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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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
조선 전기의 왕족. 태종 이방원과 신빈 신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413년(태종 13년)에는 정윤(正尹)에, 그 다음해에는 원윤(元尹)에, 그리고 3년 뒤인 1417년(태종 17년)에 공녕군(恭寧君)으로 봉해졌다.
천성이 순수하고 과묵했으며 문무를 겸비했다고 한다.
1415년(태종 15) 12월 3일 최사강(崔士康)의 딸과 정혼하고 14세 되던 해인 1416년(태종 16) 2월 2일 혼인하였다. 1417년(태종 17) 9월 12일 공녕군(恭寧君)으로 봉해짐에 따라 배위 최씨도 공신택주(恭愼宅主)로 봉작되었다. 공녕군은 1430년(세종 12) 27세에 대광보국숭록대부로 승작되고, 배위 최씨는 전주군부인으로 진봉되었다.
1422년(세종 4년) 상왕 태종이 병석에 누웠을 때 세종과 함께 태종의 침소 주변에 머물며 밤낮으로 병 간호를 했다고 한다. 태종대왕이 승하한 후에도 함녕군은 빈전(殯殿)에 입직(入直)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429년(세종 11년) 왕명으로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선덕제를 만나 금과 은을 바치던 세공의 면제를 요청하여 허락받았다. 조선에서는 금, 은이 나지 않기 때문에 큰 부담이었는데 그것을 해결한 것. 그 공으로 논 80결과 노비 8명을 하사받았다.#
1433년(세종 15년) 태종의 시호 ‘'''공'''정('''恭'''定)’을 피하여 함녕군(諴寧君)으로 군호가 바뀌었다. 그리고 1872년(고종 9)에 영종정경으로 진봉되었다.
2. 가족관계
3. 사망
1467년(세조 13년) 사망하였다.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어머니 신빈 신씨 묘의 오른쪽 아래에 있다.#
4. 여담
- 함녕군이 명나라에서 다른 나라의 사신들과 함께 머물 때, 사신들이 함녕군의 무예를 보고자 활쏘기를 청했다. 함녕군은 흔쾌하게 허락한 다음 쏘는 족족 명중시켜 모든 사신들이 감탄했다 한다.#
- 국회부의장을 지낸 이윤성이 함녕군의 후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