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에르 페르난데스

 

'''하비에르 페르난데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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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선수권 남자 싱글 챔피언'''
[image]

살바도르 바예호
(2006)[21]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2009)'''

하비에르 라야
(2010)
하비에르 라야
(2010)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2011~2018)'''

헥터 알론소
(2019)




[image]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동메달 획득 당시'''
<colbgcolor=#58a5dd> '''이름'''
하비에르 페르난데스(Javier Fernández)
'''국적'''
스페인[image]
'''출생'''
1991년 4월 15일(32세), 마드리드
'''신체'''
175cm
'''종목'''
피겨 스케이팅
'''은퇴'''
2019년 1월 26일
'''링크'''

1. 소개
1.1. 어린 시절
2. 선수 경력
2.1. 2006-07 시즌
2.2. 2007-08 시즌
2.3. 2008-09 시즌
2.4. 2009-10 시즌
2.5. 2010-11 시즌
2.6. 2011-12 시즌
2.7. 2012-13 시즌
2.8. 2013-14 시즌
2.9. 2014-15 시즌
2.10. 2015-16 시즌
2.11. 2016-17 시즌
2.12. 2017-18 시즌
2.13. 2018-19 시즌
3. ISU 공인 최고 점수
4. 커리어
5. 기타


1. 소개


피겨 스케이팅에선 이례적인 '''프리컷 탈락'''[1]에서 '''세계선수권 2연패, 유럽선수권 7연패'''[2]를 달성한 '''스페인의 빙상종목 최초 메달리스트'''
스페인의 前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다. 유럽 남자 싱글의 마지막 자존심이라 불렸던 인물이다.
첫 세계선수권 프리컷,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14위에 그치는 등 처음부터 탑 스케이터는 아니었다. 두 번째 올림픽인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다 가진 동메달을 자약룰을 어기며 데니스 텐에게 넘겨줘 포디움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세계선수권에서 2연패를 하는 쾌거를 이루며 20대 초반이 전성기라는게[3] 거의 공식처럼 여겨졌던 피겨 스케이팅 남자 싱글에서 전무후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경기에서 구사했던 4회전 점프는 쿼드러플 토룹과 살코로 2종류이며, 쿼드러플 룹도 연습했었다. 안정적인 점프가 강점이다. 쿼드러플 살코가 가장 쉽게 뛰고 잘 뛰는 주무기이다. 찰리 채플린 같은 느낌을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페인''' 내에선[4] 피겨 스케이팅은 물론, 빙상 종목에서 '''최초로'''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딴 선수이다. 그야말로 국가 내에선 피겨 스케이팅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스페인 국왕 훈장을 수여받았다.

1.1. 어린 시절


1991년 4월 15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우체부이신 어머니와 육군 정비사인 아버지 사이에서 1남 1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였던 누나를 따라 6살 때부터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며 축구, 아이스하키, 테니스등과 병행하다 8살 때 완전히 전향했다. 어릴때의 발전속도는 굉장히 늦은 편이다. 만 12세에 첫 트리플 점프[5] 를 뛰었다. 그 나이에 쿼드를 뛰었던 스티븐 고골레프 같은 경우야 논외로 두더라도 느리다고 할 수 있다. 페르난데스의 첫 코치였던 카롤리나 산즈 코치는 그가 훌륭한 재능을 가졌으나 연습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페르난데스를 담당했던 코치들인 브라이언 오서와 모로조프에게서 공통적으로 '게으르다'라는 말이 나왔던걸 보면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6]
실제로 가족들 사이에선 별명이 도마뱀이었는데, 반항적인 성격에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릴때 스케이트를 타려고만 하면 경기를 일으켰을 정도였다. 난장판을 만들지 않고서는 절대로 스케이트를 신지 않았다고 한다. 빙판에 들어서서도 여자 아이들의 치마를 잡아당기거나 얼음 조각을 던지며 노는 등 피겨 스케이팅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본인들 스스로도 스케이트 선수셨던 부모님이셨기에 최대한 자식들의 훈련비를 지원하고자 하셨다만, 두 아이의 훈련비는 '''상당했다'''. 그의 아버지는 1500 유로를 벌 때도 매달 450유로 이상을 두 아이의 훈련 비용으로 쓰셨다.

