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터키 관계
1. 개요
프랑스와 터키에 관련된 문서이다. 프랑스와 터키는 오스만 제국때부터 외교관계를 맺었고 당시에는 동맹 관계였으나 현재 양국은 마찰이 많은 편이다.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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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1세(좌)와 쉴레이만 1세(우)
고대에는 양국 모두 로마제국의 영토였던 시절이 있다. 다만, 프랑스 지역이 서로마 제국으로 바뀌고 프랑크 왕국이 될 때에도 로마 문화, 라틴어를 보존한 반면, 터키 지역은 동로마 제국이 튀르크족들의 정복을 받으면서 튀르크화되고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 제국을 정복하면서 정체성, 문화가 달라지게 되었다.
1525년,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가 파비아 전투에서 포로로 잡혔다. 당시 프랑스는 이탈리아 반도의 패권을 놓고 합스부르크 제국의 황제 카를 5세[1] 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파비아에서 완패하고 국왕마저도 생포된 것. 그리고 설사 패배해도 왕이 포로로 잡히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프랑스 궁정은 멘붕했고, 자리를 비운 국왕을 대신해 섭정을 맡고 있던 모후 사보이의 루이즈를 중심으로 대책이 수립된다. 이교도고 뭐고 가릴 계제가 아니니, 당장 강력한 대제국인 오스만 제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절을 파견하기로 한 것. 한편 오스만 제국의 황제 쉴레이만 1세는 1522년 로도스 정복에 성공한 이후 한동안 원정을 쉬고 있었는데 1525년 12월 프랑스의 사절을 접견한 쉴레이만은 프랑스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1526년 2월에 카를에게 편지를 보내 프랑스 왕을 당장 석방하고 오스만 제국에 연공을 바치지 않는다면 대군을 일으켜 쳐들어가겠노라고 통고했다. 하지만 당시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광대한 대제국을 통치하고 있던 황제 카를은 쉴레이만의 요구를 딱 잘라 거절했다[2] .
이를 계기로 오스만 제국과 프랑스는 합스부르크 제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종교의 차이를 넘는 동맹 관계가 되었고 이를 '''프랑스-오스만 동맹(프랑스어 : Alliance franco-ottomane, 터키어 : Fransa-Osmanlı ittifakı)'''이라고 한다. 이후 양국은 무역, 문화 등에서 활발하게 교류했다. 프랑스는 오스만 제국과의 상업 활동에서 큰 이권을 부여 받았으며 오스만 제국 내에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았다. 문화적인 영향으로 오스만 제국의 문화가 프랑스를 통해 유럽에서 유행하는 튀르크리가 퍼지게 되었고 튤립 시대의 오스만 제국에서는 프랑스의 문화가 오스만 제국 상류층에게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무라트 4세가 흡연을 한 프랑스 대사관 직원들의 귀를 베어버린 사건으로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또한, 종교적인 것에서도 차이가 커서 갈등이 있었는데 일부 프랑스인들이 베네치아 공화국등 오스만의 적국과 손을잡고 의용군 형태로 오스만과 싸우는 일도 있었다.
프랑스-오스만 동맹은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오스만 제국 치하의 이집트를 침공하고 팔레스타인 일대까지 올라갔다가 아크레에서 자자르 파샤에게 격퇴당하고 오스만 제국이 프랑스를 견제할 목적으로 유럽 각국이 결성한 대프랑스 동맹에 가담하면서 끝났다.
19세기에 오스만 제국이 근대화 정책을 펼칠 때,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의 문물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도 프랑스의 영향을 받으면서 프랑스어를 배우는 귀족층이 생겼고 프랑스어도 오스만 제국에서 중요외국어가 되었다.[3] 또한, 프랑스 문화가 오스만 제국에 영향을 주었다. 프랑스는 오스만 제국의 편을들어 크림전쟁에 참가해 오스만과 함께 러시아 제국을 격퇴했다.
