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외교

 


[image]''' 터키 외교 관련 틀'''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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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전반적인 모습
2.1.1. 대한민국과의 관계
2.1.2. 북한과의 관계
2.1.3. 중국과의 관계
2.1.3.1. 위구르와의 관계
2.1.4. 일본과의 관계
2.1.5. 인도네시아와의 관계
2.1.6. 몽골과의 관계
2.1.7. 인도와의 관계
2.1.8. 방글라데시와의 관계
2.1.9. 이스라엘과의 관계
2.1.10. 이란과의 관계
2.1.11. 중앙아시아 국가와의 관계
2.2.1. 폴란드와의 관계
2.2.2. 독일과의 관계
2.2.3. 오스트리아와의 관계
2.2.4. 루마니아와의 관계
2.2.5. 세르비아와의 관계
2.2.6. 알바니아와의 관계
2.2.7. 그리스와의 관계
2.2.8. 키프로스와의 관계
2.2.9. 동유럽, 캅카스 국가와의 관계
2.2.9.2. 아르메니아와의 관계
2.2.9.3. 러시아와의 관계
2.2.9.4. 우크라이나와의 관계
2.2.9.5. 헝가리와의 관계
2.2.9.6. 벨라루스와의 관계
2.2.10. 서유럽 국가와의 관계
2.2.10.1. 영국과의 관계
2.2.10.2. 프랑스와의 관계
2.2.11. 북유럽 국가와의 관계
2.3. 아프리카, 아랍 국가와의 관계
2.3.1. 시리아와의 관계
2.3.2. 이라크와의 관계
2.3.4. 쿠웨이트와의 관계
2.3.5. 카타르와의 관계
2.3.6. 이집트와의 관계
2.3.7. 튀니지와의 관계
2.3.8. 수단 공화국과의 관계
2.3.9. 리비아와의 관계
2.4.1. 미국과의 관계
2.5.1. 뉴질랜드와의 관계
4. 여담
5. 지역별 관계
6. 관련 문서


1. 개요


"늙은 터키인과 젊은 세르비아인을 보면 긴장해라." - 그리스 속담

"터키인들이 지나간 땅에는 100년 동안 열매가 맺지 못한다." - 독일 속담

"터키인들이 지나간 땅에는 어떤 잡초도 자라지 않는다." - 아랍 속담

"터키인들의 말이 한번 지나갔다 하면, 그곳의 풀은 다시 자라지 않는다." - 영국 속담

"한 터키인이 '낙원'이란 말을 들었다 치자, 그는 물을 것이다. "그곳은 금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땅이오?"" - 페르시아 속담

"돌풍 없이 추위는 없다. 터키인이 없으면 나쁜 손님도 없다." - 세르비아 속담

"사람이 달리면 바람과 먼지가 휘날리지만 터키인이 달리면 무력이 같이 휘날린다." - 알바니아 속담

터키의 외교 관계에 대한 문서다. 서남아시아남유럽에 위치한 지리적인 문제부터 고대 시절부터 워낙 스펙타클했던 역사 문제 탓인지, 터키의 이웃나라들이나 '터키와의 역사+종교+정치적 악연이 있는 나라들'의 속담에는 터키인들을 욕하는 말들이 널리고 널렸을 정도로 터키는 북한,중국, 러시아, 이란 급으로 전 세계로부터 공공의 적 취급받는 국가 중의 하나다.

2. 전반적인 모습


공화국 수립 이후 터키의 외교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왔지만 기본적으로 친서방정책을 펴왔으며, 특히 냉전시기에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NATO에도 가입하고 자유진영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하지만 냉전이후 터키의 외교채널이 기존의 미국, 유럽(서방진영)위주에서 벗어나 다각화되고 특히 범튀르크주의를 위시한 중앙아시아의 신생 튀르크 국가들과의 관계를 도모하고 기존의 적대진영이었던 러시아, 중국 등과도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한편, 에르도안 정부 들어 스프르 프로블렘(Sıfır problem) 정책을 내세우며 이웃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서 힘을 쏟았다. 한편으로는 과거 이슬람의 종주국이었던 오스만 제국의 후예임을 내세워 기존에 무관심했던 이슬람국가들 내외부의 분쟁과 로힝야족 사태나 시리아 내전, 리비아 문제등에도 목소리를 내면서 나름대로의 중재자를 자처하려고 하는 상황이다. 그러는 와중에 이슬람주의적인 국내정책과 패권국가를 꿈꾸는 터키의 안보정책 등을 원인으로 기존의 서방진영과와도 거리를 두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다만 러시아, 중국같이 완전히 반서방진영으로 돌아선 것은 아니고, 서방진영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부분에서는 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중국, 러시아에 대해서도 때때로 위구르 문제와 시리아 문제등을 꺼내들고 선을 긋는 등 소위 밀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1. 아시아



2.1.1. 대한민국과의 관계




2.1.2. 북한과의 관계


북한과는 2001년까지는 미수교 상태였다가 2001년 6월 27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교했다. 하지만 터키는 한국을 지지하고 있고 한국 전쟁당시에 북한군과 싸운 적도 있기 때문에 북한과는 원칙상 적대적이다. 이전 서술에서는 북한이 터키와 북키프로스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는 서술이 있었으나, 터키와 미국관계가 악화된 지금도 터키는 NATO회원국이며,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사실관계를 간과한 근거미상의 서술이다.
2019년 1월 15일에 터키가 북한과의 불법 무역 의혹이 제기되자 남한을 북한으로 잘못 기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2.1.3. 중국과의 관계


