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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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일본의 前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며, 2000년대 중후반에 맹위를 떨쳤던 선수이다.
동향 사람인 아사다 마오와 함께 일본 여자 피겨 스케이팅의 쌍두마차로 불렸지만, 전적은 아사다에게 밀리며, 일본 피겨 스케이팅계의 콩라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2007, 2011 세계선수권 우승 등 커리어 자체는 굉장히 훌륭한 편이다.[3] 코치와의 염문, 괴상한 의상, 4회전 점프 등 프로그램보다 가십으로도 유명하다.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태어났으며 8살에 아버지를 잃었다. 12세 이전에 트리플 5종을 마스터하였으며 일찌감치 일본 연맹의 주목을 받던 선수였다.
2. 선수 경력
2.1. 2001-02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에 데뷔하여 2001 JGP 체코, 2001 JGP 스웨덴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며 파이널에 진출했다.
2001-02 전일본 주니어선수권에서 우승하였고, 2001-02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우승하였다.
2001-02 전일본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땄고, 2002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도 동메달을 땄다.
2.2. 2002-03 시즌
작년 시즌과 동일하게 주니어 그랑프리 2개 대회 2002 JGP 캐나다와 2002 JGP 중국에서 모두 우승하며 파이널에 진출했다.
2002-03 전일본 주니어선수권에서 우승하며 2연패를 달성했고, 2002-03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동메달을 땄다.
2002-03 전일본선수권에서 5위를 했고, 2003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2.3. 2003-04 시즌
2003 JGP 일본과 2003 JGP 멕시코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면서, 3시즌 연속 출전한 모든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우승하였다. 또한 3년 연속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했다. 2003-04 전일본 주니어선수권에서는 3연패를 달성했다.
2003-04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여자 선수 최초로 4회전 점프인 '''쿼드 살코를 성공'''[4] 시키며 우승했다. 이 때 안도 미키에게 천재 소녀라는 명성을 가져다 준 쿼드 살코는, 국제 대회에서 4회전으로 인정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점프가 되었다.
2003-04 전일본선수권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고, 2004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도 우승하면서 '''주니어 시즌 스윕'''을 달성했다.
이후 2004 세계선수권에도 출전하여 4위를 기록했다.
쿼드러플 살코의 성공 후 안도 미키는 이토 미도리로부터 이어지는 일본 여싱의 계보를 잇는 점퍼로 주목을 받았으며, 아사다 마오가 시니어로 올라오기 이전까지는 단연 일본 여싱의 독보적인 후계자였다. 매스컴에서 '미키티' 라는 애칭으로 통했으며, 단숨에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 기대주로 떠올랐다.[5] 스포츠 선수들을 대상으로 벌인 예능 프로그램에서 미키가 화면에 나오자 아이돌이 "우왓, 미키티다!" 라고 반색했을 정도였다.
2.4. 2004-05 시즌
시니어 그랑프리에 데뷔하여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3위, NHK 트로피에서 2위, 컵 오브 차이나에서 4위를 하였고, 상위 2개 대회의 성적으로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였다.
2004-05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4위를 했다. 2004-05 전일본선수권에서는 2연패를 달성했다. 이후 2005 세계선수권에서는 6위를 했다.
