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삼국지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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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시절 1
아기 시절 2
13살 시절(시즌 5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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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벗은 모습(시즌 5 20화)
수경스쿨 재학 시절(시즌 6 79화)

1. 개요
2. 캐릭터 묘사
3. 작중 행적
3.1. 시즌 1(황건적의 난) ~ 시즌 2(십상시의 난)
3.2. 시즌 5(협천자)
3.3. 시즌 6(관도대전)
4. 여담


1. 개요


네이버 웹툰 삼국지톡에 등장하는 제갈량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

2. 캐릭터 묘사


약간 탁하고 옅은 금발과 남보라색에 가까운 벽안의 외모가 특징. 13살 때는 어리다 보니 그냥 귀여운 아이 정도였는데, 19살이 되어 재등장하자 정사 인증 미남의 포텐이 폭발했다. 키가 매우 크고[1] 용모가 무척 수려하며[2] 의외로 풍채도 제법 좋은 편.[3]
어렸을 때는 차분하고 조숙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낭야 중학교 반 아이들의 질문에 '시험지를 채점한다고 결과가 변하는 건 아니다. 푸는 방법을 알고 실수를 하지 않으면 답은 맞을 수밖에 없다. 정확한 지도가 있으면 출발하기 전에 도착지를 알 수 있는 것과 같다'라고 대답하는 철학적이고 심오한 인생 지론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누나인 제갈채도 영재 동생의 지나친 조숙함이 안쓰러운지, 평범한 애들처럼 뛰어놀고 떼도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
그러나, 시즌 6 시점에서 19살의 청소년이 되어 재등장했을 때는 '''총명하면서도 맑고 평온하던 어린 시절과 달리 세상과 사람들을 싫어하는 염세적인 모습으로 돌변'''해 버렸다. 이는 서주 대학살 생존 경험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자신의 고향을 무자비하게 유린하고 사람들을 끔찍하게 학살한 조조가 그 응분의 벌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승승장구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며 하늘을 원망하는 마음을 품게 된 것. '하늘이 조조를 살려두는 것은 설마 그런 짓을 했는데도 아직 그를 아끼기 때문이냐, 그렇다면 조조를 증오하는 내가 나쁜 것이냐'며 세상을 원망해 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친우 방통은 그를 '참 외로운 녀석'이라 평했고, 선배 서서는 이런 상태의 그를 '아무리 설득하려 해봤자 그의 강철같은 똥고집만 더더욱 단단하게 만들 뿐'이라고 반 체념했으며, 스승 사마휘도 그의 눈빛을 보고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눈'이라며 안타까워했다.[4]

3. 작중 행적



3.1. 시즌 1(황건적의 난) ~ 시즌 2(십상시의 난)


사실상의 첫 등장은 연재 초기에 매 화 마지막에 한 컷씩 등장하던 아기로써, 시즌 1(황건적의 난)에서 매 화 마지막컷에 어떤 아기의 성장기가 나왔는데, 현 시점에서 제갈량의 성장기였음이 확정되었다.
연의에서 유관장 삼형제가 만나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시기를 서기 184년 경(후한의 중평 원년)으로 볼 경우, 이 당시 제갈량의 나이는 4살 정도(제갈량이 181년생)로 추산된다. 첫 돌 때 집은 것이 연필인데다 어린 아기임에도 불구하고 꽤 정확하게 글씨를 쓰는 모습이 등장하며, 8화에서 여기저기에 책을 흘린 채로 읽는 비범함을 보였다.
다만, 18화에서 딸랑이만 둔 채로 사라졌고, 20화 이후부터는 아예 등장이 없는데, 무적핑크의 트위터에 의하면 이사를 갔고(...) 앞으로는 첫머리 로고 페이지에 종종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스토리를 더 원활하게 이어가고자 바꾼 연출이라고...
이후, 시즌 2(십상시의 난) 18화에서 제갈근의 첫 등장 때 형과의 카톡 대화로만 잠시 나왔는데, 비 올 것을 예견하며 우산을 사라고 권한다.[5] 이 때는 아직 어려서(8세) 맞춤법에 익숙하지 않은지 띄어쓰기를 엄청 많이 한다.

