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차일드 가문
1. 개요
유대계 대부호 가문.
2. 상세
로스차일드는 "붉은 방패"를 뜻하는 독일어 '춤 로텐 실트'(zum rothen Schild)를 영어식 발음으로 바꾼 것인데, "붉은 방패"라고 하는 그 뜻은 그들의 문장에서 따온 뜻이며 Izaak Elchanan Rothschild가 1577년 로스차일드 특유의 집을 건설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그의 집안은 환전 혹은 고철 쓰레기를 매매 등 잡다한 일들을 하던 천민 출신[1] 으로 19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한 이후 현재까지도 많은 재산을 소유한 가문이다. 주된 사업 분야는 금융업이고, 그외 석유, 금, 레저, 와인, 광산업, 호텔 등 각종 분야에서 활동한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떠오르게 된 사건들과 비밀스러운 이미지 때문에 각종 음모론과 서브컬처에서는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등의 방법으로 비밀스럽게 세상을 지배하는 흑막으로 자주 지목받는다. 사실 이런 이미지가 생긴 이유는 현재까지도 미국 내에서 정치, 금융 등 큰 영향이 있고, 중요한 것들은 유대인들과 유대자본이 많이 쥐고 있으며, 실제로 로스차일드 가문이 적어도 근대 초까지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밸푸어 선언이 영국 외무장관 벨푸어와 로스차일드 가문 사이의 뒷거래로 성사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규모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금융 감독 시스템은 전례 없이 정교해지고 있다. 록펠러 가문이 쪼개지면서 과거의 영향을 상실하였듯[2] 로스차일드 가문도 긴 세월동안 대규모 전쟁과 재산 분할 등으로 그 영향력이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줄어들었다.
3. 재산
로스차일드 가문 재산 규모는 관련 기업들이 상장을 하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무엇보다 19세기 후반부터 가문에서 소유했던 토지와 성들, 그리고 다수의 미술 작품들을 팔았기 때문에 재산을 측정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대중의 눈을 피해 사업의 규모를 차근차근 축소해온 정황을 고려하면 과거 전성기에 비해 재산의 규모가 줄어든 건 확실해 보인다. 무엇보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17세기부터 시작해서 내려온 가문이기 때문에 재산이 100명이 넘는 후손들 사이에 나뉘었고, 각 국가마다 수장이 따로 존재한다. 여러 가문들 중 현재 가장 영향력이 강한 곳은 영국과 프랑스로, 영국 쪽 가문의 수장였던 에블린 드 로스차일드(Evelyn de Rothschild)의 사유 재산은 2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에서는 미국 지부의 사유재산이 150억 달러(약 18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는데, 많긴 하지만 마치 세계 경제의 숨겨진 지배자처럼 알려진 세간의 이미지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액수다. 물론 음모론자 등은 포보스지의 발표를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참고로 페이스북 회장 마크 저커버그의 2017년 재산이 70조 원 가량이었고, 세계 최고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우드 왕가의 재산이 약 1.5조 달러, 그리고 아부다비 왕가의 재산을 1조 달러 가량으로 추정한다.[3][4]
또한 모든 로스차일드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 나폴리의 로스차일드는 이탈리아 통일 이후 쇠락하다 1920년대 은행업에서 철수하게 되었고, 오스트리아의 로스차일드는 철도 산업으로 크게 성공했지만 안슐루스 당시 나치에 의해 재산이 몰수당하고 가문의 수장 루트비히 나탈니엘 폰 로트실트 남작이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들이 오스트리아 정부로부터 1999년에 돌려받은 미술품의 가치만 1억 달러 이상. 못 돌려받은 현금과 현물이 얼마일지는. 또한 프랑스의 로스차일드의 은행업은 1981년 미테랑 정부의 은행 국유화로 큰 타격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 영국의 로스차일드 가문과 다시 합류하면서 프라이빗 뱅킹에 눈을 돌렸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848년 혁명, 1930년대 대공황, 1940년대 나치즘이 전 유럽의 로스차일드에게 큰 타격이었다고 한다. 아돌프 히틀러야말로 로스차일드의 원수 중의 원수인 셈.[5]
4. 비밀주의
가문의 모든 요직은 반드시 가문 내부에서만 맡고, 철저한 기밀 유지가 특징. 그러나 로스차일드 가문의 일원이 아닌 CEO가 임명되기도 하는 등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5. 역사
유대인이면서, 신성 로마 제국의 공작이면서[6] , 프랑스의 유력가이며, 영국의 세습 남작인 매우 특이한 가문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이미지와 달리 본래 로스차일드 가문은 프랑크푸르트에서 고물상을 하던 가문이었다.