2.5. 2005-06 시즌
컵 오브 러시아에서 2위, NHK 트로피에서 4위를 하고 2005-06 그랑프리 파이널에도 진출하여 4위를 했다. 그런데 이 시즌 올림픽을 앞두고 부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신체 성장기가 시작되면 체중 변화로 점프나 기술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어깨 부상, 발가락 골절 미완치 등 신체적으로도 완벽하지 못한 상태였다. 특히 그 당시 올림픽 출전 선수를 정하는 2005 전일본선수권에서 안도는 수구리 후미에, 아사다 마오, 아라카와 시즈카, 온다 요시에, 나카노 유카리에 밀려 6위에 머물렀다. 이 때문에 일본 내에서도 "안도를 보내야 하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당시 일본의 올림픽 선수 선발 기준이 올림픽 전 두 시즌의 성적 합산이었기 때문에, 나카노 유카리와 온다 요시에를 누르고 올림픽에 출전할 수는 있었다.[6]
2.5.1.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안도 미키는 쇼트에서 3회전-3회전 점프를 다운그레이드 판정을 받고, 프리에서는 쿼드 살코에서 넘어지고, 그 후로도 2번 더 넘어져 최종 15위를 기록했다. 단순히 점프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쇼트, 프리 모두 그야말로 OME 급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훗날 이때의 경기들은 안티들에게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된다. 일본 언론은 즉각 응원에서 조롱조로 시선을 바꾸었고, 그동안의 거대한 관심은 그대로 비난이 되었다. 당시 안도의 쇼트 프로그램은 아버지에 대한 헌정사로서 제작된 것이었는데 언론은 아버지에 대한 헌정사 프로그램과 포디움 실패를 연관지어 입국 직후부터 어마어마한 매스컴 취재를 가했다. '''일본은 개인에게 책임을 무는 것이 관습'''이므로 단순히 싸늘해진 정도가 아니었다. 입국 직후의 기자회견장에서 "아버지에게 헌정한 프로그램이 그 모양이었냐? 돌아가신 아버지가 안됐네" 라는 뉘앙스의 빈정거리는 질문을 받고 울음을 터뜨리자, 그 사진과 인터뷰 내용을 대서특필하며 안도를 매도하기도 했다. 미키의 아버지는 미키를 링크장으로 데려다 주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미키는 그래서 피겨 스케이팅으로 아버지에게 보답하고픈 마음과 트라우마가 컸다.
이 때 일본은 아라카와 시즈카가 기대 이상의 성적으로 금메달을 획득해 여성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 보유 목적은 달성했다. 게다가 이 금메달은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일본이 딴 유일한 메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라카와에 대한 찬사보다는 미키에 대한 비난이나 가십이 더 많이 다루어질 정도로 당시의 비난은 혹독했다. 이런 언론에 대해 안도가 점차 움츠러들고 언론도 냉랭한 반응을 보이며 '미키티'의 이미지는 점차 퇴색되기 시작했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전까지만 해도 안도 미키는 아사다 마오의 선구자쯤 되는 행보를 보였으나, 이제는 완전히 마오에게로 시선이 집중되게 되었다.
2.6. 2006-07 시즌
그랑프리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우승, 트로피 에릭 봉파르에서는 준우승을 하며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였다. 2006-07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5위를 했다.
전일본선수권에서는 아사다 마오에 이어 준우승을 했다. 도쿄에서 열린 '''2007 세계선수권'''에서는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를 제치고 '''우승'''했으나, 오히려 아사다 마오를 꺾었다고 욕을 먹었다. 다만 이 때 안도가 욕을 먹은 이유는, 쇼트에서는 김연아가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1위를, 프리에서는 아사다 마오가 부진을 만회하며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1위를 차지하여 대회 이틀 동안 2명의 18세(만 16세) 소녀가 주인공이었지만, 정작 우승은 쇼트 2위/프리 2위였던 안도 미키가 가져갔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우승은 안도였으나, 일본 언론은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에게 집중되었다.[7] 피겨가 쇼트와 프리의 합산 점수로 최종 순위를 내는 건데, 미키가 딱히 욕을 먹을 이유는 없다. 단지 마오 팬덤과 매스컴에게 미키가 비호감인 것이 문제일 뿐이다.
