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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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무+정라'''덴'''[1] (…). 스타크래프트 1 리그 말기의 최강자들이다. 드래프트 세대가 데뷔한 이후 줄곧 스타크래프트 리그 상에서 최강자로 꼽혀왔던 택뱅리쌍을 스타1 말기에는 사실상 넘어선 유이한 선수들로 꼽힌다.
덴허라 해도 상관 없으나 보통 어감 때문인지 허덴이라 불린다.
둘은 택뱅리쌍의 시대에도 택뱅리쌍조차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선수들이었으나, 택뱅리쌍에 비하면 커리어나 승률, 전적 등 모든 면에서 열세에 있었기에 이들을 조기에 대체하지는 못했으며, (그때까지는) 각자 두 번의 개인리그 준우승으로 콩라인의 후계자 정도로만 취급받았다. 그러나 박카스 스타리그 2010을 기점으로 이들의 성적이 택뱅리쌍을 조금씩 넘어서기 시작해, 진에어 스타리그 2011, tving 스타리그 2012에서 모두 이들이 결승에 올라 서로를 상대로 결승전을 치르면서 사실상 스타1 리그 말기는 이들의 시대로 끝났다.
다만 허덴의 시대에도 택뱅리쌍의 기세는 죽지 않았으며, 시기 자체도 스타1 리그 자체가 사양길에 접어들던 시점이라 허덴이 택뱅리쌍을 일시적으로 넘어섰다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완전히 대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택뱅리쌍은 손목 부상 악화, 스타2 리그 병행, 소속팀의 해체 등 다양한 악재로 인해 스타1 말기에는 온전한 실력이 발휘되었다고 보기 힘들다는 시각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결국 둘의 짧은 전성기는 스타1 리그 종료와 함께 끝났으며, 2020년 현재에도 대부분의 스타1 팬들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임 판의 후기 최강자로 택뱅리쌍을 꼽지, 허덴을 꼽는 경우는 많지 않다. 리그 종료 후에도 계속 스타1을 플레이하고 ASL 등에도 꾸준히 출전하는 택뱅리쌍과 달리 이들은 스타1을 완전히 접었기도 하고.
평균적으로 테란 선수가 프로토스 선수보다 평균 APM이 높은 편인데 둘은 반대다. 정명훈은 테란 치고는 상당히 손이 느린 편인 반면, 허영무는 프로토스 중 가장 손 빠르기로 유명한 김택용에 필적하는 손 속도를 가지고 있다. 독특한 조합.
이들은 전적의 측면에서도 다소 특이한데, 일반적으로 택뱅리쌍으로 대표되는 S급 선수들은 개인리그/프로리그[2] 전적이 둘 다 화려하고, S급이라 불리기엔 부족한 상급 선수들은 대체로 프로리그 전적은 우수하고 개인리그 전적은 초라한 반면, 허덴은 프로리그보다 개인리그 전적이 더 화려하다. 프로리그 한정 시 허영무는 다승 19위/승률 51.2%[3] , 정명훈은 다승 12위/승률 60%로[4] 신이염보다도 높다고 말할 수 없는 반면, 개인리그 전적은 각각 우승 2회/준우승 2회, 우승 1회/준우승 4회로 우승은 커녕 결승도 가본 적 없는 신이염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며 3김저그, 육룡 중 하위권 3명보다도 월등히 좋다. 당장 프로리그에서 택뱅리쌍에 이은 다승 5위를 자랑하는 염보성만 해도 개인리그는 8강 2번이 최고기록이다.
개인리그와 프로리그 중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느냐는 것은 한창 때도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에서 뜨거웠던 주제지만, 일반적으로 기본기 위주의 단판인 프로리그에 비해 진검승부라는 측면에서는 다전제 개인리그를 더 높게 쳐 주는 편. 물론 개인리그에서도 기세를 잘 타서 한 번 반짝 우승했던 선수는 꽤 많지만, 허덴은 결승에 일회성이 아닌 4~5회 진출했기 때문에 실력은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당장 드래프트 세대 중 택뱅리쌍+허덴 6인을 제외하면 결승에 2번 이상 진출한 선수는 '''없다.''' 이 6인방은 전원이 우승자이고 이들 중 결승 진출 수가 가장 적은 허영무/김택용이 무려 '''4회'''다. 그만큼 이 6인방과 나머지의 격차가 대단했다는것.
