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김저그

 


'''3김저그의 양대 개인리그 경력'''
'''이름'''
'''온게임넷 스타리그'''
'''MSL'''
''''''
''''''
''''''
본선 횟수
''''''
''''''
''''''
본선 횟수
김정우
'''1'''
0
0
5회
0
0
0
3회
김윤환
0
0
2
5회
'''1'''
0
1
7회
김명운
0
0
1
6회
0
1
2
9회
1. 개요
2. 현역 시절
3. 세부 비교
3.1. 개인리그
3.2. 프로리그
3.3. 신동원과의 비교
4. 은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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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진락변태준마준동 이후 2000년대 후반부터 스타크래프트 저그 라인에서 활약했던 3명의 저그 김윤환, 김정우, 김명운을 말한다. 세 선수 모두 개인리그 결승 진출 경험이 있는[1] 드래프트 세대의 상위권 저그들이었다.
이제동2007년 말부터 저그 최강자로 군림하기 시작하였고, 2009년에 이르러선 아예 스타판 원탑이 되었다.[2] 이때 저그가 황금기를 맞는데, 이제동의 아래로 떠오를 만한 선수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김씨'''라 3김저그라 불리게 되었다. 어느 한 명이 딱 정한 건 아니고 그냥 셋 다 김씨니까 몇몆 커뮤니티에서 이렇게 불렀는데 이게 널리 퍼진 것. 3김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 국민들에게 익숙한 것도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정착된 용어이다.
사실 3김저그의 3명 중 2보다 여러모로 우위인 신동원박찬수도 있지만, 현역 시절엔 3김이 부르기 편하고 신동원의 전성기가 네 명 중 제일 늦은 스타판 말기 직전인 2011년이라는 것 때문에[3] 또 나중일이지만 박찬수의 조작이 드러나면서 3김저그라는 말을 썼다. 또한 은퇴 이후에는 신동원이 인터넷 방송을 거의 안 했기 때문에 아프리카TV로 유입된 시청자들이 신동원을 잘 모른다는 점[4]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 신동원을 포함한 네 명의 서열까지 정리해서 ''이라고도 부른다.
프로토스육룡과 비슷한 느낌이 있지만 그 쪽은 육룡 내에서 머리/꼬리를 평가하여 종족 최강자를 나누는 반면, 이 셋은 역대 저그 최고 커리어를 보유한 규격 외의 이제동을 일찌감치 원탑으로 놓고,[5] 그 다음 가는 사람들을 묶어놓은 드래프트 세대의 저그 '''2인자 집단'''[6]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육룡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7] 그래서 3김저그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2. 현역 시절


