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아킨 아르치발도 구스만 로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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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체포 당시
2016년 체포 당시
이름
호아킨 아르치발도 구스만 로에라
'''Joaquín Archivaldo Guzmán Loera'''
Joaquin Guzman Loera
El Chapo Guzmán (별명)
출생일
1957년 4월 4일 or 1954년 12월 25일
출생지
La Tuna, Badiraguato[1], Sinaloa, Mexico
직업
범죄 조직 보스
신장
168cm (5 ft 6 in)
체중
75 kg (165 lb)
범죄전과
마약 밀매, 청부 살인, 돈세탁 등
가족관계
배우자 최소 4명, 자녀 최소 10명
현상금
미국: $5 million USD (한화 60억 7,000만원)
멕시코: $30 million Mexican Pesos (한화 24억 2,363만 3,400원)
추정재산
약 $150억 달러 USD (한화 약 18조 3,000억원)
체포시기
2014년 2월 22일[2]
1. 개요
2. 행적
2.1. 첫 번째 탈옥
2.2. 두 번째 탈옥
2.3. 체포



1. 개요


전 세계 역사상 최대 마약왕으로, 멕시코 시날로아 주에 소재하고 있는 마약 카르텔 시날로아 카르텔의 보스였으며, 이 사람이 체포된 현시점에서 조직의 수장은 일명 ‘엘 마요’라고 불리는 이스마엘 잠바다 가르시아와 구스만의 아들 2명이 되었다. 2001년부터 오사마 빈 라덴 사망년인 2012년까지 FBI가 지정한 현상수배범 2위라는 불명예의 자리를 지켜왔고, 빈 라덴 사망 후 2014년 2월 22일까지 2년간 FBI 현상수배범 1위로 군림했다.
콜롬비아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뒤를 이은 세계 최대 마약 공급자였으며, 미국에 공급되는 마약의 65%는 이 인물의 손을 거친다고 한다. 즉, 미국 뒷세계에선 카이저 소제급 인물. 미국 전문 수사기관 관련자의 설명에 따르면 금주법 시절 미국 시카고의 뒷 세계를 장악했던, 알 카포네조차도 이 사람한텐 게임이 안된다고 한다.[3][4] 마약 유통은 세계 최고의 수익사업이다. 우선 불법이라 세금이 떼일 염려도 없고, 양 대비 수익이 어마어마해서 잠수함으로 화물을 나르고 잠수함을 버려도 돈이 남는다고 할 정도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의 65%를 공급했다는 건 범죄로 자수성가한 인물 가운데 가장 성공''했던'' 인물 중 하나다.
이 사람이 수장으로 있는 시날로아 카르텔의 공식적인 자산 규모는 전 세계 범죄 조직 중 5번째로 높다.[5] 어느 정도냐면 미국이 해상루트를 막아, 콜롬비아 카르텔과 온두라스 카르텔이 무너졌을때 자신의 보스였던 미겔 앙헬 펠릭스 가야르도가 개척한 미국-멕시코 육로루트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6] 대규모로 마약밀수를 하여 쌓인 자산이 포브스에서 선정한 '''1000대 부자'''에 들어갈 정도였다.[7] 범죄 조직 보스의 비공식적인 추정 자산이 아닌 실제 측정된 자산의 규모가 그 정도였다는 것이다. 더구나 세계 영향력 순위는 무려 41위에 달한다.

