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3신속대응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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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신속대응여단'''
'''第203迅速對應旅團'''
'''The 203rd commando Brigade'''
[image]
''''''
'''창설일'''
1984년 6월 1일(제203특공여단)
1999년(제1공중강습여단)
2005년(제203특공여단)
2021년 1월 1일('''제203신속대응여단''')
'''상징명칭'''
'''용호부대'''
'''소속'''
[image]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제2신속대응사단
'''규모'''
여단
'''역할'''

'''여단장'''
대령 [1]
'''위치'''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봉암리

1. 개요
2. 상세
3. 예하 부대
3.1. 여단직할대
3.2. 제1신속대응대대
3.3. 제2신속대응대대
3.4. 제3신속대응대대
3.5. 포병대대
4. 출신인물
4.2. 장교/부사관
4.3. 병
5. 기타
5.1. 근무환경
5.2. 여단가
6. 사건사고
7.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육군특공부대로서, 애칭은 '용호부대'이다. 1984년 6월 1일 창설 되었으며, 현재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봉암리 일대에 주둔하고 있으며, 2021년 1월 1일 제2신속대응사단 직할 신속대응여단으로 개편되었다.

2. 상세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1984년 6월 1일 각 특공대에서 차출된 인원이 모여 제9군단 예하 부대로 창설되었다. 1999년에서 2005년까지 6년간 항공작전사령부 예하 '''제1공중강습여단'''으로 편성되었다가 특공대로 환원되었다.
1995년 부여 대간첩작전에서 무장공비를 소탕[2]한 전적이 있는 부대이다. 이후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소탕작전에 투입된다. 1995년 앙골라 평화유지군, 2005년 이라크 자이툰부대, 2013년 남수단 한빛부대로 파병되었다.
이 부대는 특이하게도 1999년부터 2005년 사이 육군항공작전사령부 예하 제1공중강습여단으로 재편되었던 역사를 갖고 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육군 내에서 항공병과의 힘이 강해지면서 일시적으로 나타났던 현상. 미군 제101공수사단과 합동으로 공중기동/강습훈련도 한 적이 있다. 물론 정권이 바뀌고는 참여정부가 들어서자 얄짤없이 보병 병과가 다시 탈환해갔다.
형제부대인 201 특공여단과 마찬가지로 전술훈련이 더해진 1달 유격을 실시한다. 이때 부상자가 속출한다. 부대 특성상 격투기 쪽에서 운동하다 온 아이들을 많이 차출해 오는데 앞날 창창한 애들 줄줄이 무릎 작살 나는거 보고 있으면 안타깝다. 2주간 유격장에서 기본 유격과 특공무술을 연마하다 장애물 몇 번씩 돌고 평가도 끝났다 싶으면 슬슬 유격장 인근 산악지역으로 보내 수색정찰, 독도법, 유기물 탐지 훈련을 한다. 3주차부터는 본격적인 전술 훈련의 시작으로 민간인 거주구역과 인접하지 않은 산악지대로 헬기 강습 후 주어진 시나리오에 대응하는 훈련이 무한 반복 된다. 예를 들면 특정지역에 무장 공비가 침투했으니 일정 지대를 완전히 봉쇄 하라든가. 유격의 마지막으로 완전군장을 갖춘 후 무박 2일 100km 복귀 행군을 한다.
80년대 초에 창설된 4개 차량화보병대대가 모체이다.
2021년 제2보병사단을 모체로 창설된 '''제2신속대응사단'''에 제201신속대응여단과 함께 배속되어 공정사단 임무를 맡게 될 것이라고 한다.#

3. 예하 부대



3.1. 여단직할대



3.2. 제1신속대응대대


대전광역시 중구 괴정동에 위치했으나 계룡대가 신도안 620지역에 건설되어 이전하였다.
그리고 제2특공대대와 제3특공대대와 다른 지역에 있다 보니 아랫에 서술되어 있는 근무환경과 상당히 다를 수 있다.