2. 선수 경력



2.1. 2006-07 시즌


그 전까지는 제대로 된 국제대회에도 출전하지 못하다가, 2007 유럽선수권2007 세계선수권에서 프리컷을 당했다.

2.2. 2007-08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영국과 에스토니아 대회에서 각각 11위와 9위를 기록했다. 처음으로 출전한 2008 유럽선수권에서는 17위를 했다. 2008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는 13위를 차지하였는데, 프리 연기 중 부츠와 바지 사이를 고정하는 끈이 풀려 경기 중단 후 다시 시작하였다. 2008 세계선수권에서는 또 프리컷을 당했다.
2006-07 시즌부터 이 시즌까지 페르난데스는 스페인의 자카에서 훈련했으나 두 시즌 연속 침체된 성적, 게이라고 놀림받는 환경 -[7], 코치들과의 불화 등으로 의욕을 상실하고 마드리드로 돌아와 선수 생활을 지속할지 말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한다.
그렇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참가한 안도라에서의 모로조프 섬머캠프에서 인생의 첫번째 터닝 포인트를 만나게 된다.

2.3. 2008-09 시즌


세계적인 코치인 모로조프의 캠프에서 모로조프 코치의 눈에 들어 무려 '''훈련비 무료 제자'''로 들어가게 됐다. 페르난데스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후 한 스페인 방송에서 모로조프 밑으로 들어가 훈련하게 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당시 인생 최악의 스케이팅을 했었다며, 모로조프가 자신을 눈여겨 볼 줄은 몰랐다고 한다. 캠프 마지막 날, 모로조프가 자신을 조용히 불러 미국행 티켓을 던져주며 ‘올지 말지는 네게 달려있다.’ 고 말했다고 한다. 고민할 것도 없이, 만 17세의 소년은 바로 그 제안을 승낙한다. 많은 이들이 굴곡이 많은 하비 인생의 첫번째 터닝포인트로 꼽는 사건이다.
일단은 세계적인 코치의 눈에 들어 제자로 들어갔지만, 스페인어 외에는 아는게 없었던 하비는 모로조프의 말 한 마디를 알아듣는 데만 몇 개월이 걸렸다고 한다.[8]아무도 말이 통하지 않는 환경 속에서, 하비는 훗날 이 시기에 불안 발작을 겪었다고 회고했다.
또한 훈련 비용이 무료라고 넉넉한 생활을 한 것은 아니였다. 미국에서의 체류비는 한달에 3000 유로 가까이 들었기에 페르난데스의 아버지는 투잡을 뛰기 시작하셨다. 또한 스페인의 피겨 선수로 활동하던 누나 로라 페르난데스 역시 피겨 스케이팅을 그만둬야 했다. 온 가족의 희생과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셈이다.[9] 이 시기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며 2009 유럽선수권 11위, 2009 세계선수권에서 19위를 차지하며 1956년 이후 처음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스페인 남자 싱글 선수가 됐다.
만 18세에 트리플 악셀을 장착했다. 모로조프에게로 간 후, 기술적인 발전이 급속도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첫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고 2주 후에 바로 랜딩을 했다고 한다.

2.4. 2009-10 시즌


처음으로 그랑프리에 초청을 받으며 2009 트로피 에릭 봉파르에서 11위, 2010 유럽선수권에서 8위를 달성하며 다음해 스페인의 유럽선수권 남자 싱글 출전권을 2장으로 늘렸다. 그리고 출전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쇼트 프로그램 16위, 프리 프로그램 10위로 종합 14위를 차지했다. 올림픽에서 잘해서 스페인피겨 스케이팅을 알리고 싶다던 본인의 소원을 어느정도는 이룬 셈이다.[10] 쿼드러플 점프를 처음으로 대회에서 들고 온 시즌이다.2010 세계선수권에선 '''12위'''를 차지했다.