2. 행적


구스만은 1957년 멕시코 시날로아 주 바디라구아토의 가난한 농촌 가정에서 태어났다. 구스만의 아버지는 먹고 노느라 모든 돈을 탕진하는 막장 부모였고, 구스만과 그의 형제들을 때리면서 학교를 그만두라고 협박까지 하는 인간 말종을 인증하는 짓거리를 해댔다고. 결국 구스만은 학교를 중퇴하고 마리화나를 팔아 가족을 부양했다고 한다. 이 때 그가 마리화나를 팔면서 얻은 별명이 바로 땅달보란 뜻의 ‘엘 차포’였다.
그러다 구스만은 15살 때 더 큰 기회를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났는데 자신의 삼촌을 통해 마약 조직 ‘과달라하라 카르텔’에 합류한 그는, 1970년 후반부터 미국과 멕시코 국경과 가까운 시에라 마드레 지역에서 국경을 넘나들며 마약 밀수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구스만은 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조직원과 밀수업자를 냉정하게 살해하는 잔인한 방법으로 조직의 마약 점유율을 높여갔고, 이러한 구스만의 일처리 방식을 좋아한 과달라하라 카르텔의 지도자였던 미겔 앙헬 펠릭스 가야르도는 1980년 초에 구스만을 과달라하라 카르텔 조직의 간부로 임명했다.
1989년 마약 조직원으로 위장해 잠입한 미국 마약단속국(DEA) 요원들에 의해 미겔 앙헬 펠릭스 가야르도는 체포되지만, 가야르도는 이미 자신의 과달라하라 카르텔을 친척과 부하들에게 분할해 놓은 상태였다. 이때 분할된 조직들이 오늘날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기원이 된다.
가야르도는 티후아나 루트는 아레야노 펠릭스 형제에게(티후아나 카르텔로 발전), 후아레스시 루트는 카리요 푸엔테스 가문에게(후아레스 카르텔로 발전), 소노라는 미겔 카로 킨테로에게(소노라 카르텔로 발전. 나중에 시날로아 카르텔의 하부조직이 된다.), 타마울리파스의 마타모로스 경로는 후안 가르시아 아브레고에게 할당되었다(걸프 카르텔로 발전). 호아킨 구스만 로에라와 이스마엘 삼바다 가르시아는 태평양 연안의 사업을 맡게되었다(시날로아 카르텔로 발전).
한편 구스만은 사실상 몰락한 콜롬비아 마약 조직과 손잡고 미국에 마약 공급을 크게 늘리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중남미의 마약시장을 쥐고 흔들던 콜롬비아의 마약조직들이 미국 정부의 강력한 마약 단속 정책으로 인해 카리브해 플로리다 간 마약 공급 경로의 위험성이 높아지던 시기였는데 구스만의 보스였던 미겔 앙헬 펠릭스 가야르도가 콜롬비아의 메데인카르텔과 칼리 카르텔과 협상을 통해 멕시코를 경유하는 새로운 밀수루트를 개척했다. 이처럼 마약 유통 흐름이 변화되자 시날로아 카르텔은 1990년대부터 마약 밀수에서 역할이 더욱 확대되었으며 조직의 영향력이나 수입이 엄청나게 늘었다. 또한 '대부' 가야르도가 처음 개척한 일반적인 지상 루트의 마약 밀매에 만족하지 않고 큰 규모의 지하 터널을 파서 한 번에 엄청난 양의 마약을 빠르고 정확하게 밀수하는 루트를 개척하여 조직의 규모를 어마어마하게 키우는 데 성공한다.
그러다가 1993년 그는 자신의 고향에서 청부살해 혐의로 한번 체포되는데, 이때 최초로 멕시코 언론의 스포트 라이트를 받게 된다. 그때 직업을 묻는 한 현지언론의 인터뷰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농부입니다."'''


2.1. 첫 번째 탈옥


2001년, 그는 감옥을 탈옥한다. 준비를 얼마나 철저히 했는지 당시 탈출과정이 CCTV에 단 한 차례도 찍히지 않았다고 한다. 세탁물 더미에 숨어서 탈옥했다는데, 당시 감옥 관계자들이 도왔을 거라는 추측만 난무했다. 아무튼 그는 이때 탈옥한 뒤로 자그마치 13년간 단 한 차례도 잡히지도,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말그대로 유령이 되었다. 하지만 모습을 한번도 드러내지 않고도 뒷 세계 여러 조직들의 배후에 서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고, 멕시코 정부계 인사들과 담합하여 자신의 카르텔 조직을 어마어마한 세계적 조직으로 키워냈으며, 미국으로 가는 마약 밀수출 루트를 개척하여[8] 멕시코를 세계 최대 마약 창구이자 생산지로 키워냈다. 멕시코 내에서만 5만명의 사상자를 낸 멕시코 마약 전쟁의 상당 부분이 이 인간에 의해 이뤄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렇게 미국멕시코 국경에 땅굴을 파고 대규모 마약을 거래하면서 마약 왕국을 세운 구스만은 10억 달러(1조715억원) 이상 재산을 긁어 모아서 2009년 3월 12일 포브스의 세계 억만장자 명단에 포함되기도 했다. 포브스는 당시 “구스만은 매달 2000만 달러(226억원), 시날로아 카르텔은 매년 30억 달러(3조 2100억원)씩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 된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평생 마약 밀매를 해먹을 줄 알았지만 2014년 2월 22일 멕시코의 어느 한 호텔에서 멕시코 정부군과 미국 DEA 요원들과의 사투 끝에 체포됐다. 파블로 에스코바르나, 로스 세타스 보스 에리베르토 라스카노나 오사마 빈 라덴과는 다르게 체포 과정 도중 죽지 않았다. 앞서 설명한 세 사람이 벌집이 되어 죽은 것과는 매우 비교된다.