더군다나 이 시즌 본격적인 시니어로 나선 아사다 마오가 눈부신 결과를 내놓자, 언론은 미키티 독주 채제에서 아사다 마오를 붙여 '쿼드 살코의 미키티 VS 트리플 악셀의 미라클 마오'라는 식으로 언플하기 시작했다. 일본 여자 싱글의 두터운 선수층과 더불어 뛰어난 기량의 두 선수의 라이벌 구도는 좋은 흥행 소재가 되어 이 두 선수의 언론 부채질은 한동안 계속되었으나 아사다 마오가 조금 더 우위를 보이는 가운데 한국의 김연아가 순식간에 뛰어올라왔다. 이후 일본의 언론은 '마오 VS 김연아' 구도에서 점차 '기술력의 마오 VS 표현력의 연아'[8] 구도로 분위기를 바꾸었고 이에 따라 미키의 지면은 차츰 낮아졌다. 안도 미키의 필살기라고 할 수 있는 쿼드 살코마저 토리노 올림픽 실패 이후로 뛰지 않는 데다, 아사다 마오의 필살기인 트리플 악셀이 먹히는 시점에서 안도는 다소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7. 2007-08 시즌
이 시즌은 러츠와 플립 점프의 엣지 판정이 강화되어, 트리플 플립을 아웃엣지로 뛰던 안도로서는 플립 점프에서 감점을 받지 않기 위해 시즌 중에 엣지 교정을 강행하다 부상을 겪었던 시기로, 성적이 부진했다.[9]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은메달을 땄으나 NHK 트로피에서 4위를 하며 처음으로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다. 전일본선수권에서도 2위를 했다. 처음으로 참가한 2008 사대륙선수권에서는 동메달을 땄으나, 2008 세계선수권에서는 프리 직전 근육파열로 기권하였다.
선수로서의 자부심과 근성이 강한 터라 피나는 연습과 함께 한 시즌을 버리면서 점프의 잘못된 플립 엣지 사용을 고쳤으나[10] , 이를 고치는 과정에서 어깨부상으로 시즌 성적이 부진하자, 언론의 주목도는 완전히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구도로 돌아섰다. 아사다 마오가 엣지를 고치지 못해 지지부진하는 사이 아사다 마오를 제치는 시기도 몇 번 있었으나 김연아까지 제치지는 못했기에 일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다시 아사다 마오에게 돌아갔다.
2.8. 2008-09 시즌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동메달, 컵 오브 차이나에서 은메달을 따며 한국에서 열린 2008-09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여 6위를 했다.
전일본선수권과 2009 세계선수권에서는 동메달을 땄다.
2.9. 2009-10 시즌
로스텔레콤 컵과 NHK 트로피에서 모두 우승하고 자국에서 열린 2009-10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은메달을 땄다. 2009 전일본선수권에서는 4위였으나, 일본 여자 싱글 선수들 중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얻은 덕분에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2.9.1.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위와 같은 발언을 하며 금메달을 향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쇼트 프로그램에서 먼저 연기한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가 모두 고득점을 획득하자, 자신도 안정성보다는 실패 가능성이 있더라도 고득점을 노려야만 했다. 쇼트에서 3Lz-3Lo을 시도했지만, 결국 3Lo에서 회전 수 부족 판정을 받아 4위를 기록하였다.'''세계랭킹 1위(김연아)인 선수가 항상 금메달을 따오지는 않았다.'''[11]
'''아라카와 시즈카처럼 금메달을 따고 싶다.'''
프리 프로그램에선 막그룹 중 두 번째로 연기하였고, 회전수 부족에 따른 감점을 우려한 안도는 안전 구성(3-2 콤비네이션, 악셀 시퀀스 구성)으로 비교적 무난하게 클린하며 시즌 베스트를 기록[12] 하였다. 하지만, 바로 뒤에 나온 우승후보인 김연아가 완벽한 연기를 펼치며 228.56점으로 안도보다 약 40점이 넘는 점수를 세웠고, 이후 나온 아사다 마오 역시 3A-2T, 3A를 모두 성공하며 205점[13] 을 획득했다. 또한, 그 후에 나온 캐나다의 조아니 로셰트마저 203점을 받고[14] 미라이 나가수도 190점을 받아 4위를 하는 바람에 본인은 최종 5위를 했다. 만약 구채점제였다면, 3~4위 정도는 했을 것이다. 2010 세계선수권에서는 4위를 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2.10. 2010-11 시즌
올림픽 후유증 없이 시즌 내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보다 예술적인 면이 늘었다는 평과 뻣뻣함이 나아진 모습이었다.