중국과는 위구르 문제로 국민들 간의 부정적 시선이 있긴 하지만, 터키 경제가 별로 좋지 않고 북키프로스 문제도 있어서 큰손으로 등극한 중국과 되도록이면 긴밀한 외교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되도록 큰 분쟁은 삼가는 편이다. '''직접적인 전면전은 아니지만, 터키와 중국은 한국 전쟁에서 전쟁한 경험도 있다. 터키가 남한에 파병하고 중국이 북한에 파병했던 시절이다.'''
아타튀르크는 서기 559년 괵튀르크 제국(돌궐을 터키에서 부르는 이름)이 중국 북조의 서위-북주[1] 물리친 것을 근대 튀르크 제국 시발점이 된 계기로 여겨 역사 교과서에서 싣도록 했으며, 1959년 터키 정부는 140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이에 대하여 당시 마오쩌둥은 무척 불쾌하게 여겼다고 한다. 중국에게는 돌궐도 자국 역사의 일부로 보는데, 터키의 이런 행사를 두고 불안해하면서 동북공정과 마찬가지인 서북공정을 벌이면서 위구르나 과거 돌궐에 대한 튀르크 민족주의가 틀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러시아의 튀르크어 학자 세르게이 말로프가 현대 위구르인 개념을 새로 정립한 것에 대해 서로 다르게 해석하며 벌어지는 문제로, 오늘날의 신장의 위구르인은 튀르크계 언어를 쓰니 틀린 말은 아니다. 중세 초 돌궐 제국의 위구르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동돌궐족을 학살하고 위구르 제국을 세운다. 그리고 오늘날의 위구르인들은 철륵,위구르,돌궐,그리고 토하라인 등등의 혼혈인데, 자세한 건 돌궐 항목과 신장 위구르 자치구 문서 참조. 물론 위구르 문제나 역사 문제는 별개로 무역이나 여러모로 경제적 교류를 맺고 외교관계가 있긴 하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시절에는 시누아즈리열풍이 있었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중국산 도자기를 수입하면서 유럽에 판매를 했었고 오스만 제국을 통해서 유럽에서도 시누아즈리 열풍이 불기도 했다. 그리고 톱카프 궁전에도 2만점이 넘는 중국제 도자기가 소장되어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트위터에 지진 피해 지원을 해준 국가의 국기를 트위터에 올리며 대만 국기를 함께 올리자 중국측의 압력에 의해 대만 국기를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2.1.3.1. 위구르와의 관계



2.1.4. 일본과의 관계



일본과는 오스만 제국 시절에 외교관계를 맺었다. 양국은 현재에도 매우 우호적이며 양국간의 교류와 협력이 활발하다.

2.1.5. 인도네시아와의 관계


인도네시아와는 종교적으로 매우 가까운 편이다. 거기에다 예전에 오스만 제국이 인도네시아를 도와주러 군함까지 보냈을 정도였다. 그리고 터키 드라마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인기가 많은 편이다.
2018년에 인도네시아에서 쓰나미가 발생되자 터키 정부는 인도네시아에 긴급구호대를 파견한다고 9월 29일에 밝혔다.#

2.1.6. 몽골과의 관계



몽골은 엄밀히 튀르크계는 아니지만 터키는 몽골에도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1.7. 인도와의 관계



인도와는 역사적으로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오스만 제국무굴 제국이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긴밀한 협력을 가졌다. 지금도 터키와 인도는 매우 우호적인 편이고 터키에도 인도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다.

2.1.8. 방글라데시와의 관계




2.1.9. 이스라엘과의 관계



터키는 이슬람 위주의 국가 중 드물게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고 외교 관계까지 맺었다.

2.1.10. 이란과의 관계




2.1.11. 중앙아시아 국가와의 관계


우즈베키스탄 등과도 왕래와 문화교류가 활발하며,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페르시아계인 타지키스탄과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구소련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인지 어느 정도의 경계도 조금 있는 편이기도 하다.

2.1.11.1. 아프가니스탄과의 관계


아프가니스탄은 터키와 종교적인 것외에도 아프간 북부의 우즈벡족, 투르크멘족, 키르기스족 등 투르크계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의외로 가까운 편이다. 그리고 터키군도 아프간에 주둔한 적도 있었고, 우즈벡 군벌인 도스트가 터키의 지원을 받을려고 하기도 했다. 거기에다 일부 아프간인들중에는 터키에 거주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터키 드라마도 아프간에서 인기가 있는 편이다.

2.1.11.2. 카자흐스탄과의 관계



2.1.11.3. 우즈베키스탄과의 관계



2.1.11.4. 키르기스스탄과의 관계



2.1.11.5. 타지키스탄과의 관계



2.2. 유럽



2.2.1. 폴란드와의 관계




2.2.2. 독일과의 관계



독일과 터키는 오스만 제국말기였던 19세기말에 프로이센과 오스만 제국이 수교한 이후, 에르도안의 집권 이전까지는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에르도안의 집권 이후, 양국은 갈등을 빚고 있다. 독일내에는 터키계 독일인들이 많은 편이고 오스만 제국 시절에 프로이센의 법률과 문화, 제도를 받아들였다.

