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백산

 

1. 백두산의 다른 이름
1.1. 잘못된 명칭?
1.2. 한국에서의 논란
1.3. 백두산 이외의 장백산
2. 열혈강호에 등장하는 지명
2.1. 장백산 소속 인물


1. 백두산의 다른 이름


長白山 / 长白山 Chángbáishān (창바이산)
백두산의 또 다른 이름으로 밑에 표기하겠지만, 중국만의 명칭이라고 하긴 뭣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까지는 '백두산'과 '장백산'이라는 명칭을 혼용하여 《조선왕조실록》과 《성호사설》에도 등장한다. 물론 오늘날에 와서는 들을 일이 없고 무협소설에서나 가끔 나오는 수준이다.
의외로 중국 현지에서는 장백산/백두산이라는 호칭 문제가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지, 공식적인 문서 등을 제외하면 백두산이라는 용어도 문제 없이 사용되고 다 알아듣는다. 오히려 2007 장춘동계아시안게임 당시 이른바 한국선수단의 "백두산은 우리땅 세레모니" 사건 이후 현지에선 장백/백두 혼용되거나 병기되던 게 장백산으로 일괄통일되어버린 상황이다.

1.1. 잘못된 명칭?


결론부터 말하면 '장백산'이란 명칭은 조선시대에도 사용되었기 때문에 잘못된 명칭이라고 할 수가 없다.
'장백산'이라고 적은 가장 오래된 기록은 세종 13년(1431) 실록이다. 조선시대에도 조선인들이 백두산과 장백산을 혼용해 부른 기록이 많다. 그뿐만 아니라 백산이라고도 썼는데 이들 뜻이 다 흰머리산, 긴 흰산, 흰산이라는 뜻으로 서로 비슷하다.
조중변계조약으로 북한과 중국이 백두산을 나눠 소유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에 통일시 변계조약을 충분히 여러 방향으로 이끌어오는 근거가 된다.[1]
또한 백두산에 대한 한반도 국가들의 실효적인 지배의 기간이 중국보다 더 길다는 역사적 근거는 전혀 없다. '''백두산이 17~19세기 조선의 영토였다는 분명한 역사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백두산 일부는 영토로 영유하였음이 분명하지만, 백두산 전체가 조선의 영토였다는 것은 아니다. 가장 결정적인 근거로 영조는 백두산에서가 아니라 백두산을 바라보며 백두산 근처의 산에서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자국의 영토에 가지 못하는 왕이 있던가?
백두산은 민족의 영산이라는 개념으로 봐야 했다. 영토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우리 역사상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조중변계조약을 김씨조선의 태조가 중국에 팔아먹었다는 카더라가 정설인 양 굳어진 것이다. 백두산을 영토의 개념으로 분명히 인지한다기보다는 영산이기에 막연히 우리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허나 역사적으로 백두산은 여진족의 영산이기도 하고, 우리가 백두산 전체를 영토로 영유한 시기는 남북국시대로 거슬로 올라간다.
혹자는 청일간도협약은 조선이 포함되지 않은 계약이었기에 억지이고, 백두산 정계비는 청나라에서 일방적으로 세운 것이며 토문강은 청나라와 조선이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기 때문에 제대로 된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역사적 근거가 없는 일방적인 주장일 뿐 사실이 아니다. 숙종실록에 따르면 조선의 조정도 백두산 정계비의 실효성을 인정했다. 더군다나 토문강의 문제는 정계비를 세울 당시 지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발생한 일이다. 이로 인하여 조선의 조정이 이 문제로 인하여 심각하게 논의를 하는 것이 숙종실록에 분명히 실렸다. 일방적으로 백두산 정계비를 청나라가 세웠다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거기에 이후 발생하는 간도의 영토분쟁은 지류파악을 잘못 한 일에서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후의 실록을 보면 우리가 이 사실을 알고 오히려 정계비의 오류를 이용하여 영토분쟁을 일으킨 것이다. 백두산 정계비는 위의 일방적인 주장대로 한반도 경계를 구분짓는 가장 중요한 자료임은 사실이나 아주 명백하고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 이 오류는 조선이 조정에서 회의를 열 정도로 심각했고, 간도 지역이 조선의 영토가 아니라고 여겼다. 허나 후에 조선은 노선을 바꾸어 정계비의 오류를 이용하여 간도 지역을 두고 영토분쟁을 일으킨 것이다. 자세한 상황은 간도를 참고.
한국의 지리시간에서도 산맥을 가르칠 때 백두산이 포함된 산맥을 백두산맥이 아니라 장백산맥으로 가르쳤던 때가 있었고, 북한에서도 "김일성 장군의 노래"의 가사에서 "장백산 줄기줄기.." 운운 한다.

