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테슬라

 



'''니콜라 테슬라
Nikola Tesla | Никола Тесла
'''
<colbgcolor=#00001b> '''본명'''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1]
'''출생'''
1856년 7월 10일[2]
[image] 오스트리아 제국 리카 지방 스밀랸(Smiljan)[3]
'''사망'''
1943년 1월 7일 (향년 86년 181일)
[image] 미국 뉴욕 주 뉴욕
'''국적'''
[image] 오스트리아 제국 (1856 ~ 1867)
[image]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1867 ~ 1918)
[image] '''미국 (1918 ~ 1943)'''
'''신체'''
188cm, Rh-O형
'''직업'''
발명가, 물리학자, 기계공학자, 전기공학자
'''학력'''
그라츠 공과대학교 (제적)
프라하 대학 (제적)
1. 개요
2. 생애
3. 에디슨과의 미운정 고운정
4. 매드 사이언티스트
5. 그 외 천재적인 발상들
6. 사후 재평가
7. 외모
8. 대중메체에서의 모습
9. 테슬라의 이름이 붙은 것
9.1. 현실
9.2. 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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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르비아오스트리아인 출신의 전기공학자이며, 후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조지 웨스팅하우스가 니콜라 테슬라를 고용하고 얼마 후, 웨스팅하우스사는 '2상 교류 회전자계(2 phase AC RMF) 유도 전동기'의 상용화를 최초로 성공, 즉 교류용 전동기의 상용화를 최초로 실현하였다.[4]
1891년에 '갈릴레오 페라리(Galileo Ferraris: 1847 ~ 1897)가 설계한 2상 교류 회전자계 동기 전동기' 개념보다 먼저 세계 시장을 점유하였고, 니콜라 테슬라는 오늘날 사용되는 교류 전기 인프라 보급의 선두주자 중의 한명이 되었다.
3상 교류 회전자계(3 phase AC RMF) 개념은 미카일 도브로보이스키(Mikhail Dobrovolsky[5]: 1862 ~ 1919)가 고안하였다.
무선통신 기술을 최초로 발표했지만, 무선 통신의 상용화을 최초로 달성한 인물은 굴리엘모 마르코니가 되었다.

