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구 을

 


1. 소개
2. 역대 국회의원 목록
3. 역대 선거 결과
3.1. 17대 총선
3.2. 18대 총선
3.4. 19대 총선
3.5. 20대 총선
3.6. 21대 총선


1. 소개


소선거구제로 회귀한 1988년 제13대 총선에 이르러서야 은평구는 독자적인 지역구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은평구의 북부에 해당하는 불광동, 갈현동, 구산동, 대조동, 역촌동, 진관동이 '은평구 을'로 명명되고, 이후로는 큰 변화 없이 계속 유지되다가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역촌동을 은평구 갑으로 넘기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1]
갑구에 비해 보수정당 출신 당선자들이 많아서 얼핏 보기에는 강북의 보수 성지로 착각할 수 있는 곳인데, 그건 15~19대까지 이 지역에서 의원을 지낸 이재오가 워낙 지역구 관리에 특출난 데다 과거 민주화운동 경력이 겹쳐서 지역 주민들에게 어필한 측면이 컸던 것이고 실제 정치성향은 아랫동네인 갑 선거구와 큰 차이는 없다.[2][3] 그러다가 20대 총선에서는 1여 2야의 유리한 구도에서도 2위에 그쳐 20년 만에 민주당에 의석을 넘겨주었다. 그래서 현역 의원은 갑구와 마찬가지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재선 강병원 의원이다.
[image]
은평구 을 관할 구역
구산동, 대조동, 진관동, 불광1동, 불광2동, 갈현1동, 갈현2동

2. 역대 국회의원 목록


  • 고양군 은평면이 서울특별시 서대문구로 편입(1949년)된 이후부터 서술.
대수
이름
소속정당
임기
비고
선거구
제2대
윤기섭

1950년 5월 31일 ~ 1954년 5월 30일

서대문구 을[4]
제3대
이기붕

1954년 5월 31일 ~ 1958년 5월 30일

제4대
최귀남
1958년 5월 31일 ~ 1960년 7월 28일

제5대
김산

1960년 7월 29일 ~ 1961년 5월 16일

제6대
윤제술

1963년 12월 27일 ~ 1965년 6월
[5]
홍영기

1965년 11월 10일 ~ 1967년 6월 30일

제7대
윤제술

1967년 7월 1일 ~ 1971년 6월 30일

제8대
윤제술
1971년 7월 1일 ~ 1972년 10월 17일

서대문구 병[6]
제9대
김재광

1973년 3월 12일 ~ 1979년 3월 11일

서대문구
오유방


제10대
김재광

1979년 3월 12일 ~ 1980년 10월 27일

오유방


제11대
손세일

1981년 4월 11일 ~ 1985년 4월 10일

서대문구·은평구
윤길중


제12대
김재광

1985년 4월 11일 ~ 1988년 5월 29일

윤길중


제13대
김재광

1988년 5월 30일 ~ 1992년 5월 29일

은평구 을[7]
제14대
이원형

1992년 5월 30일 ~ 1996년 5월 29일

제15대
이재오

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제16대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제17대
2004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제18대
문국현

2008년 5월 30일 ~ 2009년 10월 23일
[8]
이재오

2010년 7월 28일 ~ 2012년 5월 29일
[9]
제19대

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
[10]
제20대
강병원

2016년 5월 30일 ~ 2020년 5월 29일

제21대
2020년 5월 30일 ~ 2024년 5월 29일(예정)


3. 역대 선거 결과


13대 총선에는 통일민주당 김재광, 14대에는 민주당 이원형 후보가 당선되었고, 15대 총선부터 이재오가 주인이 됐다.

3.1. 17대 총선


기호
후보명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선유무
'''1'''
'''이재오'''
'''한나라당'''
'''53,107'''
'''45.25%'''
'''1'''
'''당선'''
2
이성일
새천년민주당
6,064
5.16%
3
낙선
3
송미화
열린우리당
50,566
43.08%
2
낙선
4
임왕혁
자유민주연합
1,036
0.88%
5
낙선
8
김명환
공화당
232
0.19%
8
낙선
9
민승
기독당
627
0.53%
7
낙선
10
정태연
민주노동당
4,957
4.22%
4
낙선
11
이용준
무소속
774
0.65%
6
낙선
선거인수
194,786
투표수
118,206
무효표수
843
투표율
60.68%