3.2. 시즌 5(협천자)


이후 시즌 5(협천자)의 서주 대학살 에피소드(18화부터)에서 낭야중학교의 재학생으로 정식 데뷔했다. 나이는 아직 13살[6]밖에 안 됐지만, 3년이나 일찍 월반을 해서, 중학교 3학년인 작은 누나 제갈채와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다. 동급생 형/누나들과 담임 선생님은 그를 꼬맹이라고 부르며 귀여워한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보통 천재가 아닌지라 학생들이 기상청 일기예보보다도 제갈량의 예보를 더 신뢰하는 수준이고,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풀고 있는 것을 보아 실제 지적 능력은 중학교 3학년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 모양이다.
덕분에 선생님이 장래가 기대된다며 차후 진로 계획을 묻자, 다들 원소/유표/공손찬 등 잘 나가는 군웅들을 거론하는데, 제갈량은 의외로 '''조조'''를 언급한다. 다들 변변찮은 내시 손자인 조조에게 출사하고 싶어하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본인은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었던 모양.[7]
하지만 이렇게 활기차게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낭야중학교에 조조군이 습격해 온다. 전교생이 정문 쪽으로 대피하려 하는데 제갈량만이 후문으로 갈 것을 주장하나 후문은 수업 중에는 항상 잠겨 있는 터라 다른 학생들이나 담임 교사가 이를 귀담아 듣지 않았고, 친누나인 제갈채만이 동생의 말대로 후문으로 향한다. 다행히 남매의 새어머니인 송부인이 다른 자식들[8]을 모두 데리고, 경상용차를 몰고 와 잠겨 있는 후문을 돌파해서 두 사람을 구해 간다.[9] 그러나 도피 중에 제갈량은 창 밖으로 '''산처럼 쌓인 시체가 강물을 막은 참혹하기 그지없는 광경'''을 목격[10]하고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혀 눈물을 흘리고, 설상가상으로 조조군이 나타나서 차 앞을 가로막고는 일가족을 모두 죽이려 한다. 다행히 유비 이 나타나 조조군을 적시에 처리한 덕분에 무사히 탈출했으나, 끔찍한 경험을 하고 큰 충격을 받은 제갈량은 '''어른도 견디기 힘들 참혹한 광경을 어린 나이에 본 탓인지 고열에 시달리며 앓기 시작'''한다. 제갈근은 기억력 좋고 똑똑한 동생이 이 광경을 평생 트라우마로 여기게 될 거라며 안타까워했는데, 그 때 이마를 짚어주던 제갈근의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부릅 뜬 눈을 보면 제갈량은 이 일을 계기로 조조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그를 증오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어찌되었든 송부인은 자식들을 데리고, 서주를 무사히 빠져 나와서 아이들의 숙부가 있는 형주로 가려고 한다.[11]

3.3. 시즌 6(관도대전)