원래 유대인들은 유럽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은 금융업 뿐만 아니라 고물상(물론 꽤 값진 물건을 거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등을 했다. 고물상의 경우는 '''물건의 가치를 제대로 알려주고 본 가치에 비하면 똥값이지만 여전히 막대한 액수에 해당되는 금액'''을 부르는 이미지가 있지만 유대인들은 우리가 지금 아는 그런 이미지와 달리 겸손하고 정직하며 신뢰할 수 있는 상인으로써 활동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먹고 살 돈을 벌긴커녕 지나가던 귀족에게 밉보여 감옥행 혹은 추방이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부르주아이긴 했지만 바로 이런 흔한 유대인 상인중 하나에 불과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진짜 "Great House"라는 명칭을 쓸만한 수준으로 격상된 것은 18세기 중반 마이어 로트쉴트가 환전상을 하고 프로이센 왕과 거래하게 되면서 은행 가문이 된 이후부터이다. 여기에 한가지 일화가 있는데, 마이어의 일솜씨를 마음에 들어한 프로이센 왕은 그에게 장부관리 업무를 맡겼다. 그러나 1806년 프로이센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나폴레옹이 입성하자 프로이센 왕은 국외로 도피했다. 마이어는 자신의 가산이 프랑스에 의해 몰수당하면서도 ''''왕의 재산은 철저히 숨겨놓았고'''', 훗날 복귀한 프로이센 왕은 '''동전 한닢까지 빼먹지 않고 보관'''해 놨던 마이어의 진실성에 감동하여 가문의 재산관리자로 임명한다.
마이어 로트쉴트는 다섯 아들들을 각각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스트리아 빈, 이탈리아 나폴리로 보내 국제적인 금융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이것이 지나가던 유대인 가문 따위에 불과했던 로스차일드 가문이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아 세계의 금권을 재패할 수 있게끔 한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로스차일드 가문은 "뭔가 이상하게 유럽 어딜가도 등장하는 좀 특이한 유대인 가문”에 불과했다. 당대의 최고 금권은 베어링 가문[7] 이었고, 베어링을 대표주자로 하는 영국 토호들에 비하면 로스차일드는 여전히 금수저 반열에도 못 들었다.
영국 로스차일드 가문의 첫 수장 네이선 로스차일드 때에 와서는 오히려 잠깐 날아오르나 했더니 지하실로 처박힐 뻔했다. 나폴레옹 전쟁때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한 것을 보고 영국 금을 밀수해서 파는 사업을 했는데 나폴레옹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다시 망하면서 파산할 위기에 처한 것이었다. 이때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가문의 운명을 건 승부수를 띄웠는데, 나폴레옹의 몰락이 확실하다 판단하고, (미래의) 승전국들의 국채를 가문의 자본을 모조리 끌어모아 싹 매수해버린 것이다. 이게 성공하면서 로스차일드는 간신히 파산 위기를 넘기고 이전보다 훨씬 많은 막대한 부를 거머쥐게 된다. 하지만, 로스차일드 가문은 여전히 '''뭔가 좀 성공한 유대인 가문''' 수준에 불과했다.
진정한 로스차일드 가문의 부흥은 왕의 재산을 철저히 지켜낸 진실성을 또 다시 빛낸 사건으로, 신성 로마 제국 해체 후 망명한 한 귀족 헤센가[8] 의 재산을 철저히 보호했다. 이로 인해 큰 신뢰를 얻어 이전처럼 재산 관리를 전적으로 위임 받았다. 그리고 예전부터 그러했듯 재산을 한 번도 까먹은 적이 없으며 제대로 불려서 주인에게 돌려줬다. 이를 위해 적극적인 투자로 세력을 불리면서도 그 재산을 절대로 까먹지 않기 위해 뼈저리게 노력했으며, 여러 유력 가문과 경쟁해야 했지만 기어코 성공하여 제대로 재산을 불려서 되돌려줬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근대사의 대부분을 동인도 회사로 대표되는 영국내 타 세력과 싸우는 것으로 보냈다. 거기다가 로스차일드 가문이 유럽 전역에 퍼져있었고 큰 분파를 봐도 영국과 프랑스로 나뉘어진 상당히 희한한 형태였기 때문에 각 가문 분파들은 각 분파들의 현실에 맞춰 처신해야 했고 그러다보니 분파별로 정책이 충돌하기도 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역사를 찾아볼 때 매우 햇갈리기 쉬운 이유가 이것. 로스차일드 가문이 진정으로 권력을 장악할 수 있던 것은 아무리 빨리 잡아도 세포이 항쟁으로 인한 영국 동인도 회사 해체 때 정도는 가야한다.
