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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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기도 구리시를 근거지로 했던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사단. 별칭은 '''용마부대'''. 1984년 1월 7일 창설되었으며, 2011년 11월 30일 해체되었다.
2. 상세
대한민국 육군의 보병 사단. 이 사단의 모체는 1975년에 창설된 수도경비사령부 예하 제71훈련단이다. 1984년 서울 강북 동부 및 근교지역에 있던 제71훈련단(1975년 창설)[1] 이 개편되어 남양주시에서 창설되었으나 후에 구리시의 북부간선도로가 위치한 자리로 부대를 이전하였고 2011년 국방개혁 2020에 따라 제56보병사단과 통폐합되며 해체되었다.
수도방위사령부의 예하 사단으로서 위수구역인 서울특별시 동북부 지역을 방위하였다.
2011년 11월 30일 국방개혁 2020 계획에 따라 부대가 제56보병사단과 통폐합되며 해체되었다.
사단해체 후 현재 주둔지는 북부간선도로를 기준으로 북쪽은 제55동원지원단이 주둔하고 있으며, 남쪽은 국군구리병원이 주둔하고 있다.
사단이 해체되면서 제220, 221, 223연대는 제56사단에 편입되었고, 제222연대는 해체되었다. 해체된 연대의 예비군 훈련장은 221연대가 인수하여 관리하고 있다.[2][3]
3. 예하부대
3.1. 사단직할대
- 본부근무대
- 기동대대
- 공병대대
- 정비근무대
- 보수지원대대
- 통신대대
- 포병대대
- 화생방지원대
- 헌병대
- 의무지원근무대
3.2. 제220보병연대
- 연대본부
- 1대대
- 2대대
- 3대대
3.3. 제221보병연대
- 연대본부
- 1대대
- 2대대
- 3대대
3.4. 제222보병연대
- 연대본부
- 1대대
- 2대대
- 3대대
3.5. 제223보병연대
- 연대본부
- 1대대
- 2대대
- 3대대
4. 과거부대
5. 출신인물
5.1. 사단장
5.2. 장교/부사관
중령시절 57사단 기동대대장과 사단 인사참모를 지냈다.
- 윤석찬(3사 28기)
소령시절 57사단 본부근무대장을 역임했다.
5.3. 병
- 강인(가수)
222연대 통신대대 근무 중 부대통합으로 221연대로 이동했다.
본인이 말하기를, 원래 경기도 모 사단에서 복무하는 현역이었다가 일병 말 즈음에 모종의 이유로 상근예비역으로 전환되면서 집 근처 동대에서 복무했다고 밝혔다. 당시 광진구 거주 중이었으므로 정황상 221연대 예하 모 동대에서 복무한 것으로 보인다.
6. 기타
6.1. 근무환경
6.2. 사단가 (용마부대가)
용마의 높은 기상 우리의 표상
호국의 충정으로 뭉친 우리들
피땀흘려 닦은 정기 무적의 용사
우리는 자랑스런 호국의 방패
그용맹 길이 빛낼 57사단
7. 사건사고
8. 여담
- 부대마크는 용마산[10] 봉우리를 숫자 '57'로 형상화한 모양으로, 기세가 세 보인다. 구 57사단 부대마크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출신 방위병[11] 이 제안하여 육군사관학교 출신 사단장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참고로 워낙 독특한 사단 마크 덕분에 언더우드 사단이라는 별명을 얻게되었다.
- 간혹 국군양주병원에서 타 부대와 만났을 때 "우리는 산악 기동을 전문으로 하는 산타기 부대예요."라고 해도 믿었다고 한다.(...) 2008년도까진 국군양주병원에서 외진을 받았으나, 2009년부터 국군수도병원으로 외진병원이 바뀌었다. 이유는 사단장이 '수방사 예하부대인데 가까운 서울 놔두고 왜 양주까지 가느냐'고 한마디 했기 때문이다.(...)
