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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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 육군동원전력사령부 예하 '''제73보병사단'''. 별칭은 '''충일부대'''. 경례구호는 '''충성'''.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군 역사상 최초의 차기 동원사단이다. #
경례구호는 충일부대답게 '''충일'''(忠一. 하나되어 충성)이었으나 2012년도에 '''충성'''으로 바뀌었다.
2. 상세
동원사단의 특징상 현역 병력의 수가 일반 상비사단의 1/10 수준(1개 중대가 1개 분대 규모이다)으로 자대 배치받는 경우도 드물고, 부대 규모도 작은 탓에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심지어 훈련소에서 과정을 모두 마치고 자대배치를 기다리는 병사들에게 자대를 알려줄 때, 조교마저 고개를 갸우뚱하는 경우가 많다.
규모가 대충 얼마정도냐면..통상적인 보병사단(즉, 상비사단)과 비교하면 병력규모가 1/10 수준으로 축소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예: 상비사단 중대급 = 동원사단 연대급 / 상비사단 분대급 = 동원사단 중대급) 따라서 일반적으로 타 부대의 경우 소대 단위로 움직이지만 동원사단은 중대급으로 움직인다. 분대와 소대의 개념이 없다고 보면 된다.[1]
2010년까지 인원은, 일반 연대는 중대당 약 10명으로 대대가 약 55명 정도였다. 기본 10명에, 본부 중대나 포 중대는 몇 명씩 더 있었다.이 때는 그나마 중대당 10명이라도 사람이 있어서 근무나 작업 강도가 어찌저찌 버틸만했다라고 한다면...2010년 말에 차기 동원사단 부대개편을 실시하여 차기동원사단이 되면서 타 동원사단보다 더욱 적은 현역병을 보유하게 되었다.대략 절반 수준. 개편전에는 일반 보병대대 기준으로 TO가 50명이 넘었으나 개편 직후 TO 는 22명선(...)이 되었다. 한 중대당 인원이 4~5명 정도에 불과하다.
이 때 인력문제를 감안하여 동원 물자 창고를 컨테이너화 하고 대형 크레인을 설치했었다. 개편 이후 근무와 작업에 대해 강도가 많이 오른다. 이는 후술한다.
대대본부는 5명, 그 외 중대는 4명씩으로 개편되어 병과 간부 다 합쳐서 1개 대대가 30명이 간신히 넘는 상태가 된다. 또한 연대마다 수송부가 별개로 존재했으나 부대개편 이후 수송부 인원 대부분이 전출+남은 인원은 사단 수송부로 빠져나갔기 때문에 1호차(연대장 레토나) 운전병 외의 운전병은 '''없어졌다'''. 실제로 모 차기 동원사단도 똑같이 돌아가고 있다. 편제가 너무 줄어들어서 차량관리나 배차운용면에서 비효율이 커지다보니 사단의 모든 수송주특기 인원들을 한 중대에 때려넣어 버린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량대비 운전병이 부족한 실정이므로, 이런 사단 수송부의 배차현황을 보면 레토나나 민수승합차에 연대 간부직접운전자 열 몇명을 줄줄이 달아놓고 자기들끼리 하루종일 끌고 다닐 수 있도록 방임해버린다. 간부직접운전자의 확대가 향후 군의 수송지원작전방향이기도 하며, 일차적으로 말단 1호차 운전병 편제를 죄다 예비군으로 돌려버린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이다. 최근 지침 하달로 간부직접운전자의 군트럭 단독운행도 가능해졌다. 노부스나 5톤 메가트럭도 간부직접운전이 가능해졌다. 간부가 하기 싫어하니까 문제지...
군생활의 꽃인 휴가에 관련해서는, 개편전에도 한 중대에서 4명 이상 휴가 나가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는데[2] , 한 중대 5인 이하로 편제가 개편되고 나서는 2명도 불가능... 이로 인해, 인원이 20명~25명인 대대에서 3~4 명만 동시에 휴가를 나가도 부대 운용이 삐그덕거리는게 느껴질 정도로 안습한 상황이 벌어진다.[3]
다음으로 급상승한 근무 강도의 정도를 설명하자면, 부대개편을 실시하여 병력이 반토막난 당시, 당장에 근무부터 전과 다르게 빈도수가 와장창 증가하여 초소를 갔다오니 하루가 끝난다... 라는 말이 있었다. 이는 당장 인원은 반토막이 났는데 해야 할 근무와 작업거리는 반으로 '''줄지 않았기''' 때문으로, 병장이라도 말년휴가 갔다온 개말년병장에 전역전날 복귀 혹은 주말만 부대에 있는 상황이 아닌 이상 각종 작업에 끌려나가는 건 예사. 진지공사까지 갈 것도 없이 제초/제설 작업을 한 번 하면 지옥을 맛봤었다.