2.2. 두 번째 탈옥


'''2015년 7월 11일에 또 탈옥했다.''' 한국어 기사 보기 그는 멕시코주 톨루카 데 레르도 인근에 있는 일티플라노 연방교도소[9]에 수감되어있는데[10], 샤워실에서 샤워하던 중 갑자기 증발된 것이다. 이후 톨루카 국제공항의 모든 항공편 운항이 중단되었으며, 주변 지역과 인근 고속도로 수색을 시작하였다.
독방에서 1.5km 연결된 땅굴을 통해 산타 후아니타 마을(Col. Santa Juanita)로 나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멕시코 민심은 당연히 부정부패와 연관이 되어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고, 미국 역시 멕시코 정부를 존중할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멕시코 국내 현안에 대한 온갖 루머들이 난무[11]하고 있는 상황인데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이 프랑스로 순방을 간데다 멕시코 대통령에 대한 신임을 잃었기 때문이다.

2.3. 체포



체포 당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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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되었을 당시의 모습.
탈옥한 지 반 년도 안 된 2016년 1월 8일 오전에 엘 차포가 다시 체포되었다. 덜미 잡힌 마약왕...영화 찍으려다 붙잡혔다 / YTN 이에 멕시코 대통령인 엔리케 페냐 니에토가 트위터에 "임무 완료. 국민들에게 엘 차포 구스만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Misión cumplida: lo tenemos. Quiero informar a los mexicanos que Joaquín Guzmán Loera ha sido detenido.)"라는 글을 남겼다. 관련 트위터
행적이 들킨 이유가 아주 가관인데, 자신의 업적(...)을 영화로 만들고 싶어서 영화 제작자와 연락을 취하다가 단서가 잡힌 것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나르코스를 보고 삘받은 건지 BBM으로 할리우드 프로듀서들과도 접촉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전에도 멕시코 여배우의 주선으로 숀 펜과도 만나 인터뷰를 했고, 이것이 롤링 스톤지에 떡하니 실리면서 미국에서도 한바탕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롤링 스톤지 측에서 인터뷰 기사 초고를 구스만에게 검토까지 받았다는 썰도 나왔다. 더 웃기는 건, 이 사건과 별개로 구스만의 탈옥을 소재로 한 영화가 이미 촬영된 상태였는데 그 영화가 개봉하기 불과 며칠 전에 잡혀 버린 것이다. 나르코스가 찍고 싶었으면 선배가 어떻게 하고 살았나부터 배웠어야 했다.[12] 사실 엘 차포도 두 번째 탈옥 성공 전까지는 무척이나 치밀하게 움직였으며, 어떤 의미로는 파블로 에스코바르 이상으로 치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13] 하지만 두 번째 탈옥 이후 계속된 성공에 방심한 듯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질렀고, 결국 평생 미국 감옥에서 썩게 되었다. 어찌됐든 본인이 원하는 대로(...) 넷플릭스에서 그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드라마 <엘 차포>를 3시즌까지 방영하였다.
멕시코 정부는 그가 다시 탈옥하지 못하도록 이번에는 미국 교도소에 넘겨 버리기로 했는데, 멕시코는 사형 폐지국이기 때문에 사전에 어떤 일이 있어도 사형은 절대 시키지 않기로 합의를 해 놓았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멕시코 법무장관은 그의 형량이 300~400년 정도 선고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한 바 있다. 즉, 죽을 때까지 교도소에 처박아 두겠다고 밝힌 것이다.
엘 차포가 체포된 이후 멕시코 유명 여배우인 케이트 델 카스티요가 자신의 트위터에 엘 차포를 옹호하는 글을 올리면서 구설수에 올랐고, 거기에 엘 차포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은 게 드러나면서 수많은 멕시코 시민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14]