3김저그 중 누가 우세라고 딱 잘라 말하기 힘든 것이 김윤환과 김정우 때문이다. 김명운은 우승이 없으니 꼴찌인건 확실하지만 김윤환과 김정우 비교는 주로 이영호 이겼도르, 승률도르[8][9] 등을 앞세우는 김정우와 개인리그 커리어, 다승을 앞세우는 김윤환의 비교가 종종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일어나곤 한다. 프로리그 한정 A급 테란 신이염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개인리그 커리어가 3김저그가 넘사벽으로 위다.
셋을 비교하자면 현역 시절 당시 '''김윤환을 3김의 수장으로 보면서, 김정우를 중간, 끝으로 김명운'''을 그보다 낮게 쳐주는게 정설이었다.[10]
'''김윤환'''이 셋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주된 이유는 '우승 1회-4강 3회'라는 훌륭한 커리어와 다승 순위를 높게 쳐준다.[11] 김정우, 김명운과의 상대전적 우위도 있긴 하다. 여기에 셋 중 비공식전 포함 최다전적, 최다승을 기록하고 있는 등 오랜 기간동안 A급 커리어를 유지했기 때문에, 3김 수장에 김윤환은 이견이 거의 없다. 김명운과는 7:6으로 미세한 우세에 있으며 자신이 우승을 차지했던 아발론 MSL 2009 8강에서 김정우를 3:0으로 셧아웃 시키는 등 김정우와의 상대전적에서도 5:1로 김윤환이 크게 앞서 있다.[12] 다만 2009년 이후로는 테란전이 무너지면서 잠시 패왕라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프로리그 성적이 안 좋았다는 점이 약점으로 꼽힌다.[13] 또한 기본기와 피지컬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눈썩 경기를 보다 많이 선사한 것도 아쉬운 점.
'''김정우'''는 이영호에게 리버스 스윕하며 우승한 임팩트가 있다. 개인리그 커리어가 결국 실력이며 비교의 1순위 잣대가 되고[14], 다전 숫자가 딸리는 만큼 큰 의미는 없지만[15] 비공식전까지 포함할 시, 3종족전 승률이 모두 60% 이상으로 셋 중에서 가장 높긴 하다. 동료 프로게이머들이 높이 평가할 만큼 연습실에서의 잠재력이 상당한데도 불구하고, 실제 경기때는 기복이 꽤 큰 편이고, 우승을 찍은 뒤에 연이은 양대리그에서 16강, 8강에 머물렀으며[16][17], WCG 2010 한국 대표 선발전 마저 탈락하였다.[18] 온게임넷 스타리그MBC GAME 스타리그양대 리그가 자리잡은 이후 우승자 출신 중 커리어가 가장 낮은 것이 김정우이다. 우승 외엔 준우승은 커녕 4강 진출도 1번도 못했으며 8강도 2번 밖에 가보지 못했다.[19] 그 이영호를 결승전에서 잡고도 직후 8강 1번 가보고 더이상 상위 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했으며 우승 이전에 8강에서 바로 김윤환한테 0:3 셧아웃패를 당하고 우승까지 하는데 일조했다. 거의 대부분의 개인리그에서 광탈이었다는 뜻. 이후 뜬금없이 은퇴를 선언하고 노량진으로 들어가버렸고, 실질적인 전성기가 매우 짧았다. 그야말로 현역 시절에는 반짝 스타였던것이다.
'''김명운'''은 오랫동안 개인리그에서 활약한 김윤환보다도 개인리그 본선 진출 기록이 많다는 점을 고평가한다. 그러나 이영호에게 3대빵을 당한 준우승이 최고 성적이라는 점은 위의 둘보다 높게 쳐 줄 수 없게 만든다. 개인리그에서 꾸준하긴 했는데 우승을 못했다. 프로리그 에결에서 택뱅리쌍을 잡는 등 활약도 많이 했지만 거꾸로 새가슴 소리[20]를 듣기도 했다.
1대1 개인 종목인 만큼 팀 커리어는 의미없긴 하지만 이 셋 중 스타 1이 조금이라도 있는 팀 단위 대회 우승 및 결승 진출 경험이 그나마 있는 선수는 스타2와 병행한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시즌 2에서 우승한 김정우가 유일하다. 08-09 위너스리그도 있긴 하지만 동일 시즌 프로리그와 비교해서 6개 라운드 중 1개 라운드만 진행한 점, 우승 상금도 최대 1/11[21]인 점 때문에 별로 쳐주진 않는다. 김윤환 같은 경우에는 프로리그 우승 및 결승 진출을 한 경험이 없고, 김명운도 마찬가지로 프로리그 우승 및 결승 진출을 한 경험이 없다. 스타2에선 각각 코치, 선수로서 똑같은 시즌에 결승에 진출했다. 스타1에선 김윤환은 경남 - STX컵 마스터즈에서 2회 우승, 2회 준우승을 경험하긴 했지만, 이 대회 역시 프로리그와 비교해 보았을 때 위상과 권위가 많이 낮고 비공식전이다. 제대로 된 팀 단위 스타 1 프로리그 우승은 세 명 다 아예 없다. 김정우와 김윤환은 각각 08-09, 09-10 시즌에 정규시즌 5위와 2위를 기록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전적이 있다.
어쨌든 이들이 스타판에 어느 정도의 활력을 불어넣었음은 확실하다. 처음에는 그닥 존재감이 없는 프로게이머들에 가까웠지만[22] 좋은 성적과 더불어 각자의 캐릭터성이 확실히 차이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양산형 경기가 판치는 스타판 후반기에 기발한 전략을 종종 보여주고 뛰어난 판짜기 실력과 심리전으로 브레인 저그라는 별명이 붙었다.
재재재재경기 끝에 16강 뚫고 결승에서 이영호를 패패승승승으로 꺾으며 우승하는 큰 임팩트를 남겨 불사조 등의 별명이 붙었다.
안정적인 후반 하이브 운영의 진수를 잘 보여주었고, 특히 퀸을 자주 쓰며 잘 활용하여 퀸명운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스타크래프트 2 전환 후의 행보는
  • 김윤환 : 테란으로 종족을 바꿨지만,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결국 다시 저그로 복귀하고 이후 플레잉 코치로 뛰다가 STX SouL 해체 후 은퇴.
  • 김정우 : CJ 엔투스에서 꾸준히 경기에 출전했으나, 기복을 보이며 부진 끝에 2014년 재은퇴.
  • 김명운 : 자유의 날개에서는 꽤 기량이 좋았지만, 군단의 심장에서는 부진 끝에 결국 은퇴.
아쉽게도 3김저그 라인에는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명예의 전당 헌액자가 '''없다.''' 그나마 이 중 커리어가 좋은 김윤환이 여기에 가장 근접했으나, 최종적으로 헌액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원탑 저그, 즉 S급보다는 확실하게 레벨 차이가 나는 A급 2인자 저그들의 한계일지도.[23]
공교롭게도 위 3명 모두 의무경찰로 입대해 군 복무를 해결했다. 김윤환, 김명운, 김정우 순으로 전역하여 다시 아프리카TV 개인방송에 복귀해서 BJ를 하고 있다.