참고로 둘의 상대전적은 정명훈 8:9(비공식적 포함 8:11) 허영무이며, 준우승 이상의 개인리그 기록은 다음과 같다.
허영무는 2006년, 정명훈은 2007년 데뷔했으나 초기 둘의 위상은 매우 달랐다. 허영무가 초창기에 허필패 취급을 받았을지언정, 그의 팀내에서의 실력과 재능을 눈여겨본 김가을 감독에 의해 꾸준히 기용된 결과 팀의 주력이자 송병구 못지 않은 에이스로 떠올라 조기에 육룡의 일원으로 이름을 날렸던 반면, 정명훈의 네임밸류는 허영무에 비해 더없이 초라했다. 그가 두각을 나타낸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때만 해도 그를 사람들은 리그 브레이커 취급하며 깠을 정도. 그러나 정명훈은 이후에도 반짝 준우승으로 그치지 않고 꾸준히 성장, 마침내 이영호 다음가는 테란 수준의 위상까지 확보하며 팀의 주력 중 하나인 도택명의 일원이 된다.
정상급 프로토스와 테란으로 거듭난 둘은 커리어 중반부터 공교롭게도 사이좋게 콩라인의 일원이 된다. 허영무가 Clubday Online MSL 2008과 로스트사가 MSL 2009에서[6] , 정명훈이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과 BATOO 스타리그 08~09에서 각기 준우승을 거두며 사이좋게 콩라인에 가입하게 된 것. 다만 이 때만 해도 이들의 위상이 택뱅리쌍 급은 아니었기에 허덴으로 묶이지는 않았고, 그저 콩라인의 일원으로 나란히 언급되는 정도였다.
이 기간 동안 둘은 두 번의 준우승 외에도 꾸준히 양대리그 본선에 발을 들여놓았고, 프로리그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며 활약했지만, 끝내 개인리그에서는 우승을 거두지는 못하고 그분에 이은 콩라인으로 남아야 했다. 이전에 콩라인으로 언급되던 송병구가 정명훈이 준우승을 한 그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에서 우승을 하면서 콩라인에서 탈출하면서, 현역 콩라인으로는 정말 둘 밖에 남지 않았던 상황.
그러던 와중 2011년, 드디어 정명훈이 박카스 스타리그 2010에서 이전에 콩라인을 탈출한 그분를 셧아웃시키며 우승을 달성, 콩라인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반면 허영무의 경우, 이 시기 역대 최악의 슬럼프에 빠지며 프로리그고 개인리그고 연패를 기록, 그대로 콩라인에 머무를 것만 같은 위기에 빠지게 된다. 물론 정명훈 역시 우승 직후 슬럼프에 빠지며 신동원과 함께 우스운자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게 되었지만.
그러나 이러한 슬럼프도 잠시, 허영무는 그 유명한 겜알못 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각성, 슬럼프 이전보다도 압도적인 포스를 보여주며 다시금 정상급 프로토스의 자리를 되찾았고, 결국 박카스 스타리그 이후 열린 진에어 스타리그 2011에서, 처음에 예선탈락하는 비운을 맛봤으나 가까스로 와일드카드를 잡고 본선에 진출[7] , 기어이 결승까지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같은 시기 결승에 올라온 정명훈과의 격돌에서 2:2 상황에서 패배 직전까지 몰렸으나 기적적으로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을 하게 된다. 이로써 허영무와 정명훈 모두가 콩라인에서 탈출하게 된다.
