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國防部 遺骸發掘鑑識團'''
'''MND Agency for KIA Recovery & Identification'''
'''/ MAKRI'''
[image]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
'''창설일'''
2000년 04월 00일[1]
2007년 1월 1일 [2]
'''상급기관'''
[image] 국방부
'''규모'''
여단
'''역할'''
6·25 전사자의 유해발굴 및 감식
'''단장'''
2급 군무원 허욱구[3]
'''위치'''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50
국립서울현충원
'''전화번호'''
'''1577-5625'''
'''약칭'''
MAKRI, 국유단
''''''
적색, 청색 국방부마크
'''표창'''
2007년, 2009년, 2011년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우수부대 표창

'''홈페이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홈페이지
유해소재 제보
유전자 검사 신청
1. 개요
2. 상세
3. 조직 및 구성
3.1. 계획운영처
3.2. 조사/발굴처
3.3. 신원확인처
3.4. 감찰실
3.5. 본부대
3.6. 지원대대
4. 유해발굴 추진절차
5. 유전자 검사 절차
6. 추진 실적
7. 2020년 발굴 계획
8. 출신인물
8.2. 장교
8.3. 병
9. 기타
9.1. 근무환경
9.2. 부대가
9.2.1. 부대영상
10. 사건사고
11. 여담
12. 같이 보기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

-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단훈

'''6.25 전사자유해의 발굴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유해발굴감식단의 설치)'''
① 전사자유해의 조사·발굴 및 신원확인 등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국방부에 유해발굴감식단을 둔다.
② 유해발굴감식단에 단장 1인과 필요한 군인 및 군무원을 둔다.
③ 단장은 영관급 장교 또는 군무원 중에서 국방부장관이 임면한다.
④ 그 밖에 유해발굴감식단의 설치·운영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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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國防部 遺骸發掘鑑識團, MND Agency for KIA Recovery & Identification)은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하여 가족의 품으로 보내는 보훈 사업을 수행하는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직할 부대이다.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라는 부대훈 하에 활동 중이다.

