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여왕
현 영국 국왕의 딸인 앤을 찾으러 왔다면 앤 공주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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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잉글랜드 국왕, 스코틀랜드 국왕이자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초대 국왕이다.
제임스 2세의 차녀이자 메리 2세의 동생. 명예혁명 이후 후계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한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 공동국왕의 뒤를 이어 왕으로 즉위하였다. 군주로서의 명성은 다른 왕들만큼 높지 못하지만, 그녀의 재위 당시 잉글랜드에는 중요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다.
앤은 재위 기간 내내 선왕이자 형부이며, 사촌오빠[1] 였던 윌리엄 3세에 의해 사실상 개입하게 되었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치렀는데, 이 전쟁의 결과 위흐레흐트 조약을 통해 지브롤터 등을 확보하면서 영국은 해군력에서 상당한 우위를 점하게 된다. 그리고 이 때부터 영국의 유명한 '''세력 균형책'''이 시작되었다. 또한 즉위 이후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반란을 진압했고, 1707년 통합법에 의해 동군연합이었던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을 통합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성립하였다. 한편 앤이 즉위하면서 윌리엄 3세 때 결성된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동군연합은 1대 만에 해체되었다. 네덜란드의 왕위 자리는 '침묵공' 빌럼 1세의 동생의 후손이 이어받았다.
재위 기간동안 앤은 토리당과 휘그당의 불화를 이용하여 왕권을 유지하였으며, 토리당과 휘그당을 번갈아 중용한 후에 한 세력이 너무 강해진다 싶으면 실각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2]
1708년에 남편이 사망한 후 큰 충격을 받아 건강이 매우 악화되었으며, 사망 1년 전인 1713년부터는 걷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병상에 누워서도 국정을 돌보다가[3] 1714년 8월 1일에 사흘동안 이어진 어전 회의를 버티지 못하고 뇌졸중으로 서거했다. 이에 대해 여왕이 동생인 제임스 2세의 아들과 접촉하여 그를 복권시키려 하자 주위의 반대파들이 두려워해 여왕을 암살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정황상 암살의 가능성은 없다.
스튜어트 왕조의 직계가 제임스 2세 이후로 끊어졌기 때문에, 영국에는 그녀의 즉위 이전부터 왕조 교체가 예정되어 있었다. 앤의 사후 왕위계승법에 따라 제임스 1세의 외손녀 소피아 공주의 후손인 하노버 선제후국의 조지 1세가 영국 왕으로 즉위함으로써 하노버 왕조가 시작되었다.
참고로 앤 여왕과 메리 2세의 이복남동생인 제임스는 제임스 3세를 자칭하며 계속 영국 왕위를 주장했고,[4] 그의 후손도 마찬가지였다. 자코바이트 항목 참조.
'''영국 역사상 국왕의 거부권을 행사한 마지막 군주'''이다. 1708년 영국 의회를 통과한 Scottish Militia Bill 1708라는 법안에 대해 앤 여왕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해당 법안은 스코틀랜드 민병대(구 스코틀랜드 군대)를 강제 해산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1707년에 동군연합을 구성했는데 이때 마침 프랑스에서 스코틀랜드한테 잉글랜드와 동군연합을 한 이후 "잉글랜드의 뒤통수를 치자"고 제안한 사실을 잉글랜드에서 이 법안을 통과시킨 이후에 알았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 내각 신하들은 여왕한테 해당 법안을 승인(Royal Assent)하면서 잉글랜드에서 스코틀랜드 민병대를 무장해제시킬 경우, 프랑스가 스코틀랜드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영국을 침공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따라서 앤 여왕은 해당 법안을 거부하고 프랑스가 영국을 침공할 명분을 없앴다. 스코틀랜드의 민병대(군대)를 해산하는 것은 빅토리아 여왕 때 가서 성사된다.
1708년에 행사된 이 거부권 이후 2019년 지금까지 영국 국왕은 내각과 의회를 통해 입법된 법안들에 대해 단 한 번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조지 5세가 1912년 아일랜드 자치 법안에 대해 승인을 보류(Postpone)한 적은 있다.