2.5. 2010-11 시즌


전 해의 활약으로 두 곳의 그랑프리에 배정을 받고 각각 스케이트 캐나다와 컵 오브 러시아[11]에서 5위와 9위를 했다.
스페인 내셔널에서 웜업 중 스케이트 날에 손을 베여 경기가 20분여 지연됐다. 그럼에도 별도의 웜업 없이 바로 경기에 임해 스페인 내셔널 챔피언 자리를 동명의 하비에르 라야에게 넘겨주며 2위에 머물렀다.
그해 2011 세계선수권에서 쿼드러플 살코와 토룹을 랜딩하며 첫 탑 10을 달성했다.
이 시즌이 지난 후 코치 변경을 택했다. 니콜라이 모로조프에게 가며 엄청난 발전을 이뤘으나 모로조프가 훈련지를 자주 옮기고 새 제자인 플로랑 아모디오에게 신경을 쏟자 캐나다 토론토 크리켓 클럽으로 훈련지를 옮겨 브라이언 오서를 코치로 선임했다.

2.6. 2011-12 시즌


새 코치와 함께 시작한 시즌. 스핀과 스텝을 보완하는 것을 주력으로 비시즌을 보낸 것이 성과가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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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스케이트 캐나다
2011 로스텔레콤 컵
2011-12 그랑프리 파이널
스케이트 캐나다로스텔레콤 컵에서 모두 은메달[12]을 따며 '''스페인 역사상 처음으로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했다.'''
기세를 몰아 그해 2011-12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동메달을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탑 스케이터'''로 자리매김하는 듯 했다.
그해 유력한 메달 후보로 꼽히던 2012 유럽선수권2012 세계선수권에서 각각 6위와 9위를 차지했다. 프로그램 런쓰루[13] 훈련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더 자주 런쓰루를 하며 프로그램을 정비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실상 '''양학''' 수준인 스페인 선수권에선 무려 80점차로 우승했다.

2.7. 2012-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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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스케이트 캐나다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첫 금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뤘다. 스페인 최초라는 이야기는 이 선수에게 사실상 의미가 없다.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금메달, NHK 트로피에서 4위를 하며 2012-13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했다. 프리에서 1위를 했음에도 쇼트 점수 때문에 4위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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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유럽선수권
2013 세계선수권
2013 유럽선수권을 위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스케이트화를 잃어버렸다. 극적으로 하루 전에 발견되었으나, 연습에 제대로 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우승하였다.''' 우승 후 소감을 물어봤더니, "다음에도 스케이트화를 잃어버려야겠다."라는 농담을 남겼다. 2013 세계선수권 쇼트 7위, 프리 4위로 자신의 첫 세계선수권 메달인 동메달을 땄다.