2.2.3. 오스트리아와의 관계




2.2.4. 루마니아와의 관계



루마니아도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터키와는 사이가 나쁘다. 다만, 문화적으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 당시에 오스만 제국의 영향도 받은 것도 있다. 터키 드라마는 루마니아에서 인기가 많다.

2.2.5. 세르비아와의 관계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세르비아는 터키와의 관계가 나쁘다. 게다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오스만 제국에 대한 반감도 생겼기 때문에 터키와는 사이가 나쁜 편이다.

2.2.6. 알바니아와의 관계



알바니아는 오스만 제국의 침략과 지배를 받아서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터키와는 사이가 나쁘다. 다만 종교적으로 가까운 관계이고 협력도 이뤄지고 있다. 양국은 이슬람 협력기구의 회원국이고 터키내에는 수많은 알바니아계 터키인들이 거주한다. 그리고 알바니아도 오스만 제국의 지배당시에 오스만 제국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2.2.7. 그리스와의 관계



터키 입장에서는 그리스는 '''원수'''다. 그리스 입장에서도 터키는 마찬가지. 두 국가의 현재 국민들은 중세시대부터 워낙에 혼혈 및 상호교류가 많아 외관 및 문화적 차이가 적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위의 두 영상은 축구 국가대항전 A매치에서 국가를 부르는 영상들이다. 각각 터키 홈경기일때와 그리스 홈경기일때 터키 VS 그리스 상황에서 양국 국가를 연주하는 모습을 담았다. 서로 야유를 하는 상황이다.
터키 국가는 1921년 그리스의 침공으로 인해 나라가 두쪽나기 직전에 작곡되었고 그리스 국가 역시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하려던 시기에 작곡됐기 때문에 두 국가 모두 가사가 정말 '''살벌하다.''' 노래로까지 서로에게 야유를 하는 것에는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요즘들어서는 서로간의 경제, 문화 교류가 활발해 지면서 갈등이나 악감정은 많이 줄어든편이다 물론 연세를 드신 분들은 반감을 심하게 보이지만. 그렇지만 미중갈등으로 도로 문제가 격화되고 있다.

2.2.8. 키프로스와의 관계




2.2.9. 동유럽, 캅카스 국가와의 관계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불가리아, 보스니아,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에서 터키는 그리스보다도 인식이 더 안 좋다. 터키가 수백년동안 동유럽과 수많은 전쟁을 치루었고 동유럽을 지배하면서,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은근히 차별을 가했기 때문이다. 물론 민족으로 차별하지는 않았고 근대화 개혁 이전까지 오스만 국법에 민족의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무슬림이냐 아니냐로 차별했지만, 오스만 제국이 진출하기 이전까지 동유럽인들 가운데 무슬림은 거의 없었다. (크림 반도 일대 제외) 다만 요즘은 세르비아를 제외하면 반터키 감정은 많이 줄어든편이다.
특히나 오스만 제국이 잘 나가던 리즈 시절에는 좋든 싫든 지배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지만 16세기 후반 이후 오스만 체제가 흔들리면서 세금이 조금씩 불어나기 시작하자 점차 불만이 생겨나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오스만 제국은 이러한 반란을 효율적으로 진압하기는커녕 세르비아 정교의 창시자인 성 사바의 유골을 소각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1596년부터 1597년까지 세르비아인 가운데 일부가 반란을 일으키자 진압한 이후, 반역자들의 기세를 꺾겠답시고 저지른 일이다. 하지만 성 사바는 세르비아의 성인 가운데에서도 가장 윗자리라 반역자들의 기세를 꺾기는커녕 일단 진압한 불씨에 기름을 붓고 말았다. 그러지 않아도 경제 악화 등으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오스만 제국은 제국 내의 기독교도들이 몽땅 정부에 등을 돌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결과 세르비아인뿐만 아니라 불가리아인, 알바니아인 등의 반란이 산발적으로 뒤따랐으며 그것들을 일일이 진압해야 했던 오스만 정부와 비(非)무슬림 국민들의 사이는 꾸준히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학살,약탈,고문,강간까지 자행했으니 게다가 근대에 민족주의가 유입되면서부터는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반란이 아니라 대규모 반란으로 확산되었으며, 반란을 이끄는 주체도 이전까지처럼 각지의 귀족이나 성직자로 국한되지 않게 되었다. 이러니 이렇게 독립한 오늘날의 동유럽 국가들과 터키의 관계가 좋을 리가 없다.
여기에다 이슬람으로 개종을 강요했던 중동처럼 아주 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개종 강제가 상당히 많았다. 알바니아인들이 오스만 제국에 자주 반란을 일으키자, 아예 민족 전체에다 "너 임마? 개종할래, 죽을래?"라는 식으로 강제 개종을 시켰다고 한다.[2] 또한 개종자와 비개종자의 차별을 극심하게 두는 바람에 독립 이후에도 민족 갈등의 요소가 되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보스니아코소보 등지에서 벌어진 인종청소 등등, 전쟁 과정에서 일어난 대량 학살의 뿌리도, 사실은 오스만 제국 시기 터키가 이슬람으로 개종한 슬라브인들과 알바니아인들을 중간 관리자로 앞세워서 기독교도 슬라브인을 억압, 감시하는 등의 종교/민족 분열을 조장했기 때문이다. 서로를 원수로 대하며 상호 학살을 벌인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이면에는 수백년간 내려온 터키의 민족 분열정책의 후유증과 빚으로 인해 서로 간에 극심한 증오와 거부감이 존재한다.
북마케도니아는 터키가 독립을 지지하고 그리스와 반목하게 되면서 많이 편을 들어주는 터라 외교적으로 사이가 괜찮은 편이다. 사실 북마케도니아에서는 영토 및 나라 이름 문제로 그리스를 상당히 싫어하고 있다. 두 국가가 전쟁 위기 상태까지 있었을 정도이기에 불가리아와 같이 이웃 나라에서 무척 편들어주는 터에 터키와 사이나쁘게 굴일이 없다.
아르메니아와도 사이가 매우 나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르메니아가 터키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아르메니아의 영토였던 지금의 터키 동부를 잠식했고, 결정적으로 20세기 초에 오스만 제국/터키가 벌였던 아르메니아 학살이 컸다. 아르메니아의 원수 아제르바이잔을 터키가 적극 지지하는 것도 반감의 원인.[3] 때문에 아르메니아는 코카서스 지역에서 가장 친러적외교를 하는 나라다. 그래도 21세기 들어와서는 관계를 개선하는 징후가 조금씩 나타나는 중이다.#
캅카스 3개국들 중 아르메니아와는 대학살 문제와 아라라트 산 영토 문제로 나쁜것과 달리 조지아와의 관계는 그렇게 나쁘지 않은 편이다. 조지아는 내부에 압하지야ㆍ남오세티야 문제 등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한 실질독립 상태인 미승인국 문제가 있어서, 러시아의 대항마로 터키와 우호관계를 다지는 면이 있다. 다만 조지아는 바다 없는 내륙국인 아르메니아에게 바투미 등 흑해 항구의 사용권을 빌려주고 있기 때문에 아르메니아와의 관계도 무척 신경을 쓴다.