2개의 그랑프리에서 모두 우승하고 2010-11 그랑프리 파이널에도 진출해 5위를 기록했다. 2010-11 전일본선수권에서 오랜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2011 사대륙선수권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2011 세계선수권에서도 우승했다. 그러나 김연아에겐 점수를 박하게 주고, 안도 미키에겐 너무 점수를 줬다고[15]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녀의 우승을 좋게 보는 사람들이 적은 편이다. 이것도 모자라서 도호쿠 대지진을 겪은 일본을 위로하기 위한 정치적 배려에 따른 우승[16] 이라는 말까지 들었으니 일본의 반응도 이와 비슷하다.
김연아를 제치고 1위를 한 탓인지, 한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과거 사진이 나돌았는데, 본래 피겨 스케이팅 팬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져 있어서 놀랍지도 않은 사진들이었다. 그냥 대회 직후 안도 미키의 이름이 한국의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지면서 과거 사진이 발굴되었을 뿐. 사실 일본 내에서도, 반쯤은 네타 캐릭터 취급을 받는 터라 암울했던 과거 사진이나 영상들이 많이 나도는 편이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마저 아사다 마오에 밀려서 완전히 쩌리 취급을 받으면서 와신상담한 끝에 얻어낸 1등이라 안도 미키 팬들은 매우 기뻐하고 있다.
2.11. 2011-12 시즌
시즌을 스킵하였지만 재팬 오픈에는 참가하여 개인 6위, 팀은 동메달을 땄다.
2.12. 2012-13 시즌
2012년 10월 10일, 코치 문제를 둘러싼 연습 부족을 이유로 한 시즌을 쉬겠다고 발표하였다.
2012년 10월 26일자 언론에 공개된 모로조프 코치의 인터뷰에 의하면, 두 사람은 실제 연인 관계였고 안도 미키 측에서 먼저 이별을 통보했는데 자신은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 안도 미키 측에서는 연인 관계는 끝내더라도 코치와 선수로서의 관계는 지속하기를 희망했다고 하나, 모로조프로서는 도저히 얼굴을 마주 대할 수 없어 코치를 사퇴했으며, 관계가 끝난 지금도 여전히 안도 미키를 사랑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2013년 5월 말,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하며, 현역 복귀 의사를 밝혔다.
2시즌 만의 복귀에 대해서는 해외 포럼이나 일본 현지나 시큰둥한 반응이다. 안도 미키가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현재로서는 전일본선수권 우승이 필수적인 상황인데, 그럴 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요인 중 하나이다.
2.12.1. 출산과 미혼모 선언
2013년 4월 출산 후 병원 쪽에 아이의 아버지에 대한 함구령을 내렸고, 미혼모 선언으로 여겨지는 발언을 공개 방송의 인터뷰를 통해 하여 화제가 되었다. 일부 보도기관이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 캐물었으나, 후원회에서 간접적인 항의를 시작하여 일부 가십성 매체를 제외하곤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 캐묻지 않고 있는 중이다. 또한 2014년 복귀를 위해 4월 출산 후 산후조리와 동시에 5월부터 훈련을 시작했다고 한다.
출산 직후의 무리한 훈련 재개로 인해 후원회와 안도 미키의 주변인들이 훈련을 강요한 것이 아니냐는 설이 돌았는데, 모친이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을 전제로 출산을 허락'''했다는 말을 하여 출산 직후의 무리한 훈련 재개도 아기를 위한 것이라 여져겨 동정론이 확산되고 있다.
2.12.2. 히마와리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그녀에 의해 알려진 딸의 이름이 히마와리(해바라기)인데, 이로 인해 아이의 아버지가 안도 미키의 전 코치인 니콜라이 모조로프라는 설이 돌았다. 러시아의 국화가 해바라기라는 점과, 과거 동거하였고 연인관계라는 가십이 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원 쪽은 비공식 발언으로 "미키의 아이는 혼혈이 아니다"라는 멘트를 했고, 방송에 몇 장면 나온 아이도 혼혈과는 거리가 멀었다. 4월~6월에 태어나는 아이에게 히마와리 등의 여름 꽃 이름을 붙이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며, 안도 미키의 보호자와 후원회의 개입으로 니콜라이 모조로프가 코치직에서 물러난 시기를 고려하면[17]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출산 시기를 생각하면, 히마와리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사람은 2013년 4월 말부터 출산을 마친 안도 미키를 자주 찾아갔고 일부 파파라치에 의해 동거사진 등이 보도된 전직 선수인 난리 야스하루라는 것이 정설이다.