3.3. 제2신속대응대대


간부 정예화가 거의 이루어진 대대이다. 나머지 대대들도 현재 간부 정예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제2특공대대가 먼저 이루어졌다.

3.4. 제3신속대응대대



3.5. 포병대대



4. 출신인물



4.1. 여단장


'''볼드체'''는 대장 진급이 된 여단장.
'''역대 제203특공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예) 준장

여단장

00대
이영호
예) 준장
육사 00기
여단장

00대
이상욱
예) 소장
육사 37기
제37보병사단

00대
서진욱
예) 준장
육사 39기
여단장

21대
허욱구
예) 준장
육사 42기
여단장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22대
신현기
예) 준장
육사 43기
제1기갑여단
[3]
23대
예병삼
예) 준장
육사 43기
여단장

25대
김경봉
준장
3사 24기
제72보병사단

26대
김광현
준장
육사 45기
여단장

'''역대 제203신속대응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대령

여단장


4.2. 장교/부사관


제3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한 이홍기 장군이 1988년 제1대대장으로 복무하였다.

4.3. 병


정훈병으로 복무했고 앙골라파병도 갔다왔다. 본인 스스로 지원했다는 것을 방송에서 여러차례 밝힌바 있으며, 아직도 당시 기사가 남아 있다. # 파병가기 전에는 여단본부에서 우편 수발병으로 있었다고 하는데 여단급 부대 사령부 인원은 항상 부족해서 우편 수발병을 따로 둘 수 있을리가 없다. 여단본부 우편수발을 정훈병이 함께 담당하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인 듯하다. 신정환은 정훈병이었다고 주임원사가 증언했다.
일각에선 고문관이라 해외로 보내버렸다(?)는 말도 떠도는데 절대 불가능한 이야기다. 해외파병부대 문서를 참조하면 알겠지만 100% 지원제이며 대한민국을 대표할 엄선된 엘리트 자원만 가려뽑는데다 여러 혜택도 두둑하다보니, 고문관은 커녕 오히려 최고의 엘리트 자원들이 줄을 서서 경쟁한다. 파병에 앞서 강도높은 훈련을 받는 것은 덤. 실제로 고문관인 경우 해외파병 선발과정에서 아예 중대장이 추천서를 써 주지도 않는다.