2.2.9.1. 아제르바이잔과의 관계


주변국 중 유일하게 친한 정도를 넘어 거의 '''형제 관계 수준으로 절친한 관계다.''' 터키의 각종 시위 현장이나 스포츠 경기장, 축제 현장에서 터키 국기와 함께 아제르바이잔 국기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2.2.9.2. 아르메니아와의 관계



2.2.9.3. 러시아와의 관계



2.2.9.4. 우크라이나와의 관계



2.2.9.5. 헝가리와의 관계



2.2.9.6. 벨라루스와의 관계



2.2.10. 서유럽 국가와의 관계


터키는 유럽에서 사실상 반쯤 왕따당하는 나라다. 그래서 '''"터키가 어째서 유럽이냐? 중동국가 아니야?"'''라면서 대놓고 적대시하는 유럽인들도 많다. 알바니아, 보스니아등을 제외한 유럽 국가의 종교는 크리스트교인데 터키는 이슬람교라서 비슷한 공통점도 없고, 생활문화권도 전혀 다른데다, 역사적으로도 심한 적대관계였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웃국가들과 사이도 좋지 않았고 민족으로도 상당한 이질적인 정서를 갖고 있어서 항상 따로 노는 국가이다보니 거리감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터키가 지속적으로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있어서 UEFA 유로를 비롯한 국제 스포츠 대회를 유치를 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다. 하지만, 대부분 좋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유럽 국가들이 터키를 별로 편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다른 국가를 편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유럽연합 가입도 받아주지를 않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터키의 직계 전신인 오스만 제국은 멸망할 때까지만 해도 유럽 세계에서 '유럽'으로 인정되었다. 발칸반도를 정복한 이후 오스만 제국은 아시아쪽 방면보다는 유럽쪽 정세에 개입하는 일이 더 잦았고, 18세기부터는 유럽 각국에 공사를 파견하면서 유럽 외교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나폴레옹 전쟁에도 잠깐이지만 참전했으며 '유럽의 질서'를 조율하는 빈 회의에도 참관국으로 참여했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럽 영토가 엄청 많았기 때문에 유럽 국가라고 해도 어색할 게 없었다[4]. 본토인 아나톨리아 역시 본래는 유럽인인 그리스인들의 홈그라운드였고.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터키는 산업화된 유럽의 열강들에 비해 점차 뒤쳐지게 되었고, 19세기 그리스를 시작으로 발칸반도의 국가들이 대거 독립하면서 유럽 영토도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19세기 중후반 세르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가 나란히 독립하면서, 20세기까지 유지한 유럽 식민지는 알바니아뿐이었다. 그래도 터키는 여전히 유럽 국가로 취급되었고, 별명도 '유럽의 환자'[5]였다. 20세기에 와서도 각국의 외교부문에서 오스만 제국은 여전히 유럽 국가로 구분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도 엄연히 유럽 국가로서 동맹국인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으며, 패전국이 되었을 때도 식민지가 된 게 아니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처럼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피지배 민족들을 독립시키고, 독일 제국처럼 일부 영토를 빼앗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외교적, 거시적인 부분에서고 민간, 미시적인 관점에서 터키를 아시아 취급하기도 했다. 외모야 유전자가 99.6% 그리스인과 똑같은[6]터키인들이 구분될 리가 없었지만(...) 이슬람 국가였던 터키는 문화적으로는 유럽과 많이 이질적이다보니...튀르크리가 유행했던 것도 시누아즈리자포네스크랑 비스무리하게, 신비롭고 조금은 덜 개발된(...), 이질적인 동방의 나라라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터키는 국토의 대부분이 아시아 지역에 걸쳐있지만 아시아 국가를 자처한 적도 없고 스스로 유럽 국가라고 여긴다. 서유럽 측에서도 유럽 전체를 놓고 통계를 작성할 때 터키를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닌 유럽국가'''로 넣어서 내보낸다.
21세기 이후 유럽에서 무슬림 이민자들이 사회에 큰 문제로 부각되면서 EU 가맹국에서 이슬람 국가에 가까운 터키를 받아들이는 것에 거부감이 매우 커지고 있다. EU에 가입하면 이주 및 취업이 자유로워지니까 터키인들이 유럽으로 많이 이주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오죽하면 EU 가맹국들 사이에서도 위험한 이슬람 테러리즘 국가인 터키를 받아들이느니 대신 EU에 가입하지 못한 다른 유럽 대륙 나라들인 세르비아, 아이슬란드, 스위스 같은 국가들을 가입시키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EU의 신규국 가입을 이들 국가들의 정회원국 가입을 끝으로 중단하자는 목소리들도 나오고 있는 중이다.