3.2. 18대 총선


'''은평구 을'''
구산동, 대조동, 진관동, 갈현1동,
갈현2동, 불광1동, 불광2동, 역촌동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송미화(宋美花)
5,397
3위
통합민주당
5.77%
낙선
'''2'''
이재오(李在五)
38,164
2위
한나라당
40.81%
낙선
'''3'''
정두형(鄭斗亨)
871
4위
자유선진당
0.93%
낙선
'''4'''
'''문국현(文國現)'''
'''48,656'''
'''1위'''
'''창조한국당'''
'''52.02%'''
'''당선'''
'''5'''
엄윤형(嚴允炯)
428
5위
평화통일가정당
0.45%
낙선
'''계'''
'''선거인수'''
186,121
'''투표율'''
52.5%
'''투표 수'''
95,617
'''무효표 수'''
2,101
'''친이vs친박 갈등의 정점, 나비효과 1'''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에 치뤄진 선거인데다 이재오가 MB의 최측근이다보니 그의 4연승이 무난할 것으로 보였는데.... 극심한 공천갈등으로 인해 묘한 상황이 나타났다.
당시 한나라당이 과반은 확실하고 200석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우세했던 탓에 전국 각지(특히 수도권, 영남)에서 공천을 놓고 갈등이 크게 일어났는데, 특히 직전 대선에서 친이와 친박이 치열하게 다툰 후유증이 수습되기는 커넝 총선을 앞두고 더 심해졌다.[11]
그런 와중에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웠던 친이계가 대거 공천된 반면, 친박 중진들 다수가 컷오프당하자 갈등은 폭발했고[12] 격분한 친박 지지자들은 사상 유례없는 같은 당 후보 낙선운동에 돌입했다. 그리고 그 제1타겟이 친이 핵심이었던 이재오였던 건 안 봐도 비디오....
그렇게 해서 친박 유권자들이 전략적으로 대선에 출마까지 했던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를 밀었고, 결과는 10% 넘는 차이로(통합민주당 후보가 5%를 잠식했음에도) 문국현의 승리.
이재오의 이 패배가 더 뼈아팠던 것은 당시 한나라당이 서울 48석 중에 40석을 차지하는 초압승을 거뒀음에도 정권의 핵심부 인물이 지금까지 자신이 나간 선거중에서 가장 큰 격차로 패했다는 것. 물론 2년뒤 재보선에서는 낙승하고 복귀하는 데 성공했지만...[13]

3.3. 2010년 재보궐선거


'''은평구 을'''
구산동, 대조동, 진관동, 갈현1동,
갈현2동, 불광1동, 불광2동, 역촌동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이재오(李在五)'''
'''48,311'''
'''1위'''
'''한나라당'''
'''58.33%'''
'''당선'''
'''2'''
장상(張裳)
33,048
2위
민주당
39.90%
낙선



-


[14]
'''6'''
공성경(孔聖璟)
901
3위
창조한국당
1.08%
낙선



-


[15]
'''9'''
금민(琴民)
458
4위
사회당
0.55%
낙선
'''10'''
안웅현(安雄鉉)
96
5위
통일당
0.11%
낙선
'''계'''
'''선거인수'''
207,585
'''투표율'''
40.47%
'''투표 수'''
84,013
'''무효표 수'''
1,199
문국현의 당선무효가 결정되면서 치러진 보궐선거이다.
한나라당에서는 이재오가 국회 복귀에 도전했고, 민주당에서는 장상 전 국무총리 후보자를 공천했다.
그런데 여론조사에서 양 후보간 격차가 더블스코어 수준이었던지라 민주당에서는 민노당, 참여당과 3자 단일화를 추진하였고 여론조사 결과 천호선 후보를 제치고 장상 후보가 야권단일후보로 이재오와 1대1 맞대결을 하는 양상으로 변했다.
그렇게 단일화까지 했음에도 이재오가 58.33%의 득표율로 20% 가까운 격차를 보이며 낙승했다. 재보선 특성상 보수정당이 유리하고 장상이 지역 기반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단일화까지 한 마당에 민주당으로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참패였다.[16]
결국 이 여파로 6.2 지방선거를 이기면서 순항하는 듯 했던 정세균 대표는 책임을 지고 사퇴한 반면, 복귀에 성공한 이재오는 직후 특임장관에 임명되면서 이명박 정부 2인자 위치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3.4. 19대 총선