그로부터 6년이 흐른 시점인 시즌 6(관도대전)의 76화에서 19세의 청소년으로 성장한 모습으로 간만에 모습을 비췄다. 형주 양양에서 텃밭 농사를 짓고 있었으며, 심은 지 족히 한 달이 넘은 작물이 왜 자라지 않는지 궁금해하며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이때 곁에서 같이 농사를 짓던 한 노부부가 지각 아니냐며 얼른 학교에 가야 하지 않냐고 물어오자, 제갈량은 1교시에는 교수님이 10분 늦게 오시니 괜찮다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지만, 사실 그가 텃밭에 정신을 쏟던 사이, 시간은 벌써 2교시가 되어 있었다. 핸드폰 배터리가 다 떨어지는 바람에 그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 심지어 이 날은 조 발표가 있는 날이고 PPT는 본인에게 있었다(...)
덕분에 제갈량은 부리나케 재학 중인 '사립 수경스쿨'로 돌아가서 내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같은 조원인 동문 방통, 선배 서복에게 사과하는데, 서복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법이지만 이번 발표를 망쳐서 장학금을 못 타게 되면 네 장기를 팔아서 집세와 등록금을 마련하겠다"고 무시무시한 협박을 하며 그를 끌고 부리나케 강의실로 뛰어간다. 허겁지겁 뛰어가는 3인조를 보고 다른 학생들이 "또라이, 바보, 일진이 끼리끼리 모였다"며 수준 떨어진다고 비웃는데, 이를 들은 제갈량은 서복을 향해 "(정말로 발표를 못 하게 되면) 콩팥이든 심장이든 죄다 내 손으로 떼주겠다"고 섬뜩하게 대꾸하고, 그의 눈빛에 놀란 서복은 저런 소리 듣는 게 하루이틀 일도 아닌데 무섭게 왜 그러느냐며 신경쓰지 말라고 달랜다.
강의실에 도착하자, 직접 강의를 하고 있던 교장 수경 선생이 3인조를 맞이하면서 발표 준비를 시키고, 수업을 마무리한다. 강의 주제는 과거의 역사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는데, 수경 선생이 마지막 예시로 보여준 자료 사진이 '''하필이면 서주 대학살의 현장 사진'''. 실제로 학살의 참상을 직접 보고 겪은 바 있는 제갈량은 그런 끔찍한 사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 자료로 쓰는 것에 격분하여, 이런 쓰레기 수업은 더 듣지 않겠다며 서복과 방통을 뿌리치고 강의실을 나가려 한다.[12][13] 이에 수경 선생이 아직 수업이 안 끝났다며 제갈량을 막아서지만, 제갈량은 '''"저는 나갈 테니 F를 때리시든 자르시든 교수님 마음대로 하시라"며 대들고, 속으로는 서주 대학살 이후 자신이 아주 오랫동안 괴로운 나날을 보냈던[14] 것을 회상하며 감히 그 일을 입에 담느냐고 분통'''해한다.
당연히 제갈량의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다른 학생들[15]은 감히 스승님께 대드냐, 머리만 좋으면 다냐고 화를 내며 쓰레기를 던져댔지만, 수경 선생은 자신의 무례를 사과하면서 동시에 계속 도망치지 말고 과거를 거름 삼아 성장해야 한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이내 제갈량의 공허한 눈빛을 본 수경 선생은 안타까워하다가 곧 "쉬는 시간 종이 칠 때까지 내 입에서 '나가'라는 소리가 나오게 하면 놓아주겠다. 성공하면 전공과목 전부 A++ 보장"이라며 제갈량을 포함한 학생들 전원을 상대로 내기를 건다.
점수를 후하게 주기로 유명하며 우주방어급 긍정 파워를 자랑하여[16] '호호(好好) 선생'으로 통하는 수경의 인품을 아는 다른 학생들은 일개 학생이 무슨 수로 그를 이기겠느냐며 제갈량을 비웃으면서도 갖은 이유를 대서 도전을 해보지만 번번이 막힌다. 실제로 수경 선생도 단 한 명의 제자도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라 제갈량을 내보내지 않을 작정을 하고 내기를 걸었던 것. 그런데 제갈량은 대번에 '''"수업 날로 먹는 주제에 애들 코 묻은 돈 받아먹으면 벌은 안 받느냐?"고 빈정'''거리고, 이어서 '''"하... "수경아". 양심 챙기자 ㅎ?"''' 하고 쐐기를 박아 옆에 있던 서복과 방통을 놀라게 했고, 천하의 호호 선생을 진심으로 분노하게 하는 데 성공한다.
덕분에 극대노한 수경 선생은 79화에서 "썩 꺼지라!"고 소리를 질렀고, 그 말이 미처 나오기도 전에 제갈량은 서복과 방통에게 들려 끌려나가 텃밭에 처박힌다. 서복이 "아무리 빡쳐도 그렇지 어떻게 제자가 스승을 엿먹이냐?"고 화를 내며 훈계했지만, 제갈량은 "내 덕에 A++ 거저 먹었으니 오히려 잘된 거 아니냐, 솔직히 선배도 점수 노리고서 날 미끼로 썼고 교수님 달랜 것도 연기면서 민망해서 예의 운운하는 거 아니냐, 사람이 참 음란하다.[17]"고 그를 비꼬았다가 이에 더 분노한 서복에게 복날 개 잡듯 얻어맞는다(...)[18][19]
그런 와중에도 제갈량은 수경 선생에게 문자를 보낸다. 마침 옛 제자 한숭[20]과 함께 제갈량의 잠재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수경 선생은, 그가 먼저 사과하려고 연락을 취한 줄 알고 자신도 스승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런데 제갈량은 자기 계좌번호[21]를 알려주면서 아까 등록금 환불을 요청하지 않았느냐고 깐족거려 다시 한 차례 수경 을 분노하게 만들었다.[22] 그리고는 흙바닥에 드러누워 웃으면서 교수님도 포기하시라고,(정작 수경 선생은 그럴 생각이 없지만) 자기는 이렇게 살다 죽겠다고 읊조리더니, 이내 서늘한 눈빛으로 '''"천하고 나발이고.... 다 불타 버리라지."''' 하고 중얼거린다.[23]