2. 생애


1856년 크로아티아 리카 지방에서 세르비아정교회 사제인 밀루틴 테슬라와 주카 테슬라(혼전성은 만디치) 부부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럼에도 신학자가 되지 않고 과학자가 된 '''천재'''이자 20세기 초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전형을 만들어 버린 인물이다. 또한 살아온 환경을 살펴보면 여러 모로 비운의 천재이기도 하다.
이름이나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의 영향인지 러시아 사람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는 러시아에서 공부도 일도 한 적이 없는 세르비아오스트리아 제국[6] 출신 미국인.[7] 매드 사이언티스트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부드러운 언변의 소유자에, 연설도 잘 했다고 한다. 머리도 좋고 말도 잘 하고 8개국어를 하는 언어의 천재에다 188cm의 장신에 얼굴도 잘 생기고 성격도 좋고 옷도 잘 입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엄친아. 당시 사교계의 스타였다. 다만 테슬라의 삶의 목적은 본인의 연구였기에, 사교계 진출도 연구를 위한 인맥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음악과 시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하며, 86세까지 오래오래 살았는데 '''그 한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워낙에 매력적인 인물이니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았지만, 테슬라의 일생에 친구 이상의 여성은 없었다. 동성애자니 무성애자니 논란이 많지만, 테슬라의 연구에 대한 엄청난 갈망과 집착을 보면 그냥 아예 관심이 없었던 걸로 추정된다. 실제로 본인이 "나는 결혼한 남성이 만든 훌륭한 발명품들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라고 한 적도 있고. 사실 학문에 빠져 이성에는 관심이 없었던 과학자들은 상당히 많다. 아이작 뉴턴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뉴턴은 어린 시절 친모의 재혼으로 인해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혐오증을 가진 것에 가깝고, 테슬라 본인은 그냥 순수하게 결혼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해서 좋아하지 않은 것이다. 오해와는 달리 뉴턴은 이성을 전부 혐오하진 않았다. 반면 테슬라의 누나와 여동생인 안젤리나와 밀카, 마리카는 결혼하여 자녀들을 두었다.[8]
오스트리아 그라츠 종합기술학교에 입학하여 처음에 군 당국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았으나, 이후에 받지 못하여 졸업을 하지 못하였다. 그 후 체코 프라하 대학으로 옳겼으나 역시 등록금 문제로 졸업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배를 타고 미국으로 온 후 에디슨 컴퍼니에서 일했으나, 직류에 올인을 외치는 토머스 에디슨과 대립, 회사를 뛰쳐나와 투자자를 긁어모아 자기 회사를 세운다. 그의 교류전기에 대한 실험이 성공을 거두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자 많은 투자자들이 몰렸고, 거금의 투자와 특허비 지급을 약속한 웨스팅하우스와 계약을 맺었다. 이후 직류 vs 교류 문제로 에디슨과 엄청나게 싸웠다는 것은 역사에서 이 대립을 전류 전쟁(War of Currents)으로 따로 기록할 정도로[9] 유명한 일로 나중에(1915년) 에디슨과 노벨물리학상 공동 후보로 올랐을 때 서로 "저 놈이랑 같이 받느니 안 받고 만다"고 악담을 퍼부어 댔다는 루머가 있다.
특허 포기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 당시 에디슨 전기회사(제너럴 일렉트릭)와의 직류 vs 교류 전쟁에서 테슬라의 파트너였던 웨스팅 하우스[10]는 교류 전류 전송방식을 특허내서 같이 돈 많이 벌자고 제안했으나, 자신보다는 인류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며 특허등록을 거부했다는 설.[11]
  • 미국 정부의 나이아가라 수력발전 건립의 발전형식으로써, 직류방식의 전력사업을 벌이고 있는 제너럴 일렉트릭(에디슨)과 교류방식의 전력사업을 시작하는 웨스팅 하우스(테슬라)가 경쟁이 붙었는데, 결국 교류 방식이 채택 되었고, 그에 따라 교류 방식이 전기공급의 대세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직류방식을 고집했던 제너럴 일렉트릭(에디슨)은 전기공급시장에서 밀려날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JP 모건의 지원으로 재정이 탄탄한 제너럴 일렉트릭은 부실한 재정상태인 웨스팅 하우스(테슬라)를 질 것이 뻔한 특허소송들로 압박하였고, 결국 자금의 압박을 버티지 못한 웨스팅 하우스는 교류전류에 대한 특허를 포기하였다는 설.[12] 테슬라는 사건 이후 웨스팅하우스와 의견 대립 끝에 회사를 그냥 뛰쳐 나와 버렸다.
원래는 직류 전송 방식이 먼저 연구가 시작되어 발전소와 전력망을 만드는 등 먼저 쓰였으나, 결국 변압이 용이하며 장거리 송전에서 손실이 적은 점 등, 교류가 가진 여러 장점으로 인해 에디슨의 직류 전송방식은 일반 전기 분야에서 사장되고, 세계적으로 교류 전송 방식이 쓰이게 된다. 에디슨은 테슬라를 어떻게든 지게 만들기 위해 로비도 하고 언론에 선전도 하는 등 별 짓을 다 했다. 주변에 돌아다니는 고양이나 개를 전기로 태워 죽이는 실험을 많이 해서 주변의 고양이와 개들이 남아나지 않았을 정도. 교류가 매우 위험한 것으로 보이게 하려고 교류를 이용한 사형용 전기의자를 만들어서 사형수에게 시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몇 번 전기를 통한 후에도 연기가 모락모락 날 뿐 죽지 않았기 때문에 참관하던 간수에게 '''"차라리 화형을 하시죠"'''라는 말을 들을 정도. 결국 승리한 것은 교류.[13]
톰소여의 모험의 작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과 교류를 한 적이 있다. 소설 관련이 아닌 발명 쪽으로. 이 부분은 2015년 9월 6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루었다.
그다지 수익성 있는 발명을 하지 못하여 상업화되지 못한 채 사라진 물건들이 많은 데다[14], 에디슨과 맞먹을 정도로 성격이 나빴었다고 한다. 특히나 독선적인 고집불통에다 타협을 모르는 성격이었는데, 그런 면으로 인해 조수나 동료는 물론이고 투자자[15]들과도 언쟁을 자주 벌이고 안하무인으로 상대를 대해 한때는 조력자였던 대다수 지인과 친구들이 나중에는 대거 절교를 하거나 원수가 되었을 정도였다 예를 들면 형광등의 경우 그 발명에 어느 정도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제품화하여 상업적 성공을 거둔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고, 심지어 전 세계에 형광등을 보급하여 떼돈을 번 회사는 바로 최대의 라이벌 에디슨이 만든 GE[16]였다. 그 탓에 기껏 고생해서 고안해 낸 발명도 개발비가 없어 묻혀버린 경우가 많았다.
친구나 동료, 가족은 남아나질 않았으나[17] 그래도 지지자, 추종자들이 많아서 만년이 별로 불행하지 않았던 굉장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노년기에는 호텔방과 임대주택 월세방을 전전하면서 비둘기에게 모이나 주는 가난한 삶을 살다가[18] 1943년 뉴욕의 한 호텔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노년의 사진은 4장 남아있다고 한다. 그의 일생에 대한 간략한 강연
테슬라가 성격이 에디슨보다 더 나쁘고 독선적인 고집불통에 타협을 모르는 성격에, 다른 사람들을 안하무인으로 대했다는 여러 일화들에 대해서는 아직도 맞는지 아닌지 논란이 있다. 원체 테슬라의 일생의 적지 않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기도 하고, 그나마 세간에 알려진 행적들도 일반인들 보기에는 하도 기묘한 구석이 있기는 하다.
이 양반도 만년의 에디슨처럼 오컬트에 깊이 심취하였다.

3. 에디슨과의 미운정 고운정


앞서 말했듯 테슬라가 에디슨과 여러 모로 대립한 것도 사실이고, 이로 인해 에디슨이 테슬라를 견제하기 위해 전기의자를 제작하고 테슬라의 전기 체계가 위험하다고 주장하고 그것을 실험하는 등 진흙탕 싸움이 어느 정도 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둘의 갈등에는 부풀려진 면도 적지 않다.
에디슨은 테슬라가 최초로 '교류를 사용한 유도 전동기'를 발명하자 그와 그 회사를 비즈니스로 묻어버리려 했으나, 기존에는 없던 상용화가 가능한 교류용 전동기가 절실히 필요했고 에디슨의 라이벌이었던 조지 웨스팅하우스가 그를 받아들인 덕에 실패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 일 때문에 "에디슨이 뒷공작으로 테슬라를 몰락시키기 위해 마피아들과 결탁했고 테슬라의 회사를 망하게 할 악의적인 물건을 발명했다"는 소문도 있었고 "전기의자를 만들기 위해 길거리에 돌아다니던 동물들을 싹쓸이했다"는 말도 나돌았을 정도로 험악한 분위기였다고.
그러나, 에디슨과 테슬라는 정작 몇몇 갈등 이후에는 서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연락하고 지낸 것으로 밝혀졌다. AC(교류전기)와 DC(직류전기)간의 전류전쟁은 에디슨과 테슬라간의 대립이라기 보다는 에디슨과 나중에 테슬라로부터 AC 송전의 특허를 사들인 조지 웨스팅하우스 사이의 대립에 가깝다.
1890년대에는 X선에 대해 서신을 주고 받았는데, 에디슨이 사용한 표현을 보면 절대로 숙적한테 보낸 편지가 아니다.