2.8. 2013-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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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로스텔레콤 컵
2014 유럽선수권
NHK 트로피와 로스텔레콤 컵에서 각각 5위와 3위를 하며, 산뜻하게 2013-14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다. 사실상 페르난데스 원탑 체제인 2014 유럽선수권에선 '''2연패'''를 달성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에서 3위를 차지하여 다들 페르난데스가 동메달을 딸 거라고 예상했던 그 때, 결과적으로는 '''자약을 시원하게 날려먹으며 4위를 했다.'''
프리 프로그램에선 최대 3개의 점프를 컴비네이션으로 뛸 수 있다. 또한 같은 종류의 점프는 트리플, 쿼드를 합쳐 2개까지만 뛸 수 있다. 당시 페르난데스의 구성은 쿼드 살코 2개, 트리플 살코 2개로 상당히 '''위험한''' 구성이었다. 까딱하다 쿼드러플 살코 한개를 트리플로 뛴다면 바로 자약룰을 어기게 되기 때문이다.
프리 연기 중, 두 번째 쿼드러플 살코를 트리플 처리하며 이미 한번 트리플 살코를 단독으로 뛰었다. 다행이게도 트리플 플립-하프룹-트리플 살코 컴비네이션에서 후속 살코 점프를 더블처리하며 자약을 피하는듯 했으나, 더블 살코나 트리플 토만 뛰었어도 동메달이었던 마지막 트리플 살코를 정말 '''쓸데없이''' 잘 뛰며 seq[14] 처리를 받고 0점 처리가 돼 결국 최종 4위를 차지했다. 이런 경우 보통 플랜 B를 가동해 자약룰을 어기지 않도록 하는데,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의 중압감인지 아니면 플랜 B가 없었던 것인지 원래 구성대로 수행해버렸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의 남자싱글 '''대환장파티'''[15]의 단골 이야깃거리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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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세계선수권
올림픽이 끝나고 열린 2014 세계선수권에선 동메달을 획득했다.

2.9. 2014-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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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스케이트 캐나다
2014 로스텔레콤 컵
2014-15 그랑프리 파이널
원래는 그랑프리 시리즈를 스킵하려고 했으나, 파이널이 자국에서 열린다는 소리에 결국 참가하기로 한다.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은메달, 로스텔레콤 컵에서 우승하며 2014-15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해 은메달을 따는 쾌거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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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유럽선수권
2015 세계선수권
2015 유럽선수권에선 너무나도 당연하게 3연패를 달성하였다. 이 기세를 모아 '''2015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였다!''' 쇼트는 하뉴 유즈루에 이어 2위, 프리는 데니스 텐에 이은 2위였다. 쇼트와 프리 모두 1위가 아니였고, 둘 다 깔끔하게 수행한 프로그램은 아니였기에 어부지리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래도 페르난데스에겐 어마어마한 동기부여가 됐다.

2.10. 2015-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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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컵 오브 차이나
2015 로스텔레콤 컵
2015-16 그랑프리 파이널
세계선수권 우승자로 시작하는 시즌으로서, 컵 오브 차이나와 로스텔레콤 컵에서 우승하고 2년 연속 자국에서 치뤄지는 2015-16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였다. 파이널에선 준우승을 하였다. 또한 프리 프로그램에서 200점을 넘기며 하뉴 유즈루에 이어 두번째로 200점을 넘긴 남자 싱글 선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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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유럽선수권
2016 세계선수권
무난하게 유럽선수권 4연패를 달성하고, 그곳에서 하뉴 유즈루에 이어 두 번째로 쇼트 프로그램에서 100점을 넘긴 남자 싱글 선수가 되었다.
2016 세계선수권 쇼트 프로그램에서 쿼드러플 살코점프에서 넘어지면서 98점대로 2위를 차지했다. 심각한 발목 부상으로 제대로 스케이트를 타기 힘든 상태였으나 프리 프로그램에서 '''인생경기'''를 하며 끝나기도 전에 마지막 스핀부터 기립박수를 받는다. 이로서 세계선수권 2연패에 성공했다.

