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뱅크
Time Bank / Timebanking / Time-based currency
1. 사회 운동의 하나
서구에서 시작된 마을공동체 운동 중 하나로, 민간 혹은 정부에서 적용할 수 있는 철학적 패러다임 및 그 구체적 사업방향. 구체적으로는, '''타인과 공공을 위한 개인의 모든 노동 행위를 1시간이라는 동일한 단위로 환산하여 주고받는 것, 또는 그러한 활동을 위해 세워진 기관'''을 의미한다.
민간의 자원봉사나 정부의 복지정책에 적용될 수 있는 아이디어인데,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런 활동들을 수행할 때 전제될 수 있는 '''인간관''' 내지는 '''관점, 신념'''에 가깝다. 평등주의 이념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품앗이[1] 의 전통과도 일정 부분 관련이 있다. 가장 관련성이 높은 학문분야는 사회복지학, 그 중에서도 특히 장애인 인권 등에 초점을 맞추는 분야일 경우 타임뱅크를 접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런 아이디어를 현실세계로 옮겨서 실현시키는 학문인 정책학에서도 다뤄질 수 있다. 공무원들의 경우 복지 관련부서에서 일한다면 구미시가 이걸로 유명하다는 이야기 정도는 듣게 될 가능성이 높다.
1.1. 설명
타임뱅크와 같은 아이디어 자체는 꽤나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2] 그것이 하나의 제도로 구체화된 것으로는 일본의 사례를 거론할 수 있다. 1995년에 사와야카 복지재단에서 '만남 티켓'(후레아이 키푸; ふれあい切符) 제도를 시행하였는데, 그 의미는 친애와 돌봄을 위한 만남의 시간을 티켓의 형태로 교환한다는 것.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사회 운동으로서의 본격적인 시작은 역시 미국의 법학 교수인 '''에드거 칸'''(E.S.Cahn)이 2000년에 자신의 저서 《이제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No More Throw-Away People: The Co-production Imperative)를 출간하면서부터이다. 그는 1980년대에 심장질환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환자로서 다른 사람들의 간호와 병수발을 받는 동안 자신이 아무것도 보답하지 못하는 것에 막대한 부채감과 무력감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전에 그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인권변호사로 뛰면서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자신이 약자가 되자 그간 깨닫지 못했던 중요한 문제를 실감하게 되었다. 즉 '''남에게 도움을 받기만 하는 수혜자의 위치 자체가 그 사람을 소외시킨다는 것.''' 그는 이것을 사회적으로 '버려진다'(thrown away)고까지 표현했다.
에드거 칸은 '''타인과 공공을 위해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 주고 싶어하는 마음'''에 주목했다. 흔히들 자신은 아무것도 안 베풀고 남의 도움만 받으며 사는 것을 무임승차, 꿀단지, 식충이라고 비난하지만, 의외로 당사자들조차 그런 처지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합리적 인간' 이라면 자신은 아무것도 안 하고 남에게 받기만 하는 상황을 가장 선호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 복지의 수혜자들은 나랏돈을 축내는 생활에 만족하기보다는, 자신도 사회와 국가를 위해 뭔가를 보답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일방적이고 시혜적인 복지 시스템이 그런 보답을 가로막았으며, 결과적으로 그들은 무기력한 상태에 빠진 채로 현실에 안주하게 되었고, 사회적으로도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채 '버려졌다'.