"My dear Tesla, Many thanks for your letter. I hope you are progressing and will give us something that will beat Roentgen."

"친애하는 테슬라여, 자네의 편지는 잘 받았네. 나는 자네의 발명이 잘 진행되어 우리에게 뢴트겐의 업적을 이길만한 것을 주었으면 하네."

또한 1896년 Electrical Review 5월호에 올라온 비평에 에디슨은 테슬라에 대해 이런 답변까지 남겼다.

나에 대해 뭐라하든 상관없으나 테슬라는 신경질적 기질이니 이런 기사는 그를 비통하게 만들고 일을 방해할 것이다. '''테슬라가 불가능해 보이는 낙관적인 발언을 하더라도 그가 최고의 실험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시간만 주면 테슬라는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

테슬라 측에서 에디슨을 그나마 비판한건 에디슨의 실험 방식이 반복실험과 시행착오가 지나치게 많은 등 "한 결과를 내기까지 삽질이 잦았었다"는 것이다. 전류 전쟁으로 사이가 틀어졌다고 해도 테슬라의 어그로를 가장 많이 끈건 웨스팅하우스와 진정한 승리자인 JP모건이었을 것이다. 즉, 에디슨과 테슬라의 라이벌 관계는 흥미를 위해 과장된 면이 많으며 어느 정도는 걸러 듣는 것이 좋다.
물론, 니콜라 테슬라와 에디슨의 라이벌 관계가 과장된 면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면, 왜 니콜라 테슬라는 살아 생전에 IEEE를 "에디슨의 주구" 정도로 여기며 싫어했고, 또 1917년 동 학회가 "에디슨 상"을 수여하려 하자 거부했는지는 의문이다. 이에 대해서 테슬라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에디슨을 싫어하고 경계하였으나, 에디슨은 테슬라에 대해 똑같이 화가 나긴 했어도 세월이 지난 후에는 에디슨도 테슬라의 실력 자체만은 개인적으로 인정했다는 것으로 보인다.[19]
오늘날은 교류가 초고압으로의 변압이 쉽기 때문에 장거리 송전에 주로 사용되고, 직류는 철도, 건전지나 알루미늄 생산 같은 전기화학 공정, 태양광 발전, 반도체 소자의 전원, 초고압 직류 송전(HVDC)[20] 등에 사용된다. 컴퓨터나 TV를 포함한 대부분의 가정용 전자기기도 들어오는 전원이 교류이므로 직류로 먼저 전환해야 사용이 가능하다. 테슬라가 전기 시대의 아버지라면 에디슨은 전자(電子) 시대의 아버지인 셈. 본인들이 살아생전엔 몰랐겠지만 결국 둘 다 현대 기술의 대다수의 기반을 마련한 위대한 발명가였다.

4. 매드 사이언티스트


생전에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취급을 받았다. 동시대 사람들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매드 사이언티스트라는 말을 들을 만한 짓을 많이 했다. 밑 일화들이 약간 왜곡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W. 버나드 칼슨의 테슬라 평전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 뉴욕에서 실험 중에 공진동 기계를 작동시켰는데, 실험실이 있던 건물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놀란 사람들이 건물 안에서 도망치고 난리가 났다. 경찰이 도착해서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테슬라는 본인도 제어가 불가능해진 공진동기계를 해머로 박살낸 후 경찰들에게 말하기를 "흥미로운 과학실험 구경을 놓치셨군요!"[21][22]
  • 콜로라도 스프링으로 가서 개인 실험실을 만들고 실험을 시작했다. 한적한 시골도시였는데 주민들은 테슬라의 실험실에서 밤이 되면 파란 불꽃이 일고, 실험실 근처를 지나가면 전기가 튀고 근처 땅전체에서 불꽃이 튀는 등의 사건을 겪으면서 테슬라를 두려워했다고 한다. 거기다가 테슬라가 전류를 너무 많이 써버리는 바람에 도시 전체가 정전이 되는 사건까지 발생해버려서, 엄청난 두려움과 미움을 받았다고. 단 정전에 대한 보상과 사과는 확실하게 했다. 그리고 나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계속해서 전기실험을 했다.[23][24]
  • JP 모건에게 지원을 받아 롱 아일랜드의 절벽 위 땅을 사서 워든클리프타워라 이름짓고는 거대한 돔을 얹을 예정이었던 전 지구 통신용 타워를 짓기도 했다! 나중엔 이 타워가 워덴클리프 타워라 이름붙여 지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심각하게 타격을 입고 있었던 테슬라는 모건으로부터의 지원 중단 전보가 오자 그 수만 달러를 주고 세운, 그것도 다 만들어지지도 않아서 제일 중요한 돔 얹는 공사도 못한 타워를 고철 값만 주고 팔아버렸다.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어떻게 만든 건지 공사장비로 두들겨도 휘지 않아서 TNT로 날려버렸다고 한다. 일생의 꿈 중 하나였던 타워의 건설을 그깟 돈 때문에 포기한[25] 이후, 테슬라는 투자자들을 돈이 나오는 금고 정도로 취급한다. 당시 이 프로젝트가 실패 후 테슬라는 신경쇠약이 걸렸고 이런 프로젝트는 다시는 진행하지 않았다고 한다.[26]
  • 테슬라가 사망하자 FBI가 달려와서 연구노트와 기록들을 몽땅 압수해서 군기지로 가져가서 분석했다. 그 후 발표는 별거 없다.. 라고 한 후 2차대전이 끝난 후 테슬라의 고국에 있는 친척에게 돌려주었다. 단 상당수의 테슬라 추종자들과 음모론자들은 미국 정부가 돌려준 기록은 쓸모 없는 것들만 있고 실제 중요한 것은 아직도 어딘가 숨겨두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27] 이때 FBI가 보낸 MIT 과학자는 45대 미 대통령 도널드 J 트럼프의 삼촌인 존 트럼프다.
특유의 모난 성격과 기행 탓에, 오랫동안 수상한 발명만 해대는 기인으로서 과학 기술 업적으로는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신비주의자나 음모론자, 유사 과학자 같은 사이비들에게 사실상 고인드립을 당하는 '''매우 불쌍한 인물'''이다.