우승을 거둔 둘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어, 사실상 2011~2012 시즌은 이들의 시대나 다름없는 시기가 되었다. 당장 진에어 스타리그 2011에서부터 택뱅리쌍이 모두 8강 이전에 탈락하면서 시드 확보에 실패하는 이변이 나타났으며[8] , 이듬해 열린 tving 스타리그 2012에서는 택뱅리쌍 중 최강자이자 당시 기세도 가장 좋았던 이영호가 정명훈에게 4강에서 0:3 셧아웃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 택뱅리쌍의 기세는 예전같지 않았다. 반면 허덴은 정명훈이 이영호에게 완승을 거둔 것을 비롯, 반대편에선 허영무가 4강에서 김명운을 명승부 끝에 물리치고 결승전에서 재격돌하게 된다. 여기서 허영무는 3:1으로 낙승을 거두고 마지막 스타리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며, 패배한 정명훈도 평생의 라이벌이자 늘 자신을 2인자로 만들었던 이영호를 완벽히 꺾고 스타1 말기 최강의 테란으로 우뚝 서는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스타2 전환 이후 둘의 행보는 다소 엇갈렸다. 허영무가 스타2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과 1년만인 2013년 은퇴를 선언한 반면, 정명훈은 스타2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아 활동을 지속하였다. 중도에 한 번 은퇴한 뒤 의경 복무를 하긴 했지만, 이후 또다시 스타2 프로게이머로 복귀하여 2019년까지 프로게이머 생활을 지속하고 은퇴했다.
아프리카TV 시대가 열리고 택뱅리쌍은 모두 스타1 방송을 하며 스타판에 복귀했지만, 허덴은 모두 여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상반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허영무는 잠시 방송을 하긴 했으나 가업을 잇기 위해 곧 접고 스타1 게이머로서의 삶을 완전히 그만두었으며, 정명훈은 팬들이 스타1을 할거냐는 질문에 단호히 거절하면서 아예 스타1 방송에는 발도 들여놓지 않았다. 스타2 프로게이머에서 은퇴를 하고 스타1으로 복귀를 원했던 많은 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샌드박스 LoL 팀의 코치로 데뷔하고 이후 2군 감독을 역임하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있다.
언급된 바와 같이 2020년 현재까지도 스타리그의 최강자로는 단연 택뱅리쌍, 그 중에서도 이영호가 원톱으로 꼽히며, 허덴은 이들을 잠시 넘어서긴 했으나 택뱅리쌍을 넘어서는 평가를 받고 있지는 않다. 당장 해당 문서만 해도 택뱅리쌍 문서와는 달리 2020년 10월에야 비로소 만들어졌을 정도로 허덴이라는 용어 자체가 택뱅리쌍에 비해 넘사벽급으로 인지도가 낮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역시나 택뱅리쌍에 비해 허덴의 시대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짦은 것에서 기인한다. 택뱅리쌍은 3.3 혁명 이후 이미 2007년 경부터 각자의 종족 내에서 확고한 위상을 확보한 선수들이었고, 약 1~2년 간의 혼란기를 거쳐 빠르면 2008년, 늦어도 2009년에는 스타1의 최강자로 각인되었다. 반면 이 시점에 허덴의 위상은 이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으며, 허덴의 시대는 약 2011년부터 스타1 리그가 끝날 때까지 약 1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시기 동안 택뱅리쌍이 완전히 죽은 것도 아니고, 약간 주춤하기는 할지언정 여전한 위상을 누리고 있었으니 허덴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아보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당장 활동기간 동안의 꾸준한 활약상을 반영하는 프로리그 다승 순위만 해도 정명훈은 12위, 허영무는 19위인 반면 택뱅리쌍은 사이좋게 1~4위[9] 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허덴의 시대는 스타1 리그 자체가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던 시기였던 것도 원인이다. 