2. 상세


6.25 전쟁 당시 미수습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국방부 직할 기관. 단장은 군무원 또는 영관급 장교가 보임된다.[4]
2000년 4월 6.25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육군에 의해 시작되어, 2007년 국방부 소속으로 창설된 이 부대는 육·해·공군 및 해병대까지 모두 모여 전몰 장병들의 유해를 찾아 모셔온다. 한국전쟁 격전지 대부분이 산이라 유해발굴병들은 전부 육군 산악수색대에서 차출하다가 개별모집병(현재는 전문특기병)으로 전환하여 개인지원하여 합격해야 한다. 발굴병과 감식병은 전원 육군에서만 뽑고, 나머지 군 출신들은 전부 발굴단 본부의 조리병이나 보급병, 행정병, 수송병, 안장·영결식을 위한 자체 의장병인 영현병이 소속된 개별 소대에서 차출한다.[5]
1개 팀은 각 6~8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팀장은 보통 육군상사이지만 가끔 원사중사가 맡는 경우도 있다. 팀별로 대개 GPS, 통신장비, DSLR, 캠코더와 삽, 호미, 벌목도 그리고 까지 가지고 다닌다. 공식적으로 1인당 대략 20kg 쯤을 지고 1,000m 내외 정도 높이의 산을 하루 20~40km 씩 오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본 발굴에 사용되는 도구는 발굴이 시작하는 날 전부 가져가서 발굴지에 두고 그 다음 날 부터는 개인이 마실 물과 밥만 챙겨서 다니기 때문에 짐의 무게가 그리 많이 나가는 편이 아니며, 최근에는 유해가 그리 많이 나오지 않아 소관 또한 유해가 식별되고 나서 수습하는 날 챙겨서 올라가는 편이다.
감식과는 발굴팀이 파견을 나가면 그에 맞춰 세워지는 임시감식소로 파견을 나가거나[6] 중앙 감식소에서 근무를 하게 된다. 총 인원은 8~14명이며 정해진 편제는 없다. 임시감식소는 지역에 따라 2~3개 정도가 세워지게 되며 대부분 파견 초기에는 발굴병들과 함께 생활하지만 발굴팀이 발굴지역을 옮기면 혼자 남겨지는 경우가 많고, 처음부터 혼자인 경우도 있다. 13년도 까지는 감식차량운전병과 함께 지냈지만 14년도 부터 운전병을 군무원인 감식관이 주말에는 자택이 있는 서울로 복귀하는 점을 이용해 서울로 복귀시키게 되면서 주말에는 감식병 혼자만 남게 된다.[7] 요즘은 감식병도 파견을 나가서도 외출, 외박을 나갈 수 있다. 모든 감식관들이 금요일에 자대로 복귀했다가 월요일에 다시 파견지로 이동하기 때문에, 감식관의 차량으로 자대에 복귀, 자대에서 주말간 외출, 외박을 나갔다가 돌아온 뒤 다시 감식관의 차량을 타고 파견지로 돌아가는 형태로 나가고 있다. 파견시 장점이라면 임시감식소 안에만 있기 때문에 여름에는 에어컨 밑에서 시원하게 있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있을 수 있다는 것과 터치하는 사람이 없기에 업무만 잘 처리하면 편하다는 것이다.
장비와 인원 여건 상, 한 개 발굴팀이 한 번에 진행할 수 있는 발굴지역의 일반적인 한계는 2~3개 지역 정도이다. 무리를 한다면 4~5개의 지역도 돌릴 수 있지만 발굴지역을 많이 설정할 수록 여러 지역에 팀원들이 흩어져 효율이 급감한다.
발굴방식은 원래 보통 산을 오르내리며 한국전쟁 당시 쓰던 참호나 개인호들을 찾아내 발굴하는 것이었다. 물론 7명만으로는 손이 부족하니 지역 병사들의 지원을 받는데, 한팀+지원병들이 하루에 300호 정도를 찾아 굴토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해발굴사업이 시작되고 10여년이 넘어가면서 탐사를 통해 식별한 개인호를 대부분 굴토함에 따라 점단위 개인호발굴은 거의 종료되었고, 2013년부터는 이미 발굴된 개인호 사이사이를 면단위로 굴토하는 전면발굴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전면발굴은 병력들이 일렬로 줄을 맞춰서 사면을 따라 능선 꼭대기까지 올라오면서 굴토하는 방식으로 해당 지역을 빠짐없이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전면발굴이 이루어진 지역은 발굴종료 후 복토가 실시되며, 다시는 발굴병력이 투입되지 않는 게 원칙이다.
파다보면 지뢰부터 포탄, 불발탄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 때문에 발굴현장에서 공병이 보호장비를 입고 금속탐지기를 돌리는 장면도 볼 수 있다. 발견된 폭발물은 EOD에 인계한다. 공군 항공탄의 경우 공군이 인계 받아 불발탄 처리를 하게 된다.
지원나온 병사들이 유품을 찾으면 유품을 인계받고, 유해를 찾으면 유해와 유해와 같이 나온 유품, 유해가 식별된 자리를 인계받아 국방부 소속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의 접근을 통제하고 확장발굴 후 수습한다.
유해를 발굴하면 보통 주변을 파내고, 유해에 쌓인 흙은 붓질로 처리한다. 그리고 흙을 제거한 모습 그대로 실측도, 영상, 사진 촬영을 한 후 유품을 회수하고 소관에 안치한 후 황태포 또는 노가리, 백화수복이나 소주 또는 막걸리 등으로 약식 노제를 지낸다. 현장에 이동식 감식 차량이 나올 경우, 여기서 국적, 성별 등을 판별한다.[8] 대개는 부대 내에 마련한 임시감식소로 이송하고 그 곳에서 임시감식을 한다.[9]
임시감식을 끝낸 유해는 봉송 차량[10] 혹은 비행기(비행기로 이용시 군공항인 서울공항으로 유해를 운반)로 서울의 중앙 감식소로 이송하고, 이곳에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유족을 찾는다. 이를 위해 실종, 전사 장병 유족들의 DNA 시료채취가 준비되어있다.[11] 유족을 찾은 유해는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찾지 못한 유해는 현충원 지하 보관소에 안치된다.[12] 북한군 유해는 경기도 파주에 마련된 적군묘지에 매장한다. 중국군 유해는 그 일부를 몇 차례 북한을 통해 중국에 송환하였으며,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루어진 이후 중국 측에 직접 송환하는 것을 검토하였고, 박근혜 대통령시진핑국가주석과의 회담을 통해 성사되어 2014년 3월 28일, 437구의 유해가 송환되었다. 이후 2015년 3월 20일, 68구의 유해가 송환되었다. 2016년 3월 31일, 36구의 유해가 송환되어 총 541구의 유해가 중국으로 송환되었다.[13]
2000년부터 발굴사업이 시작됐는데, 본격적으로 사업이 크게 확장된 시기는 2007년이다. 2018년 현재까지 발굴되어 수습한 6.25 전사자 유해 수는 약 10000여구. 아직까지도 수습되지 못한 유해는 약 12만 4천여구라고 한다. 문제는 요즘에 유해발굴사업하기 무척 힘든 것이 한국전쟁 당시 교전 지역 찾는다는게 굉장히 어려운 것도 있거니와, 그 교전지역을 찾는다해도 최근에 개발되는 지역도 굉장히 많아 무척 어렵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경기도 파주 일대가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 중 하나였는데, 최근 파주는 신도시 개발지역으로 발굴하는데 있어 매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또한 6.25전쟁을 직접 겪으셨던 어르신들도 날이 가면 갈수록 찾아보기 매우 힘들다는 것도 있으며, 결정적으로 유해가 있다해도 세월이 지났다보니 거의 다 썩어 없어지는 경우가 대부분.
2015년 12월 7일 중국으로 송환된 중국군 유해가 잘못송환 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현충원 내에 있는 유해들이 대거 재감식을 거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2018년에 들어 남북간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면서 바빠지게 될 부대 중 하나이다. 특히 남북 장성급 회담인 2018년 6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2018년 7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남북 유해공동 발굴에 대한 논의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다가 2018 제3차 남북정상회담평양선언에서 남북 유해공동발굴을 남북공동보도문에 명시하며 합의하였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2018년 10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도 DMZ에서의 남북 유해공동 발굴 합의를 재확인하며 시작하게 되었다. 2018년 11월 현재 시범적 발굴이 진행중이며, 내년 2019년 4월부터 10월까지 전면적 발굴로 확대될 예정이다. 특히 DMZ에서 유해발굴은 정전협정 이후 65년만에 이루어지는 일이며, 철원 화살머리 고지에서 완전한 형태의 유해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 또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나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이 DMZ를 방문하며 유해발굴을 격려하고 있다.
2019년에는 인력 48명을 증원할 예정이다. 이는 내년 4월에 있을 본격적인 유해발굴에 필요한 인원이라고 한다. 같은 해 에스원도 후원했다.