5. 그 외 천재적인 발상들


  • 라디오의 발전에는 테슬라가 만든 고전압 변환 장치인 테슬라 코일이 역할을 했다.
  • 1898년 무선조종 배(radio-controlled boat)를 시현했다. 무인으로 조종되는 배를 지켜본 상당수 대중들이 이를 속임수, 텔레파시 또는 흑마술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무선조종 함선은 제2차 세계 대전이 지난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 문명 5 백과사전에서도 나와 있듯이 그는 레이더의 초기 단계를 구상하기도 했다.
  • 테슬라는 아직까지 실현된 바 없는 무선 전력 송신 기술을 상용화하려 했던 최초의 과학자였다. 테슬라의 조수가 본 바로는 전기를 보내는 송전탑을 세워 수 킬로미터까지 전류를 보내 바닥에 설치된 전구들을 밝혔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그 조수는 테슬라가 원리는 알려주지 않아서 재현은 하지 못했다고. 이 실험으로 그는 1900~4년 사이 미국의 투자자 J. P. 모건에게 수십 차례나 편지를 보내 대서양을 넘어 에너지를 보낼 수 있는 송전탑인 워든클리프타워를 건축하려고 했으나 계획이 중간에 흐지부지되어 결국 막대한 빚을 져야만 했다. 일각에서는 모건이 자유 에너지(free energy)가 돈벌이가 안 된다고 판단해서 투자를 철회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모건이 훗날 인수한 에디슨의 GE는 에너지 사업으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 만약 모건이 투자를 뒷받침해주었다면 인류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참고로 무선 전력 송신 기술은 테슬라 코일과 연관이 있다.
  • 테슬라는 테슬라 발진기(Tesla's oscillator)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 장치는 특정한 공명 주파수에 진동하여 건물이나 땅을 흔들리게 만들 수 있다. 뒤늦게 이 기계의 파괴성을 인지한 테슬라는 해머로 이 기계를 부숴서 실험을 중단해야만 했다. 종종 거론되는 테슬라와 HAARP 무기의 연관성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 음모론자들은 이 무기를 통해 지진이나 기후변화가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베네수엘라 대통령인 차베스도 미국 정부가 HAARP를 통해 2010년 아이티 대지진을 일으켰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1899년 콜로라도 스프링즈에서 전기 실험을 하면서 발전 설비에서 무선으로 전력을 보내는 연구를 했다. 이때 사용한 테슬라 코일 중에는 1억 볼트까지 전압을 상승시킬 수 있는 물건도 있었다.
  • 전기구를 만들어 손으로 움직이는 등의 현재로도 구현방법을 알 수 없는 독특한 실험들을 많이 보여줬으나 대부분의 연구들이 그의 머리속에 있었기 때문에[28] 다른 것들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제대로 전해지질 않지만, 2003년에 세르비아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됨으로서 필사본 등의 자료가 있음이 확인되었다.[29]
  • 그 외에 음모론이 굉장히 많이 존재하기도 한다. FBI가 그가 죽고나서 연구 자료들을 다 가져갔다든지(이는 사실이라고 한다. 다만 나중에 세르비아에 반환되었다.) 심지어는 물질 전송 실험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필라델피아 실험 음모론에서도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데이비드 사우스웰의 음모론이나 이리유카바 최의 그림자 정부에선 지치지도 않고 나오는 인물들 중 하나이다.
  • SETI 프로그램의 최초 제안자이기도 하다. "외우주의 전파를 수신하여 분석하면 외계 문명을 찾을 수 있을 것" 이라는 SETI의 기본 개념을 제안한 게 이 사람이다.
  • 그는 전하량이 전자보다 작은 입자가 존재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쿼크 발견으로 그 예언이 실현되었다.
  • (이건 그의 천재적인 면모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니콜라 테슬라는 자신이 어렸을 적에 죽었던 형 다니엘 테슬라를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말하며 형에 비하면 자신의 능력은 별 것이 아니였다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6. 사후 재평가


  • 그가 죽은 지 30년 후(1975년)에야 미국 전기전자학회(IEEE)가 그를 기리는 IEEE Nikola Tesla Award를 제정하면서 다시금 재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30]
  • 2009년 7월 10일에는 구글에서 니콜라 테슬라의 생일을 축하하는 로고를 띄우기도 하였다.
  • 자기장의 단위인 테슬라(T) 또한 그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 니콜라 테슬라에 관한 저서는 우리 나라에서는 (주)양문에서 출판된 "과학문명을 1백 년 앞당긴 천재 과학자ㅡ 니콜라 테슬라(마가렛 체니 저)" 는 읽어볼 만하다(원본 초판이 81년에 나온 묵은 책이란 것을 감안하면). 나머지는 저 위에 나온 "빛의 제국"처럼 테슬라가 덤으로 나온 게 다다. 물론 현재는 자서전도 나왔고 평전도 나왔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한번쯤 읽어보긴 좋을 듯.
  • 2012년 이후로 일론 머스크가 최대주주인 테슬라가 혁신기업으로 떠오르면서 회사명의 유래가 된 니콜라 테슬라의 인지도 역시 덩달아 올라갔다.
  • 그가 남긴 발명품을 분석하며 그가 생각했던 것을 추측한 기사도 있다 - 니콜라 테슬라는 우리에게 FREE ENERGY의 열쇠를 남겼는가?