스타1 리그는 2007~2008년 무렵의 황금기를 지나 2009년 무렵부터 조금씩 저물어가고 있는 상태였으며,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이후 결정타를 맞아 2011년이면 양대리그 중 하나였던 MBC GAME이 폐국되고 스타2 리그와의 병행이 논의되는 등, 이미 종말이 뚜렷하게 보이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아무리 전성기를 맞아봤자, 택뱅리쌍의 전성기와 비교하면 초라하게 보일 수밖에 없으며 주요 선수들 역시 스타2 리그를 준비하는 시기였으므로 최강 논쟁에 있어서도 반박당한 건덕지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다소 부족한 위상에도 불구하고 허덴은 택뱅리쌍을 상대로 상대전적에서 크게 밀리지 않는 몇 안되는 선수들이었다. 정명훈의 경우 택뱅리쌍 중 어느 누구와도 대등한 전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허영무는 이제동, 김택용에게는 많이 약했지만 이영호와는 대등하며, 송병구에게는 일방적으로 앞서는 전적을 보유하고 있다. 위상은 상대적으로 떨어질지 언정, 자신들의 전성기 이전부터 택뱅리쌍 어느 누구도 쉽게 볼 수 없는 강력한 상대였음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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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허'''영무+정라'''덴'''[1] (…). 스타크래프트 1 리그 말기의 최강자들이다. 드래프트 세대가 데뷔한 이후 줄곧 스타크래프트 리그 상에서 최강자로 꼽혀왔던 택뱅리쌍을 스타1 말기에는 사실상 넘어선 유이한 선수들로 꼽힌다.
덴허라 해도 상관 없으나 보통 어감 때문인지 허덴이라 불린다.
2. 상세
둘은 택뱅리쌍의 시대에도 택뱅리쌍조차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선수들이었으나, 택뱅리쌍에 비하면 커리어나 승률, 전적 등 모든 면에서 열세에 있었기에 이들을 조기에 대체하지는 못했으며, (그때까지는) 각자 두 번의 개인리그 준우승으로 콩라인의 후계자 정도로만 취급받았다. 그러나 박카스 스타리그 2010을 기점으로 이들의 성적이 택뱅리쌍을 조금씩 넘어서기 시작해, 진에어 스타리그 2011, tving 스타리그 2012에서 모두 이들이 결승에 올라 서로를 상대로 결승전을 치르면서 사실상 스타1 리그 말기는 이들의 시대로 끝났다.
다만 허덴의 시대에도 택뱅리쌍의 기세는 죽지 않았으며, 시기 자체도 스타1 리그 자체가 사양길에 접어들던 시점이라 허덴이 택뱅리쌍을 일시적으로 넘어섰다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완전히 대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택뱅리쌍은 손목 부상 악화, 스타2 리그 병행, 소속팀의 해체 등 다양한 악재로 인해 스타1 말기에는 온전한 실력이 발휘되었다고 보기 힘들다는 시각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결국 둘의 짧은 전성기는 스타1 리그 종료와 함께 끝났으며, 2020년 현재에도 대부분의 스타1 팬들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임 판의 후기 최강자로 택뱅리쌍을 꼽지, 허덴을 꼽는 경우는 많지 않다. 리그 종료 후에도 계속 스타1을 플레이하고 ASL 등에도 꾸준히 출전하는 택뱅리쌍과 달리 이들은 스타1을 완전히 접었기도 하고.
평균적으로 테란 선수가 프로토스 선수보다 평균 APM이 높은 편인데 둘은 반대다. 정명훈은 테란 치고는 상당히 손이 느린 편인 반면, 허영무는 프로토스 중 가장 손 빠르기로 유명한 김택용에 필적하는 손 속도를 가지고 있다. 독특한 조합.