2.11. 2016-17 시즌


저번 시즌 쇼트를 그대로 썼는데, 좀처럼 클린을 하지 못하는 등 고전하다 유럽선수권에서 클린에 가깝게 연기하며 개인 최고점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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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로스텔레콤 컵
2016 트로피 드 프랑스
이번에도 시즌의 시작은 꽤나 완벽한 듯 했다. 로스텔레콤 컵과 트로피 드 프랑스[16]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고는 1위로 아주 당당하게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했다.
그리고 2016-17 그랑프리 파이널은 .
원래 컨시가 안 좋은 쇼트라지만, 그날은 더더욱 심했다. 평소에 트리플 토를 연결하지 못하고 고전했던 쿼드러플 토룹-트리플 토룹을 '''기막히게''' 잘 뛰고[17] 나머지 두 점프에서 각각 넘어짐에 가까운 스텝아웃과 넘어짐을 기록했다. 원래 선수가 쇼트에서 말아먹고 프리에서 만회하는 타입이어서, 이때만 해도 피겨팬들의 우려의 눈빛이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프리 시작부터가 쇼트를 만회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가버렸다. 오프닝 점프인 쿼드러플 토룹을 트리플링했다. 피겨 스케이팅을 보지 않는 사람들은 넘어지지도 않았는데 왜 유난이냐 할 수 있겠지만, 쿼드러플 토룹의 기초점(10.3점)은 트리플 토룹(4.3점)의 2배보다도 약 2점가량이 높기 때문이다. 이어진 쿼드러플 살코-트리플 토룹의 쿼드러플 살코에서 랜딩이 박혀버리며 트리플 토룹을 연결하지 못하고 더블 토룹 처리했다. 후반 쿼드러플 살코에서도 스텝아웃이 나왔으며, 트리플 악셀에선 넘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전체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 첫 포디움 아웃이다. 코치 브라이언 오서의 인터뷰에 따르면 페르난데스가 곧 열릴 아이스쇼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고 한다. 선수로써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그럴만도 한 것이 스페인이란 나라에서 그렇게 큰 규모(12000석)로 아이스쇼를 한 적이 없었던데다, 워낙 다들 축구를 좋아해서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여튼 그랑프리 파이널을 망친 장본인인 그 아이스 쇼[18]는 '''모두 매진'''되며 성황리에 잘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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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유럽선수권
2017 유럽선수권에서 이 프로그램을 들고 온지 9경기[19]만에 큰 실수가 없는 클린 연기를 펼쳤다. 사실 쿼드러플 토-트리플 토 컴비네이션에서 위기가 있었으나 잘 넘겼고, 주무기인 쿼드러플 살코 점프를 3회전 뛰듯 쉽게 뛰어내며 시즌 처음으로 100점을 넘겼으며, 개인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한국시간으로 29일 열린 프리 경기에서는 랜딩이 흔들리는 모습을 여럿 보였으며, 후반 쿼드러플 살코에서 넘어졌다. 초반 쿼드러플 살코-트리플 토의 후속 토를 더블링[20] 했으나 트리플 악셀 콤보의 더블 토를 트리플 토로 뛰었다. 적수가 없는 유럽선수권이었기에 '''5연패'''를 달성했다.
2017 세계선수권 쇼트에서 인생경기를 하며 109점대로 쇼트 1위를 차지했다. 종전의 세계 신기록 110점대를 깨지 못한 것은 중간에 스핀과 활주에서 살짝 삐끗하는 등 전체적인 프로그램에서 작은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진 프리에선 폭망하였다. 결국 최종 4위로, 2014년 세계선수권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세계선수권 포디움 아웃이다.

2.12. 2017-18 시즌


쿼드러플 룹을 가지고 오겠다는 소식이 있었으나, 안전하게 가기 위해, 그리고 마지막 올림픽이니만큼 프로그램 구성에 더 신경쓰겠다는 이유로 무산되었다.
챌린저 시리즈 어텀 클래식에서 우승하고 재팬 오픈에서 네이선 첸우노 쇼마를 누르며 개인과 팀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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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엔테르나시오노 드 프랑스
2018 유럽선수권
컵 오브 차이나에서 5위, 엔테르나시오노 드 프랑스에서 우승하였으나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했다.