2011년 은퇴한 후 프로 스케이터 데뷔에 실패한 무직 프리터로 보도된 난리 야스하루가 히마와리의 아버지라면, 주변의 눈치를 신경 쓰는 일본인 특유의 종특과 후원회의 항의도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난리 야스하루 본인은 아버지 설을 부인하였다.
하지만 난리 야스하루가 아버지설을 부정한 것은, 다름아닌 안도 미키의 어머니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안도 미키의 어머니는 여자 혼자의 몸으로 힘들게 딸을 뒷바라지 했으며, 언젠가 미키가 피겨 스케이팅 세계의 여왕으로 우뚝 서길 바랬다고 한다. 그런 엄마의 눈에 난리 야스하루 따위가 사위로 눈에 찰 리 없었고 교제도 반대, 아버지란 걸 알고 난 후에도 딸 곁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정확히는 "최소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접근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난리 야스하루의 측근 그리고 안도 미키의 측근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난리 야스하루 또한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당당하게 아이의 아버지라 나설 수 없는 입장이란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밤늦게까지 술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난 후 안도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2014년 상반기에 일본의 한 주간지에서 2014 소치 동계올림픽 4위였던 스페인의 하비에르 페르난데스와 키스하는 듯한 사진을 올리며 열애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때 둘은 연인관계를 부인했으나, 2014년 11월 26일 서로의 인스타그램에 결혼까지도 생각하고 있다는 뉘앙스의 포스팅[18] 을 동시에 올려 열애를 본격적으로 인정했다.
일본 국민들의 반응은 “국제망신이다.”, “쟤 도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들이 대다수이다. 그렇잖아도 나빴던 이미지가 한도 끝도 없이 추락 중이다. 비밀리에 감추던 딸 히마와리의 사진을 열애 공개 이후 갑자기 공개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2015년 2월 과거 연인이었던 니콜라이 모로조프가 일본 잡지 프라이데이와의 인터뷰를 하면서, 안도가 과거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 낙태한 경험이 있음을 폭로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2011년에 두사람은 결혼을 약속했고, 당일날 안도 측에서 일방적으로 파혼을 선언했다고 한다. 또한 난리 야스하루의 인터뷰에서 히마와리가 난리의 아이가 아니라고 반복해 말한 점을 보아, 히마와리의 친부가 스폰서 사장일 가능성도 낮지 않다고한다. 한국에서는 시궁창 싸움이라는 반응 속에서도, 이미 다 지나간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낙태 사실을 밝혀 한 아이의 어머니이자 여성에게 수치심을 안겨준 모로조프에게 비난의 여론이 더욱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한 일본 반응은 “궁금하지도 않다.”, “이 여자 얘기 좀 그만 꺼내라”가 많아 일본에서 안도의 이미지가 얼마나 시궁창인지를 증명했다. 급기야는 2016년 4월에 일본의 여성 정보사이트 VenusTap에서 조사한 "닮았다는 소리 들으면 충격인 여성 유명인" 앙케이트 조사에서 2위를 차지했다.
2.13. 2013-14 시즌
2013년 7월 2일,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4월에 딸을 출산하여 미혼모가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안도의 어머니가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을 전제로 출산을 허락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제서야 안도가 무리한 복귀와 훈련을 강행한 이유가 밝혀진 셈이다. 그리고 위 기사도 자세히 보면 '소치에서 우승하는 것' 이 아니라 '소치에 출전하는 것' 이 목표다.
아무래도 여러 가지 무리가 따르는 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이 사정이 알려진 덕분에 국내외 피겨팬들 사이에 팽배한 부정적인 시선이 많이 누그러들고 동정론이 확산되고 있다. B급 대회인 네벨혼 트로피와 아이스 챌린지에서 은메달을 땄다.
