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 베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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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 베닝 기지 입구 현판
미국 조지아 주 콜럼버스에 위치한 미 육군의 종합 군사 기지이다.
여러 군부대들이 위치해 있고, 기초군사훈련소와 육군 보병 후반기교육기관, 그리고 그외의 각종 군사교육훈련 학교와 코스들이 밀집해 있다. 부대 운영과 교육훈련, 군사교리 연구 및 개발 등을 통해 미 육군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해내는 일종의 군사도시이다. 12만명의 현역군인과 그 가족들, 예비군 병력과 퇴역 군인들이 상주하고 있는, 미국 최대 규모의 군사 기지이기도 하다.
기지 이름은 남북전쟁당시 아메리카 연합국 육군 장교였던 헨리 L. 베닝(Henry L. Benning)의 이름에서 따왔다.
기지 관리를 책임지는 사령관은 육군 소장 계급의 장성이 맡는다.
1918년 10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으로 파병될 육군 보병들의 훈련을 목적으로 캠프 베닝이란 이름으로 창설되었다. 한때 미 육군원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이 복무했던 펜실베니아 소재 캠프 콜트에서 교육받던 기갑 교육생들이 정전이후 본 부대로 이전했고 그는 1918년 12월 24일부터 1919년 3월 15일까지 복무했다. 여기에 1918년 12월 26일 노스캐롤라이나 랠리 소재 캠프 폴크 기갑교육학교가 본 부대로 이전하고 캠프 베닝의 기갑 교육생들은 1919년 2월19-21일 사이 캠프 미드로 이전한다. 이어 1920년 의회는 본 부대를 영구주둔부대로 지정하고 1백만 달러 이상의 지원금을 부대에 수여 보병학교 건물을 세우게된다. 2년 후인 1922년 캠프 베닝은 현 부대이름인 포트 베닝으로 개칭되고 제 4대 보병학교 사령관이었던 육군준장 브라이언트 웰스 장군은 부대확장 공사를 확정하는데, 부대관련 근무를 하는 군인들의 야외활동과 레크리에이션을 염두해 둔 것이었다. 이에 운동장과 수영장, 그리고 영화관 같은 관련 편의시설을 건립하게 된다. 아울러 1차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사상자를 낸 이유가 훈련과 관련교육의 부족이라는 것을 깨달아 관련교육을 한층 강화시킨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197,159에이커(797.87 제곱 킬로미터)의 부지에 3천 970명의 장교들과 9만 4천 873명의 사병들을 위한 임시 숙소를 갖추게 된다. 특히 이 부대는 제 555낙하산보병대대의 본부대가 되었는데 흑인만으로 구성된 공수부대란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컸다.
이 곳에 있는 각종 훈련소와 군사학교들은 본래는 남성전용 훈련소들이었으나 여성들의 전투병과 참여 허가를 국방장관령으로 발표하면서 여성 교육생도 입교하게 되었다..
2005년 미 국방부의 방침인 미 부대 재편성 및 해단 정책의 일환으로 포트베닝이 보병 관련 부대들 뿐 아니라 기갑부대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훈련 기지로 범위가 확대되었고 이에 따라 전엔 포트 녹스(Fort Knox)에 있던 육군기갑학교[1] 를 포트베닝으로 이전하였다. 그리고 기갑부대까지 포함한 통합적인 기동군 작전에 대한 훈련과 연구도 활발히 행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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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 육군소장 오스틴 밀러(Austin Miller)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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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임원사 육군원사 리처드 설리반 3세(Richard Sullivan III)
포트 베닝 기지 입구 현판
1. 개요
미국 조지아 주 콜럼버스에 위치한 미 육군의 종합 군사 기지이다.
여러 군부대들이 위치해 있고, 기초군사훈련소와 육군 보병 후반기교육기관, 그리고 그외의 각종 군사교육훈련 학교와 코스들이 밀집해 있다. 부대 운영과 교육훈련, 군사교리 연구 및 개발 등을 통해 미 육군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해내는 일종의 군사도시이다. 12만명의 현역군인과 그 가족들, 예비군 병력과 퇴역 군인들이 상주하고 있는, 미국 최대 규모의 군사 기지이기도 하다.
기지 이름은 남북전쟁당시 아메리카 연합국 육군 장교였던 헨리 L. 베닝(Henry L. Benning)의 이름에서 따왔다.