이들은 전적의 측면에서도 다소 특이한데, 일반적으로 택뱅리쌍으로 대표되는 S급 선수들은 개인리그/프로리그[2] 전적이 둘 다 화려하고, S급이라 불리기엔 부족한 상급 선수들은 대체로 프로리그 전적은 우수하고 개인리그 전적은 초라한 반면, 허덴은 프로리그보다 개인리그 전적이 더 화려하다. 프로리그 한정 시 허영무는 다승 19위/승률 51.2%[3] , 정명훈은 다승 12위/승률 60%로[4] 신이염보다도 높다고 말할 수 없는 반면, 개인리그 전적은 각각 우승 2회/준우승 2회, 우승 1회/준우승 4회로 우승은 커녕 결승도 가본 적 없는 신이염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며 3김저그, 육룡 중 하위권 3명보다도 월등히 좋다. 당장 프로리그에서 택뱅리쌍에 이은 다승 5위를 자랑하는 염보성만 해도 개인리그는 8강 2번이 최고기록이다.
개인리그와 프로리그 중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느냐는 것은 한창 때도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에서 뜨거웠던 주제지만, 일반적으로 기본기 위주의 단판인 프로리그에 비해 진검승부라는 측면에서는 다전제 개인리그를 더 높게 쳐 주는 편. 물론 개인리그에서도 기세를 잘 타서 한 번 반짝 우승했던 선수는 꽤 많지만, 허덴은 결승에 일회성이 아닌 4~5회 진출했기 때문에 실력은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당장 드래프트 세대 중 택뱅리쌍+허덴 6인을 제외하면 결승에 2번 이상 진출한 선수는 '''없다.''' 이 6인방은 전원이 우승자이고 이들 중 결승 진출 수가 가장 적은 허영무/김택용이 무려 '''4회'''다. 그만큼 이 6인방과 나머지의 격차가 대단했다는것.
참고로 둘의 상대전적은 정명훈 8:9(비공식적 포함 8:11) 허영무이며, 준우승 이상의 개인리그 기록은 다음과 같다.
- 허영무
- 우승: 진에어 스타리그 2011, tving 스타리그 2012
- 준우승: Clubday Online MSL 2008(우승 김택용), 로스트사가 MSL 2009(우승 [5] )
- 정명훈
- 우승: 박카스 스타리그 2010
- 준우승: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우승 송병구), BATOO 스타리그 08~09(우승 이제동), 진에어 스타리그 2011(우승 허영무), tving 스타리그 2012(우승 허영무)
3. 역사
3.1. 커리어 초기
허영무는 2006년, 정명훈은 2007년 데뷔했으나 초기 둘의 위상은 매우 달랐다. 허영무가 초창기에 허필패 취급을 받았을지언정, 그의 팀내에서의 실력과 재능을 눈여겨본 김가을 감독에 의해 꾸준히 기용된 결과 팀의 주력이자 송병구 못지 않은 에이스로 떠올라 조기에 육룡의 일원으로 이름을 날렸던 반면, 정명훈의 네임밸류는 허영무에 비해 더없이 초라했다. 그가 두각을 나타낸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때만 해도 그를 사람들은 리그 브레이커 취급하며 깠을 정도. 그러나 정명훈은 이후에도 반짝 준우승으로 그치지 않고 꾸준히 성장, 마침내 이영호 다음가는 테란 수준의 위상까지 확보하며 팀의 주력 중 하나인 도택명의 일원이 된다.
3.2. 양대 콩라인
정상급 프로토스와 테란으로 거듭난 둘은 커리어 중반부터 공교롭게도 사이좋게 콩라인의 일원이 된다. 허영무가 Clubday Online MSL 2008과 로스트사가 MSL 2009에서[6] , 정명훈이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과 BATOO 스타리그 08~09에서 각기 준우승을 거두며 사이좋게 콩라인에 가입하게 된 것. 다만 이 때만 해도 이들의 위상이 택뱅리쌍 급은 아니었기에 허덴으로 묶이지는 않았고, 그저 콩라인의 일원으로 나란히 언급되는 정도였다.
이 기간 동안 둘은 두 번의 준우승 외에도 꾸준히 양대리그 본선에 발을 들여놓았고, 프로리그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며 활약했지만, 끝내 개인리그에서는 우승을 거두지는 못하고 그분에 이은 콩라인으로 남아야 했다. 이전에 콩라인으로 언급되던 송병구가 정명훈이 준우승을 한 그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에서 우승을 하면서 콩라인에서 탈출하면서, 현역 콩라인으로는 정말 둘 밖에 남지 않았던 상황.
