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마일 어뢰정
'''페어마일 어뢰정(Fairmile Motor Torpedo Boat)'''
영국 해군에서 대규모로 운용했던 어뢰정을 가리키는 페어마일급은 여러가지 상이한 형식이 있으나 보통은 왕립해군의 이니셜을 따서 위한 RN 보트(Royal Navy boat) 또는 MTB라고 호칭했다. 2차 세계 대전 동안에 미 해군이 대량으로 만들어 이용한 PT 보트는 고속 어뢰정으로 분류되지만 MTB의 경우는 속도에는 욕심을 내지 않고 무장을 좀 더 충실하게 갖춘 쾌속선으로 생각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 그중에서 어뢰를 주무장으로 삼은 형식이 페어마일 D급이었다.
본디 어뢰정이란 군함은 스피드와 민첩한 기동을 활용해 대형 군함에 재빨리 접근해 어뢰를 쏘고 달아나는 히트 앤 런 전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던 탓에, 무게를 늘리고 흘수선을 깊게 만드는 장갑은 거의 없었다.
어뢰정들은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먼저 개발에 착수했다. 1906년에 연안 구축선이란 함종으로 공개된 HMS 크리켓(HMS Cricket)은 나중에 어뢰정으로 분류를 변경하게 되는데, 영국 해군에서 처음으로 함선 내부에 증기 기관이 아닌 증기 터빈을 채택한 배였다. 이윽고 무겁고 부피가 큰 보일러와 증기 기관을 버리고 가벼운 고출력 내연 기관으로 동력을 바꾸게 되자 속도가 크게 빨라지고 함내 공간에 여유가 생겼다. 따라서 종전에는 갖추기 힘들던 소구경 함포까지 올릴 수 있게 되었다.
1918년에 이탈리아 해군의 MAS-15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드레드노트급 전함인 세인트 이스트반(SMS Szent István)를 어뢰로 공격해 격침시켰는데, 이것은 각국 해군에게는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영국의 경우, 1937년에 보스퍼 조선소에서 준공된 MTB-102는 1939년에 프랑스를 돕기 위해 파견되었던 영국 원정군이 됭케르크에서 철수하던 됭케르크 철수작전에서 빠른 속력을 이용해 도버 해협을 바삐 오가며 많은 병력을 구출해내기도 했다. 또한 1944년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는 시찰을 위해 윈스턴 처칠 수상과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태워 옮긴 일도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체급이 작은 MTB 어뢰정은 연료 탑재량이 한정되어 모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해역에서만 작전을 펼칠 수 있어 전략 기동성은 없다시피 했다. 게다가 전쟁을 거치면서 공군이 보유한 항공기들의 항속거리가 대폭 늘어나자 점점 설 자리를 잃어 갔다. 역설적으로, 이와 같은 현상은 추축군도 마찬가지여서 대공 화기가 빈약한 S 보트 같은 독일 해군의 어뢰정들은 항공기의 위협에 취약했다.
이처럼 전장 환경이 바뀌자 어뢰정의 역할은 더 크고 대공 무기도 충실해 항공기에 대응할 수 있는 구축함으로 대체되고 전후에는 어뢰 대신 대함 미사일을 주무장으로 삼은 미사일 고속정으로 바뀌어 갔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영국 해군은 어뢰정 CMB를 취역시켜 해안 초계 임무에 활용했다. 이 초계정들은 1차 대전 이후 잠시 운용이 중단되었으나, 1935년에 브리티시 파워 보트(BPB) 사가 18m급의 신형 고속정을 영국 해군에게 제안하자 이것이 채택되어 다시 고속정이 일선에 배치된다. BPB 사의 18m급은 원래 6척이 주문되는데 그쳤으나 그 후 대량 생산으로 전환되었다. 2차 대전이 터진 후에는 보스퍼 사나 페어마일 사 등도 건조에 참가했고, 고속정 자체도 21m 형식과 35m 형식 등으로 커지면서 건보트(Motor Gun Boat : MGB) 기능도 통합되며 점차 중무장을 갖추는 길을 걸었다.
2차세계대전 동안 영국 해군 수병들은 MTB를 가리켜 '''바다의 그레이하운드'''라고 불렀는데, 독일 해군이 운용했던 S 보트와 쌍벽을 이루는 고속정이었던 탓에 '''해군의 스핏파이어'''라고 부르기도 했다.