3. 조직 및 구성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크게 계획운영처, 조사/발굴처, 신원확인처, 감찰실, 지원대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처 휘하 계획과, 운영과, 조사과, 발굴1과, 발굴2과, 중앙감식소, 유전자분석과, 유가족관리과, 지원중대, 지원소대, 영현소대로 구성되어 있다. 각 처장, 실장, 대대장은 중령 또는 4급 군무원(서기관)이 보임되며, 각 처 휘하 과, 중대는 소령 또는 5급 군무원(사무관)이 보임된다. 지원대대의 경우, 휘하 중대장은 대위며, 휘하 소대장은 상사가 보임되어 있다.
2018년 군사합의로 DMZ 발굴이 시행되면서, DMZ 발굴 사업을 총괄하는 TF가 있는데, TF장은 계획운영처장이 겸하고 있으며, TF 소속 부서원은 각 처부에 소속된 직원을 차출하거나, 신규로 임용된 군무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3.1. 계획운영처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전반적인 업무 방향성 수립과 기획, 예산 수립 및 편성, 인사, 대외협력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기업의 기획조정실과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2019년 조직개편으로 기존 계획운영과와 대외협력과가 통합되어 신설된 조직이며, 계획운영처 위하에 계획과와 운영과가 있다. 계획과는 대외협력 업무와 함께 단 공통의 사업 계획 수립, 조정 업무를 수행하며, 운영과는 단 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인사, 수송, 재정, 회계, 보급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단 내 근무하는 행정병 다수가 계획운영처에 소속되어 있다.