이후 런던이 국제적인 금융 중심지가 되고, 베어링 가문으로 대표되는 영국 토호들의 구심점이었던 영국 동인도 회사를 끝내 격파하고, 영국과 프랑스 양쪽 모두에서 세습가능한 귀족 작위까지 받으면서 지금 우리가 아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되었다.
프랑스의 로스차일드 가문은 프랑스식으로 '로쉴트'라 표기하는 경우가 많고, 와인 사업으로 현재도 유명하다. 이 로쉴트 가문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때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로쉴트 가문의 저택은 파리 근교에 있는 Schloss Ferrières(샤토 페리에르)였다. 전쟁 때 로쉴트 가의 대표인 알퐁스는 지방으로 피신하고 집사만이 남아서 페리에르 저택을 지켰고, 독일군이 저택을 징발해서 파리 봉쇄전 당시 빌헬름 1세와 비스마르크의 숙소 겸 최고사령부로 사용했다. 빌헬름 1세는 저택의 약탈 및 파괴를 금지하고 알퐁스 본인이 아닌 부인의 침실을 사용했고, 침대도 자신의 군용 침대를 가져다 썼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빌헬름 1세가 저택을 떠난 뒤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서 독일군 병사들이 창고의 와인을 훔쳐가거나 동물들을 죽이는 등의 행패를 부렸고, 심지어는 비스마르크조차 값을 쳐줄 테니 와인 한 박스를 내놓으라고 할 정도였다. 출처 이후 알퐁스 로스차일드는 독일과의 배상금 협상 과정에 참여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공인 1등급 와인인 '샤토 무똥 로쉴트'(Château Mouton Rothschild) 와인으로 유명한 필리프 로쉴트 남작(Baron Philippe de Rothschild, 1902~1988)이 프랑스 로스차일드 가문의 핵심 인물이었다.
체 게바라는 반자본주의적, 반미주의적인 그의 사상답게 로스차일드 가문을 악마라 칭했다고 전해진다.
긴 시간을 동인도 회사 세력과의 경쟁으로 보낸 탓에, 로스차일드 가문은 미국과 일본에 대한 영향력 행사에 상당히 많은 문제점을 가지게 되었고[9] , 이는 이후 록펠러 가문 대두와 함께 금본위주의 체제의 붕괴로 가문이 쇠퇴의 길을 걷게 되는 계기가 된다. 역설적으로 세계의 금권을 장악한 전성기 때, 과거의 교훈을 잊은 당대 수장 빅터 로스차일드의 독단적 행동이 이 쇠퇴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다.
물론 카길이나 코크 인더스트리처럼 비상장 기업임에도 세계적인 대기업들이 존재하긴 하나, 그네들도 대략적인 덩치는 어느 정도 드러나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뭐 어디 졸부가 금고 속에 돈다발 꿍쳐둔 것도 아니고, 세계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정도의 부를 완전히 숨긴다는 것은 음모론자들의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산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게 곧 대략적인 윤곽도 파악하지 못한다는 뜻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비상장기업의 가치 측정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아람코와 같이 막상 상장 하려고 뚜껑 열어보니 미국 FAANG 수준 기업보다 약 2배 정도 밖에(?) 안 되는 시가총액을 받아들기도 해서 아무리 로스차일드 가문의 비상장 자산이라는 것도 세계 경제를 배후에서 좌지우지한다고 하기엔 어려움이 많을 것이고 무엇보다 세계 금융업의 중심지는 이제 런던이 아니라 월스트리트인데다 이미 로스차일드의 레벨은 월스트리트의 조상님인 존 피어폰트 모건 시절에 이미 추월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고 중국공상은행을 비롯한 중국계 금융사 역시 약진하고 있기 때문에 로스차일드 가문이 과거의 위명에 기댈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2019년 1월 25일, 오스트리아의 로스차일드 가문은 하(下)오스트리아(Niederösterreich) 지역에 약 7천 헥타르(1만7천300 에이커)의 숲을 소유하고 있는 2개의 신탁을 현지 주요 제지회사 '프린츠호른'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200년에 걸친 오스트리아 내 도약과 추락, 도산, 전쟁 등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마감하게 되었다.#
6. 음모론
6.1. 워털루 전투 음모론
나폴레옹 전쟁의 워털루 전투 결과에 대해 "네이선 로스차일드가 패밀리 네트워크를 통해 정부 전령보다도 빠르게 영국군의 승리 소식을 입수하여 정보를 교란해 시장에서 이득을 취했다"는 음모론이 있다. 대중에는 흔히 로스차일드가 영국 귀족들한테서 주식을 사다가 떼돈 벌었다고 알려져있다.[10]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로스차일드를 연구했던 하버드의 교수 니얼 퍼거슨 같은 저명한 학자는 다르게 말하고 있다.