기지 관리를 책임지는 사령관은 육군 소장 계급의 장성이 맡는다.
2. 기지 연혁
1918년 10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으로 파병될 육군 보병들의 훈련을 목적으로 캠프 베닝이란 이름으로 창설되었다. 한때 미 육군원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이 복무했던 펜실베니아 소재 캠프 콜트에서 교육받던 기갑 교육생들이 정전이후 본 부대로 이전했고 그는 1918년 12월 24일부터 1919년 3월 15일까지 복무했다. 여기에 1918년 12월 26일 노스캐롤라이나 랠리 소재 캠프 폴크 기갑교육학교가 본 부대로 이전하고 캠프 베닝의 기갑 교육생들은 1919년 2월19-21일 사이 캠프 미드로 이전한다. 이어 1920년 의회는 본 부대를 영구주둔부대로 지정하고 1백만 달러 이상의 지원금을 부대에 수여 보병학교 건물을 세우게된다. 2년 후인 1922년 캠프 베닝은 현 부대이름인 포트 베닝으로 개칭되고 제 4대 보병학교 사령관이었던 육군준장 브라이언트 웰스 장군은 부대확장 공사를 확정하는데, 부대관련 근무를 하는 군인들의 야외활동과 레크리에이션을 염두해 둔 것이었다. 이에 운동장과 수영장, 그리고 영화관 같은 관련 편의시설을 건립하게 된다. 아울러 1차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사상자를 낸 이유가 훈련과 관련교육의 부족이라는 것을 깨달아 관련교육을 한층 강화시킨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197,159에이커(797.87 제곱 킬로미터)의 부지에 3천 970명의 장교들과 9만 4천 873명의 사병들을 위한 임시 숙소를 갖추게 된다. 특히 이 부대는 제 555낙하산보병대대의 본부대가 되었는데 흑인만으로 구성된 공수부대란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컸다.
이 곳에 있는 각종 훈련소와 군사학교들은 본래는 남성전용 훈련소들이었으나 여성들의 전투병과 참여 허가를 국방장관령으로 발표하면서 여성 교육생도 입교하게 되었다..
2005년 미 국방부의 방침인 미 부대 재편성 및 해단 정책의 일환으로 포트베닝이 보병 관련 부대들 뿐 아니라 기갑부대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훈련 기지로 범위가 확대되었고 이에 따라 전엔 포트 녹스(Fort Knox)에 있던 육군기갑학교[1] 를 포트베닝으로 이전하였다. 그리고 기갑부대까지 포함한 통합적인 기동군 작전에 대한 훈련과 연구도 활발히 행해지고 있다.
3. 포트 베닝에 위치한 군사 조직들
3.1. 부대
- 제198보병여단
- 제199보병여단
- 제3보병사단 [2]
- 제28보병연대
- 제75레인저연대
- 제194기갑여단
- 제3기갑전투단
- 제316기병여단
- 제11공병여단
- 제17공중지원작전전투단
- 제5군단 [3]
3.2. 교육훈련/연구 기관
3.3. 기타 기관
4. 기지 관리 사령관 및 주임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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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 육군소장 오스틴 밀러(Austin Miller)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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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임원사 육군원사 리처드 설리반 3세(Richard Sullivan III)
4.1. 여담
- 워킹 데드 시즌 2에서 언급되는 장소 중 하나이다.
[1] Army Armor School[2] 사단본부는 조지아주 포트 스튜어트에 있고, 예하 부대들은 포트 베닝과 포트 스튜어트에 나뉘어져 있다.[3] 본부만 재활성화된 상태로 약 600여 명의 인원이 주둔할 것으로 알려짐. 전방 지휘소는 폴란드에 설치 예정[4] Basic Training School[5] Sniper School[6] Combatives School[7] Maneuver Captains Career Course[8] Army Infantry School[9] Army Armor School[10] 포트 녹스에 위치했었으나 현 부대로 이전함[11] Henry Caro Non-Commissioned Officer Academy[12] Airborne School[13] Ranger School[14] Airborne and Ranger Training Brigade[15] Army Marksmanship Unit[16] Western Hemisphere Institute for Security Cooperation[17] Martin Army Community Hospital[18] 14th Combat Support Hospi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