3.2. 조사/발굴처


유해 소재 탐사 업무와 이를 바탕으로 발굴을 하는 조사/발굴 과정을 통할하는 처부로 2020년도에 신설되었다. 처장 휘하에 조사과, 발굴1과, 발굴2과가 있으며, 각 과장은 5급 군무원(사무관), 소령이다. 조사과는 조사발굴처의 업무 중 말 그래도 조사/탐사의 업무를 담당하는데, 전국으로 탐사를 나가면서 유해가 어디있을지 지역 주민이나 유가족, 참전 용사의 증언을 토대로 유해 발굴 지역을 선정한다. 발굴1과는 종심지역[14] 발굴을 담당하며, 주로 조사과에서 선정한 발굴 가능 예정지역을 발굴한다. 발굴1과가 남한 전역을 담당한다면, 발굴2과는 순수 DMZ 지역만을 담당한다. 2018년 군사합의로 DMZ 발굴을 시작하면서 이를 전문적으로 담당할 부서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는데, 발굴2과에서 DMZ지역의 발굴을 담당한다. 발굴담당은 육군상사나 중사가 보임되는데, 몇몇 팀의 경우, 군무원이 보임되어 있다. 유해발굴병이 이 처부장의 지시를 받고 발굴 업무를 수행한다.

3.3. 신원확인처


기존에 유해와 유가족 연결 사업을 담당하던 유가족관리과와 신원확인센터를 통합하고, 여기에 국방부조사본부의 유전자분석을 담당하는 부서 한개를 떼와서 2020년에 신설된 거대처부다. 조사/발굴처에서 수습한 유해를 감식하고, 감식한 유해에서 추출하나 유전자를 분석하고, 유가족관리과에서 수집한 유가족 유전자를 상호 연결하여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는 이른바, 신원확인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수습된 유해 개체수가 많아짐과 동시에, 단 본부 내 장소가 협소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현재 본부 옆에 신원확인센터 건축이 진행 중에 있다.

3.4. 감찰실


말 그대로 감찰을 담당하는 부서다. 아래 비판 항목에도 나와 있지만, 전 단장의 횡령 및 성희롱으로 인하여 감찰 부서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어 2019년 조직 개편으로 신설된 조직이다.

3.5. 본부대



3.6. 지원대대


2020년 조직 개편으로 신설된 처부이다. 기존 병력관리와 발굴을 통합해서 관리하던 발굴대대가 발굴 업무와 조사 업무 연관성을 통한 조사발굴업무 향상을 기치로 발굴업무를 조사/발굴처로 이관하고 순수 병력관리만 담당하는 부서의 필요성이 제기된 바, 지원대대가 신설되었다. 지원대대 휘하 지원중대가 있고, 지원중대 휘하 영현소대와 지원소대가 있다. 편제가 개편되는 당시, 발굴병 소속 편제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지원대대에서 국유단에서 근무하는 모든 병사를 관리하도록 논의가 완료된 이후, 지원대대 지원중대 소속으로 편제되었다.

4. 유해발굴 추진절차


  • 1단계: 발굴준비
    • 전투기록 분석 및 지역주민 / 참전용사 증언 확보
    • 현장답사 / 발굴가능지역 결정
      • 전투현장답사, 개인호·교통호·유품 등 주변정황 분석
    • 행정관서 / 토지 소유주 등 발굴예정지역 협조
  • 2단계: 발굴 / 수습
    • 문화재 발굴기법 적용 정밀발굴, 기록
      • 정성과 예를 다한 발굴, 수습
    • 피아 식별(유품, 기록, 증언, 정황분석)
    • 한국 전통방식에 따라 입관, 태극기 포장
      • 지역단위 영결식 거행: 군(사)단장 주관
  • 3단계: 신원확인
    • 유해감식: 성별, 나이, 사망원인, 인종감식 등
      • 기초감식(현장 임시감식소): 성별, 연령 등 육안 감식 위주 → 정밀감식 (중앙감식소): 정밀장비를 사용한 과학적 감식
    • 전사자·유가족 탐문,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
    • 유전자(DNA) 검사: 유해와 유가족 간 비교(친족관계 확인)
      • 감식결과 DB 구축, 관리
  • 4단계: 후속조치
    • 국군 전사자
      • 신원 확인: 화장 후 현충원 안장
      • 신원 미확인: 중앙감식소 보관(신원 확인시 까지)
    • 기타

