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건양문
1. 소개
昌德宮 建陽門
창덕궁의 궁문이었다. 창덕궁의 동쪽 담장에 있었다. 현재는 없다.
창덕궁 창건 당시에는 돈화문, 금호문처럼 궁궐과 외부를 연결하는 문이었다. 그러나 1483년(성종 14년)에 창덕궁 동쪽에 창경궁을 지으면서 두 궁궐을 잇는 문으로 변했다.
지금 건양문 터는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에 있지 않고, 오롯이 창덕궁 경내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창덕궁 주요부에서 낙선재 구역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낙선재가 원래 창경궁 권역인데 근대에 들어 창덕궁으로 편입시켰기 때문이다.
2. 이름
'건양(建陽)' 뜻은 직역하면 '양(陽)을 세운다(建)'이다. '양(陽)'은 볕, 해를 의미하며 방위로는 동쪽을 가리킨다. 즉, 건양문은 '동쪽 문'이란 뜻이다.
3. 역사
언제 처음 지었는지 모른다. 다만, 태종 때 창덕궁을 창건하면서 건립한 듯 하다. 원래는 이름이 없었다. 그러다 1475년(성종 6년)에 왕명으로 예문관대제학 서거정이 건양문이란 이름을 지었다.#
조선시대에 궁궐 안 사람들은 지금과 달리 창덕궁과 창경궁을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해서 사용했다.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엄연히 다른 궁이었기 때문에, 지금처럼은 아니더라도 나름 구분을 엄격하게 했다. 그래서 창덕궁과 창경궁을 공적으로 오갈 때는 반드시 건양문을 거쳐야 했으며, 일종의 통행 허가패인 부신(符信)이 있어야만 드나들 수 있었다.#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광해군 때 재건했다. 영조와 정조는 건양문에서 보초서는 군사를 늘리고 문 옆에 숙위소를 두었다.###[1]
지금은 없다. 언제 철거했는지는 모르나, 1907년(융희 원년) ~ 1908년(융희 2년)에 만든《동궐도형》에서도 확인이 가능한 걸 보아 그 때까지는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일제 때 헌 듯 하다.
4. 구조
- 《동궐도》와 《동궐도형》을 보면 정면 1칸, 측면 1칸, 총 1칸짜리 문이었다. 지붕은 맞배지붕이었고 용마루 위에는 용두를 올렸다. 측면은 흙과 벽돌로 만든 벽으로 마감했다. 문 양 옆으로 담이 있었으며 담 주위에는 행각들이 모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