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임씨

 


1. 개요
2. 상세
3. 기원
4. 분파
5. 인물


1. 개요


나주 임씨(羅州 林氏)는 고려의 대장군인 임비(林比)를 시조로 하는 대한민국의 성씨이다.

2. 상세


유명한 인물은 예술계에 간 사람들이 많다. 임씨들 중에 유일하게 한 가문에서 유래된 가문이 아닌 근본을 가진 가문이기도 하다.

3. 기원


나주 임씨는 임비(林比)를 시조로 삼는데, 선세에 유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임비(林比) 위로도 또 여러 대(代) 높은 벼슬을 지낸 분이 있었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세대가 아주 멀고 문적을 증거할 수 없어 지금 상고해서 밝힐 수가 없다. 
임비(林比)의 9세손 임탁(林卓)이 봉순대부(奉順大夫)로 해남감무(海南監務)를 역임하던 중 조선이 개국하였다. 이에 벼슬을 버리고 망국(亡國)의 한(恨)을 가슴에 안은 체 회진(會津)으로 정착하여 세거하였으므로 본관을 나주로 하였다. 회진현(會津縣)이 나주(羅州)에 속하게 됨에 따라 후손들이 나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4. 분파


나주 임씨는 조선초부터 분파되기 시작하는데, 임탁의 손자인 임유소(林有巢)를 파조(派祖)로 도정공파(都正公派)가 분리되었고, 임유소의 손자 대에서 큰손자인 임귀연(林貴椽) 후손이 장수공파(長水公派)·정자공파(正字公派)·절도공파(節度公派)·첨지공파(僉知公派)·생원공파(生員公派)·첨추공파(僉樞公派)로, 둘째손자인 임귀량(林貴樑)의 후손(後孫)이 진사공파(進士公派)로 분파(分派)되었다.

5. 인물


  • 임붕(林鵬) : 1521년(중종 1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삼사를 두루 지내고 벼슬은 승지·병사에서 그쳤다.
  • 임복(林復) : 임붕의 아들. 1546년(명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에 등용되었다가 이듬해 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삭주에 유배되었다. 1551년 순회세자의 탄생으로 특사령이 내려져 고향에 돌아갔다가 선조 초기에 박사에 임명되었으나 무고를 받아 취임하지 못하고 고향에 은거하였다.
  • 임진(林晉) : 임붕의 셋째 아들이며, 임복의 아우. 1546년(명종 1)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정(訓鍊院正)을 거쳐 전라수사(全羅水使)‧제주목사(濟州牧使)‧회령부사(會寧府使)‧장흥부사(長興府使)‧오도병마절도사(五道兵馬節度使) 등을 역임하였다. 제주목사 시절에 청백리(淸白吏)로서 청정비가 세워졌으며, 1568년(선조 1) 전라도우수사(全羅道右水使)로 있을 때에는 흑산도(黑山島)에 나타난 수적(水賊)을 토벌하여 이듬해에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올랐다.
  • 임제(林悌) : 조선의 3대 천재시인으로 불리었으며, 임진의 맏아들이다. 1577년(선조 10) 알성시에 급제한 뒤 흥양현감(興陽縣監)·서북도 병마평사(西北道兵馬評事)·관서 도사(關西都事)·예조정랑(禮曹正郞)을 거쳐 홍문관지제교(弘文館知製敎)를 지냈다.
  • 임서(林㥠) : 임복의 아들. 1589년(선조 22) 사마시에 합격하고, 1599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권지정자에 뽑히고, 1601년 승정원주서에 제수되었다가 성균관전적에 승진하고, 이어 공조·예조·병조의 좌랑을 거쳐 전라도안핵사·무장현감 등을 지냈다. 1610년(광해군 2) 병조정랑이 되었고 이듬해 지평으로 있을 때 정인홍(鄭仁弘)이 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반대하였다가 성균관 유생들에 의하여 유적(儒籍)에서 삭제되자 그는 수성찰방(輸城察訪)으로 좌천되고, 이어 덕원군수로 나갔다가 파직되었다. 1612년 봉산군수가 되고 이어 승지 등을 역임하다가, 폐모론이 일어나자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1621년 공조참의에 제수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다시 고향에 내려갔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안동부사가 되고, 이어 황해도관찰사가 되어 쌓였던 폐단을 일소하고 농업의 권장과 군사의 조련 등에 힘썼다.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도원수 장만(張晩)을 도와 적을 토벌하는 한편, 군량을 보급하는 등 열성을 다하여 그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승계되고 임기가 만료되자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도총부부총관에 제수되었다. 저서로 석촌유고가 있다.
  • 임담(林潭) : 1616년(광해군 8) 생원이 되고, 1635년(인조 1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병자호란사헌부지평으로 남한산성에 들어가 총융사의 종사관이 되어 남격대(南格臺)를 수비하였고, 화의가 성립된 뒤 진휼어사(賑恤御史)로 호남지방에 내려갔다. 1639년 좌승지로 사은부사(謝恩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고, 1644년 경상도관찰사로 서원이 사당화하는 폐습을 상소하였다. 1646년 충청도관찰사로 유탁(柳濯)의 모반사건을 처결, 그 공으로 품계가 오르고 토지를 하사받았다. 그 뒤 형조·예조·병조·이조의 참판과 대사간·도승지를 거쳐 이조판서가 되고, 1650년(효종 1) 다시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지경연사(知經筵事)를 겸하였다. 1652년 청나라 사신의 반송사(伴送使)로 다녀오다가 가산에서 죽었다.
  • 임기수(林基洙) : 1846년(헌종 12) 중시 문과에서 장원으로 급제하고, 1853년(철종 4) 대사간(大司諫)에 임명되었다.
  • 임긍수(林肯洙) : 1837년(헌종 3년) 식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공조·예조·이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 임병직(林炳稷) :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가, 외교관
  • 임종기(林鍾基) : 제8·10·11·12대 국회의원
  • 임동원(林東源) : 제25·27대 통일부 장관. 제 24대 국가정보원장.
  • 임권택(林權澤) : 영화감독, 석좌교수
  • 임성규(林聲奎, 1939년 ~ 2012년) : 제33·34·35대 충청남도 논산시장.
  • 임채정(林采正) : 제14~17대 국회의원 및 국회의장.
  • 임채진(林采珍) : 제36대 검찰총장.
  • 임채민(林采民) : 제3대 국무총리실장, 제4대 보건복지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