5. 유전자 검사 절차


  • 1단계: 시료 채취
    • 채취대상: 전사자의 친·외가 8촌까지 가능
    • 전국 보건소, 군 병원
      • 보건소/지소, 군 병원 방문 시 무료건강검진 제공(당뇨, 간 기능 등 30여 항목)
    • 3차원 스캐너, 비교분광기, 치아 X-RAY 등 정밀 감식 장비 활용
    • 유해발굴감식단 직접 방문
    • 전화(유전자 채취키트를 자택으로 우편 발송)
  • 2단계: 유전자 검사
    • 발굴 유해와 유가족 유전자 비교분석
    • 검사 소요 기간: 10개월 내외(시료 상태 및 여건에 따라 최대 12개월까지 소요)
  • 3단계: 결과 통보
    • 1차: 채취 후 10개월~12개월 후(자택 통보)
    • 이후: 연 2회 지속 통보(전, 후반기 구분)
      • 발굴되는 유해와 비교분석(일치 또는 불일치)
  • 4단계: 검사 후 조치
    • 신원 확인 시: 정중한 예(禮)를 갖춰 유가족 통보 후 국립현충원 안장
    • 미확인 시: 향후 발굴되는 유해와 지속적으로 비교분석
      • 유전자 자료 영구 존안

6. 추진 실적


  • 국군전사자발굴: 10,543구(2020년 6월 15일 기준)
  • 총계: 12,071구
  • 아군
    • 국군: 10,543구
    • UN군: 19구
    • 소계: 10,562구
  • 북한/중국군
    • 북한: 738구
    • 중국군: 771구
    • 소계: 1,509구
  •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 56,747명 (2020년 6월 30일 기준)
  • 신원확인 전사자: 142명

7. 2020년 발굴 계획


  • 기간: 2020년 5월 6일~11월 말 (당초 3월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연기)
  • 지역: 강원도 양구 등 7개 지역을 시작으로 전국 36개 지역에서 전개
  • 투입인력:
    • 전반기 (5~7월): 육군 1, 8, 12, 15, 21사단 등 총 19개 부대
    • 후반기 (9~11월): 육군 3, 6, 7, 9사단, 해병1사단 등 총 17개 부대

8. 출신인물



8.1. 단장


'''볼드체'''는 대장 진급이 된 단장.
'''역대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박신한
예) 육군 대령
학군 18기[15]
前 감식단장
前 대구지방보훈청장 [16]
2대
유차영
예) 육군 대령
3사 17기
前 감식단장

3대
이학기
예) 육군 대령
육사 41기
前 감식단장

4대
허욱구
2급 군무원 [17]
육사 42기
제203특공여단
[18]