3. 세부 비교



3.1. 개인리그


(4강, 8강의 상대가 우승자인 경우는 상대의 이름을 굵게 표시)

김윤환
김정우
김명운
우승
아발론 MSL 2009(vs한상봉 3:1)[24]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 1 2010(vs이영호 3:2)

준우승


ABC마트 MSL 2011(vs이영호 0:3)
4강
EVER 스타리그 2009(vs'''이영호''' 1:3)

로스트사가 MSL 2009(vs'''박찬수''' 0:3)
하나대투증권 MSL 2010(vs이제동 1:3)

피디팝 MSL 2010(vs차명환 1:3)
박카스 스타리그 2010(vs'''정명훈''' 2:3)

tving 스타리그 2012(vs'''허영무''' 2:3)
8강
빅파일 MSL 2010(vs정명훈 0:3)
아발론 MSL 2009(vs'''김윤환''' 0:3)
아발론 MSL 2009(vs한상봉 0:3)
피디팝 MSL 2010(vs'''신동원''' 0:3)
빅파일 MSL 2010(vs이재호 1:3)
박카스 스타리그 2009(vs'''이제동''' 0:2)
ABC마트 MSL 2011(vs김명운 2:3)

EVER 스타리그 2009(vs진영화 0:2)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 1 2010(vs'''김정우''' 0:2)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 2 2010(vs윤용태 0:2)
16강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 1 2010
박카스 스타리그 2009
NATE MSL 2010
진에어 스타리그 2011
EVER 스타리그 2009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 2 2010


3.2. 프로리그



김윤환
김정우
김명운
2005 후기
개인전
0승 2패
총합
0승 5패


팀플
0승 3패
2006 전기
개인전
3승 5패
총합
3승 7패


팀플
0승 2패
2006 후기
개인전
1승 0패
총합
10승 1패


팀플
9승 1패
2007 전기
개인전
4승 1패
총합
13승 10패

0승 1패
총합
0승 1패
팀플
9승 9패
0승 0패
2007 후기
개인전
8승 8패
총합
13승 12패

0승 3패
총합
6승 6패
팀플
5승 4패
6승 3패
2008
개인전
4승 7패
총합
5승 11패
1승 2패
총합
4승 5패
7승 11패
총합
9승 12패
팀플
1승 4패
3승 3패
2승 1패
08-09
40승 21패
33승 17패
30승 31패
09-10
31승 26패
36승 27패
40승 27패
10-11
25승 26패