내년 1, 2월 경 미국으로 신병 인도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멕시코에서 재판이 결정되었다.
2017년 10월 26일에 구스만의 조직 자금총책임자가 멕시코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호아킨 구스만은 2018년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크리미널 마인드: 범죄의 심리학' 4화 범죄 조직의 수괴 편에서 알 카포네, 존 고티,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함께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2019년 2월 12일에 마약밀매를 포함 10가지 혐의에 배심원단이 만장일치로 유죄판결을 내렸다. 큰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종신형은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탈옥을 방지하기 위해 미국 최고등급 교도소인 ADX 플로렌스 교도소 수감이 확실시된다. 구스만은 미국 마피아 감비노 패밀리 두목 존 고티의 아들이자 한때의 후계자였던 존 고티 주니어의 무죄를 이끌어낸 변호사를 변호인단에 선임하기도 했지만 종신형을 피할 수 없었다.[15]
2019년 7월 17일 미국 연방법원은 구스만에게 종신형을 선고하며 추징금으로 126억 달러(한화 14조 8천억원)를 선고했다.#
2019년 9월 5일에 구스만이 자신의 재산을 멕시코로 옮기고 싶다고 밝히자 미국과 멕시코간의 신경전이 발생되었다.#
미국 검찰은 구스만의 자금이 온두라스 현직 대통령 측(!)에도 흘러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2019년 10월, 아들인 오비디오가 군대에 의해 체포되었다가 그 자리에서 다시 풀려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실상 국가가 카르텔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다.''' 이 사건 자체만으로도 가관인데, 멕시코 군경과 치안 현황을 잘 아는 사람들에 의해 알려진 내막은 상상을 초월한다. 군대는 엘 차포의 아들이 거기 있는지도 모르고 현장을 포위했고, 현장을 포위하여 내부의 카르텔 인물들을 체포하려다 엘 차포의 아들이 나오자 당황했고, 카르텔의 호출을 받은 조직원들이 자동소총과 방탄복을 입고 몰려와 출동한 '''군대를 몇 배는 뛰어넘는 숫자로 역포위를 해 버린 것이다.''' 이 상황에서 엘 차포의 아들이 군대 측에 조용히 물러가라고 하자 군대가 체포를 포기하고 그대로 돌아가 버린 것이 사건의 전말이었다. 당시 사건을 촬영한 동영상이 퍼지면서 군대가 카르텔 조직원들에게 무장해제당하는 장면, 엘 차포의 아들이 군대 와 협상하는 장면 등이 전부 다 까발려졌다. 오랜 기간 동안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으로 멕시코의 경찰과 군대는 치안 역량을 점점 소모해 왔고, 반대로 카르텔의 힘은 더욱 강해져서 이 시점에서는 군대고 경찰이고 자기 목숨이 아까워 함부로 카르텔 보스를 못 건드리는 지경이 된 상황이다. 그래서 상기했듯 멕시코 국내에서는 정부조차도 구스만의 신변 처리를 힘겨워하니 미국 교도소에 넘겨 버린 것.
그 와중에 멕시코 교도소에서는 50여 명이 탈옥하고 도시가 쑥대밭이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11월에는 오비디오를 체포했던 경찰 중 한 명이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대낮에 쇼핑몰 주차장에서 자동소총 155발을 맞고 즉사했다고 한다.
한편, 구스만의 집은 정부에 의해 경매를 통해 팔렸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창궐로 멕시코 국민들이 고통받자 대대적으로 구호물품이 지원되었는데, 이 패키지 겉면에 JGL이라는 이니셜이 인쇄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무래도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호아킨 구스만의 카르텔이 물건을 푼 것으로 보인다. 만약 사실이라면 정부가 할 일을 카르텔이 하고 있는 것이라는게 된다.(...)
에로 모델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반려자인 엠마 코로넬 아이스푸로 (Emma Coronel Aispuro)가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체포되었다. 영상, 기사 역시나 마약 관련 혐의로 잡혀간 것.