전쟁 기간 동안 초계임무와 호위, 상선습격과 코만도의 생나제르 도크 파괴 작전인 채리엇 작전이나 파일럿을 구조하는 임무를 하면서 영국해협에서 지속적으로 S보트와 충돌하였다. 그러면서 MTB와 MGB는 대형화되면서 중무장을 하였다. MTB 초기형(21m)은 21인치 어뢰와 폭뢰, 12.7mm, 7.7mm 빅커스 K기관총을 탑재했지만 MGB와 기능이 통합되면서 1943년경부터 18인치 어뢰로 변경하고 20mm 오리콘을 탑재하였다. 일부 MTB는 6파운더를 탑재하였다. MGB(34m)는 S보트를 잡기위해 선체에 비해 과무장을 하였다. 초기형은 2파운더나 3파운더와 20mm 오리콘을 탑재하였고 MTB와 기능이 통합되면서 어뢰와 폭뢰를 탑재 가능하였으며 6파운더를 탑재하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개발한 MGB는 구축함에 쓰던 4.7인치를 탑재하였다. 전쟁 기간 동안 영국은 107척의 MTB/MGB를 손실하였고 그중에 57척을 S보트와 수상함에게 잃었다.
1930년대 중화민국 해군은 영국제 MTB 어뢰정의 높은 성능에 눈독을 들이고 소니로프트 사가 만든 CMB 어뢰정을 도입하여 장강 유역이나 중국 남부 연안 해역에서 순찰용으로 이용했다. 중일 전쟁 당시 CMB의 일부는 상해의 황포강에 침투해 일본 해군 제3함대 기함인 장갑순양함 이즈모에 어뢰를 쏘고 달아나는 과감한 공격을 펼치기도 했지만, 빗나가버려 효과는 없었다. 또한 중화민국의 세관 당국은 해역 감시선 용도로 BPB 어뢰정의 무장을 제거해 사용하기도 했는데 마찬가지로 장강 유역이나 중국 남부 해안 같은 수역에서 밀수 감시와 단속 활동을 했었다.
1. 소개
영국 해군에서 대규모로 운용했던 어뢰정을 가리키는 페어마일급은 여러가지 상이한 형식이 있으나 보통은 왕립해군의 이니셜을 따서 위한 RN 보트(Royal Navy boat) 또는 MTB라고 호칭했다. 2차 세계 대전 동안에 미 해군이 대량으로 만들어 이용한 PT 보트는 고속 어뢰정으로 분류되지만 MTB의 경우는 속도에는 욕심을 내지 않고 무장을 좀 더 충실하게 갖춘 쾌속선으로 생각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 그중에서 어뢰를 주무장으로 삼은 형식이 페어마일 D급이었다.
2. 특징
본디 어뢰정이란 군함은 스피드와 민첩한 기동을 활용해 대형 군함에 재빨리 접근해 어뢰를 쏘고 달아나는 히트 앤 런 전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던 탓에, 무게를 늘리고 흘수선을 깊게 만드는 장갑은 거의 없었다.
어뢰정들은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먼저 개발에 착수했다. 1906년에 연안 구축선이란 함종으로 공개된 HMS 크리켓(HMS Cricket)은 나중에 어뢰정으로 분류를 변경하게 되는데, 영국 해군에서 처음으로 함선 내부에 증기 기관이 아닌 증기 터빈을 채택한 배였다. 이윽고 무겁고 부피가 큰 보일러와 증기 기관을 버리고 가벼운 고출력 내연 기관으로 동력을 바꾸게 되자 속도가 크게 빨라지고 함내 공간에 여유가 생겼다. 따라서 종전에는 갖추기 힘들던 소구경 함포까지 올릴 수 있게 되었다.