젊었을 때부터 심각한 비만이어서 평생 건강이 좋지 않았다. 영국 역사상 가장 뚱뚱한 군주였다고... 어느 정도냐 하면 알현실에서 왕의 방을 잇는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어서 왕의 방바닥을 뚫어 알현실과 오가는 승강기를 설치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임신을 18번 했지만 대부분 유산/사산했고, 그나마 무사히 태어났던 자녀들도 모두 어렸을 때 사망했으며[5] , 남편도 요절하고 말았다.
영국 역사에서 이름이 같은 왕이 없으므로 훗날 앤이란 왕호를 사용하는 왕이 나오기 전에는 '앤 1세'가 아닌 '앤 여왕'으로 호칭을 붙인다.
20세기부터 각 유럽의 왕실에 남녀평등 상속법이 자리잡기 전까지 기록된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확정상속인 자격으로 왕위를 계승한 여왕이었다. 메리 2세 사후에 윌리엄 3세가 재혼해서 자식을 낳을 경우 계승순위가 앤의 다음으로 정해졌기 때문.
헨델은 1713년 앤 여왕의 48세 생일을 기념하여 축가를 작곡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아리아인 '''Eternal source of light divine'''은 300여년 후,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결혼식에서 신부 입장곡으로 사용되었다.[6]
빅토르 위고의 소설인 웃는 남자에 조시아나 여공작의 언니인 앤 여왕으로 등장한다.[7][8]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영국 여배우 올리비아 콜먼이 분했으며 폭군, 나약한 인간, 아이같은 모습 등을 모두 능숙하게 연기하면서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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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지막 잉글랜드 국왕, 스코틀랜드 국왕이자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초대 국왕이다.
2. 행적
제임스 2세의 차녀이자 메리 2세의 동생. 명예혁명 이후 후계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한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 공동국왕의 뒤를 이어 왕으로 즉위하였다. 군주로서의 명성은 다른 왕들만큼 높지 못하지만, 그녀의 재위 당시 잉글랜드에는 중요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다.
앤은 재위 기간 내내 선왕이자 형부이며, 사촌오빠[1] 였던 윌리엄 3세에 의해 사실상 개입하게 되었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치렀는데, 이 전쟁의 결과 위흐레흐트 조약을 통해 지브롤터 등을 확보하면서 영국은 해군력에서 상당한 우위를 점하게 된다. 그리고 이 때부터 영국의 유명한 '''세력 균형책'''이 시작되었다. 또한 즉위 이후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반란을 진압했고, 1707년 통합법에 의해 동군연합이었던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을 통합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성립하였다. 한편 앤이 즉위하면서 윌리엄 3세 때 결성된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동군연합은 1대 만에 해체되었다. 네덜란드의 왕위 자리는 '침묵공' 빌럼 1세의 동생의 후손이 이어받았다.
재위 기간동안 앤은 토리당과 휘그당의 불화를 이용하여 왕권을 유지하였으며, 토리당과 휘그당을 번갈아 중용한 후에 한 세력이 너무 강해진다 싶으면 실각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2]
1708년에 남편이 사망한 후 큰 충격을 받아 건강이 매우 악화되었으며, 사망 1년 전인 1713년부터는 걷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병상에 누워서도 국정을 돌보다가[3] 1714년 8월 1일에 사흘동안 이어진 어전 회의를 버티지 못하고 뇌졸중으로 서거했다. 이에 대해 여왕이 동생인 제임스 2세의 아들과 접촉하여 그를 복권시키려 하자 주위의 반대파들이 두려워해 여왕을 암살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정황상 암살의 가능성은 없다.
스튜어트 왕조의 직계가 제임스 2세 이후로 끊어졌기 때문에, 영국에는 그녀의 즉위 이전부터 왕조 교체가 예정되어 있었다. 앤의 사후 왕위계승법에 따라 제임스 1세의 외손녀 소피아 공주의 후손인 하노버 선제후국의 조지 1세가 영국 왕으로 즉위함으로써 하노버 왕조가 시작되었다.
참고로 앤 여왕과 메리 2세의 이복남동생인 제임스는 제임스 3세를 자칭하며 계속 영국 왕위를 주장했고,[4] 그의 후손도 마찬가지였다. 자코바이트 항목 참조.