3.3. 콩라인 탈퇴와 허덴의 탄생
그러던 와중 2011년, 드디어 정명훈이 박카스 스타리그 2010에서 이전에 콩라인을 탈출한 그분를 셧아웃시키며 우승을 달성, 콩라인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반면 허영무의 경우, 이 시기 역대 최악의 슬럼프에 빠지며 프로리그고 개인리그고 연패를 기록, 그대로 콩라인에 머무를 것만 같은 위기에 빠지게 된다. 물론 정명훈 역시 우승 직후 슬럼프에 빠지며 신동원과 함께 우스운자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게 되었지만.
그러나 이러한 슬럼프도 잠시, 허영무는 그 유명한 겜알못 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각성, 슬럼프 이전보다도 압도적인 포스를 보여주며 다시금 정상급 프로토스의 자리를 되찾았고, 결국 박카스 스타리그 이후 열린 진에어 스타리그 2011에서, 처음에 예선탈락하는 비운을 맛봤으나 가까스로 와일드카드를 잡고 본선에 진출[7] , 기어이 결승까지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같은 시기 결승에 올라온 정명훈과의 격돌에서 2:2 상황에서 패배 직전까지 몰렸으나 기적적으로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을 하게 된다. 이로써 허영무와 정명훈 모두가 콩라인에서 탈출하게 된다.
우승을 거둔 둘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어, 사실상 2011~2012 시즌은 이들의 시대나 다름없는 시기가 되었다. 당장 진에어 스타리그 2011에서부터 택뱅리쌍이 모두 8강 이전에 탈락하면서 시드 확보에 실패하는 이변이 나타났으며[8] , 이듬해 열린 tving 스타리그 2012에서는 택뱅리쌍 중 최강자이자 당시 기세도 가장 좋았던 이영호가 정명훈에게 4강에서 0:3 셧아웃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 택뱅리쌍의 기세는 예전같지 않았다. 반면 허덴은 정명훈이 이영호에게 완승을 거둔 것을 비롯, 반대편에선 허영무가 4강에서 김명운을 명승부 끝에 물리치고 결승전에서 재격돌하게 된다. 여기서 허영무는 3:1으로 낙승을 거두고 마지막 스타리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며, 패배한 정명훈도 평생의 라이벌이자 늘 자신을 2인자로 만들었던 이영호를 완벽히 꺾고 스타1 말기 최강의 테란으로 우뚝 서는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3.4. 스타리그 종료 이후
스타2 전환 이후 둘의 행보는 다소 엇갈렸다. 허영무가 스타2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과 1년만인 2013년 은퇴를 선언한 반면, 정명훈은 스타2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아 활동을 지속하였다. 중도에 한 번 은퇴한 뒤 의경 복무를 하긴 했지만, 이후 또다시 스타2 프로게이머로 복귀하여 2019년까지 프로게이머 생활을 지속하고 은퇴했다.
아프리카TV 시대가 열리고 택뱅리쌍은 모두 스타1 방송을 하며 스타판에 복귀했지만, 허덴은 모두 여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상반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허영무는 잠시 방송을 하긴 했으나 가업을 잇기 위해 곧 접고 스타1 게이머로서의 삶을 완전히 그만두었으며, 정명훈은 팬들이 스타1을 할거냐는 질문에 단호히 거절하면서 아예 스타1 방송에는 발도 들여놓지 않았다. 스타2 프로게이머에서 은퇴를 하고 스타1으로 복귀를 원했던 많은 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샌드박스 LoL 팀의 코치로 데뷔하고 이후 2군 감독을 역임하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있다.