출산 후였음에도 재기에 도전해서, 2013년 12월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골든스핀 오브 자그레브에 출전해 김연아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경기 후 김연아와 함께 찍은 셀카를 자신의 SNS에 올리며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 대회 후. 우승을 '''축하해 연아야. 같은 대회에서 너와 함께 경기를 치를 수 있었서 좋았어. 앞으로도 행운이 있길."'''이라는 글을 남겼다. 이 대회에서 알려진 또 하나의 일화로, 연기가 끝난 후 점수를 기다리며 안도 미키가 카메라를 향해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보통은 모국어 혹은 대회가 열린 국가의 언어로 인사하는 게 보편적인데, 해당 기사에서는 일본 팬들에 비해 대한민국 팬들이 오히려 더 열성적으로 안도 미키를 응원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하였다.[19] 덕분에 대한민국에서 부정적인 여론은 거의 사라진 반면, 일본에서는 "응원을 위해 멀리까지 찾아간 자국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며 논란이 되었다.
2013 전일본선수권에 참가하였다. 쇼트에서는 3-3 점프까지 성공하여 5위에 올랐으나, 프리에서 부진하여 9위에 그쳐 결국 최종 7위에 올랐다. 따라서 3위까지 부여되는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지 못했고, 대회가 끝난 후 완전히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여러 번의 부상, 긴 휴식, 출산 후에도 3-3을 성공시키는 것을 보면, 대단한 선수임에는 틀림없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선 여자 싱글 쇼트를 본 후 김연아의 무대에 대해 '''"김연아 선수, 곡과의 일체감과 기술도 모두 훌륭했다. 멋있다"며, "부상을 극복하고 이 자리에 서서 이런 경기를 펼치다니 정말 대단하다. 감동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20]
3. 은퇴 이후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2017년 11월 3일에 강원도청으로부터 강원도 관광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그리고 다음 날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드림콘서트에도 등장했다. 그리고 라붐과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2020년 8월 3일, 초등학생이 된 딸의 얼굴을 공개했다. #
4. 특징
경기보다 외적인 요인으로 주목받는 일이 많다. 피겨 스케이팅보다 노출이 있는 경기 의상이라든지, 스트레칭 장면이라든지 러시아인 코치와 동거설 등으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스케이팅 스타일은 점프에 올인한 '''점퍼'''란 단어로 요약이 가능하다. 모든 것을 점프로 귀결시키기에 취존중 호불호가 극심히 갈리며, 특히 이 스타일 때문에 '''운동선수로서는 우수하지만 선수로써는 최악'''이라는 매우 극단적인 평까지도 받는 선수이다.
미키티의 팬들은 "안도 미키가 점프를 연기와 조금이라도 어울리게 했다면 콩라인 타이틀이 아사다 마오에게 갔을 것"이라 주장하지만, 애초에 전반적인 '''스케이팅 스킬'''에서 아사다 마오에게 밀린다. 아사다 마오와는 다른 의미로[21] 기본기가 부족한 선수이다. 피겨 스케이팅은 결코 빙상에서 점프만 뛰는 운동이 아니며, 일본이 죽어라고 아사다 마오만 밀었던 이유도 애초에 선수로서의 평가에서 아사다 마오가 안도 미키보다 높기 때문이다.
특히 스케이팅 스킬로만 따진다면, 세계적인 피겨 스케이팅 선수의 수준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다. 스파이럴 도중 펜스에 몸통 박치기를 시전한 에피소드는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편이며, 심지어 2009 세계선수권에서 미국의 해설자가 이 사건을 언급했다.
안도 미키가 점프로 고평가를 받았던 시기는 14~16세로, 이 시기의 점프들은 엄청난 비거리를 선보였다. 더블 악셀을 뛰어도 비거리와 높이가 좋아서, 해설자가 "트리플 악셀을 뛰는 것 같다"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전후로 부상과 체형 변화를 겪으면서 높이와 비거리는 줄었고 점프 질이 전반적으로 나빠졌으나, 쿼드러플 살코나 트리플 러츠-트리플 룹과 같은 고난도 점프들을 제외했을 때 점프의 성공률이 매우 좋다. 트리플 러츠 및 트리플 살코의 점프의 질은 훌륭하다. 이런 우수한 점프 성공률을 기반으로 3차례 세계선수권에서 메달을 땄다. 사실 그녀가 여성 탑 싱글 스케이터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우수한 점프 컨시가 기여했다. 2010년대 이후 러시아 선수들의 점프를 보면, 안도의 점프 질이 좋다는것을 알수있다. 요즘은 토를 제대로 찍는 선수나 엣지를 교정하는 것이 드물다.