이 지점에서 그는 마을공동체 내에서 이웃끼리 서로가 서로를 돕는 모델을 떠올렸다. 사회적 약자들도 타인을 위해 공헌하기에는 지역사회에서 소소하게 도움이 필요한 곳에다 도움을 주는 게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타인과 공공을 위한 노동은 이미 제도권 경제 활동의 일부가 되어 있으므로, 시세에 맞는 금액을 지불하고 그것을 구입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들이 뭔가를 하고 싶다면, 장애인들이 빵을 만들어 팔듯이 자신의 노동에 값어치를 책정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렇게 한다면 그들에게 소소한 부수입원도 되는데다 경제적 양극화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현실에서 거래되지 않는 시간 기반 화폐를 새로 만드는 것보다는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에드거 칸의 자원봉사 시스템에 가까운 시간화폐(time dollar)[3] 제안에 대해 가장 먼저 나온 반론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에 대해 에드거 칸은 '''공익성'''을 들어 답변했다. '''시간화폐를 바탕으로 한 상부상조의 시스템이 현행 화폐보다 더 공익적'''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인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1시간 일해 주고 돈을 받는다면, 그는 그 돈으로 술이나 마약을 사려는 유혹을 받을 위험이 있다. 또 시간화폐는 이웃끼리 어려운 사람을 서로 도우며 인사도 하고, 도움을 받은 보답으로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친해지는 데 의의가 있는데, 도움을 받은 보답으로 돈을 주게 되면 나중에 다시 돕기 위해 만날 일이 없어지는 데다, 그 돈이 지역사회를 위해 쓰이지 못하고 마을 밖으로 흘러나갈 가능성도 높다. 게다가 돈이 오가는 시장에서는 이웃 간의 정이나 서로에 대한 관심 같은 추상적 가치가 얼마짜리인지 가격이 책정되어 있지 않거나 터무니없이 저평가되어 책정되어 있다는 문제도 있다. 또한 노동에 대한 대가로 노동을 베푸는 시스템 하에서는 법적 강제성이 없는 상태에서 보답하게 되므로,[4] 보답에 보답이 반복되는 동안 이웃 간의 신뢰와 개인적 자부심과 같은 사회적 자산이 축적될 수 있다는 점도 있다. 이상의 논변들이 에드거 칸이 내세운 반론이었다.[5]
빌 클린턴 정부가 여기에 호응하여 노인복지 정책에 시간화폐 개념을 도입하기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새로운 복지 아이디어가 그렇듯이 이 또한 '''장기적 지속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노동시간의 교환을 현실화하려면 누가 몇 시간 일했는지 확인하여 적립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미국 각지에 '타임뱅크' 라는 유사 은행들이 세워져서 노인들을 돕는 노동시간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복지재정을 조금만 긴축해도 금세 문을 닫는 타임뱅크들이 속출했다는 것. 결국 내실은 없고 정부 보조금으로 간신히 연명하는 수준의 타임뱅크들이 상당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파고든 에드거 칸은 그 원인이 '''공동생산'''(co-production)'''이 존재하는지의 여부'''에 있다고 판단했다. 즉, 사회적 약자인 수혜자들이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에게 마주 돕는 시스템이 확립되어 있어야만 시간화폐 시스템이 자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움을 받은 노인들이 그저 일방적이고 시혜적인 봉사활동만 받고 끝난다면 그 타임뱅크는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아니, 시간화폐의 본래 취지를 생각한다면 이는 새로운 패러다임은커녕 기존의 복지정책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6] 반면 정말로 도움을 받은 노인이 도움을 준 젊은이에게 평등하고 대등한 관계에서 동일한 시간만큼 일해 주었을 경우, 그 타임뱅크는 나랏돈을 쏟아붓지 않고도 지속될 수 있었다.
이렇게 본다면, 타임뱅크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지 묻는 정책적 질문에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지 생각하지 말고,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라"''' 의 답변을 내놓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언뜻 독거노인이나 지적장애인, 저소득 가정 등은 늘 도움만 받아야 할 사람들인 것처럼 여겨지곤 하며, 인공지능이 도래할 미래 사회에는 더더욱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타임뱅크 운동은 그들의 주어진 여건에서 잠재적 자원을 발견하자고 제안한다. 즉 타임뱅크의 관점에서 절대적으로 '결핍된' 사람은 없다. 모두가 저마다 자기만의 결핍이 있을 뿐이다. 형편이 되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돕는 게 아니라, 그저 시민 A가 시민 B를 도울 수 있기에 도울 뿐인 것이다.