4. 택뱅리쌍과의 비교
언급된 바와 같이 2020년 현재까지도 스타리그의 최강자로는 단연 택뱅리쌍, 그 중에서도 이영호가 원톱으로 꼽히며, 허덴은 이들을 잠시 넘어서긴 했으나 택뱅리쌍을 넘어서는 평가를 받고 있지는 않다. 당장 해당 문서만 해도 택뱅리쌍 문서와는 달리 2020년 10월에야 비로소 만들어졌을 정도로 허덴이라는 용어 자체가 택뱅리쌍에 비해 넘사벽급으로 인지도가 낮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역시나 택뱅리쌍에 비해 허덴의 시대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짦은 것에서 기인한다. 택뱅리쌍은 3.3 혁명 이후 이미 2007년 경부터 각자의 종족 내에서 확고한 위상을 확보한 선수들이었고, 약 1~2년 간의 혼란기를 거쳐 빠르면 2008년, 늦어도 2009년에는 스타1의 최강자로 각인되었다. 반면 이 시점에 허덴의 위상은 이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으며, 허덴의 시대는 약 2011년부터 스타1 리그가 끝날 때까지 약 1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시기 동안 택뱅리쌍이 완전히 죽은 것도 아니고, 약간 주춤하기는 할지언정 여전한 위상을 누리고 있었으니 허덴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아보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당장 활동기간 동안의 꾸준한 활약상을 반영하는 프로리그 다승 순위만 해도 정명훈은 12위, 허영무는 19위인 반면 택뱅리쌍은 사이좋게 1~4위[9] 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허덴의 시대는 스타1 리그 자체가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던 시기였던 것도 원인이다. 스타1 리그는 2007~2008년 무렵의 황금기를 지나 2009년 무렵부터 조금씩 저물어가고 있는 상태였으며,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이후 결정타를 맞아 2011년이면 양대리그 중 하나였던 MBC GAME이 폐국되고 스타2 리그와의 병행이 논의되는 등, 이미 종말이 뚜렷하게 보이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아무리 전성기를 맞아봤자, 택뱅리쌍의 전성기와 비교하면 초라하게 보일 수밖에 없으며 주요 선수들 역시 스타2 리그를 준비하는 시기였으므로 최강 논쟁에 있어서도 반박당한 건덕지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다소 부족한 위상에도 불구하고 허덴은 택뱅리쌍을 상대로 상대전적에서 크게 밀리지 않는 몇 안되는 선수들이었다. 정명훈의 경우 택뱅리쌍 중 어느 누구와도 대등한 전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허영무는 이제동, 김택용에게는 많이 약했지만 이영호와는 대등하며, 송병구에게는 일방적으로 앞서는 전적을 보유하고 있다. 위상은 상대적으로 떨어질지 언정, 자신들의 전성기 이전부터 택뱅리쌍 어느 누구도 쉽게 볼 수 없는 강력한 상대였음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1] 정명훈이라는 이름 자체가 원체 흔하다보니, 스타 커뮤니티에서는 '리그에 테러를 가한다'는 의미에서 붙은 별명인 빈 라덴에서 따온 정라덴, 줄여서 그냥 '''덴'''이라 불렸다.[2] 프로리그 다승 1~4위가 사이좋게 택뱅리쌍이다.[3] 기나긴 슬럼프 시절 승수와 승률을 다 까먹었다.[4] 물론 정명훈은 허영무와 달리 프로리그에서 꾸준히 김택용 다음가는 T1의 에이스로 활약했으며, 프로리그 결승전에서도 최다승(6승 0패)을 기록하는 등 팀에 많은 기여를 하기는 했다. [5] 승부조작으로 기록 말소.[6] 정규리그는 아니지만 TG 삼보-인텔 클래식 시즌2에서도 준우승했다.[7] 와일드카드로 본선에 진출한 이후 이러한 웹툰이 돌았는데, 정말로 허영무가 우승을 거두며 성지가 되었다.[8] 드래프트 세대의 시작인 3.3 혁명 이후 택뱅리쌍 전원이 4강 진출에 실패한 유일한 대회이다.[9] 이제동-이영호-김택용-송병구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