유럽 나라 가운데서는 과거에는 프랑스, 20세기 이후로는 독일과 관련이 깊다. 프랑스의 경우, 16세기부터 지속되어 온 우호적 관계에 힘입어서 대다수의 유럽문화를 이 나라에서 받아들여온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기독교 유럽 국가들 중 오스만과 통상조약이 아니라 군사 동맹을 처음으로 맺은 국가가 바로 프랑스이기도 하고, 오스만이 한창 잘 나가던 16세기나 17세기에는 오스만의 문화가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에 퍼져나가 튀르크리라는 문화 현상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19세기의 기록을 봐도 이스탄불에서 목좋은 곳에 가게를 연다든지, 우대권을 받은 외국인 중 프랑스인들이 많았을 정도였다.
이는 16세기 중엽 당시 신성로마제국과 스페인 등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던 합스부르크 황가가 공공의 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가 먼저 오스만에 군사 원조를 요청하고 오스만이 이를 받아들여 몇 번인가 합동작전을 벌였다. 지중해 쪽에서는 프랑스가 하이르 앗 딘에게 항구도시들을 거점으로 삼을 수 있도록 양해해주는 대신 오스만도 무차별 약탈의 대상에서 프랑스 선박은 조금이나마 봐준다거나, 프랑스가 서쪽에서 신성로마제국을 공격하면 오스만은 동쪽에서 합스부르크령 헝가리를 공격하는 형식. 한편 프랑스의 포병대가 오스만에 파견되거나 프랑스가 파견한 콘스탄티노플 주재 대사가 전장에 동행하며 조언을 하기도 했다. 한편 이와 같은 이치로 합스부르크는 사파비 왕조와 우호관계를 맺으며 서로 우대권을 공유했으나, 오스만-프랑스와는 달리 상호 연락이 어려운 탓에 합동작전까지 벌이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서 독일과 우호적으로 지내게 되는데,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독일과 동맹국 관계였고 근대화에서 독일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나치 독일 시대에는 나치에 반대하는 독일 학자들이 터키로 이민을 많이 가서 터키 학문을 발전시키는데 공헌을 많이 했다. 또 터키는 나치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기도 했으며, 방공협정에도 가입하는 등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도 친추축국적 성향을 보여주었다.[7]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에는 터키의 노동자들이 전후 경제 복구를 위해서 독일로 많이 이민을 가기도 했다.
물론, 독일 내에서는 인종차별이나 악감정도 상당하긴 하지만... 독일에서 무려 400만명이 넘는 터키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베를린에 갈라타사라이 자매팀인 베를린 갈라사타라이 창단까지 논의되기도 했다. 결국 UEFA에서 거부하여 이뤄지지 못했으나 논란이 되었는데 AFC 아약스남아공에 케이프 타운 아약스같은 팀이 있고 레드불은 레드불 잘츠부르크를 비롯하여 레드불 축구단이 미국에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해당 경우는 유럽이 아니라고 해서 그냥 넘어갔다.
당연히 아마추어 팀으로 터키인 축구팀도 많다. 더불어 독일 분데스리가에 가장 많은 외국인 선수에 터키인 선수가 많은데 2015~16시즌만 해도 분데스리가 1부리그에 터키 국적 선수는 11명이 뛰고 있으며 3부리그까지 합치면 35명이 소속되어 있다. 더불어 독일인이 터키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으로 2014년만 해도 554만명이 터키로 왔을 정도다.
그 외에는 17세기까지 동지중해를 두고 치고박았던 베네치아 공화국을 들 수 있겠지만, 현재는 베네치아 공화국이 이탈리아에 흡수된 상태라 국민적 감정은 거의 없는 듯 하다. 그래도 베네치아 주민들은 오스만 제국의 동지중해의 지배에 맞서 기독교의 방패로 활약한 과거를 은근히 자랑스러워 한다.
터키의 경제문제는 안정된 직장의 수는 적은데 반해, 젊은층 인구가 너무 많아서 이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점에 있다. 대표적으로 터키인들이 많이 마시는 차이만 해도 차이잎, 농장이 넘쳐나는 상황임에도 한동안 싼 인건비로 서아시아 및 조지아 같은 곳의 노동인력을 쓰다가 일자리 부족을 빌미로 2007년 법으로 금지하고 터키인 인력으로 대체하게 했지만 차이값이 더 오르고 부작용이 더 심해졌다. 특히, 돈도 적게 벌고 몸도 힘든 3D 직종인지라 터키 청년들이 일하길 거부하는 중이다. 사실 경제가 성장하면서 힘든 일을 하기 싫어하는 것은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다 똑같다. 