'''은평구 을'''
구산동, 대조동, 진관동, 갈현1동,
갈현2동, 불광1동, 불광2동, 역촌동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이재오(李在五)'''
'''63,238'''
'''1위'''
'''새누리당'''
'''49.51%'''
'''당선'''
'''4'''
천호선(千皓宣)
61,779
2위
통합진보당
48.37%
낙선
'''6'''
이문용(李文龍)
2,692
3위
정통민주당
2.10%
낙선
'''계'''
'''선거인 수'''
232,939
'''투표율'''
55.25%
'''투표 수'''
128,703
'''무효표 수'''
994
여당 새누리당에서는 현역 이재오 후보가 공천을 받았다. 본인은 무난히 공천을 받았지만, 진수희 등 자신을 따르던 친이계 초·재선 의원들이 소위 '공천 학살'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재오 본인이 18대 총선 당시 친이계 좌장으로서 친박계 공천 학살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1야당 민주통합당에서는 원래 김성호 지역위원장의 출마가 확정적이었지만 선거를 앞두고 통합진보당과의 선거 연대가 성사되면서 물러나고 통합진보당 당 대변인이었던 천호선 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로 이 지역구에 나서게 되었다.
상기한 바와 같이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간 선거 연대로 여야 1대1 구도로 맞대결을 펼쳤으나 2% 득표율을 갈라먹은 정통민주당이 승부를 갈랐다. 경기도 의정부시 을과 함께 대표적으로 정통민주당에 의한 표분산이 야권연대의 효과를 상쇄시킨 지역구가 되었다. 이로서 이재오 당선인은 보수정당계의 험지로 꼽히는 은평구에서만 5선을 달성했다.

3.5. 20대 총선


'''은평구 을'''
구산동, 대조동, 진관동, 갈현1동, 갈현2동, 불광1동, 불광2동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2'''
'''강병원(姜炳遠)'''
'''42,704'''
'''1위'''
'''더불어민주당'''
'''36.74%'''
'''당선'''
'''3'''
고연호(高蓮浩)
31,923
3위
국민의당
27.46%
낙선



-


[17]
'''5'''
이강무(李康武)
1,337
5위
민주당
1.15%
낙선
'''6'''
유지훈(劉之勳)
670
6위
민중연합당
0.57%
낙선
'''7'''
최병호(崔昞鎬)
5,272
4위
무소속
4.53%
낙선
'''8'''
이재오(李在五)
34,318
2위
무소속
29.52%
낙선
'''계'''
'''선거인 수'''
206,434
'''투표율'''
58.1%
'''투표 수'''
119,902
'''무효표 수'''
3,678
'''친이vs친박 갈등의 정점, 나비효과 2'''
현역 이재오 의원은 새누리당 공천에 탈락하면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유재길을 공천하려 했으나 옥새런으로 인해 무공천 지역으로 결정되었다.
정의당에선 천호선이 건강 문제로 불출마하면서 김제남 의원이 출마했으나, 더민주의 강병원 후보와 단일화하면서 사퇴했다. 강병원 후보는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을 맡은 운동권 출신이다.
여론조사에서는 이재오 후보와 고연호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박빙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고, 아무도 강병원 후보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정작 출구조사에서부터 강병원 후보가 여유있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종 결과는 강병원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재오는 지역 5선 터줏대감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30%도 얻지 못하면서 참패했다.

3.6. 21대 총선


'''은평구 을'''
구산동, 대조동, 진관동, 갈현1동, 갈현2동, 불광1동, 불광2동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강병원(姜炳遠)'''
'''78,897'''
'''1위'''
'''더불어민주당'''
'''57.41%'''
'''당선'''
'''2'''
허용석(許龍錫)
49,796
2위
미래통합당
36.23%
낙선
'''6'''
김종민(金種珉)
6,127
3위
정의당
4.45%
낙선
'''7'''
신민주(申旼周)
2,600
4위
기본소득당
1.89%
낙선
'''계'''
'''선거인 수'''
210,129
'''투표율'''
66.17%
'''투표 수'''
139,045
'''무효표 수'''
1,625
민주당에서는 현역 강병원 의원이 경선에서 승리해 출마하게 되면서 재선에 도전한다.
미래통합당에서는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관세청장을 지낸 허용석 SK네트웍스 이사회 의장이 전략공천되었다. 허용석 후보는 용산구(선거구)에 예비후보로 신청해 '나는 용산이다'라는 현수막까지 걸었으나 용산구에 권영세 전 의원이 공천되며 옮겨왔다.
정의당에서는 지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던 김종민 후보가 나선다.
이 밖에 원외정당에서는 국가혁명배당금당에서 자그마치 10명의 예비후보가 등록했고, 진보 성향의 신생 원외정당인 기본소득당에서는 신민주[18] 서울기본소득당 상임위원장이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선거 결과 강병원 의원이 무려 21%차로 이김에 따라 강병원의 재선이 확정되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진관동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15% 이상 격차가 났고, 여기서 불광1동(16.7%)을 또 빼면 20% 이상의 격차가 나타났다.
참고로 진관동이 허용석 후보 득표율도 가장 높고 득표율차도 가장 적어서 뉴타운 지역의 보수세를 보여준다고 보기도 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허용석의 득표율 39.94%가 선거구에서 가장 높은건 사실이지만 문제는 허 후보 외에 보수성향 후보가 아예 없었다는거....
그리고 그 득표율이 은평구 을 평균보다 5~10% 이상 더 높다면 확실히 보수성향이 두드러지는게 맞다고 볼 수 있겠는데, 총 득표율보다 3.7%정도 더 높은거면 좀 애매하다. 오히려 정의당, 기본소득당 후보 득표율 합이 7.84%로 선거구에서 가장 높았다는게 함정.
그러니까 전체 60%에 달하는 진보성향의 표가 민주당 후보와 진보정당 후보로 꽤 갈라져서 나타난 현상이지, 특별히 은평뉴타운이 보수세가 두드러지게 강한 지역은 아니라는 뜻.[19] 다만 투표소별 득표율을 보면 자가비율이 높은 곳(보수 강세)과 장기전세 및 임대비율이 높은 곳(진보 강세) 간의 격차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여담으로, 국가혁명배당금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은 지역구 중 하나이다.

