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근

 

[image]
'''생년월일'''
1984년 10월 16일
'''신체'''
176cm, 63kg
'''출신지'''
부산광역시
'''혈액형'''
A형
'''가족'''
2남 중 둘째
'''본관'''
창녕 조씨
'''소속'''
한빛 스타즈(現 웅진 스타즈) → 공군 ACE
'''종족'''
저그
'''학력'''
부산대학교 기계공학과
'''ID'''
Qoo)CLon
'''별명'''
홍길동 저그, 디파일러의 아버지
'''팬카페'''
팬카페
1. 주요 성적
2. 전적
3. 프로게이머로서의 활약
4. 공군 ACE 제대 이후


1. 주요 성적



2. 전적


'''조형근의 스타1 양대 개인리그 A매치 통산 전적'''
방송사
온게임넷 A매치 총 전적
MBC게임 A매치 총 전적
'''양대 개인리그 합산 전적'''
vs 테란
15전 7승 8패 (46.7%)
8전 3승 5패 (37.5%)
23전 10승 13패 (43.5%)
vs 저그
5전 1승 4패 (20.0%)
1전 1승 0패 (100.0%)
6전 2승 4패 (33.3%)
vs 프로토스
7전 3승 4패 (42.9%)
4전 2승 2패 (50.0%)
11전 5승 6패 (45.5%)
총 전적
27전 11승 16패 (40.7%)
13전 6승 7패 (46.2%)
40전 17승 23패 (42.5%)

3. 프로게이머로서의 활약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2001년 한빛 스타즈 창단 원년 멤버로 데뷔했지만 건강 문제로 3년간 휴식기를 거친 뒤 대학 진학 이후 커리지 매치를 거쳐 2004년 11월 11일 다시 복귀했다. 이전에 프로게이머로 활동했으면서 다시 커리지 매치를 통과한 독특한 사례를 남겼다.
게이머로 복귀하자마자 게임빌 듀얼 토너먼트에 진출, 스타리그 공무원 소리를 듣던 서지훈듀얼 토너먼트에서 두 차례나 격파하면서 3년 2개월만에 스타리그에 복귀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러나 16강 탈락 이후 맞이한 싸이언 듀얼 토너먼트에서는 승자전에서 서지훈에게 복수를 당한 뒤 최종전에서 손영훈에게 탈락. 그 이후로는 개인리그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하지만 2004 SKY 프로리그에서는 조형근의 진가가 발휘됐는데 1라운드 결승에서는 김선기임요환을 잡으며 살려놓은 불씨를 이어받아 이번 결승에서만 2승을 거둔 이창훈의 팀플을 격파하고 경기를 3:3원점으로 돌려놔 팀의 우승에 일조했다. 3라운드 그랜드파이널 플레이오프 5경기 개인전에서 를 잡았고, 이어 6경기까지 팀이 잡아내면서 4:2로 결승에 진출했다. 그리고 맞이한 팬택앤큐리텔 큐리어스와의 결승전에서는 3경기에서 이윤열의 모든 작전[1]을 봉쇄하고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어진 6경기 팀플에서 김선기와 함께 김상우, 심소명 조합을 잡아냈다.
매직저그 임정호와 함께 디파일러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의 디파일러 운용과 하이브 운영은 한빛 스타즈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김준영의 플레이 스타일 정립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상술한 듀얼 토너먼트에서의 서지훈과의 최종전은 디파일러 활용의 모범을 제시한 경기. 참고로 조형근은 이윤열에게 4:2, 서지훈에게 2:1, 최연성에게 1:0으로 모두 상대전적에서 앞선다.
이후로는 팀플을 전담하다 2007년 창설된 공군 ACE의 창단 멤버로 합류하였다. 동기들인 강도경최인규에 비해 훨씬 나은 성적을 보이며[2] 임요환성학승과 함께 공군의 태동기를 이끌어 나갔다. 특히 공군 사상 첫 개인리그 방송경기(듀얼 토너먼트)에도 진출할 정도로 좋은 성적을 냈다.

4. 공군 ACE 제대 이후


제대 후 은퇴하고 모교 부산대학교로 돌아가 기계과를 졸업하였다. 공군에서 높은 팀 기여도를 보였기에 게이머로 복귀하지 않았음에도 스덕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
현재는 회사원으로 근무 중이다. 재학 중 포스코에 산학장학생으로 입사가 확정되었으나, 실제로 입사한 회사는 현대자동차이다. # 현대자동차연구원 설계팀 연구원으로 재직 중.
2016년 7월, 프로게이머를 지망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책을 썼다고 한다. 책 제목은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2017년에는 <공부하라는 부모 게임하려는 자녀>, <e스포츠 나를 위한 지식플러스>라는 제목으로 책 2권을 더 출판했는데, 일하는 틈틈이 취재를 하고 초고 작성을 한 후 주말에는 서점에서 책들 멘 뒷장에 있는 출판사 메일주소로 직접 투고했다고 한다.
2019년 월간조선과 인터뷰를 했는데, 프로게이머를 했다는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으며 지금도 가끔 2004년 광안리에서의 기억을 떠올린다고 한다. 자신의 자녀도 프로게이머의 소질이 있다면 적극 지원해줄 것이라고... 또한 프로게이머들이 합숙이 아닌 출퇴근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
[1] 이윤열은 당시 제노스카이에서 원팩 더블커맨드 후 속업 벌쳐로 상대 진영을 교란하는 사이 충분히 모인 자원을 바탕으로 대규모 바이오닉을 운용하려 마음 '먹었'으나 조형근의 성큰콜로니가 너무나도 적절한 위치에 있어서 본진 언덕에 제대로 올라가보지도 못하고 벌쳐를 몽땅 잃고 말았다. 이로 인한 시간 벌기 실패로 메딕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마린들은 러커와 뮤탈리스크에게 유린당해야 했고 결국 이윤열은 굴욕적인 패배를 맛봐야 했다.[2] 총 26승 35패(개인전 5승 14패, 팀플전 21승 21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