4. 여담


  • 연두색 손잡이에 본체는 흰색인 손풍기를 들고 있다.[24] 제갈량의 상징물인 '백우선'을 훌륭하게 현대화했다는 호평을 받는다. 이 손풍기는 낭야중학교 탈출 직전에 파손되었는데, '시즌 6: 관도대전' 76화 말미와 77화에서는 그 때 파손됐던 손풍기를 수리해서 쓰고 있었다. 당시 분실했던 안경은 형태가 명확히 달라(그 때는 네모난 뿔테안경, 지금은 얇은 테의 동그란 안경) 새로 맞춘 게 분명하다. 여하튼 이 손풍기는, 본작 내에서 연두색이 유비 진영의 상징색으로 쓰이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미래에 대한 복선 역할도 착실히 한 물건이다.
  • 이 작품을 까는 위빠들 가운덴 제갈량이 무슨 서주 대학살의 피해자냐고 삼톡 스토리 작가 무핑이 조조 까려고 제갈량에게 일부러 이런 설정 넣었다고 까기도 한다. 근데 사실 제갈량이 서주 대학살의 피해자라는 설명은 이미 20세기에 진순신소설 제갈공명이나 코에이의 삼국지 공명전에도 나올 정도로 꽤 메이저한 설정이다.[25] 그러니까 위빠들이 삼톡에서 설정한 이 설정 가지고 삼톡이나 스토리 작가 무핑을 까는 것은 90년대에 영걸전 시리즈도 해본적 없는 잼민이들이라는거 스스로 인증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셈. 또한 홍콩의 만화 화봉요원에서도 조조가 서주에서 벌인 학살을 보고 절망하는 제갈량이 나온다. 그리고 까놓고 실제 역사상에서도 자치통감을 보면 조조가 서주를 돌아다니면서 학살짓을 벌인 곳 중 하나로 당당히 제갈량의 고향 서주 낭야가 나온다. 그러니까 다른 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역사상의 이런 근거를 가지고 제갈량과 서주대학살이 관련이 있다는 설정을 넣은셈인데 한국 삼국지계에서 진작부터 이런 해석이 나오지 않은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그리고 무핑 이전에도 이미 김달이 여자 제갈량에서 이 설정을 집어 넣은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아무 말도 안하다가 김달보다 무핑이 더 적나라하게 묘사하니까 이제서야 반응하는 것은 너무 속보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 키가 8척의 장신이었다는 걸 반영해서인지 19세 청년으로 재등장한 시점에서는 스승인 사마휘보다 키가 크게 나왔다.
[1] 정사에 의하면 제갈량의 키는 훤칠한 8척이었다 한다. 1척은 전한 기준 약 23cm, 후한 기준 약 23.7cm로, 8척이라 하면 약 184~190cm에 육박하는 장신이다. 물론 그 시대에 사람을 세워 놓고 자로 재진 않았으니 키가 정확히 184cm였던 건 아니고, 어딜 가나 키 크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훤칠한 장신이었다고 보면 된다.[2] 텃밭에서 제갈량과 농사를 짓던 노부부가 제갈량의 훤칠한 키에 얼굴을 붉혔고, 같이 수업을 듣던 수경스쿨의 학생들이 제갈량이 쓰고 있던 농사용 두건모를 벗자 남녀 불문하고 전부 얼굴을 붉히며 놀랐다.[3] 일단 문관이기도 하고 말년에 병사한 만큼, 대중적으로는 어쩐지 병약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꽤 건강하고 튼튼했을 가능성이 높다. 젊은 시절 직접 농사를 짓기도 했고, 50대 중반에 과로사한 것도 사실은 몸이 약해 못 버틴 게 아니라 원래는 건강했으니까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과로'''를 하면서도 어떻게든 10여 년을 버텨낸 것이다.[4] 이들 3인의 평가는 시즌 6 : 관도대전의 78화에 나온 것으로 당시 서주 대학살을 자료로 설명하려던 스승 앞에서 빡치고 나가려던 걸 막던 중에 나온 것이다.[5] 적벽대전 직전 그 유명한 동남풍 예지의 복선으로 보인다. 덤으로 해당 장면에서 통신사 할인까지 챙기라고 조언하는데, 내정 관리에도 능했던 제갈량의 능력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의견이 많다.[6] 여담으로 19화 프롤로그(시대가 193년)에 어린애들 등장에 당황한 관우(30대 초반)과 동년배인 황제 유협(초6, 13세), 손권(초5, 12세)과 함께 등장했다. 참고로 기록을 보면 제갈량과 유협은 181년생, 손권은 182년생이다. 