원래 로스차일드는 나폴레옹의 대륙 봉쇄령이 내려진 사이 영국의 금을 프랑스로 밀수출하는 일을 해서 이득을 취했고,(프랑스로써도 영국의 금이 빠져나가면 이득이라 생각해서 막지 않은 모양)[11] 나폴레옹 전쟁이 터진 이후로는 패밀리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금을 영국군의 군자금으로 전달하는 일을 하였다. 이후 엘바섬에서 돌아온 나폴레옹이 다시 전쟁을 일으키자, 로스차일드 가문은 전쟁이 장기전으로 갈 것이라 잘못 예상하였다.
그리고 금을 대량으로 매입하였는데, 워털루 전투로 인해 전쟁이 금방 끝나버리자 금값 폭락을 통해 손해를 크게 볼 위기에 처했고, 이때 로스차일드 가문이 아주 제대로 망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정도였다.
이때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영국 국채를 떼거지로 매입하는 최후의 승부수를 띄웠는데, 전후 영국 정부 차입이 감소해서 국채가 폭등할 것이라 예상한 것이었다. 이 예상은 다행히도(?) 들어맞아 채권 가격이 폭등하여, 40% 쯤 상승한 고점에서 채권을 매각해서 현재 가치로 6억 파운드를 넘는 거액을 벌어 위기를 모면했다.
애초에 로스차일드는 정보를 조작한 적도 없고, 조작은커녕 예상을 잘못해서 금으로 돈 벌려다가 엘바 섬에서 탈출한 나폴레옹이 다시 빠르게 망해버린 바람에 가문 전체가 망할 뻔했다. 결국 음모 같은 것은 없었고, 예측 가능한 경제적 흐름을 절묘하게, 그것도 뒷북으로 이용하였을 뿐이라는 것이 음모론에 대한 퍼거슨의 반박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정보 조작을 했다는 "주작"을 벌인 당사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음모론도 있다. 음모론에 대한 음모론인 셈. 이 경우 나치 독일이 로스차일드 가문을 깎아내리려는데 국채 만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아 주식으로 슬쩍 바꿔놓은 것이라 주장한다.
어쨌든 로스차일드 가문 대박 사건은 여러모로 제대로 잘못 알려져 있어서, 주식이 아니라 국채였음을 아는 사람들도 로스차일드 가문이 정보 조작을 했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로스차일드 가문은 근현대 역사 내내 베어링 가문으로 대표되는 동인도 회사 투자 세력과 대립했고, 세포이 항쟁을 계기로 동인도 회사가 공중분해 되기 전 까지는 대중이 흔히 상상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은커녕 영국 내부 유력 세력들, 특히 베어링의 연고지인 스코틀랜드 쪽 인사들과 권력투쟁을 하던 판이다.
6.2. Fed(연방준비제도) 음모론
로스차일드 가문이 미국 달러를 생산하는 것에 개입하며 아직도 세계 경제와 정치를 좌지우지한다는 음모론이 있다. "1971년 닉슨 대통령 금태환 제도 폐지를 혜지하면서 기축통화는 달러가 되었는데, 이 달러를 생성하는 것이 바로 FRB(Federal Reserve Board/Banks)이다. 이곳은 미국의 중앙은행[12] 이지만 '''민간은행'''이고, 이 민간은행의 최대 주주들이 로스차일드 가문에게 매우 우호적인 기업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미국 대통령도 어쩌질 못하며,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이를 바로잡으려다 암살당했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있다.
초기 FRB의 주주(총20만)
록펠러와 쿤롭의 뉴욕내셔널시티은행 3만
폴와버그의 뉴욕내셔널상업은행 2만1천
JP의 퍼스트내셔널은행 1만5천
로스차일드의 하노버은행(1만2천), 체이스은행(6천), 케미컬은행(6천) 총 2만4천
후에 이들 은행의 연준 지분은 조정되어 53%에 이르게 되고 현재는 약 70%대로 추정.