7.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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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 때의 사진. 말년의 가난으로 인한 움푹 들어간 볼이 눈에 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든 후에는 전형적인 시골 할아버지 같은(...) 얼굴이 되었지만, 그래도 젊었을 때는 꽤나 잘생긴 외모를 갖고 있었다.

8. 대중메체에서의 모습


7~80년대 한국이나 일본에선 토머스 에디슨을 띄워주다보니 몇몇 위인전을 베이스로 한 매체나 과학만화 등에서 테슬라에 대해선 에디슨을 사사건건 방해하고 중상모략을 꾸민 비열한 악역으로 표현한 적도 적잖게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에 와서서는 테슬라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되면서''' 둘의 위상이 완전히 역전이 되어서 위에서 이야기 되었듯이 위인전 베이스의 매체나 과학매체에선 니콜라 테슬라의 믿기 어려울 정도의 천재적인 능력들이 널리 인정 받고 알려지면서 니콜라 테슬라를 '''에디슨을 능가하는 최고의 천재'''로, 또 자신의 수많은 발명품들은 인류가 모두 공유해야 한다는 휴머니즘적인 사상을 가지고 자신의 발명품들의 대부분에 대해 특허를 내지 않은 '참과학자','참발명가'로, 이에 비해 에디슨은 니콜라 테슬라를 평생 질투,시기해 그가 성공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니콜라 테슬라를 비롯한 자신의 회사 직원들이 개발한 발명품들의 발명 업적들을 가로채 자신이 발명했다고 발표하고, 또 돈만 밝히는 소위 '악덕 사업가'라는 식으로 재평가된다. 물론 이것도 위에 나온 것처럼 상당히 과장된 면이 없잖아 있다.
하워드 휴즈와 함께 미국사에서도 손꼽을 만한 개성의 소유자였기에 여기저기 직접 등장하거나 모티브가 되었다.
스팀펑크디젤펑크에서 독특한 기술력 발달을 일으킨 오버 테크놀로지를 만들거나 그 기술의 권위자로 자주나온다. 거의 세계관 구상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수준.
한국 대체역사물에서도 그의 활동시기를 다루는 쪽에서는 반드시 데려오려는 인재로 나온다. 그리고 에디슨은 테슬라와 조선을 잇는 가교 역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크툴루 신화에 나오는 니알라토텝의 모티브도 이 양반이었다는 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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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프레스티지에서도 중요 인물로 등장한다. 모든 비극의 정점을 장식하는 로버트 엔지어의 마술 장치를 만들어준다. 나중에 로버트 엔지어 살인 사건을 담당한 판사가 (증거품으로 수집된) 이 장치를 보고는 엔지어의 스승인 존 커터에게 묻기를 당신이 만들었냐고 묻자, 존 커터의 대답이 걸작: '''“아뇨, 이건 마법사가 만든 겁니다. 저희 마술사들이 할 수 있는 척하는 일을 진짜로 할 수 있는 자이죠.”''' 당연히 이 마법사는 테슬라를 의미한다.
게임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세계관에서는 크로아티아에서 에덴의 조각을 발견해 그 안에 기록된 먼저 온 자들의 기술을 얻는 데 성공하고, 전 세계를 아우르는 전자 통신망을 구축하여 인류를 진보시키려고 하지만, 암살자들의 적대세력인 템플 기사단에 소속된 토머스 에디슨헨리 포드의 방해를 받아 실패하여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뒤 죽었다는 설정이 있다. 그리고 그가 만든 '''전자기 무기'''가 퉁구스카 대폭발을 유발하면서 까지 그리고리 라스푸틴이 러시아 황실로 부터 빼앗은 지팡이형 에덴의 조각을 파괴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설정도 있다. 브라더후드의 '진실'을 풀다 보면, 암살단의 멤버가 좌절한 니콜라 테슬라에게 접근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사회적 매장은 연기였고 실제론 암살단의 지원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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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스판 어쌔신 크리드:몰락에서 암살단의 협력자가 되어 에덴의 조각을 파괴해버린다. 이때 대사가 일품이다. '''"지옥에서 썩어라, 토마스."'''[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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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작 영화 커런트 워에서는 니콜라스 홀트가 그의 역을 맡았다. 하지만 영화 내용이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의 직류-교류 전쟁에 촛점이 맞춰져 테슬라는 조연에 가깝다.
겁스 무한세계에서는 니콜라 테슬라가 그의 친구이자, J. P. 모건의 딸이었던 앤 모건과 결혼해서 정신적, 자본적 안정을 찾았고, 모건의 돈으로 그의 발명을 현실화해, 과학으로 만들어진 유토피아가 건설된 세계인 '''건스백'''이 나온다. 이 세계에서는 원자력 화물수송기와 비행선비행기 대신 날아다니고, 에어카나 광선총 같은 30년대 SF에서나 튀어나올 물건들은 있지만 트랜지스터 같은 게 없다. 과연...
덤으로 겁스 무한세계에서 니콜라 테슬라의 IQ는 '''15''', 아인슈타인과 같다.[32] 니콜라 테슬라가 세기의 천재 과학자라는 말. 그는 에디슨의 명언인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지푸라기 더미 속에서 바늘을 찾는 것에 비유하였는데, 에디슨이 수학, 물리, 화학, 생물학 같은 수학과 기초과학 지식들이 없어서 발명을 할 때 마치 지푸라기 더미들에서 바늘을 잃어버렸을 경우 지푸라기를 하나하나 들추어내며 바늘을 찾아내는 식으로 발명을 한다면 자신은 뛰어난 수학과 기초과학 지식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법칙들과 지식들을 이용하면 훨씬 쉽고 빠르게 바늘을 찾아낼 수 있고 실제 발명에서도 그래서 에디슨보다 훨씬 적은 노력으로도 훨씬 뛰어난 발명들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에디슨을 지켜보는 게 안쓰럽다고 말하는 게 허세스럽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천재였고, 에디슨을 뛰어넘은 천재였다. 오히려 에디슨이 테슬라의 천재성을 시기해서 별 수작을 다 부렸다. 하지만 그 에디슨 조차도 '''엄청난 천재'''였다는 것이 아이러니. 에디슨은 테슬라에 비하면 과학자라기보단 사업가에 가까웠고, 테슬라는 인류 모두의 공익을 사익보다 중요시 여겨 특허를 많이 포기한 과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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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포트리스 2에서 블루팀 최초의 엔지니어로 나오는데, 당시엔 PDA가 없어서 대신 청사진을 가득 들고 다녔던 것 같다.
근육소녀대의 곡 "기계"의 가사에서 "그 남자"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다.
황뢰의 가크툰이라는 에로게에서 주인공으로 출현. 원래 역사보다 20년은 빨리 태어났다. 니콜라 테슬라(황뢰의 가크툰)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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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4 게임 디 오더: 1886에 등장하는 오버 테크놀로지 기술을 제공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여전히 에디슨을 싫어한다.
Warhammer 40,000에서는 기계교, 특히 일렉트로 프리스트의 성자로 존경받는다. 테슬라의 해골은 유물로 취급되어 마개조된 이후 강력한 전기 공격을 퍼붓는 무기가 되었다고. 그런데 실제대로라면 테슬라의 유해는 화장되었을텐데..
미드 생츄어리에서는 지구 상에 몇 남지 않은 뱀파이어로 등장한다.
드래곤 플라이트에서 전기속성 새끼용 이름이다