5. 기타



5.1. 근무환경


그리고 나름 후방에서는 특수임무부대 취급을 받아서 다른 후방부대와는 다르게 각종 개인장구나, 총기 악세사리 같은 면에서 최신장비들이 지급 된다. 최전방에 보급되는 K2C1소총을 쓰는것은 물론 모든총기에 레일장착과 손잡이와 광학장비를 쓸수 있다.(간부에 한해서). 그리고 분대장이나 간부급이면 야시경도 지급된다.
여튼 근무환경이 최전방보다는 굉장히 널널한 편이지만 주변 후방부대에 대비하면 결코 그렇지도 않다. 어디까지나 최전방, FEBA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널널한거지 각종 훈련이나 체력단련같은 면에서 생각보다 빡세게 굴린다.
특히 특공부대라는 이유로 체력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크다. 실제로 아침에 구보 10KM를 시키고 오후 체력단련을 따로 했을 정도이다 지금은 구보 10KM까지는 안한다는 것일 뿐이지 비가 와도 체력단련은 절때 빼먹지 않는다. 현 여단장이 취임한 이후 체력단련이 중요시 여겨져 일과시간 이후 체단시간을 통해 상당한 체력단련을 시킨다고 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 꼴로 무장구보및체력단련을 실시 하는데 말그대로 무장한채 구보와 체력단련을 하는것이다. 이게 개인 측정이 아니라 심지어 소대 측정이기 때문에 뒤쳐지는 사람이 있으면 앞서 말한 선임 간부 소대장 중대장할것 없이 모두가 강제로 밀어주고 당겨주고 같이 끝까지 함께한다.
또한 특급전사에 대해서 부대 자체가 강박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전부대원, 못해소 전간부 특급전사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 특급을 받지 못한 신병이 있으면 모든 소대 선임 간부 소대장 중대장님이 직접 나서서 신병을 이끌고 강도 높은 체력단련을 한다. 그래서 아무리 훈련병시절 이나 이병때 체력 미달인 병사가 와도 일병을 달기만 하면 적어도 특급전사 체력이나 바로 그 언저리 되는 체력을 가지게 된다. 단거리 달리기의 경우 특급전사 측정기준을 넘겨, 대상인원 전체가 군가를 불러가며 2열 종대로 구보를 해서 전원 특급을 받기도 한다. 윗몸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의 항목에서 특급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선후임끼리 자체적으로 연습하여 그 기준까지 체력을 끌어올리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 훈련에 미숙한 인원보다 체력에 미숙한 인원에 대해 더 부정적인 인식이 있곤 했다.(중대마다 차이가 있다)
그리고 본부중대에 가면 전부 다 꿀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그건 절대 아니다. 본부중대에는 비교적 몸을 쓰지 않는 행정병이나 운전병 보직의 경우 몸적으로는 편하지만 각각의 스트레스는 존재하기 마련이고 본부중대 에도 화기반이 존재하는데 박격포반과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할수 있는 저격반이 존재한다. 포반은 알사람 다 알테고 저격반 같은 경우는 관측수, 저격수 모두 뛰어난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힘들다.
그리고 막사는 전부 신식이다. 모두가 침대를 쓴다. 그리고 정말 있을건 다있고 용사가 일단 적은데 시설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커서 여유가 있다. 사지방도 넓고 노래방도 각 대대마다 기계가 적어도 5대씩이나 있으며 PX도 상당히 넓고 깨끗하다
그리고 막상에 들어가보면 신기한게 모든 막사가 책이 정말 많다. 농담이 아니고 그냥 복도 마다 책장이 있으며 심지어 화장실에도 책장이 있다. 그리고 도서관도 따로 있는데 당연히 도서관에도 책이 있고 계단 올라가는 구역에도 책장이 있어서 책이 정말 많다. 이전 여단장이 책과 가깝게 지내라는 의미로 모든 막사에 도서관화를 진행 했었는데 그때 모든 구역에 책장이 구비 되어 있고 책이 구비 되어 있다.
그리고 책장이라고 해서 무슨 동네 서점에 있는 그런 책장이 아니라 직접 나름 디자인을 생각해서 만든 디자인도 꽤나 이쁜 책장들이다 심지어 벽화도 그려져 있다. 그래서 부대 개방 행사나 면회같은걸 할때 부대를 탐방 할 수 있는데 그때 오신 모든 분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막사를 생각하고 왔는데 어디 이쁜 도서관에 온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그리고 각 대대 마다 풋살장도 있다. 풋살장이라고 하면 그냥 흙이나 있고 골대 몇개 있는걸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진짜 인조 잔디가 깔려 있고 엄연한 풋살골대가 구비되어 있는 진짜 풋살장이다.
사실 막사, 시설, 개인장구류 같은 면에서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이유가 후방에서 201여단, 각 사단 기동대대와 같이 몇없는 특수임무부대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203여단은 작전사령부 예하의 특임부대라는 점에서 사단라인보다 더 많은 지원, 장비배정을 우선적으로 받는 특징도 있다.
다만 여단급이다 보니 의무환경은 안좋다라는 얘기가 있다. 사단급들은 아예 의무대가 편성되어 있어 간단한 치과 치료같은것을 사단내에서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203여단은 사단 의무대보다 현저히 작은 편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무슨 대대 의무실 같은 규모는 아니고 꼭 필요한 부분들은 있긴하다. 그래서 의무대에서 해결 못할 것 같은 환자는 바로 외진을 때린다. 오히려 의무대 환경이 안좋다 보니 바로 외진을 가버리는 특전을 얻을 수 있는것이다.
그리고 용사의 수가 적다는 측면에서 불침번, 경계근무에 들어가는 인원이 적어서 근무가 상당히 여유가 없는 경향이 있다. 본부중대의 경우 용사의 수가 그래도 어느정도 유지가 되니 상황은 낫지만(어디까지나 다른 중대에 대비하여 말하는 것이다.) 다른 중대는 정말 인원수가 그리 많지 않아서 근무가 퐁당퐁당 짜여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이것도 옛 말이다. 신속대응여단 개편전 용사를 많이 뽑음으로써 어느정도 해결됐다.