[1] 쿨리아칸 로살레스 광역권에 있다. 지역 주민들의 대접이 좋으며, 당연히 외국인에 대한 치안이 좋지 않다.[2] 멕시코 PGR 요원들과 미국 DEA 요원들에 의해 멕시코의 호텔에서 체포 이후, 멕시코시티 비행장에서 미국으로 인도하려 했으나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멕시코에서 재판하기로 결정되었다.[3] 알 카포네가 유명한 이유는 잔혹한 행위와 과시욕 때문에 자신을 언론에 많이 노출시켰기 때문으로, 실제로는 권력과 부가 시카고를 크게 못 넘는 지역 보스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연방정부 차원의 어그로를 끌어 몰락한데 반해, 다른 지역 보스들은 부와 권력을 누리면서 감옥에도 안 가고 조용히 잘 살았다. 미국에서 전국구 마피아 보스라고 부를만한 인물은 알 카포네와 동시대 인물인 러키 루치아노로, 그는 뉴욕의 이탈리아계 마피아 보스로 출발해 전국의 마피아를 통할하는 평의회를 구성했다.[4] 사실 미국 마피아를 통틀어 엘 차포 만큼의 부를 누린 인물이 있었는지 확실치 않다. 1950~1970년대 최고의 미국 마피아 두목이자 암흑가의 제왕이었던 감비노 패밀리 두목 카를로 감비노의 친아들 토마스 감비노의 1990년대 공식 자산이 한화 1000억 원대였다. 조 단위로 노는 몇몇 마약왕들에 비하면 역시 역부족이다. 다만, 그 영향력까지 역부족이라고 할 순 없는 것이 애초에 이탈리아계 마피아 조직은 수익성이 매우 크지만 리스크도 큰 마약 밀매를 정규 조직원들에게 금지하며, 적발될 시 해당 조직원을 처형하는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미국이나 이탈리아 같은 국가는 중남미 국가들과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중앙정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거대 범죄조직 입장에서 그들의 눈치를 보는 것으로 여겨진다. 고로 미국 마피아는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에서 밀반입되는 마약 거래를 감독하거나 영역 내 마약상들에게 거리세(Street-Tax)를 징수하는 정도의 개입밖에 하지 않는다. 종종 마약 혐의로 체포된 마피아들은 감독하는 과정에서 적발된 것이지 제조, 유통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다 체포되는 경우는 드물다. 시칠리아 마피아 조직원 토마소 부셰타 역시 언론에서 자신을 마약상으로 묘사했지만 본인은 마약상이 아니라고 분노한 적 있다. 미국 마피아는 마약 밀매 대신 불법 도박, 고리대금 같은 일상적인 범죄 사업을 기반으로, 불법적 합의 및 담합을 통해 지미 호파 같은 인물과 결탁하여 여러 노동조합을 장악한 뒤, 그걸 기반으로 노조 파업을 조종해 국가 산업계에 침투하고 그 과정에서 폭력을 수반해 정재계에 개입하여 불법 리베이트•입찰 조작 등 이득을 취하는 집단에 가깝다. 그렇게 쌓은 부정한 연줄로 1978년부터 1990년까지 약 12년간 도시 주택 당국이 준 창문 계약의 75%에 해당하는 입찰을 뉴욕 마피아가 조작한 실제 사례가 있다. 즉, 같은 범죄조직이지만 미국 마피아와 중남미 마약 카르텔은 결이 조금 다르며, 과거 마피아의 하수인이었던 지미 호파의 트럭 노조가 파업하면 '미국이 멈춘다'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던 만큼 마피아의 수익성이 마약 카르텔보다 낮다고 해서 그 영향력까지 약하다고 할 순 없다.[5] 아마 비공식적으로 추산하면 세계 최대 마약 밀매 집단이기에 가장 클 것으로 본다.[6] 가야르도가 만든 루트는 흔히 생각하는 일반적인 육로루트다. 곧 공권력에 뇌물을 주고 자동차나 기차 등을 이용해 통과시키는 일반적인 밀수 루트였다. 이 방법은 아무래도 밀수 도중 사고 혹은 분실의 확률이 높을 수 밖에 없었지만, 구스만은 그 전까지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대규모의 지하 터널로 미국-멕시코 국경을 넘는 밀수 루트'''를 개척하여 기존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빠르고, 정확하며 많은 양의 마약을 밀수시킬 수 있었고, 덕분에 마약 시장의 규모를 어마어마하게 키워낼 수 있었다.