- 원래 북부간선도로가 생기기 전 서울특별시와 구리시 경계선 산중턱에 하나의 부대로 만들어졌으나, 90년대 북부간선도로 공사로 부대가 A직할대, B직할대로 쪼개져버리는 바람에 업무상 다른 직할대 부대로 이동시 직할대 앞 위병소에서 승인을 받거나 혹은 간부와 같이 북부간선도로를 건너가야 하는 등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다. 시도 경계선에 위치하다보니, 전화국번도 서울의 02와 경기도의 031이 같이 들어왔다.
- 북부간선도로를 자주 가 본 사람이면 중간에 광고장애물이 있는 것을 알 것인데, 여기 바로 지나서 표지판 없이 올라갈 수 있는 도로가 나 있다. 그 위치가 사령부였다(...). 별로 비밀도 아니었던 게, 남양주 버스 65-1의 이곳 정류장명이 예나 지금이나 '57사단'이다. 참고로 바로 옆으로, 즉 사령부와 북부간선도로를 사이에 두고 옛 중앙선 철길이 있었다. 현재도 이 망우리굴은 멀쩡하게 있으나, 훈련용으로 쓰이기도 하니 괜히 폐선 답사까지 가지는 말자. 세종포천고속도로 공사로 터널이 흙에 그대로 매립되었다. 터널 안에 흙을 넣어 공간을 채우고 위를 살짝 덮었다. 삽으로 파면 금방 나올지도?
- 서울 중·서북부 지역의 수많은 대학교 학생예비군을 관할하던 통합 전 56사단과 마찬가지로, 구 57사단은 서울 동북·동부 지역의 수많은 대학교 학생예비군을 관할하였다. 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광운대, 국민대, 삼육대, 서경대, 서울과기대, 서울시립대, 세종대, KAIST 홍릉캠퍼스, 한국외대, 한성대, 한양대 등 수많은 인서울 대학들이 분포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대들, 즉 성신여대, 덕성여대, 동덕여대, 서울여대 등의 교직원들도 이 곳으로 직장예비군 훈련을 갔다. 육군사관학교도 이 부대의 위수지역 내에 있다.[12]
- 예하 연대가 한 지역에 집중되었던 구 56사단과 다르게, 구 57사단 예하 연대들은 [13] , 의정부시, 남양주시 등지에 산재해 있었다. 서울 시계에 바짝 붙은 타 수방사 예하 사단과 이 부대 다른 연대와 다르게, 어떤 연대는 서울 시계와 상당히 떨어진 곳(남양주시)에 있었다. 그래서 서울 모 구 거주 예비군은 상대적으로 더 먼 거리를 가야 한다. 여담으로 후술할 예비군 총기 사고가 난 그 연대이다.
[1] 제71동원사단과 같은 뿌리[2] 어차피 221연대와 222연대는 지역이 서로 붙어있었기에, 따로 분리하기보단 합치는게 더 나았다.[3] 개운산에 별도 분리된 중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222연대는 남양주시의 금곡교장(현재 금곡1훈련장. 2훈련장은 221연대가 사용했었다.) 에서 생활하였다. 개운산에 있던부대는 2연대가 아닌 다른 부대인 것으로 보인다.[4] 80년대 중반 훈련장을 건설할 때에는 각 연대에서 차출된 방위병 인원들이 여러 조로 편성되어 1주일씩 교대로 들어가서 삽질에 동원되었다. 놀랍게도 사격장 축대는 큰 돌을 중장비가 갖다 놓으면 해머로 깨부수어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가며 순수하게 인력만으로 쌓아올려 만든 것이다.[5] 경북대학교[6] 2005년~2007년[7] 2007년~2009년[8] 원광대학교[9] 2009년 ~ 2011년 11월 30일. 최후의 제57보병사단장이었던 이범수 소장(학군 18기) 2013년에 중장으로 진급해 6군단장으로 취임했지만, 2014년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에 책임을 지고 군단장에서 물러났다.[10] 원래는 불암산이었다.[11] 즉, 80년대 이전 일이다.[12] 여담으로 육사생도들의 유격훈련도 담당하였다.[13] 222연대는 남양주 금곡교장을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