어떤 여단의 대대는 혹한기 훈련 시 초소 근무를 모두 말년병장에게 돌리고, 3시간 근무 3시간 휴식 체제로 단 두 팀만으로 돌린 적이 있다. 단 소등 상태의 생활관을 이용하게는 해줬다.
전역에 따른 인수인계에 어려움이 생길 것은 당연지사였다. 2010년 인원 개편 이후로 부대 안정전까지 간부, 일반병사 할 것 없이 여러 임무의 겸직은 (암묵적으로) 일상화 되었다. 일례로 주특기 교육 기간에 중대 무선통신병들은 통신 교육을 받은 후[4] 순환식으로 교장을 이동하며 M60 기관총& 팬져 & K201 교육을 연이어 받았다. 또한 한 명의 행정병이 작전, 인사, 보급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실정이니 웬만한 경우 아니면 단체 외박이나 단체 휴가는 꿈도 못꿨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일단 사람이 없으니 포상휴가와 외박이 굉장히 귀하다. 휴가 나갈 일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 위병소를 나가기 전까진 안심을 못하기 때문...일정 문제로 짤리는 경우가 많았다.
2013년부터는 사단 전체에 동기생활관이 적용되었는데, 10평 남짓한 크기의 한 생활관 당 5명을 넘지 않는 인원들이 기거하고 있다. (동기생활관이라기보다는 일반 보병연대 보병대대의 경우 일이등병 상병장 이렇게 생활관을 나눠서 쓰고 있다.)
충일회관이라는 영외 면회 공간이 있다. 부대 바로 앞 간부 아파트 단지의 입구에 위치해 있다. 이 면회 공간의 PX는 일반인도 이용가능해서 심심치 않게 외부 방문자가 보인다.
여담으로, 특공방위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빡센 부대였던적도 있고, 군생활이 너무 편해서 충일랜드라는 별명이 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2020년 국방개혁으로 인해 12월 1일부로 예하 연대들이 여단으로 변경되었다.
3. 예하 부대
3.1. 사단직할대
- 본부근무대
- 공병대대
- 화생방대대
- 군수지원대대
- 전차대대
- 정보통신대대
- 군사경찰대
- 수색대대
- 의무근무대
3.2. 제203보병여단
- 여단본부
- 1대대
- 2대대
- 3대대
3.3. 제205보병여단
- 여단본부
- 1대대
- 2대대
- 3대대
3.4. 제206보병여단
- 여단본부
- 1대대
- 2대대
- 3대대
3.5. 포병여단
- 여단본부
- 제521포병대대 105mm 견인포
- 제522포병대대 105mm 견인포
- 제523포병대대 105mm 견인포
- 제928포병대대 155mm 견인포
4. 과거부대
5. 출신인물
5.1. 사단장
5.2. 장교/부사관
5.3. 병
- 김민우(가수)
- 차승원(배우)
205연대 4대대 - 신병교육대 - 에서 조교로 복무했다. 방위병. 93년 5월 입대 18개월 복무
205연대 본부대에서 복무했다.
(수정) 205연대 1대대 1중대에서 근무했다. 족구를 좋아해서 중대막사 왼쪽 공터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는 모습이 많이 보었다.
(수정) 205연대 1대대 1중대에서 근무했다. 족구를 좋아해서 중대막사 왼쪽 공터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는 모습이 많이 보었다.
- 박성호(1973)(개그맨)
928포병대대 브라보 포대에서 행정병으로 복무했다. 방위병 - 따라서 푸른 거탑의 박성호 병장은 판타지임. 상병 소집 해제. 95년 군번 (잘 알려지지 않음)
- 최상진(배우) 나무위키에는 엔트리 없음 https://ko.wikipedia.org/wiki/최상진_(배우)
205연대 본부대(1대대일 수도 - 이밖에 당시 유행하던 TV시트콤에서 쌍둥이로 나왔던 배우도 1대대에 있었다... 라는 코멘트를 근거로. TV시트콤은 아니라 우리들의 천국)에서 복무했다. 방위병. 94년 군번
- 신윤수(프로게이머)
206연대 보병연대에서 무선통신병으로 복무했다. 20년 4월 13일 입대. 현재 복무 중.
6. 기타
6.1. 근무환경
1. 상비사단에 비하면 간부의 위엄이 약한 편. 대위가 정말 흔하게 돌아다닌다.
2. 도시 인접이라 야간 초소 근무를 서다보면 씁쓸한 기분이 들 것이다.