38승 30패
2012[25]
10승 6패
18승 8패
14승 15패
통산
150승 125패
91승 57패
137승 122패

3.3. 신동원과의 비교


2011년 대한민국 E스포츠 대상 올해의 저그 상을 수상한 신동원보다 개인리그 커리어, 프로리그 다승을 모두 앞서는 선수는 김윤환 뿐이다. 김정우, 김명운은 프로리그 승수는 앞서지만 개인리그 커리어는 뒤쳐진다.
네 명 중 우승 경력이 없는 김명운은 제일 아래라는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고, 우승자 세 명을 집중해서 비교해보자면
'''1. 케스파랭킹'''
  • 김윤환 : 3위 7회 포함 5위 이내 10회
  • 김정우 : 2위 1회, 3위 1회 포함 5위 이내 11회
  • 신동원 : 2위 5회, 3위 2회 포함 5위 이내 13회
'''2. 개인리그 커리어'''
  • 김윤환 : 16강 2회, 8강 3회, 4강 3회, 우승 1회
  • 김정우 : 16강 3회, 8강 2회, 우승 1회
  • 신동원 : 16강 4회, 4강 2회, 우승 1회
'''3. 프로리그 다승'''
  • 김윤환 : 150승 125패[26]
  • 김정우 : 91승 57패
  • 신동원 : 59승 48패
일단 김윤환이 세 명의 우승자 중 탑을 달리는 건 당연히 알 수 있다. 중요한건 김정우와 신동원의 비교인데, 개인리그 커리어 차이와 케스파랭킹 차이, 개인수상 차이 때문에 신동원을 위로 두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 때문에 스갤에선 '뇌참매퀸'이라는 용어가 네 명의 서열을 정리한 것으로 사용됐었다.

4. 은퇴 이후


김윤환은 스타크래프트 2로만 진행된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12-13에서 코치로 활동면서 팀의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을 함께했고[27] 김정우, 김명운, 신동원은 스타2를 하다 현역 프로게이머 은퇴 이후, 3명의 김씨는 아프리카TV 개인 방송을 하고 있고, 신동원은 아주 잠깐 개인 방송을 하다가, 회사원이 되었다. 그리하여 현재 아프리카 스타판에서도 3김저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방송에서 보여주는 3김저그의 모습은 현역 때와 비교하면 평가가 많이 바뀌었다.