Fate/Grand Order아처 클래스 캐릭터등장한다.
Occultic;Nine에서도 중요 인물 및 설정으로 등장한다. 또한, 여기서의 테슬라는 숨겨진 딸이 있다는 설정이다.
\#컴파스 전투섭리분석시스템니콜라 테슬라는 장난을 좋아하는 소년 과학자로 나온다.
Tesla vs Lovecraft에선 주인공으로 나오고, 세기적인 발명품을 내놓기 직전 러브크래프트의 부하가 연구실을 불태워 버려, 그들을 싹다 조지게된다.
프로스트펑크에서는 빙하기가 다가오자 다른 미국인들과 함께 석탄이 풍부한 북극으로 피난하여 자신만의 도시 '테슬라 시티'를 세웠으나, 복지를 내팽개치고 약자들과 장애인들을 자신의 도시에서 내쫓으며[33] 발전과 진보와 효율성만 중시하며 시민들을 부품 취급했으며, 결국은 자신 역시 시민들의 봉기에 추방당한 폭군으로 등장한다. 정찰대를 보내 테슬라 시티의 미국인 생존자들이 있는 동굴을 탐사할 수 있는데, 그 미국인들은 결국 테슬라를 죽여서 정의를 구현했다고 한다. 참고로 그 동굴 안에는 테슬라의 시신이 심하게 훼손된 채로 여전히 방치된 상태였는데, 플레이어는 이 미국인 생존자들을 구출한 다음 테슬라의 시신을 묻어줄 수 있다. 또한 생전에는 눈과 추위를 막기 위해 도시 전체를 전력 에너지 돔으로 덮었지만, 테슬라가 쫓겨난 뒤로 관리가 부실했는지 온 도시를 태워먹고 모든 시민들이 감전사하게 된다. 플레이어는 도시의 잔해를 탐험한 뒤 테슬라의 연구 성과를 발굴하여 써먹을 수 있다. 여러 스팀펑크 매체들에서 보이던 '천재 발명가 테슬라'와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프로스트펑크 자체가 가진 기존의 스팀펑크 작품의 반발을 상징하는 인물상.
아이언 하베스트 1920+에서도 등장한다. 그의 기술을 이용해서 작 중에 나오는 보행병기들이 만들어졌으며, 이로인해 1차 세계대전에서 사상자가 크게 늘어나자 자신의 기술이 악용될 것을 우려하여 자신의 공장을 닫게 된다. 이 공장을 목표로 하여 폴라니아, 색소니, 루스비에트 3국이 경쟁하는 것이 캠페인 스토리의 큰 틀이며, 테슬라 스스로가 등장하기도 한다.
미국 헐리웃 영화에서도 2017년 작 커런트 워와 2020년 작 테슬라가 테슬라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근데 의외로 테슬라의 고국인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에서도 유고슬라비아 연방 시절이던 1977년에 테슬라의 일생을 그린 니콜라 테슬라라는 사극 드라마가 제작, 방영된 적이 있었다. 이 드라마에서는 당시 구 유고 연방의 인기 남배우였던 라데 세르베드지야(Rade Serbedzija)가 니콜라 테슬라를 연기했는데, 특이한 것은 테슬라와 테슬라의 부모인 밀루틴 테슬라와 두카 테슬라와 누이들인 밀카와 안젤리나 뿐만 아니라 테슬라의 경쟁자였던 토머스 에디슨 등 미국인 배역들도 구 유고권 국가 출신 배우들이 연기하였다. 유튜브에서도 검색하면 볼 수 있으니 참고하자.