5.2. 여단가


1.선열의 옛터전 무열의 웅지를
오늘에 이어나갈 용호용사들
끓는피 가슴속에 겨레가 있고
불타는 눈빛속에 충성이 있다
승리의 용호용사 203특공여단
장하다 그이름 203특공여단
2.영광된 조국을 길이 빛낼
우리는 자랑스런 용호용사들
뜨거운 가슴마다 화랑 혼되리
불굴의 투혼으로 헤쳐 나가자
승리의 용호용사 203특공여단
장하다 그이름 203특공여단

6. 사건사고


  • 2018년 03월 23일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위치한 사격장에서 사격 훈련을 하던 도중 김모 하사가 머리에 관통상을 입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 205여단 해체후 203여단으로 흡수되고 여러 잡음이 많았는데 훈련도 훈련이지만 203여단 간부인성의 문제점이 들어나는 사건이 일어난다. 신병 피자 탈취사건이라 불리는 이사건은 신병 첫면회에서 신병 부모님이 피자 3판을 소대원들과 먹으라고 준걸 지휘통제실에 당직서던 장교및 부사관들이 동의없이 취식한 사건이다. 면회복귀 인솔이후 지휘통제실에 피자취식 허가를위하여 피자를 지통실에 두고 소대복귀후 지통실에 피자를 찾으러 갔지만 돌아온건 이미 다먹었단 지통실 간부들의 말이였다. 이사건으로 해당 신병소대 최고참이던 모병장은 여단참모에게 이사실을 고하고 여단이 발칵 뒤집어진 사건이 일어났다.

7. 여담


  • 자체 유격장이 없는 대전권 기행부대(계룡대 제외)에 유격장 자리를 빌려준다고 한다.
  • 과거(2008~2010?)에는 타 지역으로 파견 임무를 많이 갔었다. 그래서 대대직할 등 잔류 인원만 부대에 상주하며, 대다수의 인원들은 전주 등 여러곳으로 파견 임무를 떠나 폐막사에서 생활하거나 24인용 텐트를 짓고 생활하며 그곳에서 훈련하기도 했다.
  • 2009년 초(?), 205특공여단이 해체 된 후 그 인원들이 201, 203특공여단으로 흡수되어 군 생활을 같이 하였다.
  • 2008년까지만 하더라도 각 훈련소에서 차출되어 온 인원들의 대부분은 안경을 쓰지 않은 시력이 좋은 대원들이었다. 특정 중대의 경우 2007년 까지 신검1급, 키180cm, 안경 미착용 인원들로 중대가 구성되었으나, 2008년 이후 위 조건이 아닌 인원도 근무하였다. (이후는 추가 서술 바람)
  • 2010년경, 모종의 이유로 한 소대장이 탈영한 사건도 발생하였다!
  • 훈련소에서 자대 배치를 마치면, 특공교육대를 가게 된다. (2020년 기준 특공교육대는 폐쇄되어 잠겨있고, 더는 가지않는다)
  • 특공교육대에서 약 3~4주간 특공무술, 태권도, 패스트로프 등 기초 훈련들을 배운다. (2008년 기준)
  • 태안기름유출 당시, 대민지원에 참가한 부대이다.( 자원봉사자 분들이 군인들 수고한다고 시켜준 피자, 치킨, 족발로 식사해서 파견기간에 행복했다고 한다.)
[1] 신속대응사단 직할 신속대응여단으로 개편되면서 여단장 대령으로 변경[2] 생포하였으나 병원에서 총상으로 사망.[3] 2016.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