3김저그 수장이었던 김윤환은 암센세라는 새 별명에서 보듯 자타공인 꼴찌로 추락했다. 은퇴 후 입대하여 전역한 뒤 스타1을 잡았기 때문에 폼이 떨어진 건 그렇다 치더라도 전역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한 실력으로 맨날 못한다고 까이고 있다. 브레인은 아직 어느정도 살아 있는지 저저전에서 빌드를 자주 먹거나 심리전과 판짜기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서는[28] 발전투와 멀탯으로 견제에 휘둘리다 역전패 당하는 경우가 많다.[29][30] 그래도 실력이 내려간 덕(?)에 그것이 암센세라는 별명을 탄생시켜서 하나의 캐릭터로 잡힌 데다가 화려한 말빨까지 갖춰 개인 방송은 나름 흥하는 중이다. ASL 시즌 7에서 예상 밖의 선전[31]으로 8강에 진출한 이후부터는 대회에서의 선전마저 완전히 없어져 일말의 기대감도 사라진 상태이며, 그의 개인방송도 랜능크 등 스타 관련 컨텐츠가 설 자리가 거의 없어지고 점점 LOL 방송 비중이 늘고 있다. 2020년 12월 이후부터는 사실상 스타크래프트 컨텐츠를 완전히 접고 LOL, 종합게임 비제이로 전향하여 활약하는 중. 그러나 개인단위 리그인 ASL 은 계속 도전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이미 LOL 방송이 완전히 자리 잡은 상태에서 다시 스타크래프트 연습 방송을 할 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며, 설사 도전한다 하더라도 큰 공백기로 실력이 훨씬 더 떨어졌음은 기정 사실이기에, 이전보다 나아지는 성적을 거두기는 매우 힘들어 보인다.
김정우는 ASL 2회 우승을 차지하며 아프리카 스타판에서 정상급 저그까지 뛰어 올랐다. ASL 전신 대회인 반트 스타리그에선 김택용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러다 한동안 16강, 24강에 계속 머물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나, 결국 ASL 시즌6 결승에 올라 이영호를 잡고 우승 해버리며 부진을 씻어내는데 성공하였다. 기복은 여전하지만 소위 완전히 긁히는 날의 실력에 태클을 거는 사람은 없다. 군 입대 직전까지도 김민철과 함께 저그 강자 자리를 양분할 정도로 좋은 폼을 보여주었다. 군 전역 이후 군대 공백기, 손목 부상으로 인한 수술 여파와 그로 인해 떨어진 연습량으로 실력이 크게 떨어졌으나, 시간이 지날 수록 조금씩 실력이 회복되고 있다.
김명운도 ASL 2회 우승을 차지하며 아프리카 스타판에서 정상급 저그까지 뛰어 올랐다. 한동안은 온라인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오프라인 대회 성적이 영 시원찮았다.[32] 현역 시절에도 3김저그 중 가장 기본기가 탄탄하고 기복이 적다는 평가를 받았던 만큼 평소 방송할 때의 실력은 매우 뛰어났지만, 오프라인에서의 새가슴 기질과 판짜기 부족이 약점으로 꼽혔다. 하지만 전역 이후 서서히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갭을 줄이더니 ASL 시즌9에서 김택용, 도재욱, 이영호, 이재호 등을 꺾고 데뷔 약 13년 만에 생애 첫 우승까지 차지한 것에 이어서 ASL 시즌10에서 저그 최초로 ASL 2시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오프라인 대회에서도 좋은 폼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신동원은 네 명 중 스타2로 전향하고 제일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졌다. 아직 한국 선수들이 막강했을 2015년이긴 하지만 해외 대회인 2015 WCS Season 2[33]에서 우승함으로써 스타1, 스타2 1티어급 대회를 모두 우승한 두 번째[34] 선수가 되었고, 그 해 말에 최고 권위 대회인 2015 WCS Global Finals에도 진출해서 8강까지 올라갔다. 이듬해인 2016년에도 진출했지만, 결혼식 때문에 진출을 포기했고, 은퇴를 선언한다.