8.2. 장교



8.3. 병


포도사태

9. 기타



9.1. 근무환경


파견병들을 제외한 주둔병들에게 있어서는 국방부 근무지원단을 능가하는 수준의 근무 환경을 보여준다. 일단 기본적으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특성상 상시적으로 업무를 봐야하는 문제와 함께 국정 영구 사업을 추진하는 여건 상 훈련이 없다. 불침번은 없으나 당직 근무가 있으며, 초소는 오후 일과 이후에만 선다.[19] 또한, 위수지역은 없으며, 출타율도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부대 바로 앞이 동작역이다 보니, 대개 평일 외출에는 이수에서 놀며, 수도권에 거주하는 병사인 경우, 집에도 다녀온다.
육군으로 발굴병이나 감식병이 아닌 보직으로 이 부대에 배치받은 사람은 3년치 운을 모두 쓴 것이라고 봐야 한다. 공군이나 해군의 경우, 아무래도 육군본부에서 출발한 이 기관 특성상, 해공군으로 가지는 메리트 몇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단점보다는 장점이 우선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국직기관에서 근무하므로 육군병들은 근무복과 단화가 지급된다.
부대는 서울 현충원 내에 있으며, 국방부 근무지원단 군악대대와 현충원의장대랑 같은 주둔지를 공유한다. 그러다 보니 부대 자체 뿐만 아니라 군악대대와 현충원의장대에 근무하는 해병, 공군, 해군랑 같이 생활한다.
PX는 군악대대에서 운영하는 PX를 이용하며, 면회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굉장히 협소하고 상품도 그다지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다. 군악대대에서 운영하다보니 간혹 의사 전달이 제대로 안돼서 PX가 운영을 안하는데 PX앞에서 줄서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발굴병과 일부 파견가는 감식병은 군생활의 대부분을 파견근무로 보내기 때문에 전방이나 후방은 물론이고 심지어 해병대까지[20] 여러 부대의 다양한 문화와 환경, 생활패턴을 체험할 수 있다. 12개 발굴팀의 분위기는 군생활 대부분을 서로 떨어져 지낸다는 점, 소수인원의 특성상 개인 개성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작용하는 점, 파견나간 부대의 문화에서 받는 영향, 팀장의 성향이 어떠한지 등과 같은 다양한 변수로 인해 팀마다 시기마다 천차만별이다.[21]

9.2. 부대가



9.2.1. 부대영상




10. 사건사고


2018년 12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이 공금을 횡령하고 여성 부하직원한테 성희롱을 한 의혹이 제기돼서 직위해제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제 군인이 아닌 유해발굴에 전문적인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전문가를 군무원으로 선발하여 단장을 맡게 한다고 한다. 또 유해발굴감식단 지역대장을 맡고 있는 영관급 장교 1명도 폭언 및 성희롱 발언으로 조사받고 있다.

11. 여담


  • 남북 유해 공동발굴이 추진되고 있는 만큼 6.25 전쟁 유가족의 DNA을 채취 중이라고 한다. 유가족 DNA 채취는 전국 시·군·구 소재 보건소 및 보건지소와 군병원에서 유전자 채취를 할 수 있으며, 유해발굴감식단 직접 방문 및 전화(1577-5625) · 홈페이지에서 신청 할 수 있다. 또한 현역 입영시 DNA 시료를 채취하니 꼭 참여하자.

12. 같이 보기



[1] 육군본부에서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시작[2] 국방부 직할부대 창설[3] 예) 육군 준장[4] 현 단장은 2급(이사관) 군무원[5] 따라서 다른 국직부대처럼 선임과 같이 또는 보다 먼저 전역하는 경우가 생긴다.[6] 감식관 1명, 감식병 1~2명[7] 현재는 감식차량 자체를 운영하지 않고 있으며 감식관들은 부대 차량으로 월~금 동안 파견지에서 생활하다가 금요일에 부대로 복귀해서 월요일에 다시 파견지로 돌아가고 있다.[8] 당일 임시감식을 할 경우에는 현장으로 감식 차량이 간다.[9] 감식관 1명, 감식병 1+@명.[10] 최근에는 대부분 봉송 차량으로 봉송하며 비행기는 사용하지 않는다.[11] 보건법이 바뀌면서 채혈이 불가능해져 구강상피세포 채취로 변경되었다.[12] 미국이나 중국으로 오인송환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신원미확인 유해는 국군 추정을 우선시하여 무명용사로서 신원이 확인되거나 가족을 찾을 때까지 안치된다.[13] 14년 15년 송환때 적군의 DNA는 채취, 감식을 하지않아 논란이 일었고, 16년 송환에는 DNA감식을 실시했다.[14] 전선지역이 아닌 남한 전역을 말한다.[15] 성균관대학교[16] 2007.01.01~[17] 예) 육군 준장[18] 2019.02.22~ [19] 그외 나머지 시간은 영문을 아예 잠가버리며, 그외 열려있는 시간에는 군악대대가 초소 근무를 선다.[20] 주로 포항 지역을 발굴할 때. 이때문에 발굴병 역시 해병대와 엮이는 여타 육군병의 기분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보직 중 하나이다(...).[21] 따라서 전역자가 생활에 대해 입대예정자에게 해주는 조언이 무의미한 경우가 많으며, 부대에 대한 전역자와 현역의 인식차가 유달리 큰 부대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