3. 어뢰정의 등장과 변천
1918년에 이탈리아 해군의 MAS-15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드레드노트급 전함인 세인트 이스트반(SMS Szent István)를 어뢰로 공격해 격침시켰는데, 이것은 각국 해군에게는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영국의 경우, 1937년에 보스퍼 조선소에서 준공된 MTB-102는 1939년에 프랑스를 돕기 위해 파견되었던 영국 원정군이 됭케르크에서 철수하던 됭케르크 철수작전에서 빠른 속력을 이용해 도버 해협을 바삐 오가며 많은 병력을 구출해내기도 했다. 또한 1944년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는 시찰을 위해 윈스턴 처칠 수상과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태워 옮긴 일도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체급이 작은 MTB 어뢰정은 연료 탑재량이 한정되어 모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해역에서만 작전을 펼칠 수 있어 전략 기동성은 없다시피 했다. 게다가 전쟁을 거치면서 공군이 보유한 항공기들의 항속거리가 대폭 늘어나자 점점 설 자리를 잃어 갔다. 역설적으로, 이와 같은 현상은 추축군도 마찬가지여서 대공 화기가 빈약한 S 보트 같은 독일 해군의 어뢰정들은 항공기의 위협에 취약했다.
이처럼 전장 환경이 바뀌자 어뢰정의 역할은 더 크고 대공 무기도 충실해 항공기에 대응할 수 있는 구축함으로 대체되고 전후에는 어뢰 대신 대함 미사일을 주무장으로 삼은 미사일 고속정으로 바뀌어 갔다.
4. 영국 해군 고속 어뢰정
제1차 세계 대전 중 영국 해군은 어뢰정 CMB를 취역시켜 해안 초계 임무에 활용했다. 이 초계정들은 1차 대전 이후 잠시 운용이 중단되었으나, 1935년에 브리티시 파워 보트(BPB) 사가 18m급의 신형 고속정을 영국 해군에게 제안하자 이것이 채택되어 다시 고속정이 일선에 배치된다. BPB 사의 18m급은 원래 6척이 주문되는데 그쳤으나 그 후 대량 생산으로 전환되었다. 2차 대전이 터진 후에는 보스퍼 사나 페어마일 사 등도 건조에 참가했고, 고속정 자체도 21m 형식과 35m 형식 등으로 커지면서 건보트(Motor Gun Boat : MGB) 기능도 통합되며 점차 중무장을 갖추는 길을 걸었다.
2차세계대전 동안 영국 해군 수병들은 MTB를 가리켜 '''바다의 그레이하운드'''라고 불렀는데, 독일 해군이 운용했던 S 보트와 쌍벽을 이루는 고속정이었던 탓에 '''해군의 스핏파이어'''라고 부르기도 했다.
전쟁 기간 동안 초계임무와 호위, 상선습격과 코만도의 생나제르 도크 파괴 작전인 채리엇 작전이나 파일럿을 구조하는 임무를 하면서 영국해협에서 지속적으로 S보트와 충돌하였다. 그러면서 MTB와 MGB는 대형화되면서 중무장을 하였다. MTB 초기형(21m)은 21인치 어뢰와 폭뢰, 12.7mm, 7.7mm 빅커스 K기관총을 탑재했지만 MGB와 기능이 통합되면서 1943년경부터 18인치 어뢰로 변경하고 20mm 오리콘을 탑재하였다. 일부 MTB는 6파운더를 탑재하였다. MGB(34m)는 S보트를 잡기위해 선체에 비해 과무장을 하였다. 초기형은 2파운더나 3파운더와 20mm 오리콘을 탑재하였고 MTB와 기능이 통합되면서 어뢰와 폭뢰를 탑재 가능하였으며 6파운더를 탑재하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개발한 MGB는 구축함에 쓰던 4.7인치를 탑재하였다. 전쟁 기간 동안 영국은 107척의 MTB/MGB를 손실하였고 그중에 57척을 S보트와 수상함에게 잃었다.
5. 중국의 MTB 채용
1930년대 중화민국 해군은 영국제 MTB 어뢰정의 높은 성능에 눈독을 들이고 소니로프트 사가 만든 CMB 어뢰정을 도입하여 장강 유역이나 중국 남부 연안 해역에서 순찰용으로 이용했다. 중일 전쟁 당시 CMB의 일부는 상해의 황포강에 침투해 일본 해군 제3함대 기함인 장갑순양함 이즈모에 어뢰를 쏘고 달아나는 과감한 공격을 펼치기도 했지만, 빗나가버려 효과는 없었다. 또한 중화민국의 세관 당국은 해역 감시선 용도로 BPB 어뢰정의 무장을 제거해 사용하기도 했는데 마찬가지로 장강 유역이나 중국 남부 해안 같은 수역에서 밀수 감시와 단속 활동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