[1] 김윤환이 맨 처음으로 2009년 아발론 MSL 2009에서 우승, 이후 김정우가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1에서 우승, 마지막으로 김명운이 ABC마트 MSL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2] 2007년 말, 온게임넷 스타리그 첫 우승을 차지한 이후 이제동은 2008년 1월부터 2011년 7월까지 '''43개월 간 단 한번도 KeSPA 저그 랭킹 1위를 빼앗긴 적이 없다.''' 이 때문에 동 시대에 활약한 3김저그는 개인리그 결승에 진출했던 각자의 전성기 시절에도 독보적이었던 이제동에 가로막혀 1위를 찍은 적이 없다. 그나마 이후 김명운만이 2012년 9월과 10월에 단 2개월 간 1위에 올랐던 경험이 있긴 하다. 흔히 말해 그 당시 이제동은 신계, 이 셋은 인간계 최고 저그 정도.[3] 신동원의 우승보다 김명운의 준우승이 더 늦었다는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점이다.[4] MPL 시즌1 CJ 엔투스 소개 영상에서 신동원이 신동욱이라고 나오는 대참사가 있었다. 주최자인 김봉준도 CJ에 잠깐이긴 하지만 몸담았던 적도 있었는데...[5] 이제동은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역대 저그 최고 커리어인 양대리그(스타리그, MSL) 통산 '''5회 우승, 4회 준우승'''을 달성하였다. 당시에 3김저그 세 명의 양대리그 커리어를 모두 합친다 하더라도 2회 우승, 1회 준우승인걸 보면 그 격차가 상당하다는 걸 체감할 수 있다.[6] 정확히는 본인들이 활약했던 드래프트 세대 한정으로 저그 2인자 집단이다. 이전의 올드 게이머 세대를 포함한 브루드 워 역대 저그 라인에서는 스타크래프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이제동, 박성준, 홍진호, 조용호, 박태민에게 모두 밀린다고 평가 받는다.[7] 공교롭게도 정치계의 3김도 처음 묶여 다뤄질 당시 2인자(김종필)와 대안세력(김영삼, 김대중) 취급을 받고 있었다. 셋 중 두 명이 집권에 성공하는 것도 오리지널 3김과의 유사점.[8] 다전 숫자가 한참 차이나기 때문에 도르가 붙었다.[9] 거기다 매>뇌 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는데 커리어 뿐만 아니라 그 디테일을 따져봐도 김윤환의 우승은 날로 먹었단 식으로 폄하할만한게 아니다. 김윤환은 4강까지 전승으로 올라갔으며 4강에서 이제동한테 1패, 결승에서 한상봉한테 1패, 총 '''13승 2패'''라는 역대급 고승률로 우승했다. 거기다 4강에서 만난 이제동은 그 이전까지 저저전 다전제 무패였으며 양대 리그 동시 4강, 온게임넷 스타리그 2연속 우승, 원맨팀으로 프로리그 준우승, KeSPA 랭킹 1위를 달성한, 본인 프로게이머 인생 정점을 맞이하고 있던 선수이자 당대 최강의 선수였다. 게다가 동족전과 역상성전이라는 점도 있는 데다가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지만 '''이제동의 저그전이 이영호의 저그전보다 승률이 높다.''' 이런 거인을 이기고 우승한 것이다.[10] 김명운 본인도 자신이 3김저그 들어갈 정도는 되지만 그 중에서는 비교적 떨어진다고 종종 언급했다.[11] 우승 1회 - 4강 3회는 오영종, 서지훈, 박태민명예의 전당에 등록된 선수들과 거의 동률이다. 유일한 개인리그 우승이 아발론 MSL 2009애서 들어올린 트로피인 탓에 임팩트가 덜해서 명전에 못들어갔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김윤환은 저 네 명과는 다르게 프로리그, 위너스 리그와 같은 공식 팀단위대회에서 우승하거나 결승에 진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거기에 다승왕, MVP, 결승전 MVP, 위너스 리그 결승전 MVP 등 개인 수상 커리어도 부족한게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 외에도 준메이저 대회인 WCG에서도 메달을 단 하나도 수상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12] 다만 김명운과는 5전제에서 2:3으로 패한 적도 있다.[13] 이때 프로리그 6연패, 프로리그 최근 10전 1승 9패 등을 찍었다.[14] 물론 그 '''이영호'''를 잡고 우승했으니 1.5회 우승이나 마찬가지라는둥, 이영호를 잡은 것만으로 다른 커리어랑 비교가 안된다는 식의 사고를 가지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15] 100전 60승이 200전 120승이 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16] 우승 이후 이어진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2에서 16강 탈락하였고, 빅파일 MSL에서 이재호에게 1:3으로 패배하며 8강 탈락하였다.[17] 김정우 커리어에서 8강은 기대 이하라거나 낮은 편이라 말하기도 힘들다. 왜나하면 우승 1번 외에는 8강 2번이 가장 좋은 성적이기 때문. 