[7] 정확히 701위인데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황금 권총에도 이걸 새겨놓을 정도면 자부심이 상당했던걸로 보인다. 참고로 정확한 비교는 곤란하지만 정의선 현대기아차 부회장의 포브스 순위가 대충 700위 안팎이다. 최종순위는 2012년에 측정된 1153위지만 이정도만 해도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비슷한 수준이다.[8] 마약 밀매루트 자체는 80년대에 구스만의 보스였던 미겔 앙헬 펠릭스 가야르도가 이미 개척해 놓은 것이다. 구스만은 이걸 더 확장시킨 것이다. 예를 들어 땅굴을 만들어 미국으로 가는 직통로를 건설해서 탄광차로 마약을 직송한다던지, 경비행기나 잠수함 등으로 밀항 루트를 개척해서 미국항으로 마피아들에게 공급하는 식의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미국에 마약을 공급해왔다.[9] Centro Federal de Readaptación Social núm. 1 "Altiplano" 직역하면 알티플라노 제1연방사회재교육센터로 해석되나, 실제로는 중범죄자들을 가두는 연방교도소. 멕시코의 다른 교도소와는 다르게 경비가 굉장히 철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0] 위치 보기[11] 대표적으로 멕시코 정부의 의료보험(IMSS) 민영화 추진 관련 불만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한다고 일부 멕시코인들이 주장했는데, IMSS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기도 하였다.[12] 파블로 에스코바르 문서 참고. 에스코바르의 용의주도함을 단편적으로 보여 주는 예시로, 탈옥한 뒤 조직원들과 연락을 취할 때마다 그 값비싼 위성전화기를 싸구려 선불폰 쓰듯 '''통화 와중에도''' 바꿔 가며 사용할 정도로 보안에 철저했다. 그런데도 결국에는 행선지가 들켜 벌집 신세가 되었는데, 그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기술이 발전한 현대에 와서 대놓고 인터뷰까지 하고 다녔으니...[13] 첫 번째 탈옥 후 13년간 멕시코, 미국 공권력은 물론 경쟁 조직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노렸지만 누구도 제대로 꼬리를 잡지 못했고, 엘 차포는 은막 속에서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능가하는 마약 제국을 건설했다. 이 때만 해도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쓸데없이 어그로를 다 끌고 다녀서 결국 총 맞아 죽었지만, 엘 차포는 더욱 치밀하게 움직이는 탓에 파블로 에스코바르보다 더 큰 마약 제국을 건설했음에도 아직도 못 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14] 멕시코 최저임금이 굉장히 낮고, 건축가 등 전문직 종사자들도 타국 전문직 종사자들에 비해 월급이 적은데, 봉급으로 생활하는 일반 시민들이 만져 보기도 힘든 돈을 이 작자들이 많이 가지고 있고, 이 작자들이 멕시코 엔터테인먼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시민들을 허탈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사실 멕시코 국민이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 등 일류 대학의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전문직에 종사해도 금수저를 물지 못하면 아무리 올라가도 중산층 이상은 힘들다. 특히 빈민층 출신+일류대학 박사학위+전문직 콤보일 경우 아무리 전문직에 종사해도 금수저를 물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무리 올라가도 중산층 초입 정도밖에 안된다. 물론 명예와 전문직으로서의 명성은 상당히 날리겠지만.[15] 고티 주니어는 2001년 이후 4차례의 재판에서 모두 승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