3. 행군로에 한강 산책로(우레탄 깔린)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자칫 행군 중에도 씁쓸할 수 있다.
4. 동원사단인데 훈련이 빡센 편이다. 이는 시기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나 분명한 건 빡세다.[5]
5. 대민지원이 활발한 편이다. 씁쓸할 포인트가 많다. 사회를 그리워하게 할 만한 것이 많은 환경이다.
6. 유격훈련장이 부대 내에 존재한다. 유격 행군을 제외하면 따로 도보 이동이 필요 없다.
7. 최우수 동원사단, 대통령 표창, 한국군 최초로 차기 동원사단이 되는 등으로 한동안 국방일보에 단골로 나왔었다.[6]
8. 수도권이라 그런지 아니면 부대 개편 때문에 사기진작 차원에서 그랬던 건지는 모르지만 부대 개편 전후 2년 동안 군 위문공연 2회가 있었다.
뭐 직접 생활 해보면 불편한 것은 딱히 없을 것이다. 있을 것 다 있고 특히 PX는 개편전부터 시설이 좋은 편. 개편되면서 새로 생긴 대표적 부대시설로는 '부대 내 민간 헤어샵 입점', '코인 노래방'[7] , 자판기 등 부대 시설 카드 리더기 장착' 등이 있다.[8] 생활 시설이 가장 좋았던 203연대의 경우 오락기를 들여놓아 다른 연대나 직할대에서도 방문했었다. 시설에 대한 언급에서 계속 203 연대 이야기가 나오는데, 단적으로 말하면 10년전[9] 에도 '도서관' 이 있었다.
현역병으로 동원훈련장 소속 대대로 배정받았다면, 환영한다. '''끝없는 작업의 늪'''을 보게 될 것이다. 주둔지부대도 끝없는 작업에 시달리고, 연이은 창고작업에 투입된다. 그것도 여느 상비사단의 창고 수준이 아닌, 유사시 완편을 위해 수통부터 화포 같은 온갖 장비들이 빼곡히 보관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왠만한 물류창고보다 규모가 크며, 툭하면 실물조사를 진행한다. 하여간 창고 작업을 하다보면 사회에서 상하차하는 기분이 든다. 물론 작업물품은 사회의 것보다 묵직한 군용품이다.
문제는 동원사단 특성상 인원이 적은데 관리하는 물품의 갯수는 거의 대대급, 연대급 갯수라서 창고관리에 여러 애로사항이 많이 생긴다. 작업만 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훈련도 병행한다. 예비군을 동원하는 부대일뿐이지 부대내에 있는 현역은 현역인지라 온갖 체력단련과 훈련을 빼먹지 않는다. 그나마 인원이 적기 때문에 여건에 맞게 훈련한다.
인원이 적기 때문에 근무도 비번이 거의 생기지 않아 주간근무 말번이 야간근무 초번에 들어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 타 부대에서 훈련을 할시 타 부대에서 근무할 인원이 적어서 근무지원에 투입되기도한다.
상비사단에 비해서 힘듦의 관점이 다를 뿐이지, 이처럼 동원사단만의 고충도 분명히 있다.
6.2. 동원훈련장
아무래도 동원사단이다보니, 예비군들이 입소하여 훈련받는 동원훈련장은 당연히 있다. 동원훈련장은 사단에서 한 개 대대를 아예 동원훈련장을 자대로써 파견하여 관리한다. 따라서 동원훈련장 소속 대대의 경우에는 73사단 본래 사단을 올 일이 거의 없다.(유격훈련 등을 제외하고는)[10]
6.3. 충일회관
6.4. 사단가
'''천마산 푸른 정기 한 몸에 안고'''
'''조국에 부름받아 모인 건아들'''
'''충일의 거센 횃불 함께 지피며'''
'''이 강산 영광위해 젊음을 건다'''
'''아 우리는 불사신 용사 불사신 용사'''
'''그 용맹 영광 이룰 73사단'''
'''산천을 뒤흔드는 우렁찬 함성'''
'''오늘의 고된 훈련 내일의 다짐'''
'''승리의 충용 깃발 높이 날리며'''
'''피와 땀 젊은 목숨 조국에 건다'''
'''아 우리는 불사신 용사 불사신 용사'''
'''그 용맹 영광 이룰 73사단'''
'''충일의 나팔소리 백두산까지'''
'''평화의 이름으로 총칼을 들고'''
'''겨레의 방패되어 오늘을 사는'''
'''전우여 승리 위해 전진 뿐이다.'''
'''아 우리는 불사신 용사 불사신 용사'''
'''그 용맹 영광 이룰 73사단'''
'''- 73사단가 -'''
7. 사건사고
8. 여담
- 예전엔 사단이 아닌 준장이 지휘하는 훈련단이었던 적이 있다고 하며, 지역 주민들은 한참 동안 73훈련단으로 불렀다.