애초부터 부모들도 힘들고 보수가 적은 3D 직종을 싫어하며 자식들이 그 직종에서 일하는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터키는 1인당 GDP가 16,000달러에 육박하면서도[8] 청년실업률이 농촌에서 최대 40%에 이른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알아서 터키 내 청년층을 해외로 내보내는 중이며, 이것이 EU 회원국과 잠재적인 일자리 문제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면 8천만 터키인 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한국에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처럼 입국해 올 것이며, 문화 자체가 유럽과 다른 이슬람권인데다 동화도 잘 안되어서 터키인들이 자기네들끼리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배타적으로 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무엇보다 터키는 공식적으론 국교가 없는 세속국가이지만 국민의 대부분이 무슬림이라서 실질적으론 종교국가나 마찬가지다. 종교에 대한 비판도 굉장히 탄압하는데, 유럽 국가에서는 이런 탄압이 명백한 범죄이다.
물론, 이슬람 이민자들이 죄다 문제만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이들도 부유층이 있고 세속주의자들과 기독교인들도 있어 현지인들과 동화되어 잘사는 사람들도 있는데다 그동안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자리를 잡아서 중동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었다고 여겨서인지 유럽 여러 나라 사회투자와 금융 및 자원개발 같은 일에 나서면서 이젠 다른 유럽인들도 무작정 예전처럼 터키인들을 가난한 이슬람 출신 노동자라고 더 이상 깔볼 수도 없게 되었다. 그래서 터키의 EU 가입에 아랍권이나 다른 이슬람 국가들이 꽤 지지를 보이면서 유럽에서는 상당히 골머리를 앓고 있다.
터키를 계속 마다하면 이슬람권에 대한 도전이니 반발이니 하면서 자원 문제로 심하게 다투어 서로간의 손해가 발생한다. EU vs 아랍+터키(혹은 이슬람)가 되면 좋을게 없다. 하지만 유럽권의 反 이슬람 감정이 워낙 심한 데다가 정상적인 민주주의가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서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에 비해서 터키는 겉으로만 민주주의일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국가라 서유럽 언론들에서도 심심하면 이점을 두들겨 패대기 때문에 터키인들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심하다.
많은 터키인들이 서유럽 국가에서 정착하고 살고 있지만, 동유럽에 비해서도 훨씬 문화가 다르며, 세속국가를 표방한다고 해도 이슬람권이다. 민족성에 대한 평가도 유쾌하고 잘 융화된다는 평인 반면, 터키인만의 커뮤니티로 배타적인 면도 보인다. 또한 서유럽권에서는 터키인은 장사꾼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며, 이민자 범죄에서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9] 서유럽권의 EU 가입 반발은 역사적, 지리적인 문제를 떠나, 현재 터키인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덧붙여서 최근 아랍권의 혼란스런 정국과 이민자, 테러 문제와 맞물려서 완화될 조짐은 더더욱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2016년 터키 쿠데타 미수사건의 후폭풍 때문에 EU-터키 관계는 최악을 달리고 있다. 2016년 11월 EU 의회는 터키의 가입 잠정중단 안건을 압도적 가결시켰고, 에르도안은 EU 말고도 다른 대안을 모색하겠다는 한편 가입 협상이 중단되면 300만의 난민을 유럽에 풀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하지만, 유럽은 터키의 협박을 무시하고 터키의 EU 가입 협상 중단 여부를 표결에 부쳐 찬성 479표, 반대 37표, 기권 107표로 통과시켰다. 그리고 개헌 집회를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에서 불허한 일로 인해 터키와 다른 EU 회원국들 간에 갈등이 발생했다.# 또한, EU는 터키의 인권탄압과 법치훼손 등을 문제로 터키의 EU가입논의를 중단하는 결의안을 다수결로 체택하자 터키측은 반발했다.#
터키가 키프로스, 그리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지중해 석유시추를 강행할려고 하자 EU측은 터키 제재 움직임을 보였다.# 그리고 EU측은 터키 제재를 결의했다.# EU는 키프로스 부근 해역에서 터키의 석유시추와 관련된 건으로 제재를 하자 터키측은 반발했다.#
터키가 러시아와의 밀착을 강화하고 시리아 북부의 로자바를 공격하자 EU측은 터키를 다시 제재할 방침을 보였다.#
2019년 11월 7일에 터키는 난민에 대한 유럽의 추가지원이 없으면 터키내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에 가도록 문을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연합 이사회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입국 제한 해제 국가에서 터키를 제외한 데 대해 터키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2020년 7월에 터키 행정법원이 그동안 박물관으로 이용했던 하기아 소피아를 모스크로 환원하는 것을 검토하고 에르도안 대통령이 모스크 환원명령에 서명하자 EU는 터키를 비판했다.#
유럽연합에서 터키에 대한 제재를 다시 추진하자 터키측은 반발했다.#