에이브러햄 링컨 - 중앙은행 시스템을 거부하고 그린백을 발행. 1865년 4월 15일 암살.
앤드루 잭슨 - "내가 은행을 죽였어"라는 유언을 남긴 대통령, 중앙은행 시스템을 거부. 암살시도가 있었으나 암살자의 권총 2발 모두 불발로 겨우 암살당하지 않는다.
존 F. 케네디 - FED를 배제하고 재무부에 화폐발행권을 넘겨줌. 1963년 11월 22일 암살.
그렇지만, 은행의 주주들이라고 해도 배당금은 화폐발행액수의 겨우 6퍼센트에 불과하며 94퍼센트의 수익은 미국 재무부로 환수된다. 또한 FED의 주주는 FED에 관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그리고 FED의 주요 주주들인 JP모건체이스, 씨티뱅크,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 등은 주식시장에 상장된 공개회사이고, 해당 은행들의 지분 현황을 보면 예시1 JP모건체이스 로스차일드 가문과 어떤 연관도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은행에 대한 특정 주주의 영향력을 제한하기 위해 은행 지분 10% 이상을 보유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들을 알고 나면 역시나 어처구니가 없는 하찮은 음모론일 뿐이다.
6.3. 비밀결사
음모론의 대부 일루미나티와 프리메이슨에 엮이지 않으면 섭섭할지경. 비밀결사 음모론이 다 그렇듯 중구난방 날뛰는데, 비밀결사의 창설자이자 지도부라는 주장, 지도부의 일부라는 주장, 비밀결사의 하수인이라는 주장등 다양한 주장이 혼재되어있다.
하지만 정작 로스차일드 가문과 프리메이슨의 관계는 영 좋지 않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숙적이었던 베어링 가문의 연고지가 스코틀랜드이고 베어링 파벌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것이 스코틀랜드 프리메이슨이다. 일루미나티의 경우 프랑스 로스차일드 세력과 관계가 있긴 하나 이것 또한 여러 지역의 서로 다른 프리메이슨 세력들과 주변국 세력가들과 이해관계가 꼬여있어 딱히 로스차일드 가문에 일루미나티와 친했던 것도 아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본래 신성 로마 제국에서 황제의 자금을 철저히 지킨 충의를 인정받아 출세하여 유럽 전역에 진출, 크게는 영국과 프랑스 분파로 구성되어있었기 때문에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런 저런 세력과 조직에 어설프게 얽었다간 커다란 모순점이 생겨 뒤통수를 얻어맞기 쉽다.
그리고 로스차일드 가문은 동인도 회사가 세포이 항쟁으로 완전히 망하고, 대중국 아편무역을 사순 가문이 독점하면서 경쟁 세력의 구심점이 깨지기 전까지는 영향력이 그다지 크지 않았고, 이후 브레튼우드 체제로 대표되는 금본위주의를 밀다가, 엄청난 역풍을 맞고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 로스차일드 가문이 누린 황금기는 정말 짧다.
7. 실존 인물
- 래리 로스차일드 - 미국의 야구코치. 30년 가까이 투수코치로 활동중. 현재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투수코치.
8. 매체
상기한 대로 각종 음모론 덕분에 로스차일드 가문의 서브컬처에서의 묘사도 비밀스럽게 세계를 지배하는 흑막으로 자주 등장한다. 물론 예외도 없지는 않지만...
-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시리즈에서 주인공 오토나시 사야를 지원하는 뒷빽으로서 활동하는 조직인 "붉은 방패"로서 등장. 작품에 따라서는 조직을 이끄는 가문의 이름이 로스차일드가 아닌 다른 이름의 가문으로 나오기도 하는 등[13] 직접적으로는 그 모티브인 로스차일드 가문과의 연관성을 딱히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어찌되었든 이 시리즈에서 나오는 "붉은 방패"는 바로 로스차일드 가문을 가리킨다. 아무튼 로스차일드 가문이 악역으로서 등장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사례일지도 모른다.
- 한국의 라이트노벨 세계 제일의 여동생님에서도 "세계"의 일원으로 등장.