-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해 있는데 의외로 도심에 가까운 편이며, 멀지 않은 구리시에 구리역 앞 / 돌다리와 같은 번화가도 있고[11] 도농역에서 차로 10분 거리라 교통이 매우 편리한 편. 거리상 제일 가까운 역은 양정역이지만 연계 버스가 원차산리 예비군훈련장 오는 버스보다 더 안 오는 막장이라서 도농역을 이용하는 게 낫다.
- 부대 앞에서 버스나 승용차로 약 한 시간만에 천호동, 잠실에 갈 수 있다. 동원은 주로 구리시에 거주하는 예비군들이 이 부대로 지정된다.[12] 또한 연계버스 노선으로는 30번, 23번, 1-4번, 93번이 있다.[13]
- 전차대대는 남양주시가 아닌 포천에 위치해 있다. 제8기동사단의 19전차대대 내에 배속되어 있었으나, 2018년 9월에 8사단과 26사단(해체)이 통합하는 과정에서 8사단 19전차대대가 제1기갑여단으로 예속전환 되었기 때문에 주둔지는 그대로이지만 배속지는 제1기갑여단 영외 19전차대대로 바뀌었다.
- 사단 사령부 길 건너에 예비군 훈련장이 있는데, 이곳은 과거 제57보병사단(현 56사단) 예하[14] 라 73사단에 처음 면회를 오는 사람들은 간혹 잘못 찾아가기도 한다. 현재는 위병소 및 면회신청 구역도 큼직하게 신축된 지 오래라 찾아가기 어렵지 않을 듯하다.
-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사람이 매우 적어서 아저씨의 기준이 상비 사단과는 전혀 다르다. 상비사단처럼 중대 단위로 아저씨를 끊으면 거의 모든 사람을 아저씨 취급 해야 하기에(...) 대대 혹은 심지어 연대까지도 선임 취급을 하는 편이다.[15]
[1] 워낙 작은 사단이라 가능했던 것인지 아니면 작은 사단이라 걱정하는 부모가족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신병 첫 면회 때 가족들에게 신병이 잘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위병소에서부터 대대장 레토나에 탑승시켜 막사로 데려가 가족들에게 생활관을 구경시켜주는 경우가 꽤 있었다.[2] 3명 동시 휴가까지는 본 적 있다.[3] 전체 인원으로 보면 적어 보이지만, 대대 내 모든 중대가 일순간 20% 씩의 공백이 생기는 것.[4] 여긴 이마저도 유무선 통합 통신병이다...[5] 현역병은 각 행정 보직에 많은 인원이 배정되어 있어서 몸으로 뛰는 훈련은 주로 단기사병, 주특기가 보병인 방위병들이 받았다. 바로 악명 높은 금곡방위.[6] 이 영향인지 2010년 경 육군 상비 사단들에서 공식적으로 간부들의 견학 파견이 있었다.[7] 코인 노래방은 개편되기 이전부터 이미 대부분의 막사에 존재했다.[8] 2011~2012년도 사단장의 경우 부대 내에 '박준헤어샵'을 입점 시켰다. 단, 헤어샵만 민간일 뿐 이발병이 자르는 건 똑같다. 비용은 1,000원. 하지만 다음 단장이 폐점시켰다.[9] 2009년 경[10] 동원훈련장 파견 대대는 기간별로 돌아가기 때문에 운이 없을 경우 동원훈련장에서 말년을 보내는 경우는 있어도 사단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11] 점심시간 쯤에 돌다리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73사단 군인들을 볼 수 있다.[12] 구리시 거주자가 73사단에서 복무할 경우, 전역하고 73사단 예비군이 된다는 얘기이다.[13] 위수지역은 구리, 남양주인데, 사실 지도를 보면 구리와 남양주는 세로로 긴 형태이기 때문에 구리나 남양주의 끝자락으로 이동할 경우, 서울 동쪽으로 가는 것보다 멀다.[14] 56사단에 흡수 통합되어 사라진 57사단의 예비군 훈련장이었다. 관할 지역은 동대문구. 즉 동대문구 묵동 같은 데는 좀 가까왔지만 휘경동, 답십리동 같은 데 사는 예비군은 동원 훈련을 버스로 한 시간은 걸리는 남양주까지 가야 했다.[15] 이 부분은 각 연대별로 다르다. 203연대는 개편전 동원사단 시절 선진 막사 최우선 적용 사정으로 각 대대별로 흩어져 생활하다가 건물이 지어진 후 다시 합쳐지면서 대대까지만 선임 대우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