2.2.10.1. 영국과의 관계


영국과는 오스만 제국시절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터키와 영국은 경제적으로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영국내에도 터키계 영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2003년 11월 20일에 이스탄불의 영국영사관 주변에서 차량폭탄테러가 발생했다.#
보리스 존슨이 총리에 당선되자 에르도안은 트위터로 축하했다.# 터키가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 지역을 공격하자 영국은 터키에 무기수출을 중단시켰다.#
12월 27일에 리즈 트루스 통상장관은 터키와 FTA를 체결한다고 밝혔다.#

2.2.10.2. 프랑스와의 관계


프랑스와는 오스만 제국시절부터 외교관계를 맺었고 한때 종교의 차이를 뛰어넘는 동맹 관계였다. 19세기부터 오스만 제국은 프랑스의 문물을 받아들였고 프랑스어도 배우기 시작했다. 터키의 세속주의정책도 프랑스의 라이시떼 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2.2.11. 북유럽 국가와의 관계


직접적으로 치고받은 역사가 거의 없다 보니 그나마 사이가 좋은 편이다. 특히 스웨덴은 과거 북방전쟁으로 러시아와 대립하던 시절 오스만 제국과 협력하기도 했고 국왕인 칼 12세가 오스만 제국에 망명하기도 하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2.2.11.1. 리투아니아과의 관계



2.3. 아프리카, 아랍 국가와의 관계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쿠웨이트, 팔레스타인 등은 터키의 인접국이면서 마찬가지로 이슬람이 강세인 나라들로, 필요한 경우에는 국제적으로 터키의 편을 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에게 이득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의 이야기이고, 평상시에는 터키라는 이름만 들어도 얼굴이 굳어지는 편이다.
심지어 아랍에서는 터키를 진정한 이슬람 국가도 아니고, 이란, 이스라엘과 더불어 터키를 아랍을 지배하고 악랄하게 대하는 적이라고 간주하고 매우 싫어할 정도다. 특히 오스만 제국 시절 행정이나 권력의 핵심에 오르는 자들은 아랍인들이 아니라 주로 이슬람교로 개종한 그리스인 혹은 슬라브인이고, 아랍인들은 그 다음 축에도 별로 끼어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1순위가 이슬람교로 개종한 그리스인 혹은 슬라브인이거나 그 후손이면 2순위는 이슬람교로 개종하지 않은 (아직 기독교인이었던) 그리스인 혹은 슬라브인이었다. 이 2순위들은 자기네들 동네에서나 큰 소리 치는 정도다.
그리고 1순위들은 대부분 토착 투르크족들과 자유롭게 통혼했다. 시파히들이 주로 중세시대의 기사 같은 개념이었고 대체로는 부계 세습이었으나, 간혹 시파히 아저씨들이 자기네 수중에 들어온 그리스인 남자 노예들 중에서 좀 잘생기고 똘똘한 놈이 있다면 이슬람교로 개종시켜서 자기 딸과 결혼시킨 다음에 후계자로 만들어서 봉토를 물려줬다. 물론 2순위들이 자주 필요 이상으로 가혹한 처분을 받은 것이 사실이었지만 오스만 제국은 뭐 하나 잘못하고 수틀리면 투르크족이든지 누구든지 봐주지 않았기 때문에 무조건 모두 다 짓밟아버리고 엄혹한 형벌을 내리는 습성이 강했다.
거꾸로 뒤집어보면 어쨌든 아랍인들은 그런 대우를 받을 일이 없었던 것이 되겠지만 이 친구들이 권력 핵심부에 여간하면 접근하지 못하니까 수뇌부에다 그다지 밉보일 짓을 할 일도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스만 제국이 쇠퇴기에 접어들 무렵에도 아시아나 아랍 지역을 다스리는 터키 제국 출신 엘리트들은 오스만 제국 붕괴 때에도 그렇게 많이 대체되지 않은 반면, 발칸 반도의 그런 이들은 대부분 축출당했다. 아마도 자민족 (투르크) 출신 엘리트 역사가 수백년이 넘으니까 그런 게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당시, 아랍인들도 덩달아 학살당하거나 대대로 살던 곳에서 오스만에 의하여 강제로 내쫓긴 게 허다하다. 물론 아르메니아인 말고도 오스만 민족주의에 대항하거나 독립할 것 같으면 같은 무슬림이고 뭐고 마구잡이로 뭉갰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랍인들은 오스만의 지배를 받던 시절, 영국이 독립시켜주겠다고 요청하자 군말 없이 영국과 손을 잡고 오스만 제국에게 맞설 정도로 터키에게 대한 인식이 엄청나게 좋지 않다.
다만 중동 아랍 국가들 중에서도 오만이나 카타르와는 사이가 나쁘지 않은데, 카타르의 경우 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교 단절 보복으로 외교적으로 고립되자 터키의 군사지원과 경제지원을 요청했고, 터키는 요청을 받아들여 카타르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 간의 외교 정상화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UAE와 외교 관계를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3.1. 시리아와의 관계