주니어 시절에는 당시 선수로는 드물게 비엘만 스핀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직전의 허리 및 어깨 부상이 치명타가 되었고, 이후 비엘만 스핀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전체적인 흐름을 중시하는 미국과 캐나다의 해설자들은 안도 미키의 경기에 대해 "예술성의 실종, 음악성의 결핍" 이란 혹평을 쏟아낸다. 그러나 잦은 부상에도 재기하는 근성과 노력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5. ISU 공인 최고점수
6. 프로그램
7. 수상 기록
8. 기타
- 의상 선택이 매우 좋지 못하다. 피겨 스케이팅 최악의 의상을 꼽을 때면 매번 상위권으로 거론된다. 아래 의상이 역대 안도 미키의 의상 중 최고의 악명을 떨친, 속칭 거미키 의상이다. 사람 얼굴만한 거미 장식을 가슴에 부착해 악명을 떨쳤다. 단 한 번 방송을 탄 후, 온갖 질타와 비난에 단 한 번만 사용된 한정판 의상이다.
-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 언론에 직접 나서는 빈도가 확 줄었다. 대신 가십성 찌라시 언론들에 의해 코치인 모로조프와의 동거설이 보도되기도 했다. 모로조프는 3번 결혼했다가 이혼한 전적이 있으며, 그 상대가 모두 여자 싱글 선수였다는 점에서 팬들은 "도망쳐, 미키티!!"를 외쳤다. 여담이지만 저 동거설은 코치와 같은 숙소에 묵고 있어서 생겨난 보도로, 찌라시에서 의도적으로 동거라며 왜곡한 것이다. 다만 후술되어 있는 결혼 발표를 보면 알겠지만, 둘이 사귀었던 건 사실이었다. 보도되기 전부터 팬들 사이에서는 모로조프와 안도 미키가 연인 관계라는 소문이 기정사실화되던 분위기였다.
- 대한민국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서인지, 한국 한정으로는 까방권을 얻은 분위기다. 김연아와도 덕담을 주고받는 등 친밀한 관계라고 전해지며,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애도를 밝히며 자필편지와 금액 천달러를 기부한 적도 있었다. 아사다 마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사실 본인 성격도 국가대표 선수치고는 의사 표현이 자유로운 편인 것 같다.
- 과거 신정환이 라디오 스타에서 안도를 안도 미키마우스, 안도 광미키마우스라고 말한 적이 있다.[25]
[1] 일본 팬들이 부르는 별명이다.[2] 딸 히마와리에 관한 계정이다.[3] 동시대에 경쟁했던 아사다 마오 역시 2014년이 돼서야 3번째 우승, 김연아 역시 2번 우승, 카롤리나 코스트너는 1번의 우승 경험밖에 없다. 하지만 2007년과 2011년 안도의 우승에는 시끄러운 뒷얘기가 많다.[4] 당시 구채점제였고 선수가 주니어여서 가능했던 점프였다. 이후 2018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트루소바가 쿼드 살코 및 쿼드 토룹을 성공시켰다.[5] 당시 아사다 마오는 연령 제한일까지 87일이 모자라서,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는 참가할 수 없었다.[6] 올림픽 대기 1순위였던 나카노 유카리는 2005-06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동메달을 땄음에도 불구하고 대신 2006 사대륙선수권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땄다. 온다 요시에 또한 올림픽 대신 사대륙선수권에 선발되었으나, 경기를 할 컨디션이 아니라며 거절했다.[7] 하지만, 미키가 프리 1위가 맞다. 마오의 프리 점수에서 트리플 악셀 회전수 부족과 투풋 랜딩, 트리플 러츠의 롱엣지 감점사항이 반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오의 PCS는 63점대, 김연아가 61점대, 미키가 59점대인 것만 봐도, 마오에게 금메달을 주기 위해서 마오의 PCS는 올리고 기술점수는 감점 시키지 않은 것이 맞다.