9. 테슬라의 이름이 붙은 것



9.1. 현실


  • 자기장 단위 테슬라(T) - 1 Wb/m² = 1 kg/s2×A[34]이며, 1 T가 워낙 강한 자기장인지라[35] 생활에서는 대체로 μT나 nT 단위로 쓰이고, 1 T = 10000 가우스(G)의 비율로 줄인 단위인 가우스를 쓰는 경우도 많다.
  • 미국 락밴드 테슬라 - 1980년대 후반 인기를 끌던 팝 메탈 밴드다. 니콜라 테슬라를 기리기 위해 밴드명을 '테슬라'라고 지었다. 대표곡으론 'Love Song'
  • 테슬라(舊 테슬라 모터스) - 미국의 초고성능 전기차 생산업체. 회사 공식 사이트 창업자인 마크 타페닝이 전기 모터 개발의 선구자인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현재는 일론 머스크가 최대주주로 경영하고 있다.
  • JJ 테슬라 - 슬로바키아진공관 제조업체. 동구권 출신의 천재 과학자로 평가받던 그를 기념하여 이름을 지었다. 현재는 JJ 그룹에 인수되어 사명 변경.
  • 국산 기타 픽업 회사 테슬라 픽업. 스윙 기타 고가 라인 등에 장착되고 있다.홈페이지
  • 니콜라 테슬라 국제공항 -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있는 국제공항이다. 세르비아에선 테슬라를 제일 가는 위인으로 취급해 주기에 저런 이름을 지었다. 몽골의 칭기즈 칸 국제공항과 비슷한 케이스.
  • 니콜라 모터 컴퍼니 - 미국 애리조나에 기반을 둔 전기 트럭 제조 회사. 2014년에 창업되었고 회사명의 유래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단, 테슬라와는 달리 이쪽은 축전기 기반 전기차 뿐 아니라 수소 연료전지를 기반으로 한 전기차도 계획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거짓으로 판명나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는 회사가 아닌지 의심되는 기업이다.
  • NVIDIA테슬라 마이크로아키텍처 - 2006년 출시되어 GeForce 8000번대 그래픽카드 GPU로 사용되었다.

9.2. 픽션


강렬한 전기 충격과 관련이 있는 대다수의 무기/존재. 테슬라 코일에서 연상한 것이다.
  • 디멘션 W - 뉴 테슬라사. 도입부부터 테슬라의 인용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작중의 핵심인 W 차원 에너지를 코일에 전달하는 방식이 테슬라가 고안한 무선 전력 송신기술과 비슷하다.
  • 록맨 EXE 시리즈 - 테슬라 마그네츠
애니메이션 뒷설정에 따르면 아버지인 가우스 마그네츠에레키 백작자신의 어머니, 테슬라 에레키텔 백작부인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뉴 베가스에서는 그냥 테슬라 아머가 아닌 개넌 가문의 테슬라 아머로 등장한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
강한 전압과 전류가 흘러 타이밍에 맞춰 건너가야하는 보안장치.