이상의 관점을 타임뱅크 운동은 '''5대 가치'''로 정리하고 있는데, 이를 나무위키에서 자체적으로 각색하면 다음과 같다. 대체로 위에서 길게 설명한 문제의식을 정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자산에 대한 관점: 모든 사람들은 타인과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자신만의 자산이 있으며, 그 어떤 기여도 할 수 없는 '버려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음을 전제한다.
- 노동에 대한 관점: 가정에서부터 지역사회, 국가에 이르기까지 공익적 가치를 갖는 노동은 더불어 사는 데 필수적이므로, 설령 시장 영역에서 거래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서비스와 동일한 가치를 가짐을 전제한다.
- 호혜성: 모든 사람들은 기여에 대한 욕구를 갖고 있으며, 일방적 봉사에서 호혜적 봉사로 전환함으로써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개선할 것을 추구한다.
- 사회적 자본: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사람 간의 신뢰와 호혜 및 참여이며, 이를 통해 마을공동체를 활성화할 것을 추구한다.
- 존중: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인종이나 종교, 성별, 사회경제적 지위 등에 무관하게 똑같이 존중 받을 가치가 있으므로, 누구나 그들이 처해 있는 상태 그대로를 존중할 것을 추구한다.
갈수록 산업이 자동화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실직할 것이 우려되는 미래 사회에 대비하여, 중국계 미국인 사업가인 앤드루 양(A.Yang)은 《보통 사람들의 전쟁》(The War on Normal People)에서 타임뱅크를 기본소득제와 결합하여 근원적인 사회적 재구조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기존 시장에서 거래되던 인간의 노동력은 이제 기계에 밀려서 점점 무가치해지고 있으니 차라리 월 1천 달러의 기본소득을 제공하고, 기존 시장에서 거래되지 못하던 이웃 간의 돌봄을 나누며 생활해 가자는 것.
1.2. 국내의 현황
국내에서는 2002년 무렵을 타임뱅크의 시작으로 잡는다. 노인복지를 목적으로 구미시 구미요한선교센터에서 시작한 '사랑고리' 운동이 그것인데, 아직까지도 전국적으로 타임뱅크 하면 곧바로 구미시가 거론될 정도로 상징적 위상을 갖게 되었다. 사랑고리 운동은 이후 2015년까지 133명의 회원이 총 2,266.5고리를 적립하고 그 중의 1,359고리를 사용할 정도로 지속되었으며, 노인이 노인을 돕는 '노노케어' 라는 미래형 복지 패러다임을 잘 제시해 보여주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2012년부터는 정부의 노인일자리 지원사업과 병렬적으로 연계되어 총 540여 명의 회원수를 확보하는 데 이르렀다. 2020년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면서 사랑고리은행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식사배달 서비스 공간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타임뱅크는 흔히 지역화폐, 기본소득제, 참여소득제 등과 같은 맥락에서 논의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저출산 고령화 풍조를 고려할 때 향후 노인복지 관련정책의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타임뱅크는 점점 중요해지는 정책적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기존에는 정부가 도맡아야 했었던 과도한 복지비용의 일부를 제3섹터에 분담시키기 때문에 정책입안자들이나 지자체의 장들도 몹시 반기는 기색. 특히 2010년대 후반부터 치매 환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마을돌봄(community care)이 핫한 정책 키워드로 떠올랐는데, 타임뱅크 역시 강력한 마을공동체 역량을 활용하여 시민들이 이웃 간에 서로 돕는다는 대전제를 공유하므로 정책적으로도 상당히 잘 어울리는 면이 있다.
