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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晋直鉉
1901년 3월 29일 ~ 1961년 6월 5일[1]
1. 개요
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법조인, 정치인이다. 초명은 창현(昌鉉)이며, 호는 운남(雲南)이다. 본관은 남원 진씨(南原 晋氏)다. 아내는 밀양 박씨 박동조(朴東朝)의 딸 박운갑(朴雲甲)[2]이다.
박정희 대통령 때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이경호장인어른이다. 따라서 제18대 자유선진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이영애의 외조부이다. 또한 손주항 전 국회의원의 외숙부이다. 손자 손녀로는 국회의원 이영애와 더불어 국내보단 해외에서 다양한 유명 기업들의 지분을 보유하여 더 유명한 투자가 진성계 등이 있다.

2. 생애


1901년 전라북도 임실군 일도면(현 임실읍) 이도리[3]#에서 진재석(晋在碩)과 영천 이씨(寧川 李氏) 이극신(李極信)의 딸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4]. 경기중학교경성법학전문학교 일본 메이지대학 고등연구과와, 대법과를 졸업하였다.
일정(日政) 때인 1922년에 일본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후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조선인변호사 회장으로서 박열등의 독립투사에게 무료변론을 하다가 3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45년 8.15 광복대한독립촉성국민회 임실군지부 위원장, 임실경찰 후원회장, 임실공립국민학교 후원회장. 임실군 축산협회장, 임실군 후생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임실중학교, 임실고등학교, 임실군교육청, 임실경찰서 등의 부지를 희사(喜捨)하여 지방발전을 도왔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전라북도 임실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제헌 국회 기간동안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조사위원을 지내기도 했으며, 헌법초안에 참여하여 건국에 기여한 공으로 건국공로 국민장 224호가 추서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한국민당 엄병학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박세경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1년 죽었다. 묘는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대곡리 두치봉(斗峙峰) 사좌(巳坐) 구비갈 석물에 있다.

[1] #[2] 1900년 4월 7일에 태어나서 1977년 10월 29일에 죽었다. 묘는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대곡리 두치봉(斗峙峰) 축좌(丑坐) 구석물에 있다.[3] 인근의 성가리와 함께 남원 진씨 집성촌이다.[4] 다음은 출처 사진이다.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