[1] 세르비아어 키릴 문자 표기는 "Никола Тесла".[2] 9일에서 10일로 넘어가는 자정경이라고 한다.[3] 현재는 크로아티아 리카센 주 스밀랸.[4] 교류 전동기의 개념의 개발자는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테슬라가 아니다. '최초로' 교류 전동기라는 현상을 확인한 건 '아라고 원판'으로도 유명한 프랑수아 아라고가 1824년에 발표하였다.[5] 풀네임은 Mikhail Osipovich Dolivo-Dobrovolsky이다.[6] 니콜라 테슬라가 살았던 지역은 후에 독립하여 크로아티아의 일부가 되었다.[7]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세르비아계 미국인이라 유고슬라비아 분열 이후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가 이 사람의 국적을 놓고 한바탕 싸울 줄 알았더니, 의외로 조용히 넘어갔다. 현재 세르비아는 수도 베오그라드 국제공항의 이름을 '''베오그라드 니콜라 테슬라 국제공항'''으로 바꾸고 지폐에도 그의 얼굴을 넣는 등 그를 기린다. 크로아티아도 그를 기념하는 박물관을 만들어 세르비아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앞에서 말한 대로 심각한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다. 테슬라는 생전에 자신의 혈통이 세르비아인이고 고향이 크로아티아인 것에 둘 다 자부심을 느꼈다고 한다.[8] 나중에 이 누나와 여동생의 자녀들은 테슬라가 미국에서 노환으로 사망하자 사망한 외삼촌의 유품들과 재산들을 정리하였다.[9] 이 전쟁의 사례 중 하나가 전기의자형 문서에 나와 있다.[10] 나중에 원자로 사업으로 전환하나 2000년대에 도시바에게 인수. 한국의 원자로 원천기술도 이 회사에서 라이센스.[11] "빛의 제국 - 에디슨, 테슬라, 웨스팅 하우스 그리고 전류전쟁"이라는 책에서 다르게 나온다(교류 사업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자금사정이 시궁창이던 웨스팅하우스가 회사 사정상 로열티 지급을 할 수 없다고 말하자, 테슬라가 웨스팅하우스와의 신뢰로 특허권을 아예 포기했다는 것)는데, 신빙성이 더 떨어진다. 로열티를 지급할 돈이 없으면 테슬라 스스로가 안 받으면 그만이다. 특허권을 포기하면 제3자의 진입장벽이 허물어져 웨스팅하우스 사의 시장을 뺏어가므로 오히려 웨스팅하우스 사더러 엿먹으라는 말밖에 안 된다.[12] history channal 다큐 "the men who built America"[13] 다만 전기동력의 경우, 삼상 교류 전동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교류로는 직류 모터만큼 강력한 동력을 얻는 것이 불가능했으므로, 에디슨의 또다른 발명품인 전차 등의 응용분야에서는 직류가 상당기간 쓰였다.[14] 그 예로, 최초로 '''라디오'''(무선통신)를 발명했으나 에디슨과 싸우느라 그 공을 이탈리아의 발명가 굴리엘모 마르코니(Marconi, G.)에게 넘겨야 했던 사례가 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마르코니가 성공하기 전에 무선통신 특허를 취득했는데 미국 특허청에 의하여 그의 무선통신 특허를 강제로 마르코니에게 빼앗기기도 했다.[15] 그의 스폰서로 가장 유명한 인물이 바로 금융가 JP 모건이다.[16] 제너럴 일렉트릭. 하지만, 에디슨도 결국 말아먹고, 슈타인메츠라는 사업가에게 이 기업을 넘기면서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17] 고국인 세르비아에 누나, 여동생과 누이의 자녀 등 형제와 조카들이 있긴 했다. 그 중 여동생 마리카의 아들 사바는 1942년 제2차 세계 대전을 피해 미국에 와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외삼촌을 만나기도 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이전 세르비아 중앙 정계에서 고위 각료로도 활동했다. 큰누나 안젤리나의 차남인 미카는 의학을 전공하여 의사가 되었으며, 장남 니콜라는 외삼촌의 후광을 업고 과학자가 되기도 했다.[18] 노년기에는 비둘기를 매우 아꼈다고 한다.[19] 1896년 Electrical Review 5월호 등[20] 1000㎞ 이상의 초장거리 송전이나 해저 전력선 등에 주로 사용되는 송전 방식으로, 고전압 반도체와 변환용 변압기를 이용하여 직류를 변압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국내에서는 제주도에 전력을 공급할 때 사용된다.[21] Earl sparling, "Nikola tesla, at 79, Uses Earth to Transmit Signals" ,New york world-Telegram, 11 July 1935; "Nikola Tesla: Mechanical Oscillator" , http://www.rexresarch.com/teslamos/tmosc.htm.[22] 약간 왜곡이 되어 있는데 실제로 테슬라는 저 장치를 망치로 때려부순뒤 조수들에게 입 다물라 시켰고 그후 조사에서 조수들은 경찰들에게 "그건 틀림없이 지진임" 이라 말했다는 후문도 있다...[23] "Tesla's Flashes Startling" , New York Sun, 17 July 1903 in TC 16:140. [24] 당시 테슬라는 투자 좌절로 인한 자신의 좌절감을 표현하려고 저 짓을 했다고 한다...[25] 테슬라는 금전 감각이 거의 없다시피하며 살았다. 투자자들의 요구와 비위를 잘 맞춰 준 에디슨과는 다르게 테슬라는 허구헌날 투자자와 특허 문제로 싸웠고 그 와중에 무선 통신 기술이나 형광등 제조 기술은 남들이 홀랑 집어가기도 했다! 다시 되찾아 올 수도 있었지만 소송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그만두었다.[26] 테슬라 평전 제 10장 어두운 탑[27] 오닐의 Peodigal Genius에 서술되어 있는 내용으로 FBI 요원들이 테슬라가 죽은 다음날 테슬라의 호텔방으로 들어와 금고에서 어떤 은밀한 발명과 관계된 문서를 가져갔다고 주장되어 있다.[28] 실제로 테슬라는 자각몽을 이용해 꿈 속에서 도안을 그리고 시뮬레이팅 한 뒤, 가능하다고 결론이 나오면 현실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건 그의 타고난 시청각적 인지 능력 덕분에 가능했던 것. 꿈은 결국 인간 상상력의 연장선이기 때문에, 일반인의 경우에는 자신의 꿈 속에서 몇 천 번을 시뮬레이션 한다고 해도 현실에서는 절대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꿈 속에서의 실험과 현실에서의 실험결과가 같았다는 것은 테슬라가 온갖 물리법칙을 머릿속에 담고 있었고, 그것을 실제와 흡사하게 재현해낼 수 있었다는 뜻이다.[29] 정확한 명칭은 Nikola Tesla's Archive(니콜라 테슬라의 문서).[30] 다만 살아 생전에는 IEEE를 에디슨의 주구(앞잡이) 정도로 여기며 싫어했다. 1917년 동 학회가 "에디슨 상"을 수여하려하자 거절했다.[31] 작중 토마스 에디슨은 템플 기사단 측 인물로 등장한다.[32] 여기서 인간 중 가장 IQ가 높은 사람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 18이다. 겁스 무한세계 룰북에 따르면 겁스상에서 능력 수치는, 일반적인 인류가 10, 13~14면 천재, 15면 '''역사상 최고'''수준이다.[33] 실제로도 테슬라는 우생학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작중에서 설명되길 테슬라 시티의 의수족 기술은 뛰어났다고.[34] 왜 뜬금없이 질량 단위인 킬로그램이 나오는가 싶지만, 각 차원이 약분되어서 나온 결과이다.[35] 한국의 병원에서 사용되는 MRI 장비가 보통 1.5~3T 정도의 자기장을 사용한다. 7T까지도 나오는 장비도 있지만 이쪽은 실험용 내지는 이제 막 도입중인 최신형의 임상 기기라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 편. 이 기계의 엄청나게 강력한 자기장을 생각해 보면 테슬라라는 단위가 굉장히 강한 자기장을 나타내는 단위라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