'''영국 역사상 국왕의 거부권을 행사한 마지막 군주'''이다. 1708년 영국 의회를 통과한 Scottish Militia Bill 1708라는 법안에 대해 앤 여왕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해당 법안은 스코틀랜드 민병대(구 스코틀랜드 군대)를 강제 해산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1707년에 동군연합을 구성했는데 이때 마침 프랑스에서 스코틀랜드한테 잉글랜드와 동군연합을 한 이후 "잉글랜드의 뒤통수를 치자"고 제안한 사실을 잉글랜드에서 이 법안을 통과시킨 이후에 알았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 내각 신하들은 여왕한테 해당 법안을 승인(Royal Assent)하면서 잉글랜드에서 스코틀랜드 민병대를 무장해제시킬 경우, 프랑스가 스코틀랜드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영국을 침공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따라서 앤 여왕은 해당 법안을 거부하고 프랑스가 영국을 침공할 명분을 없앴다. 스코틀랜드의 민병대(군대)를 해산하는 것은 빅토리아 여왕 때 가서 성사된다.
1708년에 행사된 이 거부권 이후 2019년 지금까지 영국 국왕은 내각과 의회를 통해 입법된 법안들에 대해 단 한 번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조지 5세가 1912년 아일랜드 자치 법안에 대해 승인을 보류(Postpone)한 적은 있다.
3. 기타
젊었을 때부터 심각한 비만이어서 평생 건강이 좋지 않았다. 영국 역사상 가장 뚱뚱한 군주였다고... 어느 정도냐 하면 알현실에서 왕의 방을 잇는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어서 왕의 방바닥을 뚫어 알현실과 오가는 승강기를 설치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임신을 18번 했지만 대부분 유산/사산했고, 그나마 무사히 태어났던 자녀들도 모두 어렸을 때 사망했으며[5] , 남편도 요절하고 말았다.
영국 역사에서 이름이 같은 왕이 없으므로 훗날 앤이란 왕호를 사용하는 왕이 나오기 전에는 '앤 1세'가 아닌 '앤 여왕'으로 호칭을 붙인다.
20세기부터 각 유럽의 왕실에 남녀평등 상속법이 자리잡기 전까지 기록된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확정상속인 자격으로 왕위를 계승한 여왕이었다. 메리 2세 사후에 윌리엄 3세가 재혼해서 자식을 낳을 경우 계승순위가 앤의 다음으로 정해졌기 때문.
헨델은 1713년 앤 여왕의 48세 생일을 기념하여 축가를 작곡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아리아인 '''Eternal source of light divine'''은 300여년 후,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결혼식에서 신부 입장곡으로 사용되었다.[6]
빅토르 위고의 소설인 웃는 남자에 조시아나 여공작의 언니인 앤 여왕으로 등장한다.[7][8]
4. 매체에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영국 여배우 올리비아 콜먼이 분했으며 폭군, 나약한 인간, 아이같은 모습 등을 모두 능숙하게 연기하면서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 윌리엄 3세의 모친인 프린세스 로열 메리의 남동생이 제임스 2세로, 프린세스 로열 메리는 앤 여왕에게는 고모가 되는 셈.[2] 조선후기의 숙종의 환국 정치와 유사한 면이 있지만 이런 방식은 왕권이 좀 강한 국가에서 권력 강화 방법이긴 하지만..[3] 당시 마땅하게 섭정을 세울 인물이 없었다. 이런 때는 보통 후계자가 섭정을 하지만 후계자인 소피아는 바다 건너 독일 하노버에 살고 있는데다가 여왕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은 80대의 노인이었다.[4] 그가 왕위 계승 서열에서 제외된 건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이다. 앤 여왕 시기에도 토리당에서는 제임스의 왕위 승계를 주장했으나 영국 국교회로의 개종이 조건이었고 제임스가 거부하자 토리당에서도 미련을 버렸다.[5] 실제로 임신한 여성이 비만인이면 태아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앤 여왕의 비만이 이러한 비극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더군다나 앤 여왕이 살았던 시대는 21세기와 비교하면 의학의 발달이 훨씬 덜하기도 했다.[6] 참조.[7] 실제 앤 여왕을 모티브로 했다는 오피셜은 없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실제 앤 여왕과 비슷한 특징(뚱뚱하다, 덴마크출신 남편 등등..)이 묘사되어 있어서 정황상 모티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8] 혹은 아예 동일 인물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