[8] 사실 '기술력의 이리나 슬루츠카야 VS 표현력의 미셸 콴' 을 그대로 베껴 온 문구이다. 일본의 피겨 스케이팅은 점프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점프 중심주의에 언론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편인데 그래서 고난도 '점프' 를 뛰는 아사다 마오가 훨씬 더 천재적이고 대단한 선수이고 김연아는 기술적으로 더 떨어지는 선수라는 걸 강조하는 문구였다. 그러나 2008년 이후로 이 문구는 사장되었다. [9] 러츠나 플립 점프의 엣지를 교정하면 두 점프 다 흔들리게 되어 성공률이 많이 떨어진다. 여차저차 해서 안도 미키는 플립 엣지 교정에 성공하지만 성공률이 낮았고, 정작 큰 대회들에서 점프 구성에서 빼버렸다. 2010~2011 시즌 이후 부터는 더 이상 플립 점프를 뛰지 않았다.[10] 이는 선수로서 칭찬받아 마땅하다. 엣지 교정 안하고 뛰는 선수들이 넘쳐난다. [11]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의 미셸 콴(동메달),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의 이리나 슬루츠카야(동메달) 등 올림픽 금메달은 예상치 못한 선수가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다. 저 두 선수 모두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점쳐졌으나 넘어지는 큰 실수 및 비점프 요소의 부진으로 동메달에 그쳤다.[12] 그러나 밴쿠버 시대는 토리노 시대와는 차원이 다르다. 트리플+트리플을 구사하는 선수가 서서히 각국에서 한 명 이상씩 나오기 시작하였고, 클린 경기가 이전보다 훨씬 많아진 시대였다. 안전한 구성으로 남이 실수해주길 기다리는 자세는 올림픽 챔피언이 되려는 사람의 마인드론 적절하지 않았다.[13] 트리플 플립과 트리플 토룹에서 실수가 있었다. 트리플 악셀의 회전수 부족은 감점없이 인정받았다. 또한 본인의 개인 최고기록을 경신했다.[14] 조아니는 당시 쇼트 프로그램 직전 '''모친상'''을 당한 상태였다.[15] 그럼에도 불구하고 2위인 김연아와 1점 차였다.[16]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데, 의외로 피겨 스케이팅계에서는 드물지 않은 일이다. 당장 9.11 테러 직후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여자싱글 금메달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17] 임신에서 출산까지 10개월 정도 걸리는 시간을 고려한 것이다.[18] 오늘은 우리에게 특별한 날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정을 모두와 공유하고 싶기때문이죠. 이 관계의 주요 포인트는 사랑과 행복한 가정입니다. 모두의 따뜻한 시선을 바라요. 사랑을 담아 미키와 하비에르가.[19] 앞에 링크된 기사에 따르면 한국 '아줌마'팬들이 열정적으로 축하해줬다고 하는데 짐작컨데 한국의 싱글맘들일 가능성이 크다. 미키가 싱글맘이 된 사연이 공개된 후, 한국의 싱글맘들이 동변상련을 느껴 많이 격려해줬다는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 한국은 일본같이 개인사를 두고 갑론을박이 적은편이다.[20] 마침 같은 국가의 아사다 마오는 역대 최악의 연기를 하며 16위에 머물렀다. 마오에 대한 위로보단 연아에 대한 축하가 더 익숙한 모습이었다.[21] 아사다 마오는 점프에서 기본기가 떨어진다.[22] 시즌 스킵이지만 2011 재팬 오픈에만 출전하였다.[23] 그랑프리 시리즈에서만 선보이고 이후 대회에는 다른 프로그램을 들고 나왔다.[24] 2008 세계선수권에서 전 시즌 쇼트 프로그램을 들고 왔다.[25] 이는 신정환의 대표적인 드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