2018 유럽선수권에서 총점 295.55점으로 6연패를 달성했다. 이후 인터뷰에서 7연패에 도전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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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 동계올림픽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에서 찰리 채플린을 연기하며 107.58점을 받아 2위로 프리에 진출하였고, 프리에서는 맨 오브 라만차의 OST에 맞춰 돈키호테를 연기했다. 총점 305.24점으로 하뉴 유즈루우노 쇼마에 이어 3위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2.13. 2018-19 시즌


재팬 오픈에 참가하여 팀 2위, 개인 3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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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유럽선수권
2019 유럽선수권에서는 쇼트 3위, 프리 1위로 최종 우승을 하며 유럽선수권 '''7연패를 달성했다.''' 그리고 이 대회를 끝으로 은퇴하였다.

3. ISU 공인 최고 점수


'''ISU 공인 최고점수'''
<colbgcolor=#58a5dd> '''쇼트'''
91.84(2019 유럽선수권)
'''프리'''
179.75(2019 유럽선수권)
'''총점'''
271.59(2019 유럽선수권)

4. 커리어


'''대회'''
''''''
''''''
''''''
올림픽
0
0
1
세계선수권
2
0
2
유럽선수권
7
0
0
그랑프리 파이널
0
2
1
'''합계'''
'''9'''
'''2'''
'''4'''

올림픽
동메달
2018 평창
남자 싱글
세계선수권
금메달
2015 상하이
남자 싱글
금메달
2016 보스턴
남자 싱글
동메달
2013 런던
남자 싱글
동메달
2014 사이타마
남자 싱글
유럽선수권
금메달
2013 자그레브
남자 싱글
금메달
2014 부다페스트
남자 싱글
금메달
2015 스톡홀름
남자 싱글
금메달
2016 브라티슬라바
남자 싱글
금메달
2017 오스트라바
남자 싱글
금메달
2018 모스크바
남자 싱글
금메달
2019 민스크
남자 싱글
그랑프리 파이널
은메달
2014-15 바르셀로나
남자 싱글
은메달
2015-16 바르셀로나
남자 싱글
동메달
2011-12 퀘벡
남자 싱글

'''국제대회:시니어'''
'''대회'''
'''03–04'''
'''05–06'''
'''06–07'''
'''07–08'''
'''08–09'''
'''09–10'''
'''10–11'''
'''11–12'''
'''12–13'''
'''13–14'''
'''14–15'''
'''15–16'''
'''16–17'''
'''17–18'''
'''18–19'''
'''19–20'''
올림픽





14th



4th



3rd


세계선수권


35th
30th
19th
12th
10th
9th
3rd
3rd
1st
1st
4th



유럽선수권


28th
17th
11th
8th
9th
6th
1st
1st
1st
1st
1st
1st
1st

GP 파이널







3rd
4th

2nd
2nd
4th



GP 컵 오브 차이나











1st

5th


GP NHK 트로피








4th
5th






GP 로스텔레콤 컵






9th
2nd

3rd
1st
1st
1st



GP 스케이트 캐나다






5th
2nd
1st

2nd





GP Int'l de France





11th






1st
1st


CS 어텀 클래식













1st


핀란디아 트로피








3rd







네벨혼 트로피







4th








메라노 컵





1st










컵 오브 니스





3rd
5th









NRW 트로피




3rd











골든스핀 오브 자그레브



13th












'''국제대회:주니어, 노비스'''
주니어 세계선수권



13th












JGP 스페인




4th











JGP 멕시코




6th











JGP 에스토니아



9th












JGP 영국



11th












JGP 네덜란드


23th













가데나 스프링스 트로피


5th J













EYOF


4th J













트리글라브 트로피

4th N














메라노 컵
3rd N















'''국내대회'''
스페인선수권

2nd J
1st J
1st J
1st J
1st
2nd
1st
1st
1st
1st
1st
1st
1st


'''단체전'''
재팬 오픈









3rd T
1st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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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d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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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d P
2nd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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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T
1st P
2nd T
3rd P
1st T
5th P
GP=그랑프리, JGP=주니어 그랑프리, N=노비스, J=주니어, T=팀 결과,
P=개인 결과, CS=챌린저 시리즈

