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채

 

* 정치인/목록
[image]
林忍采
1928년 3월 11일 ~
1. 개요
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교육자, 정치인이다. 본관은 나주(羅州)[1]#, 초명은 임인채(林仁采), 호는 교당(蛟堂)이다. 종교개신교이다.

2. 생애


1928년 전라남도 나주군 다시면 신풍리(현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2]#에서 태어났다. 대전공립공업학교 건축학과, 국학대학(이후 우석대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에 흡수) 경제학과,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이후 나주 호남원예고등학교, 나주고등학교 교사 등을 지냈다.
1960년대부터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여 정치에 입문하였다. 민주공화당에서 전라남도지부 사무차장, 중앙위원, 전라남도지부 연락실장 등을 지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 제30번으로 입후보하였으나 당선되지 못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전라남도 나주군-광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민당 김윤덕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 김윤덕 후보와 친여 무소속 한갑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가 1983년 해금되었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종필신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다. 1983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은평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민주당 김재광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국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은평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손세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정치국민회의 손세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 절도공파 31세 '''채(采)''' 동(東) 근(根) 항렬.[2] 인근의 가운리와 함께 나주 임씨 집성촌이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