2.3.2. 이라크와의 관계




2.3.3.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2.3.4. 쿠웨이트와의 관계




2.3.5. 카타르와의 관계




2.3.6. 이집트와의 관계




2.3.7. 튀니지와의 관계




2.3.8. 수단 공화국과의 관계




2.3.9. 리비아와의 관계




2.4. 아메리카



2.4.1. 미국과의 관계




2.5. 오세아니아



2.5.1. 뉴질랜드와의 관계




3. 범튀르크주의


터키뿐만이 아니라 중앙아시아까지 널리 퍼진 튀르크 민족의 공동체를 추구하려는, 이른바 범튀르크주의는 19세기 말엽 이스마일 엔베르를 위시로 하는 청년 튀르크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에서부터 거슬러올라갈 수 있는 제법 오래된 이념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터키의 국력이 범튀르크주의를 감당하지 못하고 러시아-소련과의 마찰이 불가피했으므로 케말 아타튀르크는 범튀르크주의는 일단 접어두었다.
그러다가 소련이 붕괴하고 튀르크족이 사는 중앙아시아에 헤게모니를 장악한 세력이 부재하게 되자, 터키가 다시 그 위치를 차지하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우호관계를 추구하는 나라들로는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 유라시아 튀르크계 나라들이 있다. 터키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중앙아시아의 튀르크계 국가들과 우호를 다져나가는 한편, 매년 새해같은 기념일날 앙카라바쿠, 이스탄불사마르칸트 동시 생방송 같은 방식으로 이벤트를 열고 있다.
범튀르크주의 문서 참고.

4. 여담


여러모로 이렇게 서구권에게도 밉상에다 주적 취급을 받고, 아랍-이슬람권에게도 영 좋지 않는 취급을 받는 터키는 과거 역사적으로 스펙타클한 사건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쉽게 갈등이 해결되기도 어렵다. 그래서 정말로 친한 나라는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같은 구소련 투르크계 국가들, 인도, 파키스탄이나 미국이나 캐나다, 일본, 대한민국 같이 전통적으로 면식이 별로 없는 국가들 정도다. 하지만 지리상으로나 역사로 볼 때 방관했다가는 여러모로 위험한 나라이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도 터키와 외교를 할 때 조심하는 편이다.
그래서 터키인들은 1990년대만 해도 유럽과 아랍권 지역 입국이 엄청 까다로웠다. 그래도 앞서 언급했듯이 2011년 통계로 터키인 해외입국 (터키 입장에선 출국) 수가 1154만명이나 되고 절반 가까이가 '''유럽 해외여행'''으로 조사될 만큼 터키의 경제성장으로 인해 상당히 인적교류가 늘어나면서 터키인들을 감정적으로 싫어한다고 해도 경제적으로 우선 입국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이 늘어났다.
온 사방에 적이 있는 나라라 터키 내 민족주의자들 중에서는 "튀르크인에게 친구는 튀르크인뿐이다."Türkün dostu Türktür."라며 고립주의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5. 지역별 관계



6. 관련 문서



[1] 당시는 남북조시대였다. 이전에는 한족왕조라고 써있었는데 선비족 왕조였다.[2] 그래서 알바니아는 보스니아와 함께 유럽에서 드문 양대 이슬람 다수 국가가 되었다.[3] 다만 아제르바이잔의 경우 아르메니아인들이 아제르바이잔인들을 학살한 호잘리 대학살 때문에 참작의 여지가 있다. 그리고 해당 사건 때문에 현재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관계는 아르메니아와 터키의 관계보다도 더욱 험악해진 상황이다. 만약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에 서로 군사적 충돌이 없었다면 아제르바이잔은 친터키 성향과 별개로 아르메니아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은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4] 대략 40%에 가까운 영토가 유럽 영토였는데, 3대륙에 걸친 대제국이었던 오스만의 영토를 보면 엄청 큰 거다.[5]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가 해서 유명해진 말이다. 썩어도 준치라고, 여전히 터키를 유럽으로 여겼던 당시 유럽인들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말. 여담으로 '아시아의 환자'도 있는데, 바로 청나라를 말한다.[6] 참고로 중국인과 한국인도 99.6% 일치한다. 피부색이 다른 인종끼리는 대략 96% 정도.[7] 물론 추축국에 가담하진 않았으며, 결국 전쟁 말엽에 연합국 측으로 참전한다.[8] 다만 현재는 경제난으로 인해 터키의 1인당 GDP가 절반인 8천달러로 감소한 상황이다.[9] 먼나라 이웃나라 독일편에서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