나크시딜 술탄에 대한 도시전설이 19세기에도 있어서 1867년에 마흐무트 2세의 아들인 압뒬라지즈가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나폴레옹 3세가 그에게 "사실 우리는 서로 친척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2.2. 20세기
20세기초에 프랑스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시리아, 레바논을 식민지배했다. 1920년대에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 신생 터키 공화국은 프랑스의 영향으로 라이시테정책을 도입했다.[4] 그리고 라이시테 정책의 영향으로 터키는 세속국가가 되었다. 터키는 나토에 가입했고 양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협력했다.
2.3. 21세기
프랑스내 터키계 프랑스인들이 거주하고 있고 양국은 교류가 많은 편이다. 또한, 양국은 나토회원국들이다. 터키내에서도 프랑스어를 배우는 사람들도 많이 존재하고 프랑스 관광객들도 터키로 오는 경우가 많다. 터키 드라마 위대한 세기가 프랑스에서 방영된 적이 있어서 인기를 많이 끌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 시절과 다르게 현대에는 관계가 좋지 않다. 우선 프랑스는 터키의 유럽연합가입을 지속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프랑스 여론 역시 터키의 EU 가입에 반대하는 반응이 많다. 2019년 10월 10일에 터키가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 지역을 공격하자 프랑스는 대사를 초치하는 조치를 했다.# 또한, 프랑스 전역에선 터키를 규탄하는 시위가 발생했다.#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외무장관이 11월 29일에 마크롱 대통령을 테러리즘 후원자라고 비난하는 등 프랑스와 터키간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
마크롱 대통령이 터키의 리비아 내전 파병에 위험한 게임에 빠진다고 비판했다.#
2.3.1. 2020년
프랑스가 터키의 적대적 행위에 반발하면서 나토의 지중해 안보작전 참여중단을 선언했다.#
7월 4일 국적불명의 전투기들이 리비아의 알 와타야 공군기지를 공습해 터키군 고위급 인사들 여럿이 사망했는데 프랑스 공군의 공습이라는 설이 나오고 있다. # #2 터키와 프랑스는 모두 침묵중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터키의 동지중해 천연가스 시추와 관련해 유럽연합의 제재를 요구하자 터키가 강하게 반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더이상 터키는 동지중해의 파트너가 아니라고 밝히자 터키측은 오만하다고 비판했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터키는 전쟁에 개입했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은 터키에 경고했고 터키측은 반발했다. 터키 외무부는 프랑스 정부가 추진중인 정교분리법 강화 법안 추진에 대해 비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마크롱 대통령은 정신치료가 필요하다고 발언하자 프랑스측에서 반발했고 주 프랑스 터키 대사까지 초치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사뮈엘 파티 피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와 터키간의 갈등이 시작되고 있다. 샤를리 엡도는 에르도안 풍자 만화를 싣자 터키에서 반발했다.#
10월 30일 터키 이즈미르 근처에서 발생한 대지진에 의해 터키인들의 피해가 발생하자 프랑스 외교장관 제라르 다르마냉(Gérald Darmanin)은 터키 및 그리스에 지원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밝혔다. #, # 정치와는 무관하게 인도적인 지원은 하겠다는 입장이다.
11월 4일 프랑스 정부가 자국내에서 활동중인 터키의 극우단체 하얀늑대를 해산시켰다고 밝히자 터키측은 반발했다.#
3. 관련 문서
- 프랑스/외교
- 터키/외교
- 프랑스/역사
- 터키/역사
- 튀르크리
- 프랑스/문화
- 터키/문화
- 라이시테[5]
-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 사뮈엘 파티 피살 사건[6]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남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서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서유럽 국가
[1] 1519년부터 1556년까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1516년부터 1556년까지 스페인 왕으로 재위하여 두 나라를 함께 통치한 인물이다.[2] 여담으로, 프랑스 왕 프랑수아는 한달 전인 1월에 프랑스에 불리한 조약을 체결하고 풀려난 상태였다.[3] 19세기부터 근대 오스만어는 프랑스어에서 유래된 어휘도 사용했다.[4] 터키 공화국의 라이시테 정책은 2010년대까지는 존재했다.[5] 프랑스의 라이시테가 터키에 영향을 줬다.[6] 프랑스와 터키간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