그리고 관우를 제외한 나머지 3인은 최신화인 시즌 6(관도대전) 79화(시대가 서주 대학살에서 6년이 지난 199년)에 성장한 채 불길 속에 결연한 표정으로 등장하는데, 여담으로 3인 중 '''손권의 나이를 1살 올려 잡았다!'''[7] 조조가 잘만 하면 날로 먹을 수 있었던 서주의 인재들은 서주 대학살로 죄다 여러 곳으로 흩어졌으며, 그 중 상당수가 손권, 유비에게 머리를 보탰는데, 양주 다음으로 오나라의 인재를 많이 배출한 지역이 서주다. 이 설정도 중국사 최고의 명재상이라고 불리는 제갈량을 문학적 장치로 써서 조조를 따를 가능성이 있었던 서주의 인재들이 서주 대학살을 계기로 그를 등졌다는 사실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조조의 재능은 꿰뚫어보았으나 그의 잔혹한 본성까지 파악하지는 못했음을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다. 하기야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열세 살짜리 어린아이가, 만나 본 적도 없는 사람 인성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실제로도 제갈량의 사람 보는 눈이 완전무결 만렙은 아니었다.[8] 20세의 맏이 제갈근, 둘째이자 장녀인 고3 제갈영, 아직은 어린 막내 아들 제갈균. 제갈균은 조수석에서 큰 누나 제갈영이 안고 있다.[9] 제갈량이 후문으로 갈 것을 주장한 이유는, '정문 쪽에서 조조군을 돌파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잠긴 후문을 뚫을 가능성은 제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덤으로 잠겨서 막힌 곳이니 조조군도 굳이 그쪽에 신경 쓰지 않을 테고.[10] 신문을 붙여 차 창문을 가려 두긴 했으나 완전히 가리지 못해 틈새로 밖이 조금 보였는데, 강물이 흐르지 않는 걸 보고, 이상함을 눈치챈 제갈량이 신문을 걷어 밖을 보고 말았다. 그걸 눈치 챈 송부인이 곧바로 만류하려 했고, 제갈근도 '''"량아, 보지 마!"'''라고 외치며 눈을 가렸지만, 이미 늦은데다 손가락 틈으로 보일 건 다 보이고 있었다.[11] 이 때, 구해준 피치 보이에게 말도 없이 가버려서 장비는 성질을 부렸지만, 유비의 말대로 당장 아이들이 죽을지도 모르는 입장에서 송부인은 한시가 급하기도 했고, 지인도 제대로 믿을 수 없는 시대에 정체불명의 군벌이 나타난 격이니 아이들을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는 별 수 없었다. 하지만 제갈량이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 세 사람의 얼굴을 얼추 봤으니, 추후 삼고초려의 복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12] 해당 컷을 비판하는 의견이 다소 있다. 서주 대학살의 피해자들을 조롱한 것도 아니고, 아픈 과거를 극복하자는 의도인데 왜 쓰레기 수업이라며 화를 내냐는 것.[13] 다만 실제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해당 트라우마와 관련된 것에 관해 비이성적인 면모를 보인다. 전쟁이나 성범죄 등 끔찍한 경험으로 정신이 망가져버린 사람들은 도와주려는 상담사, 가족, 친구들에게조차 민감하게 반응하며 언어/신체적 폭력까지 휘두르는 경우도 흔하게 있다. 제갈량의 경우 PTSD로 총명하고 온순한 천재가 염세적인 또라이가 되어버렸으니, 서주 대학살이 언급만 되어도 저렇게 비이성적이고 과격하게 대응하는게 당연하다. 어린 중학생 나이에 알고 지내던 친구들, 이웃들, 주 전체 사람들이 수십만명 학살당하는 걸 두 눈으로 봐야했으니 이게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이성을 잃어버리는 것.[14] 자신은 그 때의 끔찍한 기억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는데, 고향을 유린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조조는 응분의 대가를 치르기는커녕 승승장구를 하는 꼴을 무력하게 지켜만 보며, '하늘이 조조를 살려두는 건 아직도 그를 아끼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조조를 증오하는 내가 나쁜 건가' 하고 세상을 원망하게 되어 성격까지 염세적으로 변해버렸다.