부유한 속주 중 하나였던 이집트는 콥트 정교회와 그리스 정교회 사이의 갈등으로 그리스어 사용이 점차 축소되기 시작하고, 고대 이집트어를 계승한 고유의 콥트어가 교회 언어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가톨릭 교회에서 라틴어가 교회에서 보존된 것과 마찬가지다. 동로마 제국에 속했던 이집트가 아랍인들의 정복당해 아랍화가 되고 콥트교 신자들이 이슬람교의 압박과 함께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콥트어 사용자도 줄어들게 되면서 정체성, 언어, 문화에서 차이가 매우 커졌다. 이집트가 아랍화되면서 이탈리아와는 상당히 달라지게 되었다.
중세 이탈리아 해안의 도시 국가 제노바, 베네치아 공화국에서는 십자군 전쟁 과정에서 십자군의 해양 수송을 맡으며 이집트의 아이유브 왕조, 맘루크 왕조와 마찰을 빚었으나 십자군 전쟁이 실패한 이후에는 맘루크 왕조와 활발한 교역을 벌였다. 십자군 전쟁에서 승리한 맘루크 왕조는 그동안 제노바, 베네치아와 활발하게 교역하던 레반트 지역의 아크레, 야파 항구를 방치하고 대신 이탈리아 상인들이 이집트 본토에 직접 와서 통상할 것을 요구하였다. 맘루크 왕조와 베네치아 사이의 활발한 교역은 맘루크 왕조 멸망 시기까지 이어진다.
2.3. 근현대
근세 이후 지중해 무역이 점차 위축되면서 이탈리아 내 도시국가들과 이집트 지역 간의 해상 교역은 점차 규모가 축소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 왕국이 아프리카를 정복하겠다고 설치며 영국의 보호국(사실상 식민지)이었던 이집트 왕국을 침공했던 이력이 있었으나 영국의 개입으로 이탈리아가 패배하였다.
2.3.1. 21세기
현대에는 무역 파트너로 급부상할 정도로 이어졌으나, 그 후 2016년 초반이 되어야 유학생 관련 실종, 살해 사건을 일으켜서 외교 관계가 인도[3] 못지 않은 악화 단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EU의 무역 파트너로 삼고 있는 이집트는 결국 양국 주재 대사끼리 서로 초치당하게 되는 일이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가 이집트를 침공했던 이력이 있어 역사적으로는 그리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측에서 16개월 만에 대사를 다시 파견하기로 결정하면서 관계가 좋아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집트 내에도 이탈리아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2016년 이집트에서 발생한 이탈리아 대학원생 피살 사건은 현지 정보기관 요원들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이탈리아 수사당국이 잠정 결론내렸다.#
3. 관련 문서
[1] 이탈리아 지역은 서로마 제국에 속하고 반대로 이집트 지역은 동로마 제국에 속하게 되었다.[2] 이 중 오늘날 피렌체에서 사용하던 언어가 오늘날 이탈리아어의 기원이 된다.[3] 인도도 물론 이탈리아와의 외교 갈등도 2012년에 있었으나, 2012년 당시에는 유조선 호송 과정상 어민을 죽인 이탈리아 군인 때문에 외교 관계까지 이집트와 비슷하게 악화되었던 유사 사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