1.3. 유의점
쭉 읽어봤다면 알겠지만 타임뱅크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굉장히 파격적인 인간관과 전제와 가정들이 뒷받침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하면 '''그 중 어떤 것 하나라도 깨질 경우 타임뱅크 자체가 실패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예컨대 복지정책의 수혜자들이 복지병에 걸려서 '늘 받기만 하고 전혀 보답하지 못하는 처지에 대한 미안함' 따위는 전혀 모른다면(…) 노동에 노동으로 보답한다는 아이디어는 성공하기 어렵게 된다. 타임뱅크는 사람들이 서로를 돕고 싶어하는 존재이며, 도움을 받은 것을 잊지 않고 꼭 보답하는 존재이고, 서로를 믿고 싶어하는 존재이며, 돈을 받는 것보다 봉사를 하면서 느끼는 자부심을 더 귀하게 생각하는 존재라고 묘사한다. 물론 이런 인간관이 없는 건 아니지만[7] 이것이 과연 어디까지 사실일지는 신중히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특히 노동시간이 동일할 경우 모든 노동의 가치는 서로 동일하다는 대전제는 종종 '''그 참여자들의 노동의 질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똑같이 타인을 돕는 활동이더라도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노동과 정말 진심으로 상대방을 아끼며 하는 노동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므로 자신을 돕는 손길이 귀찮아하는 손길인지 진심을 다하는 손길인지 느낄 수 있으며, 만일 후자가 아니라 전자라면 설령 차후 보답한다 하더라도 이를 통해서 이웃 간의 정이나 신뢰가 쌓이기는 어렵게 된다. 하지만 타임뱅크 운동은 모든 인간이 서로를 아끼고 도우려 한다고 전제하므로 이런 상황에 대해 예측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 가능성을 경시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오해하면 안 될 것은, 타임뱅크 운동에서 "모든 노동의 가치는 동일하다" 는 것이 곧 전문적이고 고급화된 노동을 경시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타임뱅크 운동에서 유능한 사람은 다 떨어져 나가고 어중이떠중이만 남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타임뱅크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타임뱅크로 거래되는 노동은 기존 시장에서 상품으로 승인되어 거래되지 못하던, 그러나 일상과 사회를 영위하는 데에는 꼭 필요한 종류의 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유능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이 전부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이 아니며, 그들도 삶의 어떤 측면에서는 가치가 있으나 시장에서 거래되지 못하는 종류의 노동을 한다. 결국 제로와 제로는 서로 동일한 가치라는 것이다. 타임뱅크는 참여자가 유능하든 무능하든 간에 기존 시장경제의 범위로 포괄되지 않던 종류의 인간 활동들을 서로 교환함으로써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오버워치 경쟁전 시스템
2016년 9월부터 적용된 2시즌에서, 이전 라운드에서 남은 시간을 다음 라운드에 가산해 사용하도록 한 시스템.
[1] 주로 농경사회에서, 이웃 간에 노동력을 대여해 주는 서비스.[2] 경기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심지어 19세기의 로버트 오웬(R.Owen)이 세운 전국공정노동교환소(National Equitable Labour Exchange)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3] 미국에서는 time dollar라는 표현을 쓰지만, 다른 나라에 적용할 때에는 미국색을 빼기 위해 time credit이라는 표현을 쓴다.[4] 즉, 노동에 대한 대가로 돈을 주는 시스템에서는 임금 체불이 법적인 문제가 되지만, 노동과 노동을 시간 단위로 교환하는 시스템에서는 그런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5] 이런 반론들은 시장경제에 잡히지 않는 핵심경제(core economy)와 같은 노동 영역에 대한 관심이나 마을공동체 운동의 방향성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역으로 에드거 칸의 주장 역시 그런 분야들에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져서 많은 새로운 논의를 낳기도 했다.[6] 미국도 그렇지만 우리나라도 많은 정책 아이디어들이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성을 내세우며 도입되지만 십중팔구 용두사미로 끝나 버리곤 한다. 그 상당수 이유는, 어떤 이유에서든 기존의 정책과 새로운 정책이 결과적으로 차이가 없어지게 된다는 데 있다. 즉 그 정책의 실행자들이 새로운 정책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익숙한 방식을 답습하게 되는 것이다.[7] 초기 경영학에서 말하는 X-Y이론과도 유사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