[1] 은평뉴타운 개발의 영향으로 진관동 인구가 늘어나면서 단행한 조정이다.[2] 그리고 이재오의 당선 때 득표율 차가 생각보다 그리 크지는 않았는데, 특히 17, 19대 총선에서는 출구조사에서 접전 패배로 나오던 걸 뒤집고 초접전 끝에 승리한 것이다.[3] 민주당 지지성향이 강한 지역인데도 김문수가 도지사 전에 3선을 했던 부천시 소사구(현 부천시 병)가 유사한 흐름을 보여오고 있다.[4] 교남동, 냉천동, 송월동, 평동, 홍파동, 천연동, 옥천동, 교북동, 행촌동, 영천동, 현저동, 홍제동, 부암동, 홍지동, 신영동, '''녹번동''', 불광동, 갈현동, 대조동, 구산동, '''역촌동, 신사동, 응암동''', 홍은동, 송산동, '''수색동''', 상암동, 중동, 성산동, 남가좌동, 북가좌동, 구기동, 평창동, '''증산동'''[5] 한일기본조약에 항의해 의원직 사퇴.[6] '''녹번동, 응암동''', 불광동, 대조동, 갈현동, 구산동, '''역촌동, 신사동, 증산동''', 북가좌동, 남가좌동. 수색동은 당시 서대문구 을에 속했다.[7] 20대부터는 역촌동이 은평구 갑으로 편입되었다.[8]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9] 2010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당선.[10] 공천 배제 불복으로 탈당, 무소속 출마.[11] 당연한게 대통령 취임 2개월도 안 되어 치르는 선거라 여당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판이었다. 게다가 역대 최다 득표율 격차로 승리한 만큼 '한나라당 공천=당선'인 곳이 다수였으니 그 갈등이 오죽했을까?[12] 당시 박근혜 전 대표가 김무성, 홍사덕, 유기준 등 낙천 중진들에게 했던 말이 '살아서 돌아오라' 였는데 실제로 이들 다수가 무소속(일명 '친박 무소속 연대') 또는 친박연대의 이름으로 생환했다.[13] 참고로 이때 친박 진영에서 대대적인 낙선운동의 대상으로 꼽았던 인물들이 이재오, 이방호(경남 사천), 정종복(경북 경주), 전여옥(서울 영등포 갑)이었는데 전여옥을 제외하고는(사실 여기도 낙승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1~2%차 이내 초접전으로 신승했다) 낙선의 쓴맛을 봤고, 이방호를 이기고 당선된 인물이 바로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다.[14] 장상 후보와 단일화[15] 장상 후보와 단일화[16] 이 무렵부터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비해 약세였던 지지도 극복을 위해 야권단일화에 매달리게 되었는데 2011년 재보궐에서는 어느정도 성과를 거둔 반면, 이어진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는 그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패배했다. 그러한 현상은 2016년 총선 전까지 반복되는 악순환이었다.[17] 강병원 후보와 단일화[18] 1994년생으로 입후보 연령 제한인 만 25세에 딱 맞춘 매우 젊은 후보이다.[19] 이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게 서대문구 갑의 신촌동, 구로구 갑의 항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