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러관계
1. 개요
조선과 러시아 제국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2. 역사
2.1. 나선정벌
17세기 중엽 러시아는 남방으로 영토 확장을 하고 있었지만, 청나라의 영토와 충돌해 청나라와 분쟁이 생겼다.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고자 하는 청나라는 조선과 연합하여 러시아를 공격했고, 러시아를 몰아내긴 했지만, 조선과 러시아와의 관계는 악화됐다.
2.2. 제2차 아편전쟁
제2차 아편전쟁의 결과로 연해주가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고, 조선은 처음으로 서구 열강과의 국경을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국경을 잠그는 것 부터 계속해서 러시아를 견제했고, 양국의 사이는 좋아지지 않았다. 또한 베이징조약이 맺어지며 조선의 녹둔도가 러시아 제국에 넘어가게 되었다.
2.3. 조로수호통상조약
1860년의 베이징 조약에 의해 비로소 조선은 러시아 제국과 국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러시아 역시 새롭게 국경을 접하게된 조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864년(고종 1년) 러시아인들이 함경도의 경흥부에 방문해 조선 정부에 통상을 요구하였다. 당시 흥선대원군[1] 이 천주교신자를 통해 영국, 프랑스와 협력해 이들을 몰아내려고 했으나 프랑스인 신부들의 어정쩡한 태도로 거꾸로 병인박해와 병인양요의 원인이 되었다.
이후 러시아는 조선이 개항할 경우 후발자본주의 국가로서 서구 선진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조선의 현상유지를 대조선정책의 기조로 삼았지만,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 체결로 조선이 개항되자 상황이 변하게 되었다.
1882년 5월 22일 조미수호통상조약에 이어 1883년 11월 26일 조독수통상조약·조영수호통상조약이 맺어지자 러시아도 조선과의 국교체결에 적극 나섰다.
당시 러시아는 조선과의 수교를 위해 조선의 종주권을 주장하던 청나라의 이홍장에게 접근하지만, 러시아가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청나라는 이를 거절한다.
조선 정부 역시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의 간섭에 심해진 것이 크게 불만을 느껴 조선을 보호하기 위해 러시아와의 통상조약 체결을 원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주청러시아대사였던 베베르는 당시 조선에서 외무차관과 해관총세사를 맡고 있던 독일인 묄렌도르프의 도움을 받아 1884년 7월 7일 조선측의 전권대신 외무독판 김병태(金炳台)와 '조로수호통상조약'과 '부속통상장정'을 체결했다.
이 조약의 결과, 러시아 역시 청·일본 및 영국, 미국 등 서구열강과 함께 조선의 정치 무대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1884년 통상조약 체결 당시에는 부산, 원산 및 인천 등 해상 교역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당시 연해주 지역에서 상선이 부족했던 러시아에게는 해상무역이 무의미했기에 당연히 육상무역을 원했다. 결국 1888년 연해주와 함경도를 통한 두나라 간의 육상 무역을 하기 위한 조로육로통상조약이 체결되었다.
2.4. 러시아의 조선에 대한 간섭
1884년 조로수호통상조약이 수립된 이후, 러시아는 조선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삼자 하는 야망이 있어서 점점 조선에 자기들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이 때문에 1885년 영국이 거문도 점령 사건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다른 이웃 나라인 일본보다는 관계가 좋았고 명성황후가 친러파이기도 해서 러시아와 친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또한 러시아는 남하정책의 일정중 하나인, 제주도 점령과(제주성 위협사건,1895년)[2] 용암포 점령, 절영도(現 부산광역시 영도구)의 조차와 같은 무리한 요구들을 대한제국에 요구하였다.
2.5. 아관파천
을미사변 이후, 반일 감정이 생긴 고종은 친일파들이 장악한 경복궁을 떠너 조선과 친했던 러시아공사관으로 떠나게 됐고, 일본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대신 러시아의 영향력이 한층 강화됐다.
러시아와 일본이 한반도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벌인 러일전쟁 무렵에는 조선이 러시아와 은밀히 연합하여 항일전선을 펴기도 했다. 그 증거로 1904년 7월, 조선의 고종 황제는 두만강 일대의 항일의병들한테 "러시아 군인들을 향해 총을 쏘지 말라", "말먹이나 양식을 제공해 주거나 길을 알려주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려 러시아군에게 협조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조선인 의병들이 러시아군과 연합하여 함께 일본군에 맞서 싸웠으며, 러시아군에 소속되어 일본군과 싸운 선견한국분견대 부대원들의 총 수는 17,323명에 달했다(1905년 10월 1일).러시아군과 연합 작전을 계획했던 항일 의병부대들
2.6. 러일전쟁 이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에게 완패한 뒤, 러시아는 조선에게서 영향력을 거의 전부 상실했다. 더이상 조선은 러시아에 기댈 수 없게 됐고, 조선 내에서는 친러파가 몰락의 길을 걷고 친일파가 다시 권력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