[15] 사실 형주에는 서주 출신 피난민들이 꽤 많았다. 서주 대학살의 생존자들이 가장 많이 피난을 간 곳이 양주와 형주였다.[16] 애불의타임에서 학생들이 평한 바를 보면 A+ 폭격기로 통한다. 한 학생이 A를 받았는데 거기다 정 없다며 +를 붙여줬다 하고, 또 다른 학생은 시험 날 늦잠을 자서 지각했는데 "기나긴 학문의 길에 한두 걸음 늦게 시작한 게 무슨 흠이냐"며 그냥 시험을 치도록 해 주었다고. 좋건 나쁘건 "좋아(好)"라는 말을 자주해 '호호선생(好好先生)'이라고 불렸다는 명나라 야사 고금담개(古今譚槩) 기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17] '음란하다'는 요즘은 음탕하고 난잡하다는, 성적인 뉘앙스를 갖는 의미로 쓰이지만, 당시에는 '음흉하고 간사하다'는 뜻으로도 쓰였다. [18] 이 에피소드는 중국의 수경장에서 전해지는 삼국지 관련 전설을 채용한 것으로 보인다.출처 제갈량이 수경의 제자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수경 선생이 문하 제자들을 불러 놓고 "토론으로 나를 논파해서 내가 나가라고 하게 만드는 게 오늘의 시험이다, 나가는 데 성공하면 시험 합격"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제갈량이 학비가 아까우니 돈을 돌려내라고 욕설을 했고, 화가 난 수경 선생은 그를 내쫓으라고 명령했다. 이에 방통과 서서가 냉큼 일어나서 제갈량을 끌고 나갔다. 세 사람이 마당에 서서 "저희는 방 밖을 나왔으니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하고 소리치자, 그제서야 한 방 먹은 것을 깨달은 수경 선생이 셋을 다시 불렀고, 그 때부터 세 사람을 눈여겨봤다고 하는 이야기.[19] 여담으로, 방통과 아직도 텃밭에서 농사를 짓던 노부부는 그 광경을 보고 놀란 나머지, 말리느라 애를 썼다.[20] 수경스쿨 졸업생 출신으로, 현재는 유표군 자문 담당으로 일한다고. 실제로 한숭은 유표에게 사관했었다. 수경스쿨 출신이니 제갈량에게는 같은 학교 선배가 된다.[21] 양양뱅크 208-219**221-2-34. 208년은 적벽대전이 발발한 해, 219년은 번성 공방전 끝에 관우가 죽은 해, 221년은 유비가 황제로 즉위한 해, 234년은 제갈량이 사망한 해이다.[22] 아까 전 한숭과의 대화에서 제갈량을 '엎드려 때를 기다리는 '''복룡(伏龍)''''이라 평했던 사마휘는 제갈량에게 한 차례 더 역공을 맞고는 성질이 끝까지 뻗쳐, 저런 양아치한테 그런 폼 나는 별명은 가당치도 않다면서 '세상 만사 다 귀찮아서 드러누운 '''와룡(臥龍)''''이라고 평을 뒤집었다. 여담으로 사마휘가 '복룡'이라고 말할 때, 수경스쿨과 제갈량이 있던 텃밭 언덕을 갈색 갈기를 두른 흰 용이 감싸고 있었는데, 이후 '와룡'이라고 고쳤을 때, 그 용이 사마휘를 깔고 눕는 모습을 보였다.(도와주려는 한숭은 덤.) 또한, 복룡이라 하면서도 언젠가는 용이 되어 날아오를 꺼라고 사마휘가 말한 부분에는 성장하여 책사가 쓰는 관과 도복을 차려입고, 백우선을 휘두르는 제갈량의 모습이 비춰졌다.[23] 이 장면이 동시에 바닥에 누워 있었다가 조조군 휘하의 장수들의 등장에 일어서는 미래의 상사의 모습으로 이어졌고(게다가 76화에서 텃밭에 누워 신세 한탄하던 유비 옆에는 심은 지 꽤 되어 싹이 난 식물들이 있는가 하면... 제갈량의 텃밭의 식물들은 심은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다.), 제갈량이 훗날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일하다 과로사하는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24] 머리를 쓰면 열이 나고 더워서 들고 다니는 거라고.[25] 심지어 어린 시절의 제갈량과 유비가 서주에서 인연이 있었다는 설정도 공명전에서 먼저 나온 설정이다. 공명전 프롤로그를 보면 서주대학살 때 조조를 피해 어린 제갈량이 형 제갈근 아우 제갈균과 함께 피난가다가 서주를 구원하러 가는 유비 삼형제를 보고 그에게 감명받고 형주에서 황승언과 황씨를 만나는 걸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