- 폴아웃 3의 동부 브라더후드 오브 스틸 구성원들 중 수석 서기란 사람들 중에 서기 로스차일드란 사람이 있다(메인퀘 관련 브리핑을 하거나 리버티 프라임 관련 의뢰를 주는 그 사람). 이 로스차일드가 그 로스차일드 가문과 관련이 있는지는 불명. 다만 하필이면 빨간 옷(상술했듯 로스차일드는 '붉은 방패'라는 뜻의 독일어 성씨를 영어로 번역한 이름이다)을 입은데다가(물론 빨간 옷은 이 사람만 입은게 아니고 서기나 엘더들도 입는 옷이긴 하다), 동부 브라더후드의 중요한 부분들을 관리담당하는 수석 서기라는 점 등등 현실의 로스차일드 가문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 도시야월기담에서는 에티루스의 이야기에서 언급되는데, 워털루 전투가 발발하던 시기에 통신원을 매수하여 영국 증권 주식 대부분을 삼켰다고 한다. 에티루스 또한 이들에게 낚여 전 재산을 날렸었다고. 그러나 저택에 쳐들어 온 에티루스의 협박으로 주식 20%를 그에게 넘겨준다. 그리고 에티루스는 뭐든지 올 인은 좋지 않다는 교훈을 얻었다.
- 로스차일드 가문을 다룬 역사책으로 데릭 윌슨(Derek Wilson)의 '가난한 아빠 부자 아들'(Rothschild : A story of wealth and power)이 있다.
- 한국의 소설 템빨의 등장인물인 판미르가 드워프들의 도시 탈리마에 들어갈 수 있도록 협력해주었으며, 61권 후반에서 히든 클래스 전직자들을 견제하는 혁명단을 이끄는 비밀스러운 조직으로 언급된다.
[1]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2] 단, 록펠러 가문이 가문의 조직들을 의도적으로 축소한 경향이 있으므로, 유명무실 해졌다고 넘겨 짚을 수는 없다. 로스차일드도 비슷하게 가문의 위세를 최대한 억제해서 실리만 챙긴 바가 있다.[3] 1.5조 달러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의 GDP보다 조금 적은 액수다. 물론 GDP는 1년간 발생되는 소득과 비슷한 개념이고 재산과는 다르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비교해야 맞다. 대한민국의 국부(國富)는 총 7.2조 달러로써 사우드 왕가나 아부다비 왕가에 비할 바는 아니다.[4] 여러 매체에서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산이 5경원이라는 잘못된 속설이 퍼진 상태인데, 5경원이라는 숫자는 '화폐전쟁'의 저자 쑹훙빙이 1850년 당시 6조원에 달하던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산에서 연 수익을 6%로 추정하여 대략 6조원×(1.06)^150을 한 것이다. 하지만, 1850년 이후 1,2차 세계 대전을 비롯한 여러 안좋은 상황들 때문에 그 수익이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다 재산상 큰 피해를 봤다. 즉, 그동안의 손익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계산한 잘못된 수치이다.[5] 프랑스 혁명은 중간에 지원 세력이 바뀌면서 로스차일드 가문에 우호적인 세력의 몰락을 불러와 로스차일드 가문에 타격을 입혔고, 나치는 말할 것도 없이 로스차일드 가문을 매우 싫어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양차대전에서 행사한 영향력도 결국 후술하듯이 과거의 경쟁세력과의 피터지는 권력투쟁으로 인해 배배 꼬여 있었다. 애초에 히틀러는 유대인을 혐오했으니 뭐...[6] 물론 신성 로마 제국은 해체되었고 작위도 없어졌다. 하지만 신성 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에게 작위와 가문 문양을 하사받았기 때문에 아직도 가문 문양에 공작관이 있다.[7] 조상은 독일계로 브레멘 출신의 양모 상인인 요한 베어링이 영국으로 이주하며 가문의 시조가 되었다. 그의 자식들이 세운 베어링스 은행은 1995년 닉 리슨에 의해 파산하기 전까지 당대 최고의 명문 은행이었다.[8] 용병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가문이다.[9] 일본 근대화 초기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것은 스코틀랜드쪽 세력이었지 로스차일드가 아니었다. 당장 그 악명높은 운요호가 스코틀랜드 조선소에서 건조한 것을 스코틀랜드 프리메이스 회원으로 추정되는 어느 스코틀랜드 사람이 일제에 헐값에 팔아넘긴 배였다. 미국의 경우도 동인도 회사쪽 세력이 선두주자였다.[10]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이렇게 알려져있어서 사실인 줄 아는 사람이 많다.[11] 사실 로스차일드 가문도 영국과 프랑스 양쪽에 퍼져있다.[12] 한국의 한국은행과 같은 역할.[13] 예를 들어 BLOOD+에서는 조직을 이끄는 가문의 이름이 골드슈미트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