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피어폰트 모건
1. 개요
미국의 기업인으로, 세계적 금융회사인 JP모건 체이스의 설립자이다. 금융회사 외에도 철도회사[1] 와 철강회사[2] 도 소유하였다. 그 외에 제너럴 일렉트릭과 AT&T의 설립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기도 하다.
2. 업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보불전쟁)에서 진정한 수혜자는 미국의 J. P. 모건이었는데, 당시 대부분의 런던 금융가들은 프랑스의 경제상황을 비관적으로 보고 프랑스 국채를 15~20% 수준으로 마구 팔아버렸던 것을 미국의 J. P. 모건이 모두 사들였다. 프랑스가 국채에 대해 모라토리움을 선언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당시의 프랑스 경제상황에서는 그게 맞았지만 J. P. 모건은 프랑스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모라토리움을 선언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유럽을 먹여 살리고 있는 프랑스의 거대한 '식량생산력'을 알고 있었고 모라토리움은커녕 보불전쟁 배상금 50억 프랑 정도는 1년도 안 돼서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긴 했다.
이건 J. P. 모건이 정확히 본 것이었는데, 현재까지도 영국을 포함한 EU에서 소비되는 식품의 40%를 프랑스가 생산하고 있으며 심지어 치즈나 와인 같은 고가 가공품뿐만 아니라 돼지고기 같은 저가 육류까지 우리나라에 수출하고 있다. 그 외에도 일본이나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 호주 등 낙농업이 발달한 국가조차 경제적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는 나라는 모두 프랑스로부터 식품을 수입하고 있다. 프랑스의 식품 산업이 품질, 생산력 등에서 유럽을 넘어 세계적인 수준임을 보여주는 대목.
이와 관련된 일화로 J.P 모건이 유럽 체류 당시 영국, 그리스 왕국, 러시아 제국에 이어 심지어 아프리카 모로코에 있을 때도 호텔 웨이터가 계속 "식재료는 프랑스산입니다."라고 얘기하는 것을 듣고 "유럽에서 프랑스 말고는 농사를 짓는 나라가 없느냐?"라고 물었다. 이에 웨이터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 조금 하긴 하지요."라고 답해주자 그는 프랑스의 식량생산력에 감탄했다고 한다.
보불전쟁 덕분에 J. P. 모건은 조지 피바디의 명성 아래에 있던 평범한 은행가에서 미국은 물론이고 로스차일드 가문을 비롯한 세계 금융시장의 유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제적 금융가로 성장하게 된다. 어느 정도냐면 미국 국회 청문회에서 "하느님이 발행한 채권도 내가 신용하지 않는다면 가치가 없다"고 일갈할 정도였다.
1895년 유럽으로의 금 유출 때문에 미국이 채무불이행의 위기에 놓였을 때도 모건이 자금을 빌려준 덕분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후에 폭리를 취했다는 비판도 따랐지만 뉴욕 타임스는 "모건 같은 파수꾼이 없었다면 그 어떤 투자자도 미국 국채를 사기 위해 줄을 서지 않았을 것"라며 그를 옹호하기도 했다.
3. 그 외
전설적인 금융인답게 투자 관련 일화가 많이 남아있는데, 대표적으로 니콜라 테슬라에게 투자를 끊어 테슬라의 일생의 목표 중 하나인 '''무선 송전탑 공사'''가 중도에 중단되게 만든 사건이 있다.
모건스탠리는 이 사람의 손자가 해롤드 스탠리와 세운 회사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금융업을 유대인들이 쥐고 있다 착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여전히 미국 금융업은 WASP의 몫이다. 미국 4대 시중은행 중 이탈리아계가 세운 뱅크 오브 아메리카를 제외하고는 죄다 앵글로색슨 계열이다. 오히려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와 리먼 브라더스가 특이한 것. 뉴욕과 런던이 세계금융 시장의 중심지였다는 걸 생각하면 이상한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