커리어 전체를 놓고본다면 이때 8강 진출은 오히려 프로게이머 인생 전체에서는 상위 커리어라고 말해도 된다.[18] WCG 2010 한국 대표 선발전에서 김구현에게 0:2 셧아웃 당하며 4위에 머물러 선발되지 못하였다.[19] 비슷하게 우승 1회 이외에 8강을 넘은 적이 없던 변길섭박지수는 그래도 각각 8강에 각각 4회랑 3회 더 진출했다.[20] 이영호 역시 "이 형이 오프라인에서 자신감만 좀 가졌으면 우승 몇번은 했을거다."라는 말은 김명운의 경기를 보면서 자주 할 정도로 오프라인에서 새가슴이다.[21] 08-09 프로리그 정규시즌+포스트시즌 우승 시 1억 1천만원, 위너스리그 우승 1천만원[22] 김윤환은 2000년대 중반만 해도 팀플 전담 게이머였고, 김명운은 투명라인이었다. 그나마 김정우만 CJ 신인 트로이카로 주목받았다.[23] 상식적으로 이들 중 명전 헌액자가 나왔으면 2인자들끼리 묶이지 않고 확실한 S급 저그인 이제동하고 같이 엮였을 것이다.[24] 김정우를 김윤환보다 높게 쳐 줄때 얘기하는 것 중 하나는 이영호를 결승에서 이겼다는 것인데, 한상봉은 그 이영호를 16강에서 2:0으로 꺾었다. 그게 아니면 시대의 최강자를 결승에서 이겼다는 건, 4강에서 이제동을 꺾은 것이 있다.[25] 시즌1+시즌2 스타1[26] 와고 기록실엔 131승으로 나와있는데 이는 일부 경기가 누락된 것이다. 김윤환의 현역 스타1 마지막 승리 경기인 vs김명운 네오일렉트릭서킷, 13분부터에서 150승을 기록했다.[27] 이 때 선수진이 지금 보면 무지하게 화려한데, 이신형-백동준 원투펀치에 백업이 조성호, 김도우, 김성현, 변현제, 신대근이다. 이신형은 37승 19패로 다승 2위이자 2013 WCS Korea Season 1 준우승, 2013 WCS Season 1 Finals 우승, 2013 WCS Korea Season 2 4강의, 이 해 최고의 테란이고, 24승 17패의 백동준도 이 결승전이 있고 며칠 뒤에 2013 WCS Korea Season 3, JOGUNSHOP GSL과 3달 뒤 2013 WCS Season 3 Finals에서 우승할 정도로 강력한 선수였고, 16승 17패의 조성호는 바로 직전 시즌인 2012 SK플래닛 프로리그 시즌2에서 신인왕과 다승왕을 차지했고, 2019년엔 두 번의 GSL에서 준우승을 하고, 15승 9패의 김도우는 시즌 도중 프로토스로 전향하고 12승3패를 기록했으며, 2014년엔 GSL을, 2015년엔 SSL을 우승한다. 8승 10패의 김성현은 스타2로 치뤄진 첫 번째 스타리그에서 4강에 진출했으며, 8승 8패의 변현제는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1세트에 출전해 승리했고, 신대근은 비록 포시에서 전패하긴 했지만 13승 21패로 팀내 다승 5위를 기록했다.[28] 사실 김윤환의 심리전과 판짜기는 아프리카에 와서 ''''이 정도 까지였나'''' 라는 평이 나올 정도로 특출난 수준인데, 빌드를 먹히고 시작하는 것이 드물 정도로 초반 빌드의 우위를 점하고 시작한다. 때문에 방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기도 했지만 결국엔 대부분 패하기 때문에 방플 논란은 바로 사그라들었다. 이 점을 김윤환도 의식했는지 간혹 게임 시작 직후에 상대의 심리를 예측해서 설명하면서 자신의 빌드를 예고하고 게임하기도 하는데, 정말 상대가 김윤환이 예측한 빌드를 쓰면서 귀신같이 빌드를 먹는다. '''물론 그러고 진다.'''[29] 오버로드가 다 털려서 최대 인구수 한자리 찍기, 희대의 저그맵 배틀로얄에서 완패, 이름없는 아마추어에게 떡실신, 래더 A에게 털리고 래더 1800 테란과 인생경기 등 여러모로 무시무시한 목격담이 많다.[30] 현역 말년에도 서서히 피지컬이 하락해 가는것이 보였었는데, 은퇴 이후 방송 복귀까지 거의 스타를 하지 않아 안 그래도 안좋은 피지컬이 완전히 몰락했다는 평이 많다. 개인 방송에서 본인과 팀 동료들의 언급에 따르면 2011-2012 년 즈음부터 이미 게임을 거의 놓아버렸다고 한다. 엔트리 예고제 폐지 이후 본인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자 성적이 하락하고, 스타2 전환까지 겹치자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려 결국 코치로 전향하게 되었다고 한다.[31] 그것도 16강에서 '''김성현''', '''장윤철''', '''김민철''', 김윤환 이라는 죽음의 조를 '''1위'''로 뚫고 올라갔다.[32] 그래도 다행히 전역 이후, 제 실력을 찾는데 성공하며 온라인 스폰빵에선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ASL 예선 결승에서 뜬금없이 탈락하는 등 이상하게 오프라인에선 힘을 못 쓴다.[33] 해외의 GSL이라고 보면 된다.[34] 최초는 박지수