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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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회선거위원회사무총장 전규홍: '''지금부터 국회 제1차 회의를 시작합니다.'''
제헌 국회 1회 1차 본회의록[7]
첫 구절
대한민국 최초의 국회의원 선거인 1948년 5월 10일 선거(제헌 국회의원 선거)로 선출된 200명의[8]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대한민국의 1대 국회이며, 국호와 헌법을 제정했다. 즉, 한반도 내 공화헌정체제는 제헌 국회에서 시작되었고 이 국회에서 헌법을 제정했기 때문에 제헌 국회라 불리게 된 것이다. 1948년 5월 31일에 구성되고 1950년 5월 30일까지 2년 동안 활동했다. 초대 임시의장[9][10] 및 국회의장에 이승만이 추대되었고, 부의장에는 신익희[11] , 김동원[12] 의원이 선출되었다.
2. 국회의원
자세한 내용은 제헌 국회의원 참조.
3. 원구성
3.1. 의장단
3.2. 상임위원회 / 상설특별위원회
총 8개의 상임위원회가 신설되었다.
- 법제사법위원회: 총 20인
- 외무국방위원회: 총 30인
- 내무치안위원회: 총 20인
- 재정경제위원회: 총 40인
- 산업위원회: 총 40인
- 문교사회위원회: 총 20인
- 교통체신위원회: 총 20인
- 징계자격위원회: 총 20인
3.3. 비상설특별위원회
총 22개의 특별위원회가 있었다.
- 헌법 및 정부조직법 기초위원회
- 국회법 및 국회규칙 기초위원회
- 특별법(반민족행위처벌법) 기초위원회
-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 시국(반란)수습대책위원회
- 공무원처우개선대책위원회
3.4. 교섭단체
1949년 7월 9일 국회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여 교섭단체 제도가 생겨나게 되었다. 교섭단체는 20인 이상으로 구성된다.
- 제5회 임시회: 총 200인(1949.9.12.~1949.12.3.)
- 민주국민당 75인(대표: 지대형)
- 일민구락부 54인(대표: 원용한)
- 신정회 23인(대표: 오석주)
- 대한노농당 23인(대표: 이훈구)
- 무소속 25인
- 제6회 정기회: 총 198인(1949.12.20.~1950.5.30.)
- 대한국민당 71인(대표: 이재형)
- 민주국민당 69인(대표: 지대형)
- 일민구락부 30인(대표: 원용한)
- 무소속 28인
4. 주요 활동
아래에 열거한 법률은 †로 표시한 것 외에는 이 문서 최종수정일 현재에도 시행 중인 법률(후에 개정된 것 포함, 폐지제정된 것 제외)이다.
- 1949년
- 4월 26일: 대한적십자사조직법 제정
- 6월 21일: †농지개혁법[19] 제정
- 7월 4일: 지방자치법 제정.
- 7월 15일: 병역법, 소득세법 제정
- 7월 30일: 법원조직법 제정
- 8월 12일: 국가공무원법 제정.
- 9월 21일: 국경일에관한법률 제정
- 9월 29일: 주세법 제정
- 10월 27일: 계엄법 제정
- 11월 4일: 상표법 제정
- 11월 7일: 재외국민등록법, 법인세법 제정
- 11월 23일: 관세법 제정.
- 11월 28일: 상표법 제정.
- 12월 3일: 검찰청법 제정.
- 12월 19일: 국채법 제정.
- 12월 20일: 국세징수법 제정.
- 12월 22일: 지방세법 제정.
- 1950년
- 1월 23일: 양곡관리법 제정
- 1월 26일: 방어해면법 제정
- 2월 7일: 행형법(현재는,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정
- 2월 9일: 인지세법 제정
- 2월 22일: 대한민국재외공관설치법 제정
- 2월 23일: 법원재난에기인한민형사사건임시조치법 제정
- 3월 2일: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정.
- 4월 7일: 국내재산도피방지법 제정
- 4월 8일: 국유재산법 제정
- 4월 18일: 대한석탄공사법 제정
- 4월 21일: 은행법, 한국은행법 제정
5. 관련 문서
[1] 지역구 200석.[2] 사실 정원을 300석으로 구성했으나 북한 지역에서 총선이 불가능하게 되어 200석을 남한에서 먼저 선출하고 나머지 100석은 북한 지역을 위해 남겨둔 자리라고 한다.[3] 대통령직 취임으로 사퇴[4] 이 당시에는 무소속 의원들이 정당 소속 의원들보다 많았다.[5] 제헌 국회의원 선거 기준[6]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 조선민주당, 교육협회, 대성회, 조선공화당, 부산15구락부, 단민당, 대한청년단, 민족통일본부, 전도회, 한국독립당[7] 전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8] 최초 집회는 국회의원을 선출하지 못한 제주 2석을 제외한 198석으로 집회했다.[9] 노진설의 제안으로 최고령자로서 일동박수로 선출되었다. 국회법 상의 연장자 우대의 시작이라고 봐도 좋을 듯.[10] 이승만의 일성은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윤영 의원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일동 기립한다.[11] 1차 투표 과반 미달로 다득표자였던 김동원 의원과 경합[12] 1차 투표 과반 미달로 다득표자였던 지청천 의원과 경합[13] 7월 17일 공포[14] 법률 제1호[15] 법률 제2호[16] 법률 제3호[17] 법률 제4호, 단군기원[18] 법률 제5호[19] 이후 1996년 1월 1일부터 농지법이 시행되면서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