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처칠

 

John Churchill, 1st Duke of Marlborough
1650. 5. 26 ~ 1722.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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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상세
3. 여담
4. 매체에서


1. 소개


영국의 정치가이자 군인. 1대 말버러 공작. 오스트리아 사부아 공자 외젠과 함께 한 시대(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를 풍미한 명장이자 명외교관이며 훌륭한 육군교관이다. '''17세기 말부터 18세기 동안 활약한 영국이 배출한 몇 안 되는 훌륭한 지상전 전략가'''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전열보병 시대 전쟁에 대해 관심이 높지 않아 윈스턴 처칠의 조상이라는 것 정도밖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

2. 상세


제임스 2세에게 신뢰받는 장군이었지만 명예 혁명이 일어났을 때는 윌리엄 3세메리 2세를 지지했으며, 이 공으로 메리 부부가 영국 국왕으로 공동 즉위했을 때 말보로 백작 작위를 받았다. 이후 팔츠계승전쟁에서 아일랜드, 플랑드르에서 활약했으며, 이후 국외 추방된 제임스 2세와 공모한 혐의[1] 로 일시적으로 런던 탑에 수감되었으나 다시 왕의 호감을 사는데 성공해 복직하였다.
이후 아내 사라가 앤 여왕과의 오랜 친분을 바탕으로 궁정에 들어가게 되자 승승장구를 거듭해 영국군의 대장 직위에 오르고 공작 작위를 받게 된다.
이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 참전, 블레넘 전투, 라미예 전투, 오우데나르데 전투에서 대승을 거둠으로써 전 유럽에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그러나 아내 사라가 앤 여왕의 총애와 왕실의 은총을 잃게 되고, 토리당이 프랑스와 평화를 맺기로 결심하면서 그를 압박해 실각시켰다. 말보로는 횡령, 부정부패 혐의로 인해 내정과 군사 관직에서 해임되었다.
그러나 1714년 왕위를 계승한 조지 1세 때 왕실의 총애를 되찾았다. 조지 1세는 하노버 선제후 시절에 존 처칠과 함께 싸웠고, 처칠을 실각시킨 영국 정부에 반발하고 분노를 드러냈을 정도였으니 조지 1세가 영국 왕이 된 것은 처칠에게는 그야말로 새옹지마.
비록 그는 이전의 관직을 되찾았으나 이미 건강이 악화되었고, 뇌졸중의 여파로 인해 결국 병으로 쓰러져 1722년 6월 16일 윈저 저택에서 사망했다.

3. 여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의 전시 수상인 윈스턴 처칠의 먼 조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때 그의 평가는 부정부패 혐의로 인해 실추되었으나 윈스턴 처칠이 그의 전기를 쓰면서 많이 회복되었다.
존 처칠은 원래 1남 2녀를 두었으나 아들은 어려서 요절하고, 공작위는 맏딸 헨리에타가 이어받았다. 하지만 존 처칠의 외손자들 중 후손을 남긴 건 작은딸 앤의 차남 찰스와 삼남 존 뿐이었다.[2] 찰스의 후손은 말버러 공작가로 이어져 내려가는데 윈스턴 처칠이 이 말버러 공작가 출신이다. 존의 후손은 존의 아들인 존(...)이 스펜서 백작위를 받으면서 스펜서 백작가로 이어져 내려가는데 그 직계후손이 다이애나 스펜서다. 즉, 스펜서 가문은 그 전부터 있었고 '''처칠은 스펜서 가문의 구성원인 적이 없다.'''
경제사에서 길이 남을 버블남해거품사건과 약간의 인연이 있다. 이 남해거품사건은 존 처칠의 만년 시기인 1720년에 터졌는데, 존의 아내인 사라 처칠은 이 때 거품을 이용해서 주식 투기로 큰 돈을 번 소수의 행운아 중 한명이었다. 당시 화폐 기준으로 약 10만 파운드의 수익을 올렸다고.
찰스 2세의 정부 1대 클리블랜드 여공작 바바라 팔머의 스폰을 받는 처지였는데 1년에 5000파운드를 받아 가면서도 도박판에서 푼돈 좀 잠시 빌려달라는 말을 거부해 분개한 바바라가 코피를 흘리며 코르셋 끈을 잡아 뜯었다고 한다.
둘이 정사#s-4를 나누다 찰스 2세에게 걸린 적도 있는데 다급하게 창밖으로 뛰어내린 존 처칠을 향해 찰스 2세는 "짐은 너를 용서한다. 너도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일 테니"라고 차갑게 말하고 자리를 떴다고 한다.
캐나다 허드슨 만 연안의 마을 처칠이 그의 이름을 딴 거다. '허드슨 만 회사'의 초대 사장이었기 때문에 그 인연으로 지은 것.

4. 매체에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주인공이 그의 아내인 사라인 관계로 등장하지만 러닝타임 대부분 프랑스군과 싸우고 있느라 얼굴을 거의 비추지 않는다. 전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귀국하지만 사라의 공금횡령이 탄로나면서 사라와 함께 국외추방된다. 배우는 영국배우 마크 게이티스가 분했다.
미국의 밀리터리 잡지인 암체어에서 2008년에 선정한 명장 100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1] 당시 영국에서 윌리엄 3세의 인기가 별로 높지 않았고, 제임스 2세 충성파 세력들이 잔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앞날을 전혀 알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처칠처럼 적당히 양다리를 걸치던 사람들이 꽤 있었다.[2] 이들의 원래 성씨는 스펜서였으나, 말버러 공작위를 이어받은 찰스의 손자대부터는 스펜서-처칠 성씨를 썼다. 윈스턴 처칠도 원래 성씨는 스펜서-처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