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녹스
1. 미국의 정치인
William Franklin Knox (1874.7.1. – 1944.4.28.)
미국의 언론인, 정치인. 매사추세츠 보스턴 출생으로 캐나다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미시간의 알마 컬리지(Alma College)를 졸업할 즈음 미국-스페인 전쟁이 터지자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따라 의용군 러프 라이더(Rough Riders)에 참가했다. 이후 Grand Rapids라는 신문에 취직해 기자가 되었고, 뉴햄프셔에서 지역신문 Manchester Leader의 편집자가 되었다. 그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1912년 대선에 출마할 때는 그를 따라 잠시 진보당을 지지하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는 줄곧 공화당을 지지했다.
1차대전이 터지자 연합국으로서의 참전을 주장했으며, 1917년에 참전이 이루어지자 본인도 미군에 자원하여 프랑스 전역에서 복무했다. 이 때의 최종계급은 소령. 종전 이후에는 다시 신문을 경영했으며, 1930년에는 시카고 데일리 뉴스(Chicago Daily News)의 발행인이 되었다.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공화당에서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대통령 후보 알프 랜던과 함께 출마했지만 프랭클린 루스벨트에 밀려 대패했다.
2차대전이 터지자 당시 미국의 공식 방침(중립)과는 달리 참전과 연합국에 대한 지원을 주장했으며, 프랑스 침공 이후 루스벨트 대통령이 거국내각을 구성함으로써 해군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장차 참전을 대비하기 위해 미 해군의 규모를 크게 키워놓으며, 그의 노력은 진주만 공습 이후 일본과의 태평양 전쟁을 전개하는 데 기여했다. 태평양 전쟁 당시에는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을 주도하기도 했다.
1944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2. 미 해군 기어링급 구축함 11번함 DD-742 프랭크 녹스
위의 미국 정치인의 이름을 딴 것이다. 1944년에 취역해 오키나와 전투 등에 참전했다. 2차대전이 끝난 이후에는 일본에 주둔해있다가 6.25 전쟁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베트남 전쟁에도 참여했다.
1970년대에 그리스군에 매각되어 테미스토클리스라는 이름으로 재취역했다. 1992년에 퇴역했으며, 2001년에 그리스 해군 네레우스와 어뢰정 키클론의 표적함으로 소모되어 침몰했다.
전함소녀에 의인화되어 등장한다. 프랭크 녹스(전함소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