1.2. 한국에서의 논란


다만 현재 백두산의 소유권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근래 중국이 시도중인 동북공정 때문. KBS 스페셜에는 백두산을 오로지 ‘중국의 영산’으로만 만들기 위해 각종 기회를 이용하여 중국의 산으로 규정되고 있는 백두산 공정 실태를 밀착 취재했다. 관련 유튜브 영상 관련 유튜브 영상 2
  • 김수현전지현의 헝다생수 광고 원산지 표기 논란이 일어났다. 다만 생수 이름에 창바이산이라고 붙은 것도 아니고, 원산지 표기가 창바이산이라고 해서 문제가 불거진 것인데, 이를 가지고 중국측에서 백두산을 자국 영토라고 우긴다고 해석하는 건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이다. 만약 원산지 표기를 백두산이라고 했으면 한국에서는 더 난리가 났을 것이다.

1.3. 백두산 이외의 장백산


백두산을 뜻하는 장백산 이외에 동명의 산에 관한 기록도 있다. 천지가 있는 백두산과는 달리 중국 방향의 북쪽으로 더 들어가서 장백산맥 줄기의 또 다른 산이 장백산이란 얘기다. 그리고 백두산 남쪽, 그러니까 장백산맥과는 상관없는 훨씬 남쪽인 함경도 지역에도 장백산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고종 당시의 이 기록에는 함경북도 경성군에 장백산이 있다고 한다.

2. 열혈강호에 등장하는 지명


정파의 성지. 정파 최대의 문파 현무문의 문주였던 검황 담신우가 현무문을 해체한 후에 이 곳에 지내게 된 후로 정파의 성지처럼 여겨지고 있다.
담신우를 쫓아 옛 현무문의 무사들이나 검황의 가신들은 장백산 인근에 무리를 지어 마을을 형성해 살아가고 있다. 한때 잘나갔던 정파의 무사들이 검황을 따라 은퇴하여 약초를 캐거나 농사를 짓고 있으며, 그 외에도 수많은 고수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유명 세가의 자식들을 '돈 받고' 가르쳐 주기도 한다.
그 중에는 진짜로 검황에게 매료되어 따라온 자도 있지만, 검황이 곧 은퇴를 번복할 것이라고 믿고 현무문이 재건되면 공신으로서 완장질을 할 목적으로 잠시의 고난을 감내하고 따라온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무림에 복귀하지 않는 검황에게 불만을 갖고 신지에 가담하게 된다. 그러나 은석우 총사의 계략과 한비광매유진 등의 활약으로 인해 배신자들은 거의 몰살당했다.
현재는 장백산 인근의 정파 배신자들도 전부 숙청하기는 했지만 장백산의 손실도 상당히 입은 상태다.

2.1. 장백산 소속 인물


무림 정파의 최고수 검황.
  • 담화린 한비광과 더불어 열혈강호 여주인공.
  • 은석우 총사 최고책임자. 특급 두뇌와 철저한 관리자형 인물로 무림 절정고수급으로 그의 실력은 흑풍회 대장급이다.
  • 공손벽: 고수다. 작품 내에선 갈대로 검을 도적질 하려고 한 3명을 제압했다. 40년전 영웅무투전에서 선진문 마용기 장로의 칼을 부수기도 했다.
  • 위진보: 공손벽과 함께 갈대를 따러 다니던 아재이다. 공손벽보단 나이가 많다.
  • 장모주 : 장백산 배신자들의 장로 수장격. 은석우한테 당함.
  • 설영태 : 장모주와 함께 배신에 가담. 한비광한테 당함.
  • 논검당
    • 제일경 : 논검당에서 은신술로 알아주는 고수.
    • 왕운 : 논검당 사범. 괴개를 죽였다.
    • 백리향
    • 진구, 후노: 논검당에서 백리향의 친구로 괴개에게 납치(?)당해 한비광의 연습교재로 사용당한다. 이후 백리향이 신지의 명령을 수행하는 중에 이 둘을 죽인다.

3. 사망유희이소룡 대역


원래는 홍콩사업가였으나 이소룡과 외모가 흡사해 사망유희의 이소룡 대역으로 발탁되었다.[2] 의외로 이 사람을 김태정과 착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김태정은 무술대역이다. 드라마 장면은 이 사람이 거의 다 했다고 보면 된다. 그 후로는 홍콩에서 계속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소룡과 닮은 용모 때문에 'Machine of Dead'라는 영화에서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1] 다만 UN공동 가입 같은 사례로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는 북한을 국가로 승인했으므로 이것이 실질적으로 근거가 되기는 힘들다.[2] 장백산, 김태정, 원표 이렇게 셋이서 돌아가며 대역을 하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