5. 기타


  • 취미는 축구, 테니스, 친구 만나기이다.
  • 코믹한 연기를 하는 편이다. 그 중에서도 전설이 아닌 레전드 프로그램이 있는데, 2013 올댓 스케이트 아이스 쇼에서 에어로빅 갈라를 선보였다.
  • 한때 안도 미키와 교제를 한적이 있으며 안도 미키의 딸 히마와리의 양육비도 지급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7년 초 결국 헤어졌으며, 현재는 다른 스페인 여성과 교제 중이다.
  • Effie라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으나 키우고 있다.
  • 2016년 12월 29일, 스페인에서 12000석 규모의 아이스쇼를 열었다. 본인의 꿈이었던 '스페인에 피겨 스케이팅 알리기'를 제대로 성공한 셈이다.
  • 은퇴 후에는 코치 생활을 하고 싶다고 한다. 2020년 11월 20일 자국에 첫 피겨 스케이팅 학원을 설립했다.
  • 어릴때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했으며 현재도 가만히 있는 것을 싫어한다.
  • 가보고 싶은 곳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라고 한다.
  • SNS를 통해 현재 교제중인 여자친구와 약혼하였음을 알렸다.
[1] 예선 탈락의 개념이라 보면 된다.[2] 신채점제 이후 최다연패 기록 달성[3] 여자 싱글의 경우 10대 후반기가 최고의 전성기이고, 남자 싱글 선수는 대부분 20대 초반이 신체적 전성기이다.[4] 스페인은 축구나 테니스 같은 하계 종목으로는 아주 유명하지만, 동계종목은 역사상 올림픽 메달이 페르난데스의 동메달을 포함해 4개밖에 없을 정도로 발전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나마 올림픽 메달 4개 중에서도 페르난데스의 메달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설상 종목에서 가져간 메달이다.[5] 트리플 살코 다른 스케이터들과 비교하면 많이 늦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가 다르지만, 현재 우리나라 여자선수들은 만 12세에 3회전-3회전 컴비네이션 점프를 구사한다.[6] 브라이언 오서는 처음 페르난데스가 크리켓 클럽으로 왔을때, 아침에 깨우느라 꽤나 고생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7] 사실 남성 피겨 스케이팅 선수에게 게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비단 스페인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안무와 함께 음악을 표현하는 요소가 포함된 종목이라 그런 것으로 보인다.[8] 현재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9] 피겨 스케이팅 자체가 드는 돈이 상당한 종목이기 때문에 이런 선수들 가정환경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비는 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인지는 몰라도 항상 가족에 대해 각별한 사랑과 고마움을 드러낸다.[10] 두 시즌 만에 프리컷에서 올림픽 14위가 된 것이니, 페르난데스 기준에선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한 것이다.[11] 현재는 로스텔레콤 컵으로 이름이 바뀌었다.[12] 쇼트와 프리 둘 중 하나는 1위를 차지했다.[13] 음악에 맞춰 처음부터 끝까지 맞춰보는 것을 뜻한다.[14] 시퀀스. 현재는 rep로 바뀌어 기초점만 깎으나 당시에는 컴비점프를 하나 뛴 걸로 간주했다. 당시 4s-2t, 3lz-2t, 3f-1lo-2s로 컴비네이션 3개를 모두 썼는데 마지막 점프가 seq처리가 되며 아예 무효가 됐다.[15] 당장 금메달을 딴 일본의 하뉴 유즈루도 2번을 넘어졌고, 은메달이자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패트릭 챈도 프리를 말아버렸다. [16] 구 트로피 에릭 봉파르. 에릭 봉파르가 더 이상 스폰을 해주지 않게 되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17] 심지어 후속 토룹의 회전수를 풀고 내려왔다.[18] 본인 외에 메건 두하멜 / 에릭 래드포드, 안나 카펠리니 / 루카 라노테, 안도 미키,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키이라 코르피가 참가